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 살 ‘탁구 청춘’ 정영식,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올림픽 대표 릴레이 인터뷰 ③]

스물네 살 ‘탁구 청춘’ 정영식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주세혁(삼성생명), 정영식(미래에셋대우), 이상수(삼성생명), 서효원(렛츠런파크), 전지희(포스코에너지), 양하은(대한항공). 8월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의 이름을 빛낼 6인의 탁구 국가대표다. 오상은, 유승민, 김경아, 박미영 등 걸출한 선배들이 떠난 자리, 당찬 후배들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한국 탁구의 자존심을 걸고, 오늘도 뜨거운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월간 탁구]는 리우올림픽의 해, 일생일대 도전에 나선 여섯 전사들의 이야기를 차례로 소개하고 있다. 전영지 탁구전문 기자가 이 특별한 기획을 책임진다. 월간지와의 시차를 전제로 [더 핑퐁]도 함께 한다. ‘태릉 연습벌레’ 스물 네 살 탁구청춘 정영식이 이번 호 주인공이다.
 

 

# “(정)영식이가 3단식에서 탕펭(세계랭킹 17위)을 잡아준 것이 승리의 80% 이상을 가져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대한민국 남자탁구대표팀의 맏형, 주세혁은 3월 쿠알라룸푸르세계선수권에서 ‘난적’ 홍콩을 3대 1로 제압하고 전승, 조1위로 8강에 직행한 후 후배 정영식의 활약을 칭찬했다. 정신력의 승리였다. 풀게임 접전 끝에 탕펭을 잡아낸 후 활짝 웃었다.

# 정영식은 쿠알라룸푸르세계선수권 4강 확정 직후 눈물을 쏟았다. 8강에서 포르투갈을 3대 1로 이긴 직후였다. 정영식은 3단식에서 티아구 아폴로니아에게 졌다. 4단식에서 주세혁이 몬테이로를 잡아 결국 한국이 승리했지만 자신의 공을 주세혁에게 넘기고 마음고생이 컸다. 선배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아쉬움과 자책이 뒤섞인 눈물이었다. 리우올림픽을 5개월 앞두고 치러진 세계선수권 단체전, ‘탁구청춘’ 정영식은 울고 웃으며 또 한 번 성장했다.
 

▲ 탁구인들은 쉼 없이 노력하고, 끊임없이 발전하는 정영식을 인정한다. 월간탁구DB(ⓒ안성호).

의외의 고백 “나는 재능이 부족하니까…”
 
세계선수권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정영식은 “재능이 부족하니까…”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대한민국 톱랭커는 자신의 ‘부족함’을 직시했다. 정영식은 자타공인 국내 톱랭커(세계14위)다. 선배 주세혁(15위), 이상수(18위)보다 앞선다. 대표선발전에서 웬만해선 1위를 놓치지 않는 ‘절대 에이스’다. 리시브와 연결력이 뛰어나다. 허투루 버리는 공이 없다. 전국체전, 종별선수권, 종합선수권 등등 선후배들을 줄줄이 제치고 각종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러나 특별한 노력과 탁월한 성적은 종종 폄하됐다. ‘국내용’이라는 달갑잖은 꼬리표가 자주 따라붙었다. 강력한 포어드라이브나 화려한 선제공격보다는 지구전, 연결, 랠리에 능한 온건한 탁구 스타일에 대한 비판이었다.
  정영식은 “주변의 평가를 인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받아들이고 나니 맘이 편해졌다”고 했다. “주변에서 재능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많이 하셨다. 처음엔 인정이 잘 안됐다. ‘어쩔 수 없지’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게 제일 힘들었다”며 웃었다. “비판을 속상해하기보다 인정하기로 했다. 대신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똑같이, 신경쓰지 말고 더 노력하기로 결심했다. 결과적으로 그 때문에 다른 선수들보다 노력을 더했는지도 모른다.”
  정영식은 단점을 지적하는 이야기들을 귀담아 듣고, 진심을 다해 고치려 애썼다. 보다 공격적으로 도전했고, 끊임없이 드라이브를 연마했다. 더 강해지기 위해 지난 6년간 부단히 노력해왔다. 정영식은 ‘태릉 연습벌레’다. 탁구장의 불을 켜고, 끄는 선수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정영식은 지난해 6월 필리핀오픈 단식 준우승에 이어 호주오픈에서 첫 정상에 섰다. 7월엔 코리아오픈 결승에서 주세혁을 꺾고 우승했다. 30위권을 맴돌던 ITTF 세계랭킹은 20위권 내로 진입했고, 올림픽의 해인 올해, 2월 13위, 3월 14위를 찍었다. 탁구인들은 쉼 없이 노력하고, 끊임없이 발전하는 정영식을 인정한다.
 

▲ 단복식을 모두 제패했던 지난해 코리아오픈에서의 정영식. 월간탁구DB(ⓒ안성호).

