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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와 철학(19) | 강한 공격은 항상 효과적일까?TT-Sophy | 탁구와 철학(19) / 전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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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02  14: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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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낮으로, 낮이 밤으로 뒤집히는 기적

강한 공격은 항상 효과적일까? 만약에 그렇다면 스포츠의 묘미는 반의반토막 이상으로 떨어져버릴 것이다. 맞선 상대가 서로의 몸무게를 겨루는 스포츠를 상상해보자. 그 스포츠에서 관객은 ‘보기보다 더 무겁네!’라는 희한한 경우가 발생할 때만 재미를 느낄 것이다. 두 거구가 양팔저울 위에 올라선다. 양팔저울이 한쪽으로 기운다. 그것으로 끝이다. 더 무거워서 아래로 내려온 선수가 이긴다. 정육점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겠지만, 스포츠로서는 터무니없다.

권투에서 강한 스트레이트, 야구에서 빠른 공, 탁구에서 온몸이 실린 드라이브, 배구에서 받아보란 듯이 내리꽂는 중앙 백어택 등도 어떤 면에서 그저 몸무게와 다를 바 없는 구석이 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이 모든 기술을 익히기 위해 수백 드럼의 땀을 쏟았을 선수들이 정당하게 분개하겠지만, 앞서 말한 몸무게도 만만하게 볼 장점이 아니다. 일본 스모 선수들은 몸무게 하나를 키우기 위해 몇 년 동안 하루 식단과 일정을 수도사 못지않게 관리한다.

몸무게를 비롯해서 지금까지 언급한 장점들을 뭉뚱그려 ‘강함’으로 불러보자. 흔히 스포츠에서 최고의 미덕으로 불리는 강함 말이다. 서양에서는 흔히 무언가의 핵심이나 본질을 말할 때 ‘영혼’이라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스포츠의 영혼은 강함일까? 필자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당장 처음 질문을 돌이켜보라. 강한 공격은 항상 효과적인가? 야구선수 유희관을 아는 팬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스포츠에서 강함은 말하자면 뼈대나 기반과 같다. 그러나 그 뼈대 안에, 혹은 기반 위에 무언가가 살아있지 않으면, 스포츠는 그야말로 몸무게 겨루기로 전락해버린다. 스포츠 안에 무엇이 살아있어야 할까? 필자가 스포츠의 고갱이라고 부르고 싶은 그것은 비유하건대 ‘밤이 낮으로, 낮이 밤으로 뒤집히는 기적’이다.
 

   
▲ 강함이 전부는 아니다. 야구선수 유희관을 아는 팬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스포츠는 살아 움직이는 춤이다

이 비유의 원작자는 유명한 장애인 헬렌 켈러 여사다. 잠시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 무엇을 보겠습니까라고 누가 묻자 그녀가 몇 가지와 더불어 ‘밤이 낮으로, 낮이 밤으로 뒤집히는 기적’을 댔다고 한다.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기적은 거의 모든 철학자가 정신의 눈으로, 곧 개념으로 보고 싶어 하는 바로 그것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기적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철학자를 계속 책상 앞으로 이끈다.

그런데 스포츠 선수와 팬은 더없는 행운아다. 헬렌 켈러가 평생 꿈꿨고 철학자들이 몇 생을 거듭나며 보기를 열망하는 장면을 수도 없이 경험하고 보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면, 스포츠라는 활동이 그 자체로 강약의 뒤얽힘, 위기와 기회의 뒤얽힘, 승리와 패배의 뒤얽힘이기 때문이다. 약간 과장하고 다분히 흥분해서 말하면, 필자는 스포츠의 기막힌 한 장면에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중생이 곧 부처임을 본다. 그래서 피가 튀는 UFC는 꺼리는 편이다. 동물적 흥분이 워낙 자극되어 철학자들이 꿈꾸는 강약의 얽힘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두 번의 백핸드 리턴에 이어 급히 자세를 바꿔 포어핸드로 결정타를 날리는 탁구 경기를 훨씬 더 멋지게 본다. 선수는 자세를 바꾸는 그 순간, 상대가 자신의 동작을 읽어낸다면 자신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그렇게 결단했으리라.

바로 그런 순간이다. 우리는 위험을 감수하고 돌아서야 한다. 강자의 힘은 본디 약함과 얽혀있기 마련이고, 그것을 누구보다도 강자 자신이 가장 잘 안다. 그래서 스포츠는 양팔저울에 추 올리기 놀이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춤이다. 무거운 선수가 도리어 밀리고, 가벼운 선수가 도리어 잡아챈다. 100킬로그램짜리 유도 초심자는 65킬로그램급 유도선수 앞에서 그야말로 뽀빠이에게 걸린 부르투스다.
 

   
▲ 숱한 기적을 목도하는 스포츠선수와 팬은 어쩌면 더없는 행운아다. 하긴, 2002년 월드컵은 너무 오래된 일이긴 하다.

스포츠의 영혼, 고갱이는 뭘까?

철학자는 어쩌면 어리석은 짓을 하는지도 모른다. 유도 도장에 가서 그런 뽀빠이와 브루투스의 연습경기를 구경하고, 탁구경기장에서 마롱이 온몸을 붕붕 띄우며 후리는 드라이브를 보면서 그 약점을 연구하고 경험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사실 밤이 낮으로, 낮이 밤으로 뒤집히는 기적은 매일 두 번씩이나 일어나지 않는가? 정태춘이 노래한 서해에서 보고, 최백호가 노래한 동해에서 보면 족하지, 그 기적을 육신의 눈이 아니라 ‘정신의 눈’으로 환히 보겠다고? ‘정신의 눈’으로 본다 함은 ‘말로 풀어낸다.’는 뜻이다. 자네는 헬렌 켈러가 평생 꿈꿨다는 그 기적을 말로 풀어내서 들려줄 작정인가? 솔직히 철학자도 말문이 막힐 때가 가끔 있는데, 지금이 그럴 때다.

아무튼 철학자에게는 여전히 변명거리가 남는다. 여러분, 스포츠가 강함 끼리의 격돌이 아니라는 것 이미 아셨어요? 양팔저울로 무게 재기하고는 영 딴판이라는 것도 아셨어요? 그럼 재미있잖아요. 스포츠의 영혼, 고갱이는 뭘까요? 어찌하여 강약이 얽히고 약점과 강점이 뒤바뀌고 어느새 밤이 낮으로 되어버릴까요? 이런 얘기 계속해보고 싶지 않으세요? 물론 설득력 있는 변명이었거나 확 당기는 유혹이었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한다. (월간탁구 2017년 6월호)
 

   
▲ 스포츠만큼 ‘기적’이라는 비유가 많이 쓰이는 분야도 드물다. 지난 2017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마롱을 이기고 환호하던 정상은.

스포츠는 몸으로 풀어내는 철학이다. 생각의 힘이 강한 사람일수록 보다 침착한 경기운영을 하게 마련이다. 숨 막히는 스피드와 천변만화의 스핀이 뒤섞이는 랠리를 감당해야 하는 탁구선수들 역시 찰나의 순간마다 엄습하는 수많은 생각들과도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상극에 있는 것 같지만 스포츠와 철학의 접점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철학자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는 스포츠, 그리고 탁구이야기. 어렵지 않다. ‘생각의 힘’을 키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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