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반전 돌입한 리우올림픽 탁구경기

한국여자 노메달, 일본여자 4강

지근거리에서 중국을 추격하며 우승에 도전하던 모습은 이제 ‘추억’에 더 가까워졌다. 서효원(렛츠런파크·29), 전지희(포스코에너지·24), 양하은(대한항공·22)이 출전한 한국 여자탁구는 선전했지만 개인전, 단체전 모두 소득 없이 리우올림픽을 끝냈다. 2012년 런던에 이어 2회 연속 노메달이다. 이번 대회 8강은 4강에 올랐던 런던에 비해 더 떨어진 성적이다.

한국이 물러난 자리를 채운 나라는 이웃 일본이다. 이시카와 카스미(세계랭킹6위), 후쿠하라 아이(세계8위), 이시카와 카스미(세계9위) ‘쌍두마차’가 이끄는 일본은 10대 선수 이토 미마의 ‘천재성’을 더해 이번 올림픽 4강에 올랐다. 브라질 리우센트로 파빌리온 3에서 현지 시간으로 14일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4강전에서는 한잉(세계7위), 산샤오나(세계21위) 등 중국계 선수들이 핵심을 이루는 독일과 풀-매치접전 끝에 패했다. 참으로 아깝게 졌지만 무려 네 시간 가까운 혈전으로 현지 관중의 아낌없는 박수를 받았다.

일본은 2012년 런던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동메달결정전으로 밀렸지만, 주전으로 활약한 이토 미마를 중심으로 수많은 10대 유망주들이 2020년 자국에서 열릴 도쿄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뛰고 있다. 국제탁구연맹(ITTF)도 그 충분한 가능성을 인정하고 자주 일본탁구를 조명하고 있을 정도다.
 

▲ 일본 여자대표팀이 4강전에서 아쉽게 패했다. 하지만 숨 막히는 접전으로 많은 관중을 매료시켰다. 사진 국제탁구연맹.

탁월한 지도력, 일본 탁구계 관심 이끌어

그런데 최근 각종 대회마다 4강권 이상의 성적을 올리며 중국과 자주 ‘마지막 승부’를 벌여왔던 일본 여자대표팀 코칭스태프에 한국 출신 탁구인이 함께 뛰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팬들은 많지 않다. 바로 오광헌 일본 여자대표팀 코치다.

현재 일본 주니어대표팀 감독도 겸하고 있는 오광헌 코치는 일본 여자탁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입지전적 인물이다. 1995년 일본으로 건너간 이후 슈쿠도쿠대학 코치와 감독을 역임하며 소속팀을 일본 최강으로 키워냈고, 지도력을 인정받아 2009년 일본 국가대표 코치로 기용됐다. 2013년부터는 주니어대표팀 감독까지 겸임하면서 유망주 육성에 기여하고 있다.

“일장기가 달린 유니폼과 트레이닝복을 받았을 때 기분이 묘했습니다. 이걸 꼭 입어야 하나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고, 일본에서 나름 성공적인 지도자 생활을 했다는 데 대한 증명 같아서 성취감도 느꼈고요. 어차피 할 거라면 최선을 다하는 게 답이었죠. 다행히 선수들도 잘 따라줬고, 일본 대표팀도 꾸준히 성과를 냈습니다.”

한국인 지도자를 대표팀 코치로 기용한다는 것은 사실 일본으로서도 파격이었다. 뚜렷한 공적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일본 대학탁구는 실업무대에 버금간다. 150개 이상 팀들이 관서와 관동리그로 나뉘어 뛰고, 1년에 한 번씩 전일본선수권으로 챔피언을 가린다. 이전까지 약체로 취급받던 슈쿠도쿠대학은 오광헌 감독 취임 이후 눈부시게 성장했다. 코치 시절부터 오 감독이 지도한 21년 동안 전일본선수권 우승만 단체전 11회, 단식 4회, 복식 2회 등등 비중 있는 존재감을 쌓았다. 일본대학탁구연맹 85년 역사상 처음 전일본대학선수권 단체전 5연패의 기록도 세웠다. 오 감독의 지도력이 일본 탁구계의 주목을 끈 것은 당연했다.
 