누구보다 탁구를 사랑하는 선수
  정영식은 스스로 ‘집착’이라고 할 만큼 탁구를 사랑하는 선수다. 탁구선수를 꿈꿨던 아버지를 따라 다섯 살 때부터 라켓을 잡았다. 의정부초등학교에서 선수의 길에 들어섰다. ‘동급 최강’이었다. 4학년 때까지 1위를 놓치지 않았다. “남들보다 일찍 시작했다. 구력이 앞서다보니 계속 1등을 했다. 5학년 때 (김)민석이가 나타나면서 처음 졌던 것 같다”며 웃었다.
  영리한 정영식은 공부도, 운동도 잘했다. “4~5학년 때까지는 탁구를 좋아하지 않았다. 승부욕이 강했고 지는 건 죽기보다 싫어서 1등을 했지만,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만날 혼나고, 연습만 하고….” 진로를 심각하게 고민할 무렵, 코치가 바뀌었다. “딱 한 달만 해보고 그만두기로 했는데, 김재진 선생님(안산 부곡초 감독)이 오시면서 탁구가 재밌어졌다. 연습도 많이 안 시키시고, 잘하는 선수들에게 스티커와 상금을 주셨다. 탁구가 좋아졌다.” 이후 내로라하는 신동들이 집결한 ‘명문’ 내동중-중원고를 거치며, 탁구는 ‘선택’이 아닌 ‘운명’이 됐다. “경쟁도 심하고, 연습량도 많고, 이때부터 24시간 내내 탁구 생각, 탁구 얘기만 했다.”
  만18세 되던 2010년 첫 출전한 로테르담세계선수권에서 남자복식 동메달을 땄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남자복식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했다. 개인전, 단체전 세계선수권에 매년 출전했다. 수년간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정영식의 선발전 탈락은 그래서 더 ‘충격’이었다. “아시안게임 선발전 때 처음 나태해졌다. 방심했다. 나도 모르게 당연히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고 떠올렸다. “한 달 정도 울었다. 훈련도 하는둥마는둥, 살도 2㎏ 쪘다. 그런데 한 달쯤 자유롭게 지내면서 내가 정한 틀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자신감이 올라왔고 탁구가 잘 되기 시작했다.”
  정영식은 다시 탁구대 앞에 섰다. “예전에는 ‘노력하면 다 된다’고 쉽게 생각했다. 인천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 떨어진 후 ‘안 되겠다. 올림픽이 2년 남았는데 이렇게 하면 못나갈 수도 있겠다. 독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걸었던 탁구에 대한 자세는 조금 달라졌다. 연습량은 늘었지만, 탁구에 대한 생각은 일부러 줄였다. “옛날에는 하루 24시간 탁구를 생각했다. 밥 먹을 때도, 잘 때도 탁구생각을 했다. 인천아시안게임 이후 조금은 쿨해졌다”고 했다. “생각할 때만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지금도 매일 복기는 한다. 일지도 쓰고….”
 

▲ 올림픽에 함께 도전하는 중원고 직속선배 이상수와는 모든 것이 ‘탁구’로 통하는 사이다. 월간탁구DB(ⓒ안성호).

내 멘토는 김택수, 롤모델은 공링후이
  ‘포기를 모르는 연습벌레’ 정영식의 멘토는 ‘스승’ 김택수 대우증권 감독이다. 김 감독은 정영식에게 ‘이기는 습관’을 주입시켰다. 감각을 타고난 김민석(KGC인삼공사), 왼손 에이스 서현덕(삼성생명) 등 또래 라이벌들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남는 법을 단련시켰다. 김 감독은 “추천전형은 꿈도 꾸지 마라. 너는 선발전에서 무조건 1등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정영식은 김 감독에 대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제게 믿음을 주시는 분”이라고 정의했다. “많은 분들이 (김)민석이, (서)현덕이와 저를 ‘재능’으로 비교할 때도 감독님은 늘 ‘결국엔 네가 제일 잘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국제대회 때마다 생중계를 보시고, 장문의 문자로 격려해주신다. 감독님의 믿음이 내겐 가장 큰 힘이다. 감독님은 내 정신적인 멘토다.”
  ‘성실한 제자’ 정영식을 향한 안재형, 이철승 감독 등 ‘태릉 스승’들의 애정도 남다르다. 정영식은 “선생님들께서 늘 저희 생각을 섬세하게 물어보시고, 좋은 생각은 반영해주신다. 태릉선수촌 탁구장 사진(올림픽, 세계선수권 메달리스트)에 있는 대단한 분들인데, 우리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셔서 감사하다. 그래서 더 믿고 따르게 된다”고 했다. “얼마 전 안 감독님께서 방에 직접 부르셔서 내 독일오픈 경기를 한 포인트씩 분석해주셨다. 감동이었다. 감독님이 나를 알고 가르쳐주신다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정영식의 롤모델은 고등학교 때 이후 줄곧 공링후이다. “중원고 시절 공링후이 동영상을 정말 많이 봤다. 고1때 그립, 스윙은 물론 파이팅 포즈까지 판박이처럼 따라했다”고 했다. ‘불세출의 그랜드슬래머’ 공링후이의 안정적인 ‘외유내강’ 탁구는 정영식 탁구의 교본이다. “나는 기술력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것은 자신 있다”고 했다. “나 역시 화려한 탁구를 하고 싶은 로망이 있다. 그러나 내 장점을 살리면서 단점을 보완해가려 한다. 기술, 재능 때문에 좌절한 적도 많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요즘은 미즈타니 준(일본), 디미트리 옵챠로프(독일)의 플레이를 유심히 본다. 최고 기술의 선수들은 아니지만 웬만해선 지지 않는다. 이기는 습관이 있다. 그 선수들과 내가 닮은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이기고 싶은 선수들 중 하나다. 나도 그런 선수가 되고 싶다.”
 

