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쿠알라룸푸르 제53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한국 여자탁구가 또 다시 충격패를 당했다.

3월 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계속된 2016 제53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단체 16강전에서 유럽의 복병 독일에게 패했다. 단 한 매치도 따내지 못하고 0대 3으로 속절없이 무너졌다.

전날 예선리그 최종전에서 일본을 꺾은 독일과 홍콩에 패한 한국의 분위기는 극과 극이었다. 사기가 하늘을 찌른 독일은 객관적 전력에서 열세라는 평가 속에서도 강렬하게 달려들었다. 한국 선수들은 힘이 넘치는 유럽 선수들의 기세를 배겨내지 못하고 차례차례 돌아섰다.
 

 
▲ (쿠알라룸푸르=안성호 기자) 아! 서효원 너마저…! 첫 단식에 나선 서효원이 풀게임접전 끝에 패했다.

최후의 보루 서효원(렛츠런파크)마저 세계58위 윈터 사빈에게 첫 단식을 내줬다. 체중이 실린 상대의 강한 드라이브를 힘겹게 걷어 올리며 기회를 노렸으나 승리의 여신은 끝내 서효원에게 미소를 보이지 않았다. 1, 2게임을 내준 뒤 3, 4게임을 잡아 추격했으나 최종 5게임을 다시 내주고 결국 졌다. 풀게임 접전 끝에 2대 3(5-11, 6-11, 11-7, 11-2, 6-11) 패.
 

▲ (쿠알라룸푸르=안성호 기자) 독일은 강렬한 기세로 덤벼들었다. 첫 경기부터 묵직한 드라이브로 한국에 찬물을 끼얹은 윈터 사빈.

이번 대회에서 한 번도 지지 않았던 서효원까지 무너지자 한국팀의 전열은 더욱 흐트러졌다. 2단식에 나선 양하은(대한항공)은 독일 에이스로 맹활약하고 있는 솔야 페트리사를 넘지 못했다. 이전까지 국제무대 상대전적은 3승 1패로 오히려 앞서 있었지만 상대의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에 제대로 힘 한 번 못 써보고 자멸했다. 내내 저하됐던 컨디션은 끝내 올라오지 않았다. 0대 3(3-11, 9-11, 9-11)의 허무한 패배였다.
 

▲ (쿠알라룸푸르=안성호 기자) 양하은이 끝까지 에이스의 위용을 회복하지 못했다. 저하된 자신감을 어떻게 끌어올려야 할까?

경기는 3단식에서 그대로 끝났다. 박영숙(렛츠런파크)이 수비수 이반칸 이레네의 까다로운 커트를 끝까지 공략하지 못했다. 공격은 자주 코트를 벗어났고, 상대의 역습을 허용할 때마다 박영숙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처음부터 기세를 내준 채로 시작했던 경기의 물꼬는 끝내 돌려지지 않았다. 상대가 잠시 숨을 고른 3게임을 따내고 4게임에서 듀스접전을 벌이며 안간힘을 썼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박영숙이 1대 3(8-11, 3-11, 11-2, 11-13)으로 패하면서 전체 승부도 끝났다. 0대 3의 참패! 4강 진출을 목표로 출전했던 한국 여자탁구는 또 다시 8강에도 오르지 못한 채 대회를 끝냈다.
 

▲ (쿠알라룸푸르=안성호 기자) 페트리사 솔야는 이번 대회 독일의 에이스로 맹활약하고 있다. 일본에 이어 한국마저 잡았다.

2년 전 도쿄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그룹예선을 2위로 통과해 16강전에서 루마니아에 패해 9위에 그쳤던 한국여자탁구는 당시의 전철을 그대로 되밟았다. 상대만 그룹별예선 싱가포르에서 홍콩으로, 16강전 루마니아에서 독일로 바뀌었을 뿐이다. 트라우마가 결국 발목을 잡았다. 2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한국 여자탁구는 그 자리에서 한 발도 전진하지 못했다.
 

▲ (쿠알라룸푸르=안성호 기자) 3단식에 나선 박영숙도 끝내 물꼬를 돌리지 못했다. 아쉬운 승부였다.

문제는 결과 그 자체보다 한국 탁구 특유의 투지조차 사라진 경기내용이었다. 부족한 기량 때문에 패한 것이 아니었다. 급격히 떨어진 자신감을 회복하지 못한 채로 끌려다니면서 가진 기술을 발휘해볼 기회조차 만들지 못했다. 처진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선수들의 파이팅도, 열세를 극복하기 위한 의지도 없었다. 홍콩전도 그랬고, 독일전도 마찬가지였다. 조용히 경기에 임했고 조용히 물러났다.
 

▲ (쿠알라룸푸르=안성호 기자) 유럽 정통 수비수 이반칸 이레네가 승부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번 대회는 올림픽 전초전의 성격도 갖고 있는 무대였다. 전지희(포스코에너지)가 빠졌지만 서효원과 양하은은 올림픽 단체전에도 출전해야 하는 선수들이다. 독일은 올림픽에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한잉과 산샤오나가 빠진 채로도 한국을 이겼다. 이대로라면 올림픽 결과도 불을 보듯 뻔하다. 남은 기간 동안 심리적 안정감을 찾기 위한 특단의 조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2년 전 도쿄에서처럼 허망하게 끝나버린 이번 대회의 ‘참패’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쿠알라룸푸르=안성호 기자) 결과 그 자체보다 의욕도 투지도 상실한 경기내용이 더 문제였다. 극명하게 대비된 양국 벤치, 올림픽이 불안하다.

이로써 한국탁구는 이번 대회에서 남자부 일정만을 남겨두게 됐다. 남자대표팀은 4일 오후 두 시에 포르투갈과 8강전을 치른다. 한국 여자팀과 같은 시간 16강전을 치른 포르투갈은 북한의 돌풍을 3대 0으로 잠재우고 8강에 올랐다. 몬테이로 호아오, 프레이타스 마르코스, 아폴로니아 티아고가 고르게 활약했다. 도쿄대회에서 한국은 여자팀의 16강 탈락을 목격한 뒤 남자팀도 덩달아 패한 나쁜 기억이 있다. 남자팀만은 같은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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