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출전 경험 있어, 단체전 아쉽지만 남은 경기 최선 다하길…!”

한국남자탁구 현역 최고 스타 주세혁(삼성생명)이 2015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 탁구경기가 열리고 있는 장성 홍길동체육관을 깜짝 방문했다.

주세혁은 수비전형의 새 장을 연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다. 끈질기고 날카로운 커트에 이은 화려한 공격전환 플레이로 이른 바 ‘공격하는 수비수’로 명성을 떨쳐왔다. 2003년 파리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남자탁구 역대 최고 성적인 개인단식 준우승에 올랐고, 2012년 런던올림픽 단체전 은메달,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 단체전 은메달, 개인전 동메달 등을 따내며 2천 년대 한국남자탁구를 이끌어온 주인공이다. 1980년 생으로 어느덧 30대 후반에 들어서고 있는 나이지만 여전히 녹슬지 않은 기량으로 남자대표팀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기도 하다.
 

▲ (장성=안성호 기자) 주세혁이 광주 U-대회 현장을 찾았다. 2001년 대표팀 동료였던 조용순 현 남자대표팀 코치와 함께.

주세혁은 유니버시아드와도 인연이 깊다. 2001년 중국에서 치러진 대회에서 한국 대표팀 일원으로 참가했다. 당시까지 탁구는 유니버시아드 정식종목이 아니었지만 개최국 중국이 선택종목으로 탁구를 포함시켰다. 대한탁구협회는 첫 유니버시아드 탁구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실업팀 소속으로 대학(한남대)에 적을 두고 있던 주세혁을 대표로 선발했다. 실업선수들과 대학선수들이 혼합된 대표팀 구성은 개최국으로서 역시 좋은 성적이 필요한 이번 대회 이전에 이미 선례가 있었던 셈이다.

2001년 대표팀에는 주세혁과 함께 박상준(현 렛츠런여자탁구단 코치)도 김남수, 이창준(이상 한국체대), 조용순(경기대) 등 대학대표선수들과 함께 뛴 실업소속 선수였다. 여자대표팀에서도 김무교(대한항공), 류지혜(제일모직) 등 국가대표 선수들이 오윤경(제주탐라대), 이고은(대구가톨릭대) 두 명의 대학 대표선수들과 함께 뛰었다. 당시 대학멤버였던 조용순은 현재 경기대 감독으로 이번 대회 대표팀 남자코치를 맡고 있고, 현재는 창원대에서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는 당시 여자대표팀 멤버 오윤경 역시 진행임원으로 이번 대회에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유니버시아드에서 탁구경기가 치러진 첫 경우였던 당시 대회는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탁구강국들의 관심도 지대했다. 특히 개최국이었던 중국은 남자부 왕리친, 마린, 여자부 장이닝, 니우지안펑, 티에야나 등등 당대 최고 선수들을 출전시켰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여자단체전 은메달, 혼합복식 은메달(박상준-류지혜), 남자단체전 동메달, 남자복식 동메달(박상준-주세혁) 등을 따냈다. 모든 종목이 메달 길목에서 중국에 석패했지만 올림픽을 방불했던 당시 대회 수준을 감안하면 대단한 선전이었다.
 

▲ 주세혁은 2천 년대 한국남자탁구를 이끌고 있는 에이스다. 지난 주 폐막한 코리아오픈에서의 경기모습이다. 월간탁구DB(ⓒ안성호).

유니버시아드에 탁구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것은 그로부터 몇 년이 더 흐른 뒤인 2007년에 이르러서였다. 이후부터 2년마다 치러져온 유니버시아드 탁구경기에 한국은 대학팀 소속 선수들만으로 대표팀을 구성해왔다. 실업에 비해 조금은 열악한 운동 환경에 놓여있는 대학대표팀은 꾸준히 선전했으나 8강권 이상을 기록하는 것도 버거웠던 게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광주에서 개최가 결정되자 대표팀 구성 방법에 변화를 가한 이유였다. 그리고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한 왕년의 유니버시아드 대표선수 주세혁이 경기장을 찾아 후배들을 응원했다.

