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세계탁구선수권대회 16강 박성혜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가 모두 끝났습니다. 대표팀 선수들로서는 또 하나의 고비를 넘어간 셈이 될 겁니다. 안방에서 열린 대회라는 점에서 더 많은 관심이 집중됐기에 더욱 그랬죠.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선수단 모두 차분히 돌아보고 다시 앞을 향해 전진하기를 바랍니다. 사실 본지도 마찬가지로 정신없는 한 달을 보내고 다시 출발점에 서있는 기분이네요. 그런 의미에서 이제 아시아선수권을 접고 분위기를 일신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거기 꼭 어울리는 포스팅! 파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화제의 중심에 있었지만 이번 대회는 관중석에 앉아있어야 했었던 박성혜 선수를 아시죠? 사실 경기에 뛰지 않았던 모든 선수들에게도 새로운 출발의 시점은 다르지 않을 겁니다. 박성혜도 그럴 거고요. 7월호 피플&핑퐁의 주인공입니다.



핑퐁 신데렐라
  동화 속 ‘신데렐라’의 메시지는 ‘인생역전’이 아니다. 자신을 도와줄 요정을 만나고 유리구두의 주인을 찾아온 왕자를 만나게 되기까지 고난과 핍박을 이겨내며 성실한 삶을 살았던 ‘노력’이 마침내 신데렐라에게 ‘행복’을 선물했다. 언뜻 연약한 어감으로 들리는 ‘신데렐라’라는 이름 속에는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지 않는 의지와 자신감이 교훈처럼 스며있다.
  지난 파리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박성혜는 ‘핑퐁 신데렐라’라는 별명을 얻었다. 여자단식 128강전에서 당시 세계 12위였던 일본의 후쿠하라 아이를 꺾은 직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심지어는 스스로도 이길 거라고 생각지 못했던 시합에서 랭킹 166위에 불과했던 박성혜가 거둔 승리는 그만큼 놀라운 일이었다.
  ‘신데렐라’라는 닉네임이 회자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소속팀이 최강 대한항공이라는 데 이유가 있었다. 박성혜는 김경아 당예서 석하정 양하은 등등 화려한 진용에 가려 주전보다는 훈련파트너에 가까운 시간들을 더 많이 보냈다. 2006년 입단 이후 2008년 실업연맹전에서 우승도 했었지만 어디까지나 팀 운영은 이름값에 치중됐다. 국가대표는 고사하고 선발전 출전조차 쉽지 않았다. 학창시절 유망주로 거론되던 그녀로서는 견디기 쉽지 않은 날들이었다. 김경아와 당예서가 대표팀에서 물러나고 세대교체 흐름 속에서 열린 파리 세탁 대표선발전은 어느새 스물일곱이 된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기회나 다름없었다.
  “사실 선발전 나갈 때는 속으로 갈등도 많았어요. 이겨내지 못할 것 같은데 이제 와 열심히 해서 뭐하나 그런 기분? 그런데 한 번은 세계대회에서 뛰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욕심이 아니라 정말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해보자는 결심이었죠. 갈등을 버리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어요. 결국 선발됐을 때는 이미 꿈을 하나 이룬 셈이었죠.”
  그리고 파리였다. 세계대회 출전 꿈을 이룬 박성혜는 태릉에서 즐겁게 훈련했다. 몸은 힘들었을지언정 갈등이 사라진 마음은 가벼웠다. 다시 한 번 비워진 마음이 그녀를 춤추게 했던 걸까. 요정의 인도로 무도회장에 들어선 것처럼 그녀는 파리의 현장을 열심히 누볐다. 후쿠하라를 이겼고, 릴리장을 눌렀으며, 홈그라운드의 시안위팡도 그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세계 16강! 인고의 시간을 넘어 또 다른 의지로 충만했던 과정들은 박성혜에게 ‘신데렐라’라는 기분 좋은 이름을 선사했다.

▲ 후쿠하라 아이와의 승부가 시작되기 전.
▲ 예상 밖 승리를 거둔 첫 경기 직후, 김무교 코치와 함께 환한 웃음을 터뜨렸던 박성혜.

아버지와 딸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이었죠. 실은 지더라도 게임내용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결과가 좋았으니까요. 정 전무님, 안 기자님, 이길 수 있다고 용기를 주셨던 분들도 생각났어요. 나중에 들으니 아이짱하고 시합이 끝났을 때 엄마가 우셨다고 하더라고요. 엄마도 엄마지만 아빠의 꿈을 조금이나마 이뤄드릴 수 있었던 게 정말 좋았어요.”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녀는 탁구인 2세다. 제주도의 탁구행정을 오랫동안 이끌어온 박흥만 씨가 바로 그녀의 부친이다. 대학 때까지 선수로 활동했던 아버지는 딸에게 라켓을 쥐어주면서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다고 한다. 아버지로부터 대물림된 꿈을 이루기까지 걸린 시간이 27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니까 좀 더 정확히는 19년.
  또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녀는 제주 신촌초등학교 시절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던 천재형 선수였다.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탁구 피’를 바탕으로 그녀는 또래 중에 적수를 찾을 수 없었다. 바로 그 시절 호프스대표로 출전했던 동아시아 호프스 탁구대회에서 박성혜는 이미 후쿠하라 아이를 이겼었다. 6학년 때는 제주도에서 열린 전국체전에서 어린 나이에 성화를 점화하는 영광까지 누렸다. 아빠와 딸이 함께 꾸던 ‘탁구 꿈’은 거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부녀에게 일찍 시련이 찾아왔다. 조천중, 제주관광산업고를 거치는 동안 박성혜의 성장은 기대보다 더뎠다. 천재가 범재로 전락하는 것 같은 두려움과 상처는 그렇지 못한 이보다 크고 깊다. 팔꿈치의 통증이 자주 앞을 막았고, 떨어진 의욕은 러버를 바꾸고 연습방법을 바꿔 봐도 회복되지 않았다. 진로가 결정되는 고3 진학 전에 아버지는 딸에게 4강에라도 들어서 시/군청 팀을 모색하면 좋겠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이루지 못한 꿈을 딸에게서도 접는 아버지의 쓸쓸함이 느껴져서 딸은 눈물을 흘렸었다.
  “그러고 나서 고3 첫 대회에서 3관왕을 했죠. 그때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요. 아마 지금까지 중에서는 제일 기뻤던 순간이었을 거예요.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결과가 나온다는 것도 그때쯤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아요. 이번에 아빠요? 그저 잘했다고만…! (웃음)”
  결국 박성혜는 학창시절의 끝에 일으킨 반전을 기반으로 국내 최강팀에 입성했다. 그것은 흔들렸던 부녀의 희망이 복구됐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실업에서의 생활은 또 다른 인내의 시작이었지만 그래도 최강팀에서 버텼으므로 기회를 만날 수 있었다. 학창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다시 한 번 마지막을 떠올릴 무렵 반전을 일으켰다. 아버지로부터 대물림된 꿈을 이루기까지 27년. 실업팀 입단으로 다시 마음을 다잡은 뒤부터 8년.