▲ 오광헌 일본 여자탁구대표팀 코치. 탁월한 지도력을 인정받고 있다. 월간탁구DB.

일본 스포츠멘토 지도상 수상한 한국지도자

오 감독이 대표팀에 합류한 2009년 이후 일본 여자대표팀도 일취월장했다. 세계선수권대회와 올림픽 등에서 중국 다음가는 성적을 연속으로 일궈냈다. 한국대표팀이 ‘세대교체’의 몸살을 앓으며 자꾸 약해져가던 사이 일본은 계속해서 강해졌고, 강해지고 있다. 일본 탁구계는 과정의 핵심에 있었던 오광헌 감독의 지도력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올 4월에는 일본 미즈노스포츠진흥공단과 일본올림픽위원회, 일본체육회 공동주관으로 일본 체육발전에 공헌한 지도자에게 주는 ‘미즈노 스포츠멘토 지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0년부터 시작된 이 상을 외국인 지도자가 수상한 것은 오광헌 감독이 세 번째다. 한국인 지도자로는 당연히 오 감독이 첫 수상이며, 일본탁구협회 소속 지도자만을 따져도 다섯 번째에 불과할 만큼 후보에 오르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상이다. 수상 직후 오 감독은 “그저 열심히 했기 때문”이라고 담담한 소감을 밝혔었다.

하지만 그저 열심히만 한다고 가능했던 일일까? 세계 최강 중국도 아닌 라이벌 한국의 탁구인이 일본에서 그만한 성취를 이뤄낸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처음엔 언어도 통하지 않았을 선수들을 이끌고 어떻게 눈에 띄는 성적을 낼 수 있었는지에 대해 오 감독은 “탁구를 대하는 두 나라 선수들의 시각과 환경적인 차이를 파악한 결과”라는 답을 내놨다.
 

▲ 많은 가능성을 지닌 유망주들이 2020년을 목표로 뛰고 있는 일본이다. 10대의 나이로 이번 올림픽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는 이토 미마. 사진 국제탁구연맹.

생각하는 탁구가 필요하다

“일본 지도자들은 선수들에게 자율로 맡기는 경향이 많아요. 선수들은 편한 연습만 하게 되고 오히려 기량 향상이 더뎠죠. 선수들과 대화를 나눈 뒤 훈련량을 늘려갔는데 불만 없이 잘 따라오더라고요. 일본 선수들은 정말 탁구를 좋아하는 친구들만 선수의 길을 걷습니다. 대학이나 실업까지도 공부 또는 일과 병행하기 때문에 애정이 없다면 선수를 택하기 쉽지 않아요. 좋아서 하는 만큼 강하게 훈련을 받아서라도 기량을 늘려가고 싶은 욕구가 많았던 거죠.”

오 감독은 그렇다고 일본탁구 특유의 자율과 창의성을 무시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획일적인 전체 훈련뿐만 아니라 한 명 한 명에게 필요한 개별적인 보완과제를 분석해서 연습하게 했어요. 자신이 뭘 해야 할지 모르던 선수들은 목말라있던 훈련에 열심히 참가했고, 기량도 빠르게 늘었죠.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 보완과제를 찾아내 의논을 해오기도 했고요. 조금 느슨해진다 싶으면 엄격하게 꾸중도 했죠.”

더불어 오 감독은 “한국 선수들은 일본 선수들에 비해 훈련량이 많지만 너무 수동적인 경향이 있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제가 아는 선에서 한국 지도자들은 일본과는 반대로 자신의 의견을 지나치게 강하게 선수들에게 주입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선수들은 무조건적으로 따라만 가려다보니 빨리 지치게 되고 능률이 떨어지는 거죠. 획일적인 훈련은 상상력, 혹은 창의력 부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 탁구를 하고 있고 목표가 무엇인지를 잊은 채 무의식적으로 스윙만 해서는 보람도 느낄 수 없게 됩니다.”

