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탁구 ITTF 세계선수권대회 단체전 메달 도전사(史)

BNK부산은행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설 연휴 이후 얼마 지나지 않는 이 달 16일 벡스코 특설경기장에서 역사적인 막을 올린다. 한국탁구 사상 첫 홈 개최 세계탁구선수권대회라는 각별한 의미가 있는 이번 대회는 단체전만 치러지는 팀 선수권대회다. 국제탁구연맹(ITTF)은 홀수 해엔 개인전, 짝수 해엔 단체전을 여는 방식으로 세계선수권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번 대회는 작년 남아공 더반에서 치러진 개인전과 함께 제57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완성하는 대전이다. 225일까지 열흘간의 대장정.

대한민국 탁구대표팀은 남자 이상수(33·삼성생명, 세계27), 장우진(28, 14), 임종훈(27·한국거래소, 18), 안재현(24·한국거래소, 34), 박규현(18·미래에셋증권, 179), 여자 전지희(31·미래에셋증권, 세계22), 이은혜(28·대한항공, 66), 이시온(27·삼성생명, 46), 윤효빈(25·미래에셋증권, 159), 신유빈(19·대한항공, 8)으로 구성됐다. 주세혁, 오광헌 감독이 남녀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태극전사들은 홈에서의 세계선수권대회라는 생소한 경험을 넘어, 홈 관중 앞에서 새 역사를 열겠다는 각오로 막판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 1973년 사라예보에서 한국 구기스포츠 사상 첫 세계제패의 쾌거를 달성했다.
▲ 1973년 사라예보에서 한국 구기스포츠 사상 첫 세계제패의 쾌거를 달성했다.

1956년 제23회 도쿄세계선수권대회부터 세계를 향한 도전을 시작한 한국탁구는 지금까지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에서 남녀를 합쳐 모두 28회 시상대에 올랐다. 여자가 금메달2, 은메달7, 동메달8 등 모두 17, 남자가 은메달2, 동메달9 11개의 메달을 따냈다.

첫 입상은 1959년 도르트문트 세계선수권대회 여자단체전에서 따낸 은메달이다. 조경자, 최경자, 황율자로 구성된 여자팀이 단체전 결선리그에서 중국을 이기고 일본에 져 준우승했다. 어린 여고생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대표팀은 당시 약소국 코리아를 세계에 알리는 데도 공헌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독일은 동서독으로 나뉜 분단국가였고, 대회는 서독에서 열렸다. 같은 분단국, 같은 자본주의 체제 남한(South Korea)에서 왔다고 한국선수단이 서독정부의 극진한 환영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첫 금메달은 저 유명한 사라예보 신화. 1973년 유고(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라예보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이경호 감독, 천영석 코치가 이끈 여자대표팀이 세계를 제패했다. 정현숙, 박미라, 이에리사, 김순옥, 나인숙 등 다섯 명의 선수들은 예선리그는 물론 중국, 일본, 헝가리와 펼친 결선리그도 전승으로 장식하면서 우승에 성공했다. 한국 구기 사상 첫 세계제패의 위업을 달성한 대표팀은 국민들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 남북단일팀 ‘코리아’가 일궈낸 1991년 지바 대회 여자단체전의 감격도 잊을 수 없는 전적이다.
▲ 남북단일팀 ‘코리아’가 일궈낸 1991년 지바 대회 여자단체전의 감격도 잊을 수 없는 전적이다.

남북단일팀 코리아가 일궈낸 1991년 지바 대회 여자단체전의 감격도 잊을 수 없는 전적이다. 어색할 수밖에 없는 사이였던 남북 선수들은 개막 1개월 전부터 진행한 합동훈련을 통해 원 팀이 된 뒤 본 무대에서 엄청난 선전을 펼쳤다. 예선리그를 7전 전승으로 통과한 뒤 ()소련과 헝가리를 8, 4강에서 연파하고 결승에 진출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덩야핑의 중국과 펼친 풀-매치접전을 극복하면서 체육관을 온통 한반도 깃발로 물들였다.

사실 코리아 여자팀은 당시 9연패를 노리던 중국보다 약한 전력이었다. 하지만 현정화, 이분희 등 남북 선수들이 절묘한 합작으로 시너지를 내며 객관적 전망을 뒤집었다. 코리아 탁구팀은 경기 결과를 떠나 구성 자체만으로도 민족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남북 이질감 해소와 화합을 위한 밑거름이자 통일의 주춧돌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감동의 역사를 간직한 코리아는 2018년 할름스타드 세계선수권대회 8강전에서 남북대전이 성사되자 대결 대신 다시 한 번 한 팀으로 동메달을 기록하는 또 다른 역사를 쓰기도 했다.
 

