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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는 다음 번 대결의 예고편TT-Sophy | 탁구와 철학(1) / 글_전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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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4.05  13:2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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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는 몸으로 풀어내는 철학이다. 생각의 힘이 강한 사람일수록 보다 침착한 경기운영을 하게 마련이다. 숨 막히는 스피드와 천변만화의 스핀이 뒤섞이는 랠리를 감당해야 하는 탁구선수들 역시 찰나의 순간마다 엄습하는 수많은 생각들과도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상극에 있는 것 같지만 스포츠와 철학의 접점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철학자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는 스포츠, 그리고 탁구이야기. 어렵지 않다. ‘생각의 힘’을 키워보자.

스포츠의 두 기둥, 몸과 승부
  ‘스포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몸이다. 발가벗은 몸으로 원반던지기 준비 자세를 취한 남자를 묘사한 고대 그리스 조각을 생각해보라. 당시에는 실제로 그렇게 나체로 운동 경기를 했다고 들었는데,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하다. 스포츠는 몸의 축제가 아닌가. 역도선수의 터질 듯한 허벅지, 리듬체조 선수의 유연한 허리, 유도선수가 띠를 고쳐 맬 때 얼핏 보이는 복근, 높이뛰기 선수의 늘씬한 다리, 보디빌더의 우람한 어깨….
  스포츠에서 멋진 몸이 빠지는 경우는 생각하기 어렵다. 심지어 말이 주인공인 경마에서도 그렇다. 말의 허벅지를 보라. 힘찬 근육과 윤기가 반드르르 흐르는 털가죽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난다. 물론 텔레비전에서 본 말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경마장은 가본 적도 없고 승마는 제주도에서 아마 만원인가 내고 말 등에 올라타 마부가 고삐를 쥐고 이끄는 대로 한 5분 타본 것이 전부인 필자가 말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 턱이 없다. 아마 대다수가 그렇겠지만, 스포츠를 생각할 때 필자가 연상하는 몸은 당연히 사람의 몸이다. 그것도 지칠 대로 지치고 땀에 흠뻑 젖은 몸. 과연 몸은 스포츠의 기둥이라고 할 만하다.
 

   
▲ ‘스포츠’ 하면 가장 먼저 몸이 떠오른다. 고대 그리스 조각상 <원반 던지는 사람>.

  한편, 스포츠를 떠받치는 또 하나의 기둥은 승부다. 경쟁이라는 말이 더 익숙할 수도 있겠지만, 경쟁의 진면목은 아마 어느 스포츠 종목에서나 결국 승부이지 싶다. 적어도 필자가 조금 경험한 태권도에서는 확실히 그렇다. 셋이서 하고 1등, 2등, 3등을 정하는 겨루기는 없다. 프로레슬링에서는 양쪽 선수와 심판이 뒤엉키기도 하고 링 바깥에서 괴한이 난입하기도 하지만, 알다시피 그것은 스포츠가 아니라 그냥 쇼다.
  스포츠에서는 경기를 하고, 그 결과는 딱 두 가지, 이기거나 지는 것이다. 비기는 경우는 결과가 미뤄진 것으로 봐야 옳다. 진정한 결과는 승패가 갈려야 나온다. 물론 양편이 맞붙는 경기 말고 여럿이 기록을 가지고 경쟁하는 경기도 있다. 이런 경기의 결과는 성적 순위로 나오지만, 이때도 진정한 승자는 딱 한 명, 1등을 한 선수다. 실제로 영어에서는 그 선수를 ‘승자winner’라고 부른다. 예컨대 2012년 올림픽 남자 100미터 달리기의 ‘승자’는 우사인 볼트다. 그럼 나머지 2등, 3등, 4등 선수는 모두 패자라는 말인가? 야속하지만, 영어 표현은 그렇다. 우리말은 1등을 ‘우승자’라고 하면서 2등에게도 ‘준우승자’라는 괜찮은 호칭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더 후하다고 할 만하다.
 

   
▲ 스포츠는 승패를 가른다. 2012년 올림픽 남자 100미터 달리기의 ‘승자’ 우사인 볼트.

