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지의 인물탐구

  별 3개가 꽉 채워져야 레벨이 올라가는 이 게임에서 본인의 현 상황은 ‘별 2개’라고 진단했다. “완성되지 않았어. 완벽하게 해야 해. 레벨이 올라가는 것보다 별 3개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해.” 탁구선수로서 가져야할 기술은 이미 다 연마했지만, 완성도를 높이는 게 향후 과제다. 어른동화 ‘어린왕자’처럼 완벽한 비유였다. 순간 ‘이 아이, 정말 천재 아닐까’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왜 나를? 내가 그 정도가 돼?”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MBC)의 출연요청을 받았다는 아빠의 말에 ‘열 살 탁구소녀’ 신유빈(군포 화산초)의 첫 반응은 이랬다. 1m40 남짓 작은 키로 날리는 거침없는 드라이브, 머리 하나는 더 큰 5~6학년 언니들을 무장해제시키는 깜찍발칙한 ‘탁구신동’으로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 여름, 문화체육관광부장관기 전국종별학생탁구 여자단식에서 고학년 언니들을 모두 꺾고 최연소 우승 기록을 썼다. 지난해 겨울, 전국종별탁구선수권에서 대학생 언니를 이긴 후엔 더 유명해졌다. ‘신유빈’ 이름 세 글자가 인터넷 검색창을 도배했다. 다섯 살 때 출연했던 ‘스타킹’, 이상수 유남규 현정화 감독과의 탁구 시범 랠리도 화제가 됐다. ‘제2의 현정화’ ‘한국의 아이짱’ 등 수많은 수식어들이 따라붙었다. 시사프로그램이 ‘탁구신동’ 신유빈의 가능성을 집중보도했고, 각종 예능프로그램 러브콜도 잇달았다. 동네 떡볶이집 아줌마도 얼굴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뜨거운 스타덤에 정작 유빈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동그란 눈망울, 동그란 얼굴의 깜찍한 소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세상의 관심에는 별 관심이 없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저 좋아하는 탁구를 그냥 할 뿐이다. 
 

▲ 아직 어리고 깜찍하기만 한 유빈이. 이제는 인터뷰 솜씨도 많이 늘었다.

듀스 접전? 바이킹 타는 기분
  지난 3월 경기도교육감기 남녀종별학생탁구에서 신유빈은 2년 연속 전관왕에 올랐다. 단식 복식 단체전 등을 석권했다. 전 종목에서 결승에 진출한 탓에 무려 14경기를 소화해야 하는 살인적인 일정이었다.
  결국 어깨에 무리가 왔다. 대한탁구협회 주관 대회에서 장내 진행을 담당하는 탁구선수 출신 ‘아빠’ 신수현 씨는 출전을 만류했다. 고통을 호소하던 유빈이는 경기시간이 다가오자 벌떡 일어섰다. “그냥 할래.” 어깨 통증을 꾹 참으며, 마지막 단체전 결승 제1단식 주자로 나섰다. ‘6학년 언니’ 서경원(안양 만안초)을 상대로 게임스코어 3대2로 승리했다. 마지막 5게임은 듀스 대접전이었다. 15대13으로 이겼다. 위기의 순간, 스스로 길을 찾았다. “어깨가 너무 아파서 포어 말고 백으로 잡았어!” 
  보는 이도, 하는 이도 피 말리는 듀스 전쟁, 10살 신유빈에겐 어땠을까. “바이킹 타는 기분, 자동차 게임에서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기분?” 이 어린 선수가 승부의 ‘쪼는 맛’을 안다. 가슴 울렁이는 벼랑 끝 승부를 즐겼다. 대선수의 요건 ‘강심장’을 갖췄다.
 

▲ 일찍부터 주목 받았던 유빈이. 이렇게 쑥쑥 자라고 있어요. 다섯 살 때와 아홉 살이 된 지난해의 경기모습이다.

오늘도 한번 해볼까
  신유빈이 경기에 임하는 태도는 ‘오늘도 한번 해볼까’다. ‘반드시 우승해야지’ ‘이기고 말겠어’ 식의 독한 승부욕이 아니다. 그냥 해보는 거다. ‘어차피 할 바엔, 잘해보자’는 가벼운 마음이다.
  “져도 괜찮아.” 초등부 학년대회에서 무실게임, 무패행진을 이어온 유빈이는 지난해 대한탁구협회가 운영하는 꿈나무 육성 프로그램 ‘드림팀’에 합류했다. 강력한 선후배들 틈바구니에서 지는 법도 배웠다. 탁구인 출신 아버지 신 씨 역시 어린 딸에게 성적을 강요하지 않는다. 직접 운영하는 탁구장에서 놀이삼아 재밌게 시작한 탁구를 행복하게 오래오래 하도록 돕는 것이 꿈이다.
  유빈이는 고학년 언니들과 붙을 때도 쫄지 않는다. 부담 없이, 거침없이 친다. “어차피 언니잖아, 져도 되고 이겨도 되고 부담 없으니까. 이기면 이기는 거고, 지면 지는 거고.” 매 경기 도전자의 마음으로 치다보니 성적이 절로 따라왔다.
 

▲ 탁구신동으로 국제대회마다 시범경기도 자주 펼쳤다. 2010년 그랜드파이널스에서 유남규 선생님과, 그리고 2013년 아시아선수권에서 이상수 ‘오빠’와 함께 한 유빈이.