▲ 2018년 할름스타드에서 또 한 번 코리아의 감동을 연출했다.
▲ 2018년 할름스타드에서 또 한 번 코리아의 감동을 연출했다.

아쉬운 것은 사라예보와 지바에서의 기쁨 외에 한국이 세계대회 정상에는 다시 서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7, 80년대 전성기를 누린 여자탁구는 그 기간 동안 결승전에 꾸준히 진출했지만 계속해서 중국 벽에 막혔다. 여자보다는 한참 늦은 1995년 중국 톈진 대회 동메달로 입상의 물꼬를 튼 남자탁구는 오상은, 주세혁, 유승민 3인방의 활약을 앞세워 2006년 브레멘, 2008년 광저우 대회에서 연속으로 결승에 진출했으나 역시 중국을 넘지 못해 끝내 포디움 꼭대기에는 오르지 못했다.

가장 최근 단체전 대회였던 2022년 청두 대회에서 한국은 남자대표팀이 4강에 올라 동메달을 땄다. 2016년 쿠알라룸푸르 대회 이후부터 연속 34강 진출 기록이다. 2016년에는 중국에, 2018년과 2022년에는 독일에 패했다. 현 대표팀 중에서는 장우진이 최근 3연속 동메달에 모두 기여했던 선수다. 이상수는 2016년과 2018년 대표였다. 왼손 에이스 임종훈은 2018년 대표로 활약한 뒤 이번 대회 대표팀에 다시 복귀했고, 안재현은 2022년 대회에 이은 연속 출전이다. 신예 박규현은 이번이 첫 번째 단체전 출전이다.
 

▲ 가장 최근 단체전이었던 2022년 청두 대회에서 남자팀이 동메달을 따냈다.
▲ 가장 최근 단체전이었던 2022년 청두 대회에서 남자팀이 동메달을 따냈다.

여자탁구는 2010년대 이후 성적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2012년 도르트문트 대회 동메달 이후 2014년 대회와 2016년 대회는 연속으로 16강을 넘지 못했다. 2018년 할름스타드 대회에서 남북단일팀을 이뤄 4강에 올랐지만, 직전 대회였던 2022년 청두에서는 다시 16강에 머물렀다. 남측 선수들만의 성적으로는 사실상 최근 10년 동안 8강권 밖에 위치해 있었던 셈이다. 이번 대회 한국 여자대표팀 멤버 중에는 전지희와 이시온, 윤효빈이 단체전 경험이 있으나, 2018년 동메달 전지희 외에는 승리의 기억이 많지 못하다. 에이스 신유빈도 세계선수권대회 단체전은 이번이 첫 출전이다.

하지만 성적과는 별개로 한국탁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늘 나름의 존재감을 지켜왔다. 중국의 전성기가 극에 달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2천 년대에 이르는 동안 유일한 중국의 대항마로 꼽히곤 했다. 성적의 낙폭이 큰 최근이라 해도 한국을 만나는 어떤 상대도 긴장을 풀고 임하지는 못한다. 중국의 일방통행이 오래 이어지고 있는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그래도 긴장감을 유지하는 이유는 한국을 비롯한 또 다른 강국들이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대회는 열정적인 한국의 탁구팬들이 함께 뛸 홈에서의 무대다.
 

▲ 여자팀은 최근 부진했다. 부산에서 ‘새 역사’를 목표한다. 여자대표팀 에이스 신유빈.
▲ 여자팀은 최근 부진했다. 부산에서 ‘새 역사’를 목표한다. 여자대표팀 에이스 신유빈.

따라서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는 한국탁구가 새로운 출발점, 혹은 분기점으로 삼을 수 있는 기회의 장이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그 스스로 세계탁구선수권대회 한국의 히어로였던 유승민 회장이 이끄는 대한탁구협회는 국제탁구계가 아직 세계대회를 열지 않은 탁구강국 한국에 기대하는 바대로 역대 최고의 대회로 만들어내기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안방에서 대회를 치르는 선수들이 성적에서도 목표한 성과를 낼 수 있다면 한국탁구는 부산에서 또 다른 전성기를 꿈꿀 수 있게 될 것이다.

4강전, 결승전이 이어지는 24일과 25일에도 태극전사들이 코트에 남아 탁구를 할 수 있기 바란다. 여름 파리올림픽에서의 선전으로 다시 한 번 탁구붐을 이끌어내겠다는 목표도 부산에서의 성패에 많은 것이 달려있다. 다음은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 한국 입상 기록.
 

 

관련기사

저작권자 © 더 핑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