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올림픽, “아버지의 이름으로…!”

[올림픽 대표 릴레이 인터뷰 ②]

서효원(렛츠런파크)의 생애 첫 올림픽
"아버지의 이름으로...!"

서효원(렛츠런파크), 전지희(포스코에너지), 양하은(대한항공), 주세혁(삼성생명), 정영식(KDB대우증권), 이상수(삼성생명). 8월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의 이름을 빛낼 6인의 탁구 국가대표다. 오상은, 유승민, 김경아, 박미영 등 걸출한 선배들이 떠난 자리, 당찬 후배들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한국 탁구의 자존심을 걸고, 오늘도 뜨거운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월간 탁구]는 리우올림픽의 해, 일생일대 도전에 나선 여섯 전사들의 이야기를 차례로 소개하고 있다. 전영지 탁구전문 기자가 이 특별한 기획을 책임진다. 월간지와의 시차를 전제로 [더 핑퐁]도 함께 한다. 남자팀 ‘맏형’ 주세혁에 이어, 스물아홉 나이에 첫 올림픽 도전에 나서는 여자대표팀 주장 서효원이 두 번째 주인공이다.
 

 

  “5년 전만 해도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감히 꿈도 꾸지 못했죠.”
  8월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여자탁구대표팀 주장 서효원(29·렛츠런파크)은 생애 첫 올림픽의 설렘을 이렇게 표현했다. ‘서효원’이라는 이름 석 자를 팬들의 뇌리에 각인시킨 건 2011년 7월 국제탁구연맹(ITTF) 코리아오픈이었다. TV 중계화면에 클로즈업된 뽀얗고 예쁘장한 얼굴의 그녀는 일약 ‘탁구얼짱’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나비처럼 사뿐사뿐 깎아내다 벌처럼 쏘아올리는 날선 드라이브, ‘공격하는 수비수’의 플레이에 팬들은 매료됐다.
  지난 5년 새 그녀는 폭풍 성장했다. 2012년 김경아, 박미영 등 언니들이 떠난 자리, 서효원은 세대교체의 중심에 섰다. 우리나이로 스물일곱 살이던 2013년 늦깎이 태극마크를 달았다. 2014년 첫 세계선수권, 첫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쓰라린 실패도 맛봤다. 개인전에서는 적잖은 성과가 있었다. 2013년 코리아오픈 우승, 2014년 독일오픈 준우승 그랜드파이널 준우승에 이어 지난해 벨기에오픈에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30~40위권을 맴돌던 세계랭킹은 8위까지 수직상승했고, 이후 10위권 초반을 꾸준히 유지했다.
  2016년 서효원은 전지희(24·포스코에너지) 양하은(22·대한항공)과 함께 생애 첫 올림픽에 도전하게 됐다. “5년 전만 해도 감히 꿈꾸지 못했던 일이다. 국가대표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되고는 싶었지만, 될 거라고 생각 못했다. 꾸준히 하다보면, 열심히 하다보면 되겠지 생각했다. 하나하나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 나비처럼 깎아내리다 벌처럼 쏘아 올린다! ‘공격하는 수비수’ 서효원! 월간탁구DB(ⓒ안성호).

“말이 앞서는 건 내 스타일 아냐”
 
지난 1월,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강문수 탁구대표팀 총감독은 “요즘 (서)효원이에게 유독 믿음이 많이 간다”고 했다. “연습할 때 보면 깜짝 놀랄 플레이가 나온다. 연습 때와 똑같은 마음으로 실전에 임하라고 조언한다”고 했다. 서효원은 ‘백전노장’ 강 감독의 평가를 인정했다. “연습할 때는 공격 찬스 때 더 과감하다. 실전에선 안전하게 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다 얻어맞기도 하고…, 더 적극적으로 더 공격적으로 자신 있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1월 말 독일오픈 단식에서 서효원은 만리장성을 두 번이나 넘었다. 32강전에서 2014년 유스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중국 신성’ 뤼가오양을 4대 3으로, 16강전에선 지난해 쑤저우세계선수권 동메달리스트인 ‘중국 에이스’ 무쯔를 4대 2로 돌려 세웠다. 8강전에서 아쉽게 ‘홍콩 에이스’ 리호칭에게 3대 4로 졌지만, ITTF가 공식사이트 톱기사로 다룰 만큼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 2013년 코리아오픈 우승을 시작으로 서서히 국제무대에서의 존재감을 끌어올렸다. 월간탁구DB(ⓒ안성호).