오광헌 감독은 “뼈를 만들어주는 것은 지도자지만 살을 붙이는 일은 선수의 몫”이라고 단정했다. “‘살’은 상상력과 아이디어”다. 어쩌면 그것이 훨씬 많은 훈련량을 가지고도 일본에 비해 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현재 한국탁구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오 감독이 전하는 “연습만 보면 한국을 절대 못 이길 것 같은데 실전에선 별 거 아닐 때가 많다”는 일본 선수들의 얘기는 듣는 사람을 씁쓸하게 한다. 오광헌 감독은 “한국과 일본은 ‘선수 육성 시스템’보다는 ‘생각의 문제’에서 차이가 생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누가 더 능동적인 목표의식을 갖고 뛰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두 나라 환경의 차이는 있지만 현재 리우에 있는 우리 대표선수들도 한 번쯤은 깊이 생각해볼 문제다.
 

▲ 남자부에서 한일전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스웨덴전을 승리로 이끈 이상수-정영식 조. 사진 국제탁구연맹.

한일전 가능성 높아진 남자탁구

종반전에 접어든 리우올림픽 탁구경기에서 일본은 남자대표팀도 4강에 올라 결승 진출을 노리고 있다. 미즈타니 준(세계6위), 요시무라 마하루(세계21위), 니와 코키(세계22위) 등이 고르게 활약하며 폴란드와 홍콩을 연파했다. 4강전 상대는 여자팀 4강전과 같은 독일이다. 디미트리 옵챠로프(세계5위), 티모 볼(세계13위) 등 유럽 최강자들이 있는 독일과는 백중세의 전력이다. 여자팀의 ‘복수전’을 노리고 있으나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어쩌면 ‘외계 탁구’를 구사하는 중국과 4강에서 맞붙는 우리나라와 동메달을 걸고 일전을 벌여야 할 수도 있다. 확률은 반반이다.

이번 올림픽 첫 한일전이 열린다면, 국민정서상 ‘무조건 승리’가 당연한 목표가 되겠지만 이전과는 다른 마음의 자세도 필요해 보인다. 한국탁구의 현재는 남자 역시 불과 얼마 전까지 일본에 확실한 우위를 보였었던 상황과는 다르다. 원활하지 못했던 세대교체로 더딘 걸음을 걸어왔다. 그동안 일본은 남자도 여자처럼 꾸준히 성장해왔다. 베테랑 주세혁의 존재는 여전히 큰 믿음이 가지만, 이상수와 정영식은 도전자의 자세로 굳은 각오를 다지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탁구 발전에 크게 공헌한 한국탁구인 오광헌 감독은 “한국과 일본이 라이벌로 서로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발전시켜서 중국이 아닌 두 나라가 결승대결을 벌이는 날이 빨리 오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우선은 4강전이다. 후회 없는 경기가 필요한 남자대표팀의 대 중국전은 우리 시간으로 16일 아침 일곱 시 30분에 열린다. 일본과 독일의 4강전은 그보다 앞선 16일 새벽 세 시다. 결승 진출을 눈앞에서 놓친 일본 여자팀은 역시 한국 시간 17일 밤 열한시에 동메달결정전을 남기고 있다. 상대는 우리나라를 이기고 올라간 싱가포르가 될 가능성이 거의 100%. 이번 올림픽 마지막 승부를 준비하는 오광헌 일본 여자대표팀 코치의 시계도 빠르게 흐르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 제31회 하계올림픽 탁구경기는 18일 모든 경기를 마감한다(월간탁구/더핑퐁=한인수 기자).
 

▲ 한일전이 열린다면 도전자의 자세로 싸워야 한다. 일본 에이스 미즈타니 준의 경기모습. 사진 국제탁구연맹.

관련기사

저작권자 © 더 핑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