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긍정 - 닥공 - 탁구바보 이상수의 “말하는 대로!”

[올림픽 대표 릴레이 인터뷰 ⑤]

초긍정 - 닥공 - 탁구바보
이상수(삼성생명)의 “말하는 대로!”

주세혁(삼성생명), 정영식(미래에셋대우), 이상수(삼성생명), 서효원(렛츠런파크), 전지희(포스코에너지), 양하은(대한항공). 8월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의 이름을 빛낼 6인의 탁구 국가대표다. 오상은, 유승민, 김경아, 박미영 등 걸출한 선배들이 떠난 자리, 당찬 후배들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한국 탁구의 자존심을 걸고, 오늘도 뜨거운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월간탁구는 일생일대의 도전에 나선 여섯 전사들의 이야기를 차례로 소개하고 있다. 전영지 탁구전문 기자가 이 특별한 기획을 책임진다. 월간지와의 시차를 전제로 [더 핑퐁]도 함께 한다. ‘무한긍정 탁구청년’ 이상수가 다섯 번째 릴레이 주자로 나섰다.
 

▲  무한긍정 탁구청년 이상수. 주변을 밝게 하는 에너지도 지니고 있다. 월간탁구DB(ⓒ안성호).

  “자신감이 있다고 해서 꼭 이기는 건 아니다. 그러나 자신감이 없으면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생애 첫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대한민국 국가대표 이상수(26·삼성생명)가 가슴에 새긴 말이다. 탁구인생 최고의 무대를 자신에 대한 오롯한 믿음으로 준비하고 있다. 태릉선수촌 탁구장 벽에 걸린 금메달리스트 계보는 아테네올림픽 유승민에서 멈췄다. 이상수는 날마다 그 옆자리를 꿈꾼다.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거잖아요?” 긴장하지 않고, 주눅 들지 않고, 준비해온 모든 것을 쏟아내고 돌아오는 것, 그래서 매 경기 질기게 살아남는 것, 끝까지 승리하는 것, 금의환향하는 것이 목표다.
 

▲  이상수는 차세대 주자들 가운데 국제대회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따낸 선수다. '국제용'이라는 수식이 낯설지 않다. 월간탁구DB(ⓒ안성호).

무한긍정 청년
  1991년생 올림픽대표 이상수에겐 언제나 기분 좋은 에너지가 있다. “잘할게요” “잘해야죠” “잘되겠죠” … 지난 몇 년간 그에게서 가장 많이 들어온 말이다. 컨디션이 좋든 나쁘든, 경기에 이기든 지든 늘 “잘될 것”이란 말을 주문처럼 외워왔다.
  말하는 대로 이뤄졌다. 리우올림픽의 해, 그는 정말 잘됐다. 3월 쿠알라룸푸르세계선수권(단체전)에서 처음 주전으로 나선 이상수는 자신의 몫을 톡톡히 해냈다. 크로아티아와의 첫경기, 주세혁, 정영식이 잇달아 패한 위기 속에 나홀로 2점을 따내며 승리를 견인했다. ‘소방수’로 맹활약했다. 대선배 주세혁의 뒤를 든든히 받치며, 2년 전 도쿄에서 놓쳤던 동메달을 탈환했다. 대한민국의 4강을 지키기 위해 ‘징검다리’ 역할을 자임했던 ‘백전노장’ 선배 주세혁은 “이제 내가 없어도 되겠다”며 웃었다. 후배들의 성장을 누구보다 기뻐했던 그는 세계선수권 직후 이상수에게 개인전 티켓을 양보했다. 단체전 ‘올인’의 뜻을 분명히 했다. 선배의 대승적인 결단에 이상수 역시 노력과 실력으로 화답했다.
  5월 ITTF 랭킹에서 생애 최고 14위를 찍었다. 생애 최고 순위이자 생애 첫 톱랭커가 됐다. 올림픽 단체전 복식 파트너인 정영식이 17위, ‘한솥밥 맏형’ 주세혁이 18위다. 이상수는 “랭킹을 의식해 따로 준비한 것은 없다. 꾸준히 훈련하면서 부족한 걸 채워 넣고 어떻게 하면 더 올라갈까, 고민을 많이 했다. 연습을 많이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탁구가 풀리더라”고 했다. (이 인터뷰는 코리아오픈 이전에 진행됐다. 코리아오픈에서 이상수는 정영식과 함께 개인복식에서 준우승했다. 4강전에서 중국의 마롱-판젠동을 꺾었고, 결승에서도 장지커-쉬신과 대등한 접전을 펼쳤다. 이상수의 6월 세계랭킹은 16위다. 전 달보다 조금 하락했지만 자신감만은 여전하다는 것을 '코리아'에서 증명했다.) 
  매사에 긍정적이다. “자기 최면일 수도 있는데, 진다진다 하면 진짜 진다. 일단 나는 부딪친다. 지르고 본다. 나는 무한긍정이다.”
 