  서효원은 ‘순둥이’다. 잘 웃는다. 좀처럼 화내는 법도, 언성을 높이는 법도 없다. 큰 대회를 앞둔 인터뷰에서 승부욕을 드러내지 않는다. 금메달을 따겠다든지, 라이벌을 반드시 꺾겠다든지 소위 ‘지르는’ 코멘트를 들을 수 없다. 집요한 유도심문 끝에 기껏 얻어내는 답이라야 “메달을 따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정도다. “너무 욕심이 없다 싶어 노력도 해봤어요. 무조건 1등하겠다고도 해봤는데,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더라고요. 욕심만 앞서니까요. 하나하나 하는 게 좋아요”한다. 서효원다움은 오히려 믿음직하다. “저보다 열심히 준비한 선수가 있다면 지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어요. 과정에서 더 잘 준비하면 되니까요. 말이 앞서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에요”라며 웃는다. 경기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보여주면 그뿐이다.
  ‘올림픽 챔피언’ 현정화 렛츠런파크 감독이 서효원의 스승이자 멘토다. “더 독해져야 한다” “네가 잘하는 것을 더해야 한다”는 충고를 자주 한다. 일부러라도 서효원에게 눈물 쏙 빼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서효원은 지난해 전국체전 여자단식 결승전에서 이예람(단양군청)을 꺾고 10년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같은 팀 단양군청을 만난 단체 준결승에선 속공수 이은희에게 져서 팀 패배의 빌미가 됐다. “마지막 한두 개 실수 때문에 졌어요. 구단 버스에서 미팅하는데 감독님께 엄청 혼났어요. 눈물이 나려 해서 ‘울면 안 돼. 좀 있음 서른이야, 절대 울면 안 돼’하며 꾹꾹 참았죠. 감독님께서 ‘넌 더 잘할 수 있는데 그래서 더 아쉽고 안타까워서 이렇게 화내는 거다’ 하셨어요. 누가 너한테 이런 얘기를 이렇게 해주겠느냐고 하시는데 눈물이 왈칵 터졌죠. 감사하죠. 저는 정말 운이 좋은 선수예요.”
 

▲ 이제는 대표팀 ‘맏언니’다. 더 강해져야 한다. 도쿄세계선수권대회 때의 모습. 월간탁구DB(ⓒ안성호).

“탁구를 해온 모든 시간을 사랑한다”
  서효원은 탁구를 하며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2014년을 꼽았다. 세대교체기, 기대는 컸지만 결과는 부진했다. 2014년 도쿄세계선수권(단체전) 16강 탈락에 이어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북한, 일본에 연거푸 지면서 트라우마를 겪었다. “집중이 잘 안 됐다. 볼을 칠 때 무섭고 겁도 났다. 서브를 올리는 데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마음은 이기고 싶은데 ‘멘붕’이 왔다”고 털어놨다. 가족 같은 소속팀 렛츠런파크 동료들에게 아픔을 내려놓았다. “그때 나는 아마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 같다”고 했다.
  서효원은 “이 모든 시련이 올림픽을 위한 과정이 될 것”이라고 했다. “리우에선 단체 4강 이상이 목표다. 4강에서 일본을, 중국을 마지막 결승에서 만나길 바란다”며 웃었다. 소속팀 코치이자 대표팀 지도자인 박상준 코치는 서효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스승이다. 서효원은 “‘박쌤’은 진심으로 금메달을 딴다고 생각하고 연습하라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고 했다.
  서효원은 양하은, 전지희와 함께하는 첫 올림픽을 향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김)경아언니, (박)미영언니가 태릉에 있었을 때 언니들에게선 뭔가 다른 포스가 있었다. 힘들 때면 언니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해야지’ 자극을 받았었다”고 했다. “언니들이 떠난 후 한동안 잊었던 분위기가 요즘 되살아나고 있다”고 귀띔했다. “(전)지희가 눈에 들어온다. 자극이 된다. 나도 더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제가 된다”고 설명했다. “(전)지희와 (양)하은이의 탁구가 엄청 늘었다. 나만 잘하면 되겠다”며 웃었다.
 

▲ 도쿄세계선수권대회도 인천아시안게임도 첫 경험이었다. 실패의 ‘트라우마’를 이겨내야 한다. 월간탁구DB(ⓒ안성호).

  5년 전 미완의 대기였던 ‘탁구얼짱’ 서효원은 이제 대한민국 여자탁구의 톱3 ‘올림픽 국가대표’가 됐다. “30~40위권이었을 땐 랭킹점수 계산법도 몰랐다. 그저 이겨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랭킹에 관심도 없었다”고 했다. “오히려 랭킹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니 랭킹이 안 오르더라. 경기에 집중하고, 경기에 몰입해서 즐기다보면 저절로 오르더라”고 했다.
  ‘맘 편한 도전자였을 때가 좋은지, 대표팀 주장이 된 지금이 좋은지’라는 우문에 서효원은 이렇게 현답했다. “그때도 좋았고, 지금도 좋아요. 탁구를 쳤던 모든 시기가 좋아요.” 스물아홉에도 그녀의 탁구가 계속 발전하는 이유다. “현대시멘트 창단 때 윤길중 감독님이 봉고에 선수들을 싣고 직접 운전하시고…, 그때도 진짜 재밌었어요. 그때 그렇게 열심히 했기 때문에 오늘이 있는 거죠.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윤 감독님께 정신적으로도 배운 게 많아요. 현정화 감독님의 제자가 된 것도 행운이고요. 탁구를 잘하려면 미쳐야 한다는 걸 가르쳐주셨죠. 지금도 물론 정말 좋죠. 올림픽에 나갈 수 있잖아요. 아무나 못나가는 세계 최고의 대회에 출전하게 됐으니 너무나 감사하죠.”