▲ 세계 최강자 딩닝과도 당당히 맞섰다.

파리의 선물
  그러나 파리에서 이뤄낸 꿈이 정말 ‘꿈’ 같았기 때문일까. 국내로 돌아온 박성혜는 높아진 기대만큼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실업 챔피언전에서는 후배 심새롬과 복식 2연패를 일궜지만 8강에서 멈춘 단식이 성에 차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뒤이어 치러진 부산 아시아선수권 대표선발전에서 태극마크를 다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기자와의 인터뷰는 그 같은 부진 와중에 이뤄졌는데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까 고민 될 정도였다. 그런데 그녀가 달라져 있었다. 파리 이전의 박성혜였다면 말을 건네기도 힘든 표정으로 앉아있었겠지만 어딘지 달관한 표정으로 그녀가 먼저 밝게 대화를 이어갔다.
  “3년쯤 전부터는 매일 매일이 고비였어요. 팀 환경에 적응 못하고 저녁마다 그만둬야 할지 말지를 고민했었죠. 세계대회는 그래서 더 ‘선물’ 같은 일이었어요. 팀에서의 상실감 같은 문제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 비운 상태지만 이제는 좀 더 현실적인 원인으로 고민을 하게 되네요. 나이도 있고…. 집중하지 못했으니 시합에서 이기지 못하는 건 당연한 거죠.”
  마음의 굴곡을 넘어 작지 않은 꿈을 달성한 박성혜에게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치러진 또 다른 대표선발전은 어떤 선수에게보다도 가혹한 측면이 있었다. 분명한 건 그녀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집중력을 유지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개의치 않는 듯 보였고 나름의 미래를 준비하는 듯 보였다. 자신을 괴롭혔던 이복언니를 궁에서 함께 살게 해준 신데렐라의 아량처럼 여유로웠다. 하기는 탁구에 인생 전부를 걸라고 강요하기에 그녀의 나이가 적지 않은 것은 맞다. 기자가 물었다. 그렇다면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가? 털어놓은 고민을 감안할 때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끝까지 열심히 했던 선수!”
  끝까지! 그녀의 대답이 정답이다. 실업선수라고 해서 하고 싶다고 하고 하기 싫다고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팀이 필요로 하는 상황이면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선수의 의무다. 그러나 이 평범한 사실을 선수들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잊고 산다. 박성혜는 열심히 훈련하고 열심히 뛰면서 틈틈이 선수 이후의 근무를 대비한 공부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진다면 또 최선을 다해 뛰게 될 것이다. 파리에서처럼 말이다. 16강에 오른 세계대회는 그렇게 기쁨을 넘어 여유까지 선물했다.

▲ 파리의 현장을 마음껏 누볐다. 16강에 올랐다.
▲ 공격형 선수들의 활약이 아직 부족한 여자탁구, 박성혜의 자극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그녀는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이 확인된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세계대회 16강전에서 딩닝과도 당당히 맞섰던 것처럼 어떤 선수를 만나도 제 플레이를 할 줄 아는 선수다. 실력과 미모를 겸비한 선수의 등장으로 일반 팬들의 관심도도 매우 높아졌다. 다시 쉬어가지만, 재를 뒤집어써도 참고 견뎌냈던 신데렐라의 의지가 지금 필요한 건지 모른다. 알고 보면 신데렐라는 스스로를 사랑했다. 동화 ‘신데렐라’의 결말은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탁구선수 박성혜에게 행복의 필요조건은 무엇일까?
  부산에서 치러지는 아시아선수권대회를 그녀는 플로어가 아닌 관중석에서 지켜보게 될 것이다. 어쩌면 오랜 꿈을 달성한 아버지와 어머니 고병숙 씨가 함께 앉아서 박수를 칠지도 모르겠다. 숨 막히는 랠리들이 반복될 부산 사직체육관은 계절보다 뜨거울 것이다. 그리고 그녀, 박성혜가 구상할 결말의 얼기 역시 그 치열한 현장에서 세워지게 될 것이다. 한국 여자탁구는 여전히 그녀를 필요로 한다. 내년엔 인천에서 아시안게임도 열린다. ‘핑퐁 신데렐라’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박성혜의 땀방울.

글_한인수 | 사진_안성호

(월간탁구 2013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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