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올림픽 탁구 ‘제2막’ 남녀단체전 시작

(월간탁구/더핑퐁=한인수 기자) 탁구에는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중국 대 세계올스타 챌린지’라는 국제 이벤트가 있었다. 명칭 그대로 세계 각국 톱랭커들이 팀을 꾸려 중국 대표팀과 겨루는 무대였다. 국제탁구계에서 차지하는 중국탁구의 존재감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마저도 열리지 않고 있다. 2012년 대회가 마지막이었다. 뻔한 결과로 흥행요소가 거의 사라지면서 개최경비를 지원할 스폰서가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 흥미로운 이벤트가 사라진 가장 큰 이유다. 실제로 현 중국탁구의 전력은 각국의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힘을 합쳐 도전해도 한 매치도 뺏어오기 힘들 만큼 압도적이다.
 

▲ (더핑퐁=안성호 기자) 마롱과 딩닝이 남녀단식 금메달을 가져갔다. ‘예정대로’였다.

12일 오전(한국 시간) 막을 내린 리우올림픽 탁구 남녀개인전에서 중국이 결국 ‘예정했던’ 금메달을 가져갔다. 지난해 개인전 남녀 세계선수권자들이기도 한 마롱과 딩닝이 자국 라이벌들의 도전을 뿌리치고 올림픽 단식 금메달의 숙원을 풀었다.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2연패를 노렸던 장지커와 리샤오샤도 본인들의 이력에 올림픽 은메달을 추가시키며 구색을 갖췄다. 남녀 각 두 명이 나와 남녀 1, 2위를 휩쓴 중국탁구의 위력 앞에서 다른 나라 선수들은 동메달 다툼을 최고 경연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던 올림픽이었고, 개인단식이었다. 중국과 비(非)중국 간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이쯤 되면 ‘월드 올스타 챌린지’의 시계가 멈춘 것도 이해가 간다.

탁구 ‘제2막’ 남녀단체전

브라질 리우센트로 파빌리온 3경기장에서 열리고 있는 리우데자네이루 제31회 하계올림픽 탁구경기는 이제 단체전으로 제2막을 연다. 단체전은 각 대륙별 선수권 성적과 올림픽 팀 랭킹 등을 고려해 선정된 16개국이 토너먼트로 경쟁하는데, 개인전에 나왔던 두 명의 주전들에다 한 명의 멤버가 더해져 ‘3인 4단식 1복식’으로 승부를 겨루는 방식이다. 각 상대국이 토스텍을 던져 ‘ABC’와 ‘XYZ’를 나눈 다음, 그에 맞춰 경기 전에 제출하는 출전선수 순서에 따라 차례로 대결을 벌인다. 물론 세 매치를 먼저 가져가는 팀이 이긴다. 개인전은 7전 4선승제였지만, 단체전 내 각 매치들은 5전 3선승제(5게임제)로 진행된다(표 참고).
 

▲ 올림픽스타일 단체전 경기방식.

단체전도 강력한 금메달후보는 중국이다. 단식 금은메달을 모두 가져간 주전들은 물론이고, 추가되는 남녀 1명의 선수들 역시 무시무시하기가 이를 데 없다. 남자는 왼손 ‘이면타법’의 달인 쉬신(세계랭킹 3위), 여자는 현 세계랭킹 1위인 속공수 류스원이다. IOC와 ITTF(국제탁구연맹)가 출전 인원을 제한해서 그렇지 개인전에 나와 금메달을 땄다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최강자들이다. 단체전은 복식이 변수로 지목되지만 중국은 그마저도 빈틈이 없다. 한 마디로 이번 올림픽은 단체전도 개인전에 이어 최강 중국에 도전하는 다른 국가들의 경쟁으로 집약할 수 있다. 과장을 보태 ‘외계 중국’에 도전하는 ‘지구대표팀’ 뽑기다.

그러니 목표를 분명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중국을 이겨야 우승할 수 있다는 것은 국제 탁구무대의 오래된, 그리고 거의 절대적 명제지만, 일단은 중국을 만나야 가능한 일이라는 전제가 따른다. 중국은 당연히 톱시드다. 전력 균형을 위해 다른 강국들도 시드를 받아 대진표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그 나라들이 모두 중국과의 승부를 목표로 싸운다. 엄밀하게 ‘중국을 이기자’보다 ‘중국을 만나자’에 가깝다. 시드를 받은 강국이 중국을 만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메달권에 가까워졌다는 말이며, 그것은 한국 또한 다르지 않다. 역시 당연한 말이지만 중국 이전에 넘어야 하는 경쟁국들이 우선이다.
 

