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지의 인물탐구

오상은은 명실상부한 ‘현역 레전드’다. 전국종합선수권 최다우승(6회) 기록 보유자다. 1990년대부터 2014년까지 세계탁구의 중심을 관통했고, 지난 27년간 대한민국 대표팀의 톱랭커로 활약했다. 네 번의 올림픽, 일곱 번의 세계선수권, 정상 문턱에서 번번이 울었지만 스스로 ‘최고의 조연’이라 불러달라는 쿨한 사나이, 세대교체 흐름 속에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는 ‘옹고집’ 레전드, 오상은을 위한 오마주다.

  ‘빙상영웅’ 이규혁은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최고의 스타였다. 한때 세계신기록을 보유했던 사나이, 6회 연속 올림픽에 참가했지만, 메달과는 인연이 없었던 비운의 사나이는 마지막 올림픽에서 ‘전설’이 됐다. 서른여섯의 나이, 이 악문 생애 마지막 500m 레이스에 온 국민이 눈물을 쏟았다.
  세계 탁구계에도 올림픽 때마다 화제가 되는 ‘노장 삼총사’가 있다. 세계선수권 남자단체전 3연패를 달성한 요르겐 페르손(48·스웨덴), 조란 프리모라츠(45·크로아티아)와 장 미셸 세이브(45·벨기에), 세 선수 모두 1988년부터 ‘7회 연속 올림픽’에 참가했다. 세월을 비껴난 투혼,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노장의 승부에는 특별한 감동과 짜릿한 반전이 있다.
  ‘이웃집 이야기’에만 열광할 일은 아니다. 한국 탁구에는 오상은이 있다. 1977년생, 오상은은 명실상부한 ‘현역 레전드’다. 전국종합선수권 최다우승(6회) 기록 보유자다. 1990년대부터 2014년까지 세계탁구의 중심을 관통했고, 지난 27년간 대한민국 대표팀의 톱랭커로 활약했다. 네 번의 올림픽, 일곱 번의 세계선수권, 정상 문턱에서 번번이 울었지만 스스로 ‘최고의 조연’이라 불러달라는 쿨한 사나이, 세대교체 흐름 속에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는 ‘옹고집’ 레전드, 오상은을 위한 오마주다.

▲ 파릇파릇(?)하던 시절 국가대표 오상은. 현 소속팀인 대우증권 감독 김택수와 함께 복식 파트너로 뛰었다. 사진은 2003년 코리아오픈 때의 모습.

‘한국형 셰이크핸더’의 아버지
  오상은은 한국형 셰이크핸드의 창시자다. 유남규 김택수 유승민 등 펜 홀더 에이스가 장악했던 1990년대 한국탁구에서 ‘셰이크핸드’로는 최초로 세계 정상권에 도달한 선수다. 셰이크핸드 기술을 이끌어줄 선배도 코치도 없었던 시절이다. 중국을 따라하는 탁구가 아닌 자신만의 원천기술로 녹색 테이블을 지배했다.
  ‘나 홀로’ 유럽선수들의 동영상을 보면서 연구하고 연습했다. “심인고등학교 때 백드라이브를 거는 선배가 있었다. 멋있다는 생각에 혼자 연구했다. 크리앙가의 백드라이브 동영상을 찾아보면서, 맞는지 틀리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연습했다. 연습하다 내 기술을 찾았다.” 19세 되던 1996년 싱가포르아시아선수권 단체전 결승에서 공링후이(중국)를 돌려세운 백핸드 드라이브, 네트 위에서 짧게 돌려치며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는 ‘교과서 플립’은 그렇게 탄생했다. “나는 손 감각이 좋지만, 운동신경은 뛰어난 편이 아니다. 그러나 무엇이든 시작하면 진득하게 하는 스타일이다.”

▲ 2005년은 최고 전성기였다. 상하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단식 4강을 달성했다.

