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전 마감한 대표팀, 단체전에서 ‘명예회복’ 다짐

▲ 세계 최강자 마롱과 명승부를 연출한 정영식. 이제는 단체전을 준비한다. 사진 국제탁구연맹.

고정관념 깨뜨린 리시브 기술 ‘치키타’

탁구기술 중에 ‘치키타’라는 별칭으로 통하는 것이 있다. 투바운드 성으로 짧게 오는 상대 반구를 테이블 위에서 강한 백스핀을 걸어 넘기는 기술이다. 용구와 기술의 발전에 따라 2천 년대 이후 들어서야 일반화되기 시작한 백핸드 드라이브의 일종인데, 스윙의 궤적과 라켓을 튕기고 네트를 넘어가는 공의 궤적이 바나나처럼 휘어진다 하여 ‘치키타’라는 이름이 붙었다. ‘치키타’는 바나나 등 다양한 과일을 취급하는 미국 유명 식품기업의 브랜드다. 축구의 ‘바나나킥’과 비슷한 어원을 갖고 있는 셈이다.

서브권을 가진 선수가 유리하다는 생각은 탁구의 오랜 고정관념 중 하나였다. 리시버는 ‘상대의 의도대로 3구 공격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플레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쇼트 서비스에 대해 볼의 아래를 깎아 넘기는 짧은 ‘스톱’ 리시브로 상대 공격을 예방하고 랠리전으로 이어가는 것’이 오랫동안 주류를 이뤄온 리시브전술이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 관념은 더 이상 ‘고정적’이지 않다. 스피드와 강한 회전을 가미하는 ‘치키타’의 등장으로 공격적인 리시브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서버가 꼭 유리하다고만은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지난 런던올림픽 남자단식 금메달리스트이자 2011년, 2013년 세계선수권을 2연패한 장지커(중국)는 바로 이 ‘치키타’를 주무기로 수차례 정상에 오른 대표적인 선수다. 그의 성공 이후 전 세계 수많은 선수들이 연마에 공을 들였고, ‘치키타’는 이제 수준급 선수라면 반드시 구사할 수 있어야 하는 핵심 기술로 자리 잡고 있다. ‘치키타’ 이후로 현대 탁구는 더욱 빨라졌고 더욱 강해졌다. 숨 쉴 틈 없는 랠리가 코트를 가득 채운다.

이번 리우올림픽 한국대표팀의 두 공격수 이상수(삼성생명·26)와 정영식(미래에셋대우·24) 역시 백코스로 오는 상대의 짧은 회전 서비스는 대부분 ‘치키타’로 반구하면서 2구부터 아주 빠르고 공격적인 플레이를 지향하는 선수들이다.
 

▲ 이길 경기를 놓친 이상수, 단체전을 위한 좋은 교훈이 됐기를. 사진 국제탁구연맹.

상대의 수읽기에 패배 자초

문제는 ‘치키타’가 일반화되면서 이 기술에 대한 대응책도 더불어 발전했다는 것이다. 리시버를 테이블에서 물러나게 하는 '롱서비스'를 불시에 넣거나, 변화 예측이 쉽지 않은 복잡한 회전 서비스로 ‘치키타’를 원천봉쇄하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또한 역으로 리시버의 ‘치키타’를 유도한 뒤 빠른 동작으로 준비 자세를 취하여 카운터 드라이브로 반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술력의 격차가 큰 상대에게는 더없이 빠르게 결정할 수 있는 무기로 사용되지만, 오랜 구력을 가진 노련한 선수나 빠른 움직임으로 순간적인 반격이 가능한 수준급의 상대에게는 ‘양날의 검’이 될 수밖에 없는 기술이 또한 ‘치키타’다.

리우올림픽 남자단식 3라운드와 4라운드에서 각각 패한 이상수와 정영식도 바로 그런 ‘치키타의 덫’에 걸렸다. 이상수의 상대였던 아드리안 크리산(루마니아)은 고집스럽게 치키타를 시도하는 이상수의 리시브 습관을 역이용, 중요한 승부처마다 롱서비스로 맥을 끊고 경기흐름을 자기 쪽으로 끌고 갔다. 더불어 많이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장신의 타점 높은 백핸드로 코스 변화를 자주 시도했다. 조급해진 이상수는 더욱 공격적으로 승부하기 위해 리시브 기회 때마다 ‘치키타’를 포기하지 않았는데, 결국 연속된 듀스접전에서 노련한 상대의 수읽기에 패배를 자초하고 말았다.

마롱과 명승부를 벌인 정영식도 ‘치키타’ 때문에 웃고 울었다. 경기 초반 ‘치키타’는 정영식에게 빠르고 낮은 백핸드로 랠리를 주도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을 제공했다. 물론 마롱의 서비스를 집중분석한 정영식의 준비가 바탕에 있었다. 정영식이 먼저 두 게임을 선취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하지만 중반 이후 정영식의 경기 패턴을 파악한 마롱은 서비스 이후 백핸드 쪽으로 빠르게 돌아 들어가 역공을 가하는 작전으로 정영식을 흔들었다. 마롱을 상대로 많은 준비를 했던 정영식 역시 맞드라이브로 대응하며 인상적인 랠리를 자주 연출했으나, 힘 대 힘으로 맞설 경우 마롱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이상수나 정영식이나 조금 더 다양한 리시브 전술이 아쉬웠던 승부였다. 수많은 단련으로 몸에 익다시피 한 전술을 상대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바꿔가기에는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의 중압감도 너무 컸을 터다. ‘치키타’는 유용한 기술이지만 이미 노출돼있는 무기다. 바꿀 수 없다면 구사 후의 빠른 준비동작이 필수지만 우리 선수들은 이 부분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음을 부정할 수 없는 승부를 펼쳤다.
 

