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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풍(掌風)의 전설 (1)TT-Sophy | 탁구와 철학(12) / 전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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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28  1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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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장법은 필수다. ‘핵주먹’으로 불렸던 마이크 타이슨의 경기모습.

스포츠 선수와 이야기꾼
 
고대 그리스 시인 핀다로스는 올림픽 경기의 승자들을 기리는 찬가를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고된 훈련으로 정상에 오른 선수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이므로 특별히 핀다로스를 주목할 이유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그가 남긴 다음과 같은 문구를 주목한다. “노래는 찬미할 업적을 필요로 하고, 성취는 그 위대함을 길이 남게 할 노래를 필요로 한다.”
  업적이란 선수의 승리고 노래란 핀다로스가 짓는 시, 혹은 이야기다. 시인은 선수와 자신을 공생하는 짝패로 여긴다.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승리한 영웅이 없으면 이야기꾼은 세상에 전할 이야깃거리가 없어서 빈둥거릴 수밖에 없다. 거꾸로 이야기꾼이 없으면 어떤 영웅도 큰 세상이나 먼 미래에 알려질 수 없다.
  이야기꾼의 도움은 특히 스포츠 영웅에게 절실한 듯하다. 물론 지금은 사진과 동영상이 넘쳐나는 시대여서 과거 영웅의 경기 모습을 아쉬운 대로 볼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예컨대 체조선수 코마네치의 전성기 시절 연기를 곁에서 직접 볼 때의 감격을 빛바랜 동영상 시청으로 대신할 순 없는 노릇이다. 서울올림픽 탁구 남자단식 금메달리스트 유남규를 지금 불러 라켓을 쥐어주고 그때처럼 해보라고 하는 것은 더욱 더 얼토당토않다. 누구보다 선수 자신이 가장 잘 알겠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속담이 최고의 진리인 분야가 바로 스포츠다. 어떤 스포츠 영웅도 세월 앞에서는 벚꽃이나 이슬처럼 덧없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세월에 퇴색하는 스포츠 영웅들. 과연 누가 그들을 도울 수 있을까? 자연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는 유일한 힘인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사람을 일컬어 이야기꾼이라고 한다. 일찍이 핀다로스가 말한 대로, 스포츠 선수와 이야기꾼은 공생할 운명이다. 코마네치의 평균대 연기를, 차범근의 오버헤드킥을, 장정구의 좌우 연타를 생생하고 찰진 언어로 풀어서 전달하는 이야기꾼은 스포츠를 불멸로 이끄는 열쇠라고 할 만하다.
  그런 이야기꾼에게 과장법은 필수다. 장대높이뛰기 선수 옐레나 이신바예바를 흔히 ‘미녀 새’라고 부르지만, 지팡이 짚고 한 5미터 올라갔다가 곧바로 떨어지는 사람더러 새라니 터무니없는 허풍이다. 권투선수 마이크 타이슨의 ‘핵’주먹? 그의 주먹이 폭발하면 반경 10킬로미터 이내가 불바다가 된다는 뜻일까? 이토록 심한 허풍은 삶의 많은 분야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스포츠를 이야기할 때는 이보다 더 심한 과장, 심지어 자연법칙을 위반하는 과장도 거리낄 필요가 없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첫눈처럼 덧없는 스포츠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말이든 못하겠는가.
 

   
▲ 세월 앞에 장사는 없다. ‘체조의 전설’로 통하는 나디아 코마네치.

장풍 스트로크? 과장법의 절실함!
 
멋진 과장법의 대표적 사례로 필자는 ‘장풍’을 꼽는다. 아아, 들어는 보았나, 장풍의 전설! 옛날에 희대의 고수가 손바닥에서 바람을 분출하여 상대를 쓰러뜨렸다는 이야기. 헛웃음이 절로 나는 분도 많겠지만, 추측하건대 필자가 어렸을 때 제 발로 태권도장에 찾아간 아이들 중 70퍼센트는 장풍의 존재를 믿었다고 본다. 최소한 장풍의 존재에 대한 논쟁은 그 시절 모든 사내아이들의 일상사였다.
  장풍의 개념은 아마도 중국문화권에서 기원했을 텐데, 우리나라도 중국문화권의 일부였으니 그 불멸의 개념을 창안한 이야기꾼이 우리 조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그 개념을 창안하고 다듬고 퍼뜨렸다고 보는 편이 더 그럴듯하리라. 아무튼 필자는 매우 진지한 의미에서 장풍의 개념을 높게 평가하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글로 미루고 여기서는 그 개념을 낳은 과장법의 절실함만 언급할까 한다.
  어느 이야기꾼이 몇 년째 세상을 떠돌며 무술 고수들의 대결을 구경한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염이 하얗고 몸매가 호리호리한 늙은이가 팔팔하고 다부진 젊은이와 맞선 것을 본다. 젊은이는 명성이 자자한 신예인데, 늙은이는 듣도 보도 못한 인물이다. 양쪽이 접근하는가 하는 순간, 젊은이는 이미 바닥에 누워있고, 늙은이는 곧추 서서 주먹을 감싸 쥔 자세로 예를 표한다. 이야기꾼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럴 수가! 강호를 누비며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구경했지만, 이런 공격은 처음 봤다. 아니,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너무 빨라서, 그야말로 바람 같아서, 보이지 않았다. 옳거니, 이것은 필시 바람! 저 늙은이는 ‘장풍’의 고수다!
  아마도 이런 식으로 탄생했을 장풍의 개념은 이름 모를 고수들의 명예와 무술 일반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본다. 이를 본받아 탁구 이야기꾼도 멋진 과장법을 구사해보면 어떨까? 필자는 영화 <넘버3>에서 배우 송강호가 조직폭력배 훈련생들에게 무술인 최영의를 소개하는 대목을 약간 변형해보기로 했다. 주인공은 얼마 전 리우 올림픽에서 탁구 해설자로 나섰던 김택수 선수로 선정했다. 아무래도 이야기에는 왕년의 고수가 어울리기 때문이다. 영화 속 송강호의 말투를 연상하면서 읽어주기를 바란다.
  ‘예전에 김택수라는 분이 계셨어. 지금은 드문 펜 홀더 라켓 하나 들고 전 세계를 떠돌면서 탁구로 맞짱을 뜨시던 분이지. 그 양반 스타일이 이래. 너 탁구공이야? 나 김택수야! 그리고 그냥 들어가. 라켓 딱 잡고, 사정없이 때려. 계속 때려. 탁구공이 안 넘어올 때까지. 나중엔 이 양반이 탁구대 앞에 딱 서면, 넘어오던 탁구공이 그냥 돌아가곤 했어. 장풍이지. 장풍 스트로크!’ (월간탁구 2016년 11월호)
 

   
▲ 너 탁구공이야? 나 김택수야!

스포츠는 몸으로 풀어내는 철학이다. 생각의 힘이 강한 사람일수록 보다 침착한 경기운영을 하게 마련이다. 숨 막히는 스피드와 천변만화의 스핀이 뒤섞이는 랠리를 감당해야 하는 탁구선수들 역시 찰나의 순간마다 엄습하는 수많은 생각들과도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상극에 있는 것 같지만 스포츠와 철학의 접점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철학자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는 스포츠, 그리고 탁구이야기. 어렵지 않다. ‘생각의 힘’을 키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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