2015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 탁구경기 결산

2015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 탁구경기가 모두 끝났다. 한국탁구는 이번 대회에 실업팀 소속 국가대표 선수들을 출전시키며 최상의 결과를 꿈꿨었다. 실제로 남자 이상수(경기대/삼성생명), 김민석(군산대/KGC인삼공사), 정영식(대림대/KDB대우증권), 여자 양하은(대림대/대한항공), 전지희(대림대/포스코에너지), 황지나(대림대/KDB대우증권) 등이 대학팀 소속 선수들과 함께 진용을 꾸린 한국 대표팀은 각 종목 우승후보로 손색이 없었다. 세계랭킹에서도, 객관적인 기량분석에서도 한국의 적수는 많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대회 일정이 모두 끝나고 한국대표팀이 받아든 성적표는 기대 이하였다. 단체전에서 남자는 일본에 패해 메달권에도 진입 못했고, 4강에 오른 여자팀은 역시 국가대표들이 나온 타이완에 굴욕적인 역전패로 동메달에 머물렀다. 국제무대에서 자주 호흡을 맞추던 짝들이 출전하면서 금메달이 유력해보였던 남녀복식도 메달권 진입에는 성공했으나 김민석-정영식 조가 타이완의 창훙치에-후앙셩셩 조에게, 양하은-전지희 조는 중국의 체샤오시-장위에 조에게 패하면서 역시 남녀 모두 동메달에 머물렀다.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던 상대들이었고, 그 선수들이 다 금메달을 따낸 것을 생각하면 더 아쉬움이 남는 결과였다.
 

▲ (장성=안성호 기자) 한국남자대표팀은 8강전에서 일본에 패해 메달권에도 오르지 못했다.

그나마 복식에서 목표를 달성한 종목은 김민석-전지희 조가 금메달을 따낸 혼합복식이었다.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 동메달 조인 김민석-전지희 조는 뚜렷한 고비를 만나지 않고 우승까지 도달했다. 하지만 혼합복식은 이번 대회에서 치러진 일곱 개 종목 중 가장 비중이 높지 않고, 중국과 일본 등의 라이벌들이 상대적으로 덜 집중한 종목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혼합복식 금메달이 우리 선수단의 처진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데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대회 마지막 날 4강과 결승을 치른 남녀단식은 단체전과 더불어 가장 많은 관심을 모은 종목이었지만 또 한 번 실망스런 결과를 남겼다. 남자 톱시드였던 정영식(세계21위)은 전 날 8강전에서 이미 중국의 수비수 리우위를 뚫지 못했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상수(세계24위)마저 일본의 모리조노 마사타카(세계28위)에게 허무한 1대 4 패배를 당했다. 여자 톱시드였던 양하은(세계14위)도 중국의 강호 체샤오시(세계54위)에게 0대 4 완패를 당해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이번 대회 출전선수들 중 가장 높은 세계랭킹 보유자들이 출전한 단식에서 나온 동메달 두 개 역시 애초 목표에는 도달하지 못한 결과다.
 

▲ (장성=이효영 기자) 개인전 최고 성과는 김민석-전지희 조의 혼합복식 금메달이었다. 나머지 종목은 모두 동메달로 만족했다.

이로써 한국은 혼합복식 금메달, 여자단체전과 남녀복식, 남녀단식에서 각각 하나씩 다섯 개의 동메달로 만족하며 이번 대회를 끝마쳤다. 유니버시아드는 대학스포츠인들의 축제지만 각 종목 성과들이 비교되는 종합스포츠제전이다. 안방에서 개최된 국가대항전이어서 더욱 많은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됐던 이번 대회에서 한국탁구의 실험은 결국 실패로 돌아간 셈이다. 조금 과장해서 전 종목 석권까지도 가능할 거라는 목표를 세웠었던 이번 대회에서 한국 선수단이 초라하기 그지없는 결과를 남긴 이유는 뭐였을까. 결과론이지만 이를 두고 "처음부터 예정됐던 일"이라는 자성의 소리도 흘러나온다.