▲  영혼의 파트너 박영숙과 함께 혼합복식의 역사를 만들었다. 월간탁구DB(ⓒ안성호).

남자의 탁구, 화끈한 ‘닥공’
  이상수의 탁구는 화끈하다. ‘닥공(닥치고 공격)’이다. 월드클래스의 포어드라이브는 사이다처럼 후련하다. 볼이 강하고 빠르다. 서비스 후 3구 공격 능력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수비나 지구전에 약점이 있지만, 공격이 신들리게 꽂히는 날이면 세계 1위도 돌려세우는 ‘저력’과 ‘파이팅’이 있다. 김민석 서현덕 정영식 등 차세대 주자 가운데 국제대회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따낸 비결이다. 2010년 슬로베니아오픈, 2011년 폴란드오픈 남자단식에서 우승했고, 2012년 코리아오픈 남자단식에서 준우승했다.
  20대 선수 중 ‘만리장성’ 톱랭커들을 가장 많이 넘어본 선수다. 2011년 중국오픈 32강에선 ‘왼손 에이스’ 쉬신을 꺾었고, 2012년 코리아오픈에선 ‘세계 1위’ 마롱을 꺾었다. 2013년 파리세계선수권에선 왕리친의 혼합복식조를 완파하고 준우승했다. 2013년 부산아시아선수권 혼합복식 우승, 2015년 파타야아시아선수권 남자복식 은메달, 2016년 쿠알라룸푸르세계선수권 단체전 동메달 등 메이저대회에서도 제몫을 톡톡히 했다. 어느 무대에서든 기죽지 않는 패기는 이상수 탁구에 기대감을 갖게 되는 이유다.
  수비나 연결보다 ‘원샷원킬’ 선제공격을 즐긴다. 어려서부터 중국 마린의 플레이를 동경해왔다. “중국의 마린 스타일을 좋아한다. 마린은 연결 안한다. 앞에서 숨통을 끊어버린다. 속전속결, 상남자 탁구다. 나도 내가 공격하고 내가 결정하는 것이 좋다. 지더라도 화끈하게 지고 싶다.”
  이상수의 ‘닥공’ 성향은 서브에서도 드러난다. 서브 범실이 7% 안팎으로 높지만, 서브 득점률 역시 54%로 높다. 10개의 서브를 넣으면 절반 이상이 득점이다. 실패하더라도, 위험한 서브에 거침없이 도전한다. 절친 후배 정영식이 “형은 가끔 보면 막 치는데 막 들어간다. 내가 상상도 못할 플레이를 한다. 남들이 불안해서 못하는 걸 해버린다”고 혀를 내두른다. 이상수는 “실수도 많지만, 나는 내 서브의 질이 좋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서브를 시도하려고 노력한다. ‘레전드’인 발트너도 서비스 득점만큼 서브 미스도 많았지 않느냐”며 웃었다.
  화끈한 스타일이 때로 ‘독’이 될 때도 있었다. 질긴 하위 랭커에게 종종 일격을 당했다. ‘모 아니면 도’라는 세간의 평가에 이상수는 겸허했다. “스스로 실력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기복이 심했고, 실수가 많았고… 한 번씩 잘된 건 실력이 아니라 운이었다. 그날 공이 잘 맞았던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주변의 조언에 귀를 열었다. ‘닥공’에 안정감과 지속성, 상대성을 더했다. “내 탁구는 계속 진화중이다. 내 것을 확실히 갖고 가는 안정성이 생겼다. 예전엔 늘 똑같은 방식으로, 하고 싶은 대로 고집을 부렸다면 지금은 그때보다 다양한 작전이 생겼다. 내 것만 하지 않고 상대 분석을 많이 한다. 어떻게 하면 상대를 괴롭히고, 어떻게 해야 좋은 볼이 돌아올지를 늘 연구한다.”
 

▲  금년 코리아오픈에서도 '파트너' 정영식과 함께 자신감을 끌어올렸다. 월간탁구DB(ⓒ안성호).

