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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와 자유TT-Sophy | 탁구와 철학(17) / 전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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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08  1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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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로서 행동하는 자만이 자유롭다!

  요새 우리 주변의 교양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서양 근대철학자를 꼽으라면, 아마도 스피노자를 꼽아야 하지 싶다. 그 증거로 <강신주의 감정수업>이라는 책을 들 수 있다. 곳곳에서 자주 눈에 띄는 대중 철학자 강신주가 쓴 그 베스트셀러는 줄곧 스피노자의 문장들을 인용한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주요 내용은 일종의 마음 다스리기를 위한 지침이다.

  실제로 스피노자는 그런 심리상담가의 면모를 지닌 철학자이고, 그 면모가 오늘날 국내외에서 그가 누리는 인기의 주요 원인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스피노자는 “영원의 관점에서” 철학하라고 강조한 형이상학자다. ‘영원의 관점’은 ‘전체의 관점’으로 바꿔 쓸 수 있다. 한순간, 한순간에 매인 편협한 관점에서 벗어나 영원의 관점으로 상승하라는 것은 개인의 특수한 상황에 얽매이지 말고 시야를 넓혀 우주 전체를 보라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 말이다. 모름지기 철학자라면 누구나 그런 공평무사한 태도를 중시하지만, 거의 수도승의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로 그런 탈 개인적 철학을 펼쳤다는 점에서 스피노자는 과연 특별한 인물이다.

  헤겔은 실천의 측면에서 본 스피노자 철학을 이런 문장으로 요약한다. “오직 전체로서 행동하는 자만이 자유롭다.” 자유를 누리려면 전체의 관점에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스피노자는 자유인들의 공동체를 논했다. 자신의 특수한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은 사람들의 사회, 필자는 그것이 바로 ‘민주사회’라고 본다. 헤겔이 생각한 참된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체’와 ‘자유’는 서로 맞물려 있는 두 개념이다.
 

   
▲ 특수한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사회! 우리 사회도 큰 걸음을 뗐다! 촛불혁명의 마침표(!)를 찍어준 헌법재판소 전경.

몸을 자유자재로 놀린다?

  이쯤에서 왠지 엄숙하고 재미없는 철학을 벗어나 재미나는 스포츠로 화제를 옮기자. 이 글의 목적은 방금 말한 전체와 자유의 연관성을 스포츠에서 재발견하는 것이다. “오직 전체로서 행동하는 자만이 자유롭다.”라는 문장에서 탁구 선수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세상의 말이 대체로 그렇듯이, ‘전체’도 여러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우선 몸이 전체일 수 있다. 이 경우에 ‘부분’들은 손목, 어깨, 무릎, 발목 등이다. 누구나 알겠지만, 이런 관절들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것은 스포츠에서 초보자와 숙련자를 가르는 기준으로 매우 유효하다. 초보자의 특징은 한 부분(관절)의 움직임을 다른 부분들이 받쳐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초보자는 동작이 어딘가 어색하며 과도하게 운동할 경우 부상을 입기 쉽다. 반면에 선수들의 동작은 한 부분이 움직일 때 다른 모든 부분들이 함께 움직여 조화로운 전체를 이룬다. 그래서 한눈에 보아도 자연스러울 뿐더러 놀라운 힘과 속도를 낸다. 혹시 그 자연스러움을 자유로움으로 불러도 될까?

  흥미롭게도 우리는 일상 언어에서 “몸을 자유자재로 놀린다.”라는 말을 쓴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필자는 어린 시절에 젊은 이모와 함께 살았는데, 그 이모가 어딘가에서 춤추는 사람을 보고 와서 이렇게 말했다. “와! 엉덩이가 막 움직여. 엉덩이랑 허리랑 어깨랑 따로 따로 놀아!” 춤은 아마도 ‘고고’니 ‘디스코’니 하는 서양 춤이었을 테고, 이모의 눈에는 그 낯설고 분방한 동작이 부분들의 격동으로만 보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춤이 춤답기 위해서는 부분들의 격한 움직임보다 조화로운 전체가 훨씬 더 중요하다. 이 원리는 조선의 궁중무용부터 브레이크댄스와 팝핀댄스까지 동서고금의 모든 춤에 적용된다. 그리고 이 원리에 충실한 동작을 볼 때 우리는 “몸을 자유자재로 놀린다.”라고 말한다.
 