무엇보다도 준비 과정에서 ‘한 팀’으로 움직이지 않았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실제로 대학팀에서 선발된 선수들과 실업팀에서 급히 불러 모은 대표선수들은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지만 대회 개막 이전까지 단 한 번도 함께 훈련한 적이 없었다. 실업선수들이 일본오픈과 코리아오픈 등 국제탁구연맹 월드투어 출전으로 바쁜 동안 김용호(인하대), 유기을(경기대), 이소봉(공주대), 이영은(영산대) 등 대학대표들만이 따로 모여 개인전을 준비한 게 다였다. 코칭스태프도 대학 따로 실업 따로였다. ‘모래알’처럼 흩어져있다 대회 개막일에야 함께 모인 팀으로 단체전에서 좋은 성적을 바라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가 있었다는 얘기다.

단체전이 개인 대 개인의 시합을 합산하여 결정하는 방식이기는 해도 벤치의 응집력은 경기 결과에 많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벤치의 응원과 조언, 그리고 염원이 시합을 뛰는 선수에게 시시각각으로 전달되는 것이 바로 팀워크다. 대회의 취지와 출전의 의미, 기술과는 또 다른 범주일 수 있는 정신력 등은 팀워크를 통해 공고해질 수 있다. 이번 대회 한국팀은 그 가장 중요한 토대를 무시한 채 오로지 선수들의 개인 기량에만 의존하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 (장성=이효영 기자) 선수들은 많이 지쳐 있었다.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개인복식 4강전 패배 직후의 양하은-전지희 조.

단체전 주전으로 뛰면서 각 종목 금메달후보로도 지목됐던 한국 대표선수들은 이번 대회 이전까지 일본오픈, 코리아오픈 등등 또 다른 대회 일정으로 인해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는 상태였다. 일본이나 타이완 등도 비슷한 사정이었지만 ‘한 팀’으로 움직여온 그들과는 심리적인 피로감에서 비교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하위랭커들을 상대로 ‘잘해야 본전’이 되는 경기를 거듭하면서 축적된 심리적 부담감은 이미 많은 피로가 쌓여있던 체력적 부담과 더해지며 제 기량을 발휘하는데 장애가 됐다. “뭐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어떤 선수의 자조 섞인 표현은 한국팀의 분위기가 어땠는지를 그대로 대변해준다. 개인전에서조차 부진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대학팀에서 선발된 선수들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았다. 유니버시아드가 대학스포츠인들의 축제임에도 불구하고 한국대표팀 소속 대학 선수들은 이번 대회를 충분히 만끽하지 못했다. 실업팀 소속 대표들에 밀려 단체전에는 제대로 명함을 내밀지 못했고, 개인전도 몇 경기만으로 마감했다. 성적이 중요했던 안방 대회에서 대학 선수들은 관심권 밖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벌였고, 소외감이 불가피했을 이 선수들에게 ‘의지 있는 경기’는 욕심에 불과했다. 중고등부와 실업부에 밀려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 대학탁구의 현실이 유니버시아드에서도 그대로 재현됐다.
 

▲ (장성=안성호 기자) 앞으로도 ‘탁구’는 계속된다. 선수들이 한 시라도 빨리 제 컨디션을 회복하길 바랄 뿐이다. 사진은 이상수의 개인단식 준결승 경기 모습.

결국 이번 대회 한국대표팀은 국가대표팀도, 실업대표팀도, 대학대표팀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서 어정쩡한 경기를 펼치다가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남기고 일정을 마친 셈이 됐다. 종합국가대항전에서 좋은 성적을 내 국민들의 관심을 끌어올리고 그를 토대로 실업과 대학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겠다는 의도는 좋았으나 준비과정이 그 같은 취지를 뒷받침하지 못했다. 대회 개막 이후에도 ‘하나의 팀’이 아니었던 한국탁구에 2015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는 ‘영광’보다 ‘상처’가 많은 대회로 남게 됐다.

상처가 남긴 과제들을 어떻게 해결해갈 것인지는 물론 탁구인들 모두에게 주어져있는 몫이다. 대학탁구도 실업탁구도 한국탁구의 범주 안에서 같이 발전해야 한다. 향후에도 유니버시아드는 또 열릴 것이다. 이번 대회를 통해 경험한 것처럼 봉사와 희생의 차원만 가지고는 어떤 대회에서도 만족스러운 성적을 낼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취지도 탄탄한 배경이 없고서는 무용지물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지금은 대표선수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을 ‘올림픽’ 준비 시즌이다. 약 20일 뒤에는 또 중국에서 열리는 월드투어에도 나가야 한다. 지쳐있는 선수들이 몸도 마음도 한 시라도 빨리 추스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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