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쿠알라룸푸르 제53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홍콩의 선택은 의외였다. 한국 선수들에게 강한 면모를 보여온 노장 티에야나를 뺐다. 역시 한국 선수들이 쉽게 이기지 못해왔던 장후아준도 3단식 한 경기에만 내보냈다. 대신 홍콩은 최근 빠른 성장세를 보여온 두호이켐과 리호칭을 1, 2단식 주전으로 내보냈다. 각각 37세와 32세인 티에야나와 장후아준의 체력 부담을 감수하는 대신 젊은 선수들의 잠재력을 믿는 모험을 택했다.
 

▲ (쿠알라룸푸르=안성호 기자) 서효원 혼자 이겼다. 이번 대회에서 아직 패배가 없는 한국의 '보루'.

결과적으로 홍콩의 선택은 성공적이었다. 3월 2일 치러진 2016 쿠알라룸푸르 제53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단체전 예선리그 최종 라운드에서 D그룹 톱시드 홍콩에게 한국 여자대표팀이 1대 3으로 패했다. 예상 밖의 상대 팀 오더를 받아들고 의욕적으로 임했으나 허무하게 패했다. 첫 단식에 나선 서효원의 승리로 앞서나갔으나 양하은과 박영숙이 2, 3, 4단식을 연거푸 내주고 말았다.

서효원이 첫 단식에서 3대 0(11-7, 11-4, 11-9) 완승을 거둘 때까지만 해도 승리의 기운이 넘쳤다. 서효원은 초반부터 질긴 커트와 날카로운 드라이브를 적절히 섞어가며 두호이켐을 공략했고, 두호이켐은 서효원의 변화무쌍한 커트 구질에 적응하지 못했다. 수비전형이 뛰면서도 경기 시간이 역시 한국과 홍콩이 대결했던 옆 테이블의 남자선수들보다도 짧았다.
 

▲ (쿠알라룸푸르=안성호 기자) 리호칭이 양하은을 잡고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이번 대회 홍콩의 에이스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문제는 2단식부터. 상대전적에서 리호칭에게 무려 6승 1패로 앞서있던 양하은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리호칭의 상승세는 무서웠다. 3게임까지 양하은이 2대 1로 앞서나갔지만 포기하지 않는 집중력으로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양하은은 장기인 백핸드 푸시 대결에서 확실한 우세를 가져오지 못하자, 포어 드라이브 기회를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경기가 계속될수록 포인트는 리호칭에게 더 쌓였다. 결국 2대 3(7-11, 11-4, 11-9, 7-11, 8-11) 통한의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 (쿠알라룸푸르=안성호 기자) 양하은은 상대전적에서 앞서있던 리호칭과 두호이켐에게 모두 졌다. 빠르게 트라우마를 극복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전날 오스트리아전 승부처에서 승리의 기회를 살려냈던 박영숙에게 걸었던 희망도 물거품이 됐다. 장후아준과 3단식에서 맞선 박영숙은 과감한 공격을 계속 시도했으나 장후아준의 벽이 높았다. 장후아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박영숙의 공격을 받아내면서 노련하게 코스를 공략해왔다. 두 번째 게임을 잡아내며 잠시 백중세를 이뤘던 박영숙은 4게임에서 급격하게 무너졌다. 직전 3게임 듀스 접전에서 먼저 게임포인트를 잡고도 역전패한 후유증이 끝내는 힘없는 패배로 이어졌다. 1대 3(8-11, 11-8, 11-13, 5-11) 패배, 매치스코어 1대 2로 밀리면서 한국 대표팀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 (쿠알라룸푸르=안성호 기자) 최선을 다했으나! 3단식 승부처에서 박영숙이 희망을 살려내지 못했다.