‘폭탄’을 터뜨려야 이길 수 있어
  “예측하지 않고 오는 박자대로, 막 쳤는데 그게 막 들어가. 엄청 짜릿해. 손도 안 댔는데 ‘애니팡’ 폭탄이 막 터지는 것처럼.” 신유빈은 탁구를 스마트폰 인기게임처럼 즐기고 있었다.
  “승부를 끝내려면 ‘폭탄’을 써야해. 연결, 연결하다가 ‘폭탄’을 제대로 터뜨려야 이길 수 있어.” “연결하다가 ‘폭탄’ 쓰는 게 잘 안될 때도 있어. 결정구를 만들었는데 ‘미스’하거나, 시간이 다 될 때까지 못 쓸 때도 있고.” 유빈이는 탁구에서의 결정구, 승부수를 게임 속 ‘폭탄’에 비유했다.
  신유빈이 현재 보유중인 ‘폭탄’은 3개, “서브, 포어드라이브, 백드라이브”다. “폭탄은 계속 생기고 있어. 터뜨릴 때마다 계속계속 생기니까”라며 생긋 웃었다. 유빈이의 탁구 필살기 역시 계속계속 생겨나고 있다는 뜻이다. 별 3개가 꽉 채워져야 레벨이 올라가는 이 게임에서 본인의 현 상황은 ‘별 2개’라고 진단했다. “완성되지 않았어. 완벽하게 해야 해. 레벨이 올라가는 것보다 별 3개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해.” 탁구선수로서 가져야할 기술은 이미 다 연마했지만, 완성도를 높이는 게 향후 과제다. 어른동화 ‘어린왕자’처럼 완벽한 비유였다. 순간 ‘이 아이, 정말 천재 아닐까’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 시상대에 서는 일은 이제 가뿐한 일상?! 지난해 회장기 대회 직후의 모습.
▲ 음~ 롤러코스터 타는 기분?!

‘무한도전’ 출연기
  평소 ‘무한도전’을 즐겨봤다는 유빈이에게 ‘무한도전’의 갑작스런 러브콜은 의외였다. “왜 나를?”이라며 의아해 했다. 외계인 특집 ‘지구를 지켜라’ 편에서 ‘최연소 지구특공대’로 출연해 ‘외계인 삼촌’들과 삼각형 테이블 위에서 거침없는 맞대결을 펼쳤다. ‘유느님’ 유재석은 “시사매거진에서 봤다. 함께 탁구를 치게 돼 영광”이라며 ‘탁구신동’을 깍듯이 예우했다. 만 원짜리 라켓으로 삼각테이블 위에서 치는 이상한 탁구에 유빈이는 제법 긴장했지만, 몇 번의 연습 만에 이내 ‘외계인 테이블’에 적응했다. 당연히 유빈이의 완승이었다. “원랜 3판2승제였는데 유재석 삼촌이 자꾸 한 번만 더하자고 해서, 7판4승제로 바뀌었어요.” ‘무도 멤버’의 탁구실력을 물었다. 유빈이의 눈은 냉정했다. “정준하, 하하 삼촌은 잘 치고, 노홍철 삼촌은 못 쳐요. 크크.”
 

▲ 무한도전 외계인특집에 최연소 지구인으로 출연했다. (사진제공 유빈이)

천생 선수, 나는 왜 이럴까
  무한도전 등 TV출연 후 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동네 떡볶이집 아줌마도 아는 척을 했다. 기분이 어떠냐고 했더니 “아무렇지도 않다”고 한다. 기사나 방송은 아빠가 알아서 스크랩한다. 유빈이는 자신의 기사를 따로 챙겨보지 않는다. “왜 봐? 내 얘긴데.”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세상의 관심에 무관심한 신유빈은 천생 선수다. 탁구 이야기를 할 때면 유독 말이 많아지고 빨라진다. 1년 전 경기도 찍어낸 듯 또렷이 복기해낸다. 동영상으로 본 중국 에이스들의 폼을 금세 따라한다. 중국 여자탁구 신흥병기 첸멍의 백드라이브, 돌아서는 움직임에 마음을 빼앗겼다. 최근엔 장지커의 ‘역회전’ 서브를 배우고 싶다고 아빠를 졸랐다. 탁구부 친구들의 폼을 복사기처럼 흉내 낼 때면 탁구장은 웃음바다가 된다. 1m41의 키가 쑥쑥 자라나서, 펜스를 껑충 뛰어넘어 신나게 로빙샷 한번 띄워보는 것이 꿈이다.
  오직 탁구만 생각할 뿐, 그 외의 삶은 대단히 심플하다. “난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왜 그럴까.” 가장 깊이 고민하는 때는 식사시간, ‘뭘 먹을까’다. “산낙지, 닭발, 돼지껍데기 뭐든지 잘 먹는다”고 했다. 요즘은 ‘복어’에 꽂혔다. “복어국에 들어가는 곤이(내장)도 맛있고, 알, 열빙어, 문어, 전복…” 깜찍한 탁구소녀의 ‘반전 입맛’에 그만 웃음이 터졌다.
  해맑은 아이의 얼굴에 승부사의 강심장을 지닌 신유빈의 진짜 반전은 이제 시작이다. 세계무대에서 유빈이의 ‘폭탄’이 펑펑 터지는 그날을 꿈꾼다.

글_전영지(스포츠조선 스포츠팀) | 사진_안성호

(월간탁구 2014년 4월호)
 

▲ 군포화산초등학교 탁구부 동료들과 함께.

▲ 롤모델 윤지혜 선생님과 함께 선 유빈이.

저작권자 © 더 핑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