▲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지난 세계선수권 홍콩전에서 활약하던 정영식. 월간탁구DB(ⓒ안성호).

리우올림픽, 다음은 생각하지 않는다
  생애 첫 리우올림픽에 임하는 정영식의 태도는 결연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2020년 도쿄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소속팀 김택수 감독과 오상은, 윤재영 등 올림픽 무대를 경험한 선배들에게 수시로 조언을 구한다. “재영이 형은 올림픽 무대는 마치 에베레스트에서 뛰는 것처럼 숨이 막힌다고 했다. 상은이 형은 긴장되면 생각이 많아지니, 음악, 영화 등 취미를 즐기라고 했다. 경기에선 안전하게 넘기려고 하지 말고 과감하게 ‘후려치라’고도 했다. 형들의 조언을 들으면 안심이 된다”고 했다.
  ‘중원고 직속선배’ 이상수와 함께 나서는 첫 도전이기도 하다. “상수 형과는 탁구를 좋아하는 마음이 잘 맞는다. 우리는 타고난 재능보다 노력의 힘을 믿는다”고 했다. “성향은 많이 다르다. 나는 예민하고 섬세하고 생각이 많다. 체력적으로도 좋은 편은 아니다. 일단 상수 형은 몸이 좋다. 체력도 좋고 움직임도 빠르고, 생각은 깊은데 과감하다”고 설명했다.
  리우올림픽 단체전에서 이상수와 함께 나설 복식은 승부처다. ‘오른손 조합’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정영식은 자신감을 표했다. “다른 복식조보다 장점이 많다. 누구보다 이야기도 많이 하고, 열정이 통한다. 호흡이 잘 맞는다. 최고의 장점이다.” 무엇보다 정영식은 경험 많고, 능력 있는 복식 파트너다. 국제대회 복식에서 누구보다 메달을 많이 땄다. “복식을 특별히 잘한다기보다는 파트너가 잘할 수 있도록 심리적, 기술적인 면에서 서포터 역할을 잘한 것 같다. 내가 화려하게 빛나기보다 상대를 배려하려 노력한다. 상대방의 약점을 분석하고 시스템을 짜고, 심리적인 면을 다독이는 것이 내 역할이다.”
  주전으로 나선 첫 세계선수권, 선배 주세혁, 이상수와 함께 단체전 동메달을 따냈다. 첫 올림픽에서도 메달을 목표 삼고 있다. 쿠알라룸푸르세계선수권 직후 깨달은 바가 있다. 정영식은 “돌아가서 무슨 연습을 해야 할지 알겠다”고 했다. “올림픽처럼 긴장되는 대회는 이기기 위한 기술의 조건이 다르다. 긴장되는 대회에서 유리한 탁구가 뭔지 알 것 같다. 긴장을 안 하는 선수가 이기는 게 아니다. 긴장할 때 유리한 탁구를 하는 선수가 이긴다.”
  정영식은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선배 유승민(삼성생명 코치)을 떠올렸다. “승민이 형은 큰 무대에서 유리한 탁구를 가장 잘 하는 선수다. 큰 대회는 기술보다 심리다. 상대 심리를 흔들고, 자신이 유리해지는 탁구를 승민이 형에게 배우고 싶다”고 했다.
  “올림픽 무대는 아무도 모른다. 승민이 형이 금메달을 딸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주)세혁이 형도 세계랭킹 60위일 때 중국선수 6명이 나간 파리세계선수권에서 준우승했다. 올림픽 때 우리의 컨디션이 최고로 좋다면, 그리고 상대의 실수를 집요하게 파고든다면 우리에게도 기회가 올 거라고 믿는다”며 눈빛을 빛냈다. 글_전영지(스포츠조선 스포츠팀)
 

 
 
 

관련기사

저작권자 © 더 핑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