▲ 대추격전을 전개한 서효원. 마지막에 힘이 빠졌다. 사진 국제탁구연맹.

단체전 준비하는 대표팀

몇몇 전문가들은 단체전 이전인 개인전에서 문제를 드러낸 것이 다행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처음부터 좋지 않았던 대진을 감안하면 개인전은 어차피 단체전을 대비하는 창구로 활용했어야 했다. 몇 경기 치르지 못했지만 개인전은 통하지 않는 기술과 전술을 고집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느끼게 해준 승부가 됐다는 것이다. 특히 이상수의 첫 경기 패배는 상대에 따라 보다 융통성 있는 경기운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중국 이전에 만날 수 있는 상대국들에 대해서도 보다 신중한 대비가 필요할 것이다.

다행히 남자대표팀에는 중심을 잡아줄 ‘베테랑’ 주세혁(삼성생명·36)이 있다. 이철승 남자대표팀 코치는 “선수들이 개인전에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조금 의기소침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차피 메달 목표는 단체전에 두고 있었다. 맏형 주세혁이 후배들을 잘 챙기고 있으니 분위기는 금방 회복될 것이다. 함께 나서는 단체전에서는 서로 믿는 팀워크가 절실하다. 더 이상 올림픽 경험을 핑계로 삼아서도 안 되고, 서두르다 가진 기술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해서도 안 된다. 평정심을 유지할 경우 충분히 더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는 선수들이다. 코칭스태프도 각별히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이라고 현재 팀 분위기를 전했다.

사실 어떤 승부고 ‘양날의 검’은 존재한다. 잘하는 것이 있으면 못하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잘하는 것을 극대화시키고 못하는 것을 최소화시키는 쪽이 이긴다. 남자대표팀의 ‘치키타’는 리우로 간 한국탁구가 갖고 있는 대표적인 ‘양날의 검’이다. 시간이 많지 않은 지금은 날카롭게 벼린 칼날이 부메랑이 되지 않을 수 있도록 선수단 전체가 되새길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의 중압감은 개인전에서 충분히 체험했고, 단체전은 오는 12일부터 시작된다. 개인전을 일찍 마무리한 대신 단체전을 준비할 수 있는 여유가 보다 많이 주어진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아쉬웠던 마지막 순간. 빨리 잊고 단체전을 준비해야 할 때다. 사진 국제탁구연맹.

그리고 여자대표팀! 개인전에서의 아쉬움 속에 단체전을 준비하는 것은 여자대표팀도 다르지 않다. 전지희(포스코에너지·24)와 서효원(렛츠런파크·29)은 16강전에서 각각 싱가포르의 위멍위와 타이완의 쳉아이칭에게 패하고 개인전 일정을 마감했다. 서효원은 세 게임을 내주고 세 게임을 추격하는 대접전을 펼쳤으나 끝내 승부를 되돌리지 못했고, 전지희는 초반 대등했던 기세를 살리지 못하고 갈수록 전의를 상실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개인전을 뛰지 않은 양하은(대한항공·22)에게 지친 언니들의 기를 살려줄 청량제 역할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박상준 여자대표팀 코치는 “여자대표팀은 최근 세계대회에서 부진했던 단체전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개인전과는 다를 것이다. 첫 상대인 루마니아는 객관적인 기량으로는 분명히 우리가 앞서는 상대다. 반드시 이기고 시작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첫 경기에서 트라우마를 털어낼 수 있다면 이후 경기들도 원하는 방향으로 흐를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여자단체전 첫 상대인 루마니아는 2014년 도쿄 세계선수권대회 16강전에서 한국에게 패배를 안겼던 팀이다. 당시 주전들이 이번 올림픽에 그대로 나왔고, 우리 대표팀의 서효원과 양하은도 당시 패배의 멍에를 쓴 선수들이다. 당시 패배 이후 한국 여자탁구는 오랫동안 세계 4강권 진입에 실패하고 있다. 여자탁구 ‘내리막길’의 시점에 버티고 서있는 루마니아는 결국 심리적 부담을 먼저 털어내야만 제대로 된 승부가 가능한 팀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선수들의 설욕의지가 얼마나 강할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명하다.

하지만 앞서의 논리를 갖다 붙이자면 여자대표팀의 ‘설욕의지’ 또한 우리 대표팀에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자칫 원하는 승부를 펼치지 못할 경우 여자탁구의 부진은 생각보다 심각해질 우려가 없지 않다. 메달 획득 여부를 떠나 첫 경기만은 반드시 이겨야 할 이유가 있다. 박상준 코치의 말대로 객관적인 기량은 분명히 한국이 앞선다. 차분히 풀어가면 이길 수 있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남녀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더 핑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