  (이 인터뷰는 쿠알라룸푸르 세계선수권대회가 치러지기 전에 진행됐다. 한국 여자대표팀은 이번 세계대회에서 2014년처럼 9위에 머무르는 실패를 겪었다. 서효원은 예선전 동안 모든 경기에서 한 번도 지지 않고 에이스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으나, 16강전 첫 단식에서 독일의 윈터 사빈에게 아쉽게 패했다. 떨어진 사기를 혼자서 극복할 수 없었고, 결국 팀도 패했다. 경기가 모두 끝나고 서효원은 바닥에 주저앉아서 한참이나 물끄러미 코트를 응시했다. 그 순간 서효원의 머릿속으로는 어떤 생각들이 지나고 있었을까? 귀국 이후 서효원은 다시 태릉으로 돌아가서 묵묵히 훈련을 재개했다. 시련이 조금 더 길어졌을 뿐이다. 쿠알라룸푸르에서의 상처는 오래 아프겠지만 아직 탁구는 끝나지 않았다.)
 

 
▲ 쿠알라룸푸르에서의 상처는 오래 아프겠지만 아직 탁구는 끝나지 않았다. 월간탁구DB(ⓒ안성호).

“첫 올림픽, 아빠가 하늘에서 도와주시겠죠”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망설이던 단어를 꺼냈다. ‘아버지’라는 한 마디에 서효원의 눈가가 빨개졌다. 서효원은 지난해 말 아버지를 암으로 여의였다. 아버지는 두 딸과 아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경기장을 자주 찾진 못했지만, 딸의 탁구를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하던, 최고의 팬이자 든든한 후원자였다.
  전국남녀종합선수권을 앞둔 12월 초,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랜드파이널을 마치고 귀국한 서효원은 고향 경주로 직행했다. 병원에선 보름을 넘기기 힘들 거라고 했다. 가족들은 아버지의 병세를 숨겼다. 아버지는 ‘맏딸’을 보고 반색했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서효원은 열흘 넘게 아버지의 병상을 밤낮으로 지켰다. 그랜드파이널에서 세계 최강 류스원에게 첫 게임을 따낸 무용담,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탁구 이야기를 조잘조잘 늘어놨다. 아버지는 병실의 간호사에게 “우리 딸,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나간다. 화보도 찍었다”며 자랑했다. 어머니는 “자랑할 힘이 있는 걸 보니 아버지 사시려나 보다” 했다.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며 아버지는 극심한 고통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서효원도 밤새 함께 뒤척였다. “아빠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 채셨던 것 같다”고 했다. 매일 밤, 부녀의 대화는 끊어질 듯 간간이 이어졌다. 어느 날 밤, 잠에서 깬 아버지는 ‘맏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효원아, 올림픽 때까지만 살고 싶다.” 서효원은 안 우는 척 먼 산을 바라봤다. “효원아, 올림픽 잘해야 한다. 그리고 좋은 남자 만나야 한다. 착하고 좋은 남자… 그리고 두 동생 잘 부탁한다.” 아버지의 유언이었다. 서효원은 등을 돌린 채 눈물을 꾹 눌렀다. “음음, 알겠어. 알겠어.”
 

▲ 서효원에겐 이겨야 할 이유가 있다. 간절한 각오를 다지며 훈련해왔다. 월간탁구DB(ⓒ안성호).

  결국 아버지는 그토록 원하던 딸의 올림픽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날아든 안타까운 부고에 탁구인들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렛츠런파크 동료들을 비롯해 주세혁 등 대표팀 선후배들이 장례식 현장을 지켰다. 서효원은 아버지의 영정을 향해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주)세혁 오빠도 왔어”라고 중얼거렸다. 탁구인들의 의리는 남달랐다. 조문 행렬이 줄을 이었다. 서효원은 “아버지를 보내며 탁구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감사할 분들이 정말 많다”고 했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지 여러 날이 지났건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요즘도 아빠 전화번호를 무심코 누른다”고 했다. “아빠 생각을 하면 여전히 슬프고 힘들고 보고 싶다. 잊어야 한다고 생각도 해보지만, 그러다 아빠를 완전히 잊어버릴까봐 걱정이 된다”고도 했다. ‘나는 엄마의 꿈이자 아빠의 자랑이다.’ 아버지와의 이별을 준비하며 서효원은 자신의 메신저 프로필에 이렇게 썼었다.
  ‘엄마의 꿈, 아빠의 자랑’ 서효원은 8월 생애 첫 올림픽에 도전한다. “긴장보다는 기대된다. 어서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효원에겐 이겨야 할 이유가 있다. 아빠와의 마지막 약속이 있다. 맑은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아빠가 하늘에서 도와주시겠죠” 했다. 글_전영지(스포츠조선 스포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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