   
▲ 격한 움직임보다 조화로운 전체가 더 중요하다. 백조의 호수 공연 모습, 로열발레단.

상대를 자유자재로 요리하는 선수가 되려면

  필자는 이 모든 이야기에서 탁구선수를 위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오직 전체의 관점에서 자기 동작을 점검하고 다듬는 선수만이 자유자재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선수가 자세와 동작을 연마할 때 염두에 둬야 할 것은 결국 자신의 몸 전체다. 흔히 무릎만 조금 더 굽히면 된다, 오른쪽 어깨만 좀 더 앞으로 내밀면 된다, 하는 식으로 과제를 설정하고 훈련하지만, 그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결국엔 그런 부분적인 교정의 영향이 몸 전체로 퍼져 손목, 팔꿈치, 골반, 발목에까지 이르러야 하고 실제로 그렇게 되기 마련이다. 선수는 자기 몸 전체를 상대해야 한다. 심지어 내부 장기들과 감정 상태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더 나아가 ‘전체’는 경기장에서 맞선 두 선수를 한꺼번에 일컫는 말일 수 있다. 정영식이 마롱과 시합한다면, 이들이 두 부분으로서 어우러져 조화로운 전체를 이룬다. 이 경우에 “오직 전체로서 행동하는 자만이 자유롭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태권도를 하던 시절에 필자는 선수의 수준을 크게 셋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가장 낮은 수준은 상대방의 움직임에 아랑곳없이 자기가 계획한 공격을 밀어붙이는 선수다. 이런 선수의 공격은 득점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 선수는 무척 열심히 하고 힘도 좋은데, 득점은 운이 좋을 때만 나온다. 그보다 나은 수준의 선수는 상대방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것을 주요 전략으로 삼는다. 쉽게 말해서 카운터 공격을 노리면서 상대가 먼저 움직이기를 기다린다. 이런 선수는 경제적인 경기 운영이 돋보이지만 최고의 성적을 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마지막 최상의 수준이 있기 때문이다. 이 수준의 선수는 상대방을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유도해놓고 그 움직임을 역이용한다. 이런 수준의 선수를 볼 때 사람들은 “상대를 자유자재로 요리한다.”라고 말한다. 필자는 이런 선수가 바로 전체로서 행동하는 자유인이라고 해석한다.

  전체의 관점에서 행동하는 사람은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안다. 전체의 관점에서 경기를 풀어가는 선수는 상대를 이해하고 이길 줄 안다. 얼핏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타인에 대한 이해와 감정이입은 사회생활에 이로울 뿐 아니라 스포츠에서 이기기 위한 필수조건이기도 하다. (월간탁구 2017년 4월호)
 

   
▲ 전체의 관점에서 경기를 풀어가는 선수는 상대를 이해하고 이길 줄 안다. 국가대표에 복귀한 노장 김경아 선수.

스포츠는 몸으로 풀어내는 철학이다. 생각의 힘이 강한 사람일수록 보다 침착한 경기운영을 하게 마련이다. 숨 막히는 스피드와 천변만화의 스핀이 뒤섞이는 랠리를 감당해야 하는 탁구선수들 역시 찰나의 순간마다 엄습하는 수많은 생각들과도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상극에 있는 것 같지만 스포츠와 철학의 접점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철학자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는 스포츠, 그리고 탁구이야기. 어렵지 않다. ‘생각의 힘’을 키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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