그리고 4단식에 다시 나선 양하은은 끝내 자존심을 회복하지 못했다. 20세에 불과한 두호이켐에게 또 다시 무너졌다. 두호이켐은 랠리전을 앞세우는 리호칭보다도 공격적인 성향이 강한 선수다. 양하은은 끈질기게 백핸드를 공략했지만 두호이켐은 자주 돌아섰다. 상대에게 계속해서 공격기회를 허용한 양하은은 끝까지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그대로 경기를 끝냈다. 힘겹게 3게임을 잡아냈지만 승리는 그 한 점이 다였다. 결국 1대 3(6-11, 8-11, 11-8, 1-11) 패배가 됐다. 마지막 4게임은 단 1점을 따내는데 그치며 자멸했다.

토털스코어 1대 3, 한국은 결국 홍콩을 넘지 못한 채 조 2위로 예선리그를 마감했다. 2년 전 도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한국 여자팀은 싱가포르와의 예선 조 수위결정전에서 패하고 험난한 본선길을 시작했었다. 결국 16강전에서 유럽 토종선수들로 구성된 루마니아를 만나 무너지면서 최종 9위로 대회를 끝냈던 전력이 있다. 상대는 바뀌었으나 이번 대회 역시 같은 전철을 밟으며 조금은 만족스럽지 못하게 예선을 끝냈다. 전 대회처럼 16강전부터 가시밭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가 됐다.
 

▲ (쿠알라룸푸르=안성호 기자) 홍콩의 ‘영건’ 두호이켐이 마침표를 찍으며 최근의 성장세를 다시 한 번 과시했다.

젊고 어린 선수들 중심으로 나온 홍콩을 넘지 못하면서 사기도 급전직하했다. 승리할 기회가 있었지만 에이스 역할을 해줘야 할 양하은이 2점을 모두 내주면서 마지막까지 끌고 가지 못한 점은 더 뼈아팠다. 올림픽 단체전도 나가야 하는 양하은(세계11위)이 하위랭커 리호칭(22위)과 두호이켐(24위)에게 연패하면서 랭킹관리에도 타격을 입었다. 홍콩과의 예선 5라운드는 이래저래 상처를 남겼다.

여자단체 16강전은 3일 오전부터 바로 시작된다. 조 2위가 된 한국의 상대는 다른 조 3위 세 팀 중에서 추첨을 통해 결정된다. 현재 A그룹 루마니아, B그룹 독일, C그룹 우크라이나 등이 유력한 3위 후보들이다. 최종 경기 결과에 따라 북한도 3위가 될 수 있다. 16강전 이후에는 각 조 1위들이 기다리는 8강전이다. D그룹 1위 홍콩과 함께 중국과 일본, 싱가포르 등이 예상대로 선전을 펼치는 중이다.

어느 나라도 만만한 상대는 없다. 16강 첫 경기에서 루마니아에게 패했던 지난 대회는 객관적인 전력보다 가라앉은 분위기가 더 큰 패인으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도쿄 대회에서처럼 예선 마지막 라운드 결과가 16강전에서 트라우마로 작용하지 말란 법이 없다. 예선을 모두 끝낸 여자대표팀이 빠른 시간 안에 심리적 상처를 보듬고 신중한 대비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 (쿠알라룸푸르=안성호 기자) 진 건 어쩔 수 없다. 빠른 회복으로 본선을 대비해야 하는 여자대표팀이다.

한편 여자부와 같은 시간 열린 남자부 D그룹 예선라운드 5차전에서 한국남자대표팀은 여자와 같은 상대인 홍콩과 마지막 승부를 벌여 3대 1로 승리했다. 조 1위를 확정짓고 8강에 직행했다. 남자부 8강전은 하루를 쉬고 3월 4일부터 시작된다.

여자단체 D그룹 예선5라운드 결과

대한민국 1대 3 홍콩
서효원 3(11-7, 11-4, 11-9)0 두호이켐
양하은 2(7-11, 11-4, 11-9, 7-11, 8-11)3 리호칭
박영숙 1(8-11, 11-8, 11-13, 5-11)3 장후아준
양하은 1(6-11, 8-11, 11-8, 1-11)3 두호이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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