하지만 선배의 바람과는 달리 한국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현재까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남자 이상수(삼성생명), 정영식(KDB대우증권), 김민석(KGC인삼공사), 여자 양하은(대한항공), 전지희(포스코에너지), 황지나(KDB대우증권) 등 국가대표 1진급 선수들이 출전하고도 단체전에서 남자는 8강 탈락, 여자는 동메달에 머물렀다. 남자는 일본의 2진급 선수들에 패했고, 여자는 국가대표팀이 나왔지만 객관적인 전력에서 한국보다 아래로 평가되는 타이완에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선수들이 좀 피곤한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육체적 피곤함보다는 정신적으로 강한 성취동기 같은 게 없어 보여요. 유니버시아드가 얼마나 중요한 대회인지, 왜 대표선수로 이 시합에서 열심히 뛰어야 하는지 정신무장을 좀 더 강하게 하고 나왔어야 하는데 일본오픈, 코리아오픈 등이 이어지면서 그럴 여유가 없었던 듯합니다. 일본이나 타이완 등은 말 그대로 대학대표팀으로 정말 열심히 뛰고 있는데 우리 선수들은 근성의 뒷받침 없이 싸우고 있으니 제 실력이 나오지 않는 것 같아요. 선배로서 안타깝습니다.”

그러면서 주세혁은 선수들이 지금부터라도 정신자세를 새롭게 해주길 주문했다.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량이 있으니 조금만 긴장한다면 개인전에서는 충분히 성적을 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 섞인 조언이다. 또한 주세혁은 대표팀 구성을 놓고 좀 더 체계적인 계획 아래 움직이지 못하는 행정에 대한 따끔한 지적도 잊지 않았다. 실제로 이번 대회 대표팀은 하나의 팀으로 같이 훈련 한 번 하지 못한 채 대회를 시작했다. 남자 김용호(인하대), 유기을(경기대), 여자 이영은(영산대), 이소봉(공주대) 등 대학팀 소속 대표들만 따로 모여 강화훈련을 한 것이 전부다. 응집력 있는 팀워크는 애초부터 포기하고 시작한 셈이다.

“유니버시아드를 넘어 국가대표팀 구성을 놓고도 일관적인 기준을 가져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있습니다. 무조건 운동에 집중하라는 주문 이전에 그럴 수 있는 환경이 먼저 조성됐으면 좋겠어요. 강화위원회 구성도 그렇고, 올림픽 출전선수 선정기준도 그렇고 요즘 생각이 많습니다. 먼저 경험한 선배로서 후배들에게는 지금부터라도 최선을 다해 뛰라는 것밖에는 할 말이 없네요. 지고 싶어 지는 사람도 없지만 져서 좋은 대회도 없습니다.”
 

▲ (장성=안성호 기자) 이번 대회 한국대표팀은 단체전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한일전에서 패한 남자대표팀. 개인전에서의 선전을 기원한다.

아직 현역선수 신분이지만 한국 남자탁구의 위기를 지탱해온 주역으로서 주세혁의 소신은 의미심장하다. 앞으로도 주세혁은 당분간 남자대표팀 에이스의 중책을 떠맡지 않으면 안 되는 위치에 있다. 그의 바람대로 선수들이 아무런 잡념 없이 운동에만 집중하고 그를 바탕으로 최선의 성과를 일궈내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라도 내세울 수 있는 좋은 성적은 반드시 필요하다. 선수들은 또 며칠 뒤 중국에서 열리는 국제탁구연맹 월드투어 슈퍼시리즈 중국오픈에서 고된 일정을 이어가야 한다. 하지만 당장의 현안은 개인전 일정이 시작된 2015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 탁구경기다. 남은 경기에서 반전을 일으키고 최상의 분위기에서 도전을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주세혁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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