‘탁구바보’ 이상수
  올림픽의 해, 그의 약진은 어쩌면 예정된 일이었다. 이상수는 ‘탁구바보’다. 못 말리는 노력파다. 후배이자 파트너인 정영식과 함께 태릉연습장의 불을 켜고 끄는 선수다. 숙소, 경기장, 훈련장에서 이상수와 정영식의 화두는 언제나 탁구다. 두 청춘의 머릿속은 오직 탁구뿐이다. 청소년 시절부터 그를 지켜봐온 스승 강문수 탁구대표 총감독(전 삼성생명 총감독)은 “기술에서 몇 가지 부족함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노력만큼은 따를 자가 없다. 내 제자지만 존경스럽다”고 극찬했었다.
  ‘탁구바보’ 이상수에게 가장 큰 시련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이었다. 대표 최종선발전에서 정영식과 나란히 고배를 마셨다. 안방 아시안게임을 누구보다 고대했었던 터라 상실감은 컸다. “무조건 나간다 생각했는데 충격이 컸다. 한동안 멍때렸다”고 했다. 멍때리면서도 연습은 쉬지 않았다. 시련은 결국 힘이 됐다. “연습방법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몸이 안 좋아도 공은 잘 맞았다. 그런데 공이 잘 맞아도 졌다. 이유를 생각하다보니까 내 작전이 없었다. 상대가 자리를 알고 지키면 내가 아무리 세게 쳐도 다 받아냈다. 상대를 괴롭히는 작전을 생각했다”고 했다. 정영식은 “인천아시안게임 이후 탁구 생각을 좀 줄였다.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이상수는 “나는 반대”라며 웃었다. “탁구를 더 많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영식이는 작전이 많다. 머리가 좋으니까 상대 분석이나 생각이 몸에 배있다. 난 그게 아니니까 그때부터 엄청 연구했다. 어떻게 하면 상대가 괴로울까. 연구하다보니, 탁구가 더 좋아지고 더 재밌어졌다.”
 

▲  이상수의 탁구는 화끈하다. ‘닥공(닥치고 공격)’이다. 쿠알라룸푸르에서 맹활약하던 이상수. 월간탁구DB(ⓒ안성호).

롤모델은 유승민, 목표는 당연히 올림픽 금메달!
  이상수의 부모님은 탁구인 출신이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탁구장에서 라켓을 처음 잡았다. 아버지의 강인한 운동 유전자, 교사로 일하시는 어머니의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물려받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선수의 길에 들어선 직후 그해 교보생명컵 학년별 대회에서 우승했고, 이후 줄곧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탁구명가’ 내동중-중원고 출신인 이상수는 ‘아테네 금메달리스트’ 유승민의 중학교 직속 후배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후 금의환향한 유승민이 모교 내동중을 찾았을 때 이상수는 탁구부를 대표해 대선배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그때부터 ‘유쌤(이상수의 소속팀인 삼성생명 여자팀 코치)’은 내 롤모델이었고, 올림픽 금메달은 내 목표가 됐다”며 웃었다. 첫 올림픽에 도전하는 이상수에게 ‘유쌤’은 닮고 싶은 롤모델이자 뛰어넘고 싶은 선배다. “유쌤의 탁구는 자신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탁구다. 공격적인 탁구다. 어떤 무대에서든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친다. 나도 올림픽 무대에서 그렇게 하고 싶다”고 했다.
  생애 첫 올림픽을 앞둔 그는 패기만만하다. 단식, 단체전 목표를 물었다. “금메달, 적어도 메달권이죠.” 거침없었다. “목표는 클수록 좋으니까요. 잘 되면 못 딸 것도 없죠. 공격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누구와도 해볼 수 있어요. 뚜껑은 열어봐야 알죠.” 역시 무한 긍정의 아이콘이다.
  그는 ‘첫 출전’에 강하다. 첫 출전한 파리세계선수권 혼합복식에서 ‘환상의 파트너’ 박영숙(렛츠런파크)과 함께 은메달을 따냈다. 준결승에서 ‘레전드’ 왕리친이 분투한 중국조를 완파했다. 단체전 첫 주전으로 출전한 올해 세계선수권에서도 기어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첫 올림픽 역시 두려움 없이 도전할 작정이다. “파리 때도 우리가 해낼 줄 알았나요? 저희가 결승에 오를 줄 아무도 몰랐죠. 큰 대회일수록 이변이 많잖아요. 금메달이 목표입니다.”
  파리세계선수권에서 북한조에 패해 금메달을 놓치며 깨달은 교훈도 잊지 않고 있다. “파리세계선수권 혼합복식 결승 때 내가 너무 긴장했다. 아무 생각이 안 났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지고 있었다. 정신 차리고 잡으려고 보니 이미 늦었다. 그 경험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아쉬움을 딛고 그해 부산아시아선수권에서 기어이 혼합복식 금메달을 땄다. 탁구인생에서 가장 큰 무대, 올림픽을 앞두고 다시 마음을 다 잡았다.
  올림픽에서의 목표는 후회 없이 모든 것을 다 보여주고 나오는 것이다. “까딱 잘못하면 아무것도 못하고 나온다. 나는 섰다 나오는 게 제일 싫다. 자신에 대한 예의도, 선생님들에 대한 예의도, 국가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반드시 내 모든 걸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첫 대회가 경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첫 대회부터 잘해야 한다. 태극마크, 주전에 걸맞은 실력으로 점수를 따내야 한다. 남다른 마음으로 준비했다. 충분히 할 수 있다.”
  이상수의 ‘근거 있는’ 자신감을 믿어보기로 했다. “잘할 수 있어” “잘 될 거야” … ‘초긍정 닥공 청년’의 첫 올림픽을 응원한다. 글_전영지(스포츠조선)
 

▲  이상수의 자신감은 ‘근거’ 있다! 믿어보기로 한다. 월간탁구DB(ⓒ안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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