▲ (더핑퐁=안성호 기자) 단체전에 가세하는 중국 선수들. 남자 쉬신과 여자 류스원. 역시 최강자들이다.

‘지구 대표’가 되자!

한국탁구는 국제무대에서 중국과 많은 명승부를 펼쳐온 탁구강국이다. 특히 올림픽에서 유남규, 현정화-양영자, 유승민 등이 중국 다음으로 많은 금메달을 따냈다. 탁구가 오랫동안 ‘효자종목’의 이미지를 간직할 수 있었던 이유다. 많은 팬들의 기대치도 여전히 ‘중국전 승리’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대로 인정해야 한다. 이번 대회 개인전에 출전한 우리 선수들은 전원이 입상권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중국을 쫓던 한국탁구의 발걸음은 경쾌하지 못했고, 그 사이 다른 경쟁국들이 우리보다 앞이거나 옆에서, 혹은 바로 뒤에서 달리고 있다(이번 올림픽 개인전 동메달은 남자는 일본의 미즈타니 준, 여자는 북한의 김송이가 가져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심스럽게 희망적인 기대를 품게 되는 이유는 단체전은 복식이 있는 경기방식과 선수구성 등에서 한국에 플러스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단체전에 남자대표팀은 단식에 뛰었던 이상수(삼성생명·26), 정영식(미래에셋대우·24)에 베테랑 주세혁(삼성생명·36)이 힘을 더한다. 세계 최고 수비수인 주세혁은 예의 ‘월드올스타 챌린지’에서 세계 대표팀 멤버로 단골 선발되던 주인공이다. 이번 올림픽 개인단식은 출전권을 갖고도 후배 이상수에게 양보했다. 비주전 멤버가 가세하는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남자는 실질적인 에이스가 단체전부터 뛴다. 주세혁은 최근까지 고질적인 봉와직염으로 고생해왔지만 베테랑답게 컨디션을 회복하고 출격 대기 중이다.
 

▲ (더핑퐁=안성호 기자) 단체전에 출격하는 남자대표팀 멤버들. 왼쪽부터 이상수, 정영식, 주세혁

여자대표팀은 역시 개인전에 출전했던 서효원(렛츠런파크·29), 전지희(포스코에너지·24)에 양하은(대한항공·22)이 가세한다. 양하은은 막내지만 한국팀 멤버들 중에서 가장 많은 대표경험을 갖고 있는 선수다. 작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중국의 쉬신과 짝을 이뤄 혼합복식 금메달을 따내기도 했었다. 특히 전지희와 함께 하는 복식에서 큰 힘을 더할 것으로 전망된다. 단체전 세 번째 매치인 복식은 전체 경기의 흐름을 좌우할 승부처가 될 때가 많다. 승부처에서 강한 한국탁구는 어떤 경기에서도 쉽게 물러서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있다.

이번 대회 한국대표팀은 남자는 3번 시드, 여자는 7번 시드다. 대진 상 승리를 가정하고 남자는 브라질, 스웨덴 대 미국전 승자, 중국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여자는 루마니아, 싱가포르 대 이집트전 승자, 중국을 만난다. 중국전은 남녀 모두 4강전이다. 한국탁구는 과연 ‘지구’를 대표할 수 있을까? 개인전에서 정영식이 마롱과 펼쳤던 명승부처럼, 이기지 못할지라도 최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팬들은 커다란 환호와 박수를 보내줄 준비가 되어있다. 그리고 그러한 승부들이 쌓이고 쌓인다면 가까운 시일 안에 흥미를 끄는 국제 탁구계의 다양한 이벤트들도 부활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 선두에 한국탁구가 있기를 바란다.
 

▲ (더핑퐁=안성호 기자) 단체전에 출격하는 여자대표팀 멤버들. 왼쪽부터 서효원, 전지희, 양하은.

리우올림픽 단체전 한국탁구의 여정은 12일 밤 열 시(한국 시간)에 열리는 여자단체전 1라운드 대 루마니아전, 13일 아침 7시 30분(한국 시간)으로 예정돼있는 남자단체전 1라운드 대 브라질전으로부터 시작된다(아래 대진표 참고).
 

▲ 남자단체전 대진표. 국제탁구연맹 사이트 캡쳐.
▲ 여자단체전 대진표. 국제탁구연맹 사이트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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