왜 승부를 즐길까?
  아무튼 스포츠는 승패를 가른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스포츠의 두 기둥인 몸과 승부 중에서 더 중요한 것은 승부인 것 같다. 승부가 없는 스포츠는 상상하기 어려운 반면, 몸이 없는 스포츠는 실제로 있기 때문이다. 2010년 아시안게임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던 바둑을 생각해보라. 하긴 이창호도 앉은 자세를 장시간 유지하기 위해 여러 근육을 사용하고 오른손을 정교하게 놀려 바둑돌을 판에 놓으니, 몸을 쓰기는 한다. 그러나 이를 역도선수의 몸 쓰기에 비하랴. 바둑의 묘미는 몸통의 자세나 손의 움직임이 아니라 머리에서 나오는 전략에 있다. 오로지 그 전략이 승부를 가르기 때문에, 바둑은 이른바 두뇌 스포츠다.
  이른바 e스포츠도 몸의 역할은 화면을 보는 눈과 손가락 놀림에 국한된다. 전통적인 스포츠에서 중요한 심폐지구력과 근력은 쓸모가 없다. 땀이 나고, 숨이 차고, 다리가 풀리는 일도 없다. 그럼에도 컴퓨터게임이 스포츠라면, 그것은 오로지 승부 때문이다. 명확한 규칙 아래에서 양편이 실력을 겨루고 그 결과로 승패가 갈린다면, 스포츠가 실행되는 셈이다.
  반대로 몸의 역할이 유난히 큰 스포츠도 있을까? 가장 먼저 보디빌딩이 떠오른다. 이 특이한 스포츠에서는 평소에 키워놓은 몸이 거의 전부일 것이다. 물론 경기 당일의 몸 상태와 기분에 따라서 선수가 무대 위에서 잡는 자세와 표정이 조금 달라지겠지만, 그 차이가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다. 야구나 태권도 같은 종목에서는 훈련할 때 아무리 잘해도 실전에서 최악의 결과가 나오곤 하지만, 보디빌딩에서는 그럴 성싶지 않다.
 

   
▲ 승부를 가르는 대결은 누구에게나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바꿔 말해서 보디빌딩은 경기 결과에서 ‘우연’이 차지하는 몫이 가장 작은 종목이 아닐까 싶다. 몸의 동작을 보여주고 점수를 받는 종목은 보디빌딩 외에 체조도 있지만, 체조에서만 해도 예상 밖의 결과가 종종 발생한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나 도박처럼 시도한 최고 난도의 동작이 승부를 뒤집을 수 있다. 그러나 보디빌딩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냥 몸을 보면 우열을 알고, 그것이 전부일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보디빌딩 경기를 하고 승패를 가르는 것을 보면, 승부야말로 스포츠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의미에서 참 야박한 것이 스포츠인데, 왜 우리는 스포츠를 즐기는 것일까? 승부를 가르는 대결은 누구에게나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대결의 극단적인 예는 전쟁일 텐데, 미치지 않은 한 전쟁을 즐길 사람은 당연히 없다. 프로 선수들의 대결은 말할 것도 없고, 아마추어들의 대결도 즐겁기는커녕 살벌해질 수 있다. 이기면 좋지만, 지면 분하다. 다들 알다시피 승부의 세계는 냉혹함 그 자체다. 그걸 어떻게 즐긴다는 말인가?
  우리가 스포츠의 승부를 즐길 수 있는 것은 늘 다음번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번 대결이 마지막이고, 이번 승부가 최종 판결이라면, 역사소설 속의 영웅이 아닌 한, 누구라도 코트에 나서기를 꺼려 할 것이다. 하지만 스포츠에서 승부는 늘 성장의 자양분이요 다음번 대결의 예고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편으로 부담스럽더라도 기꺼이 대결에 나선다. 이 대결이 나와 당신이 거칠 긴 성장과정의 한 단계일 뿐임을 우리는 안다. 또한 더 발전한 다음 단계를 위해 이 단계가 꼭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우리는 악수나 인사로 예를 표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노려보며 심판의 시작 신호를 기다린다.
  스포츠에서 승부는 가장 중요한 기둥인 동시에 가장 좋은 선생이다. 우리의 삶에서도 대결은 늘 다음번 대결의 예고편이고 승부는 고마운 선생이면 좋겠다. (월간탁구 2015년 12월호)
 

   
▲ 스포츠에서 승부는 가장 중요한 기둥인 동시에 가장 좋은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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