게으른 탁구? 상남자의 탁구
  오상은에게는 오랫동안 따라붙은 오해가 있다. ‘파이팅이 부족하다’ ‘건성건성 친다’는 식이다. ‘초레이 하!’ 류의 환호성은 오상은에게 낯설다. 상대를 자극하는 오버액션도 없다. “실업 초년생이던 삼성시절부터 받던 오해다. 그런데 내 경기 스타일하고 잘 안 맞는다.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건 알지만 타이밍도 그렇고 스타일도 그렇고 영 안 맞는다”며 웃었다.
  오상은 탁구는 ‘철벽 탁구’다. 무심한 듯 시크한 표정으로 테이블에 딱 붙어선 채 ‘난공불락’의 백드라이브로 상대의 공격을 척척 받아치면 그뿐이다. 빠른 발로 승부하는 펜 홀더 플레이에 비해선 분명히 정적이다. 그러나 1m88의 셰이크핸더 오상은에게 최적화된 플레이다. ‘큰 키에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붙어치는 탁구’, ‘속전속결’ 상남자의 탁구다. 펜 홀더 선수들에 비해 발은 느리지만 손은 누구보다 빠르다. 느린 다리 대신 예민한 손끝과 긴 팔다리로 승부를 건다. 네트 위에서 날선 플립으로 기선을 제압한다. 필살기인 백드라이브로 3구, 7구 이내 ‘쇼트플레이’로 상대의 숨통을 끊어놓는다. 질질 끌거나 맥없이 늘어지는 승부는 딱 질색이다. 파이팅 논란에 굳이 변명하지도 않는다. “선수는 자기 고집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대선수가 되려면 못 된 면이 있어야 한다. 후배들에게도 가끔 말한다. 귀는 열어두되 고집 있게 가라. 자기 고집대로 밀고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 세계 4강 시상 이후!

since 1987, 기록으로 살펴본 27년
  오상은의 공식기록은 1987년 7월 대명초등학교 시절 전국남녀종별탁구 단식 3위로 출발한다. 심인고 1학년 때인 1992년 이후 20년 넘게 태극마크를 달았다. 2004년부터 10년간 대표팀 주장으로 맹활약했다. 유남규 현정화 김택수 이철승 등 90년대 레전드들과 함께 했고, 지금은 김민석 정영식 서현덕 이상수 20대 후배들과 함께 뛰고 있다. 90년대 탁구와 2천년대 탁구를 몸으로 아는 유일한 선수다.
  2005년은 최고 전성기였다. 국제탁구연맹(ITTF) 오픈대회 단식 3관왕, 복식 4관왕 등 7관왕에 올랐다. 상하이 세계선수권 단식 동메달도 따냈다. 한국선수로는 역대 세 번째로 4강에 올랐다. 런던올림픽 은메달과 함께 오상은이 ‘최고의 매치’로 꼽는 경기다. 2006년 브레멘세계대회 단체전 은메달도 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파죽의 7연승으로 결승행을 이끌었다. 2006년 홍콩 그랜드파이널스 단식 준우승은 역대 한국선수 최고 성적이다. 1996년 이후 ITTF 오픈대회에서 단식우승 8회, 복식우승 10회의 위업을 이룬 ‘기록의 사나이’다.
  그러나 오상은에겐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선 유독 금메달 운이 따르지 않았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시작으로 4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단체전 동메달, 2012년 런던올림픽 단체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선 이철승(현 삼성생명 감독)과 남자복식, 김무교(현 대한항공 코치)와 혼합복식 결승에 올랐지만 끝내 만리장성을 넘지 못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남자복식에서도 파트너 김택수(현 대우증권 감독)와 함께 결승에 올랐다. 유승민-이철승 조에 풀게임 접전 끝에 무릎을 꿇었다.

▲ 2012년 런던올림픽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따냈을 때의 모습이다.

‘가장 오래, 가장 잘 치는 탁구선수’로
  오상은은 탁구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선수다. “27년간 단 한 번도 탁구가 지겨웠던 적이 없다”고 했다.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어깨 수술을 했다. 20년 혹사한 어깨근육은 너덜너덜, 해져 있었다. 근육을 잇댄 수술 이후 지금도 오른팔을 완전히 들어올리지 못한다. 어깨가 헛도는 느낌이 들 때마다 습관처럼 바벨을 든다. 피 말리는 승부세계에서 가슴앓이도 수없이 했지만,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다. 천직이다. “탁구를 그만둔다고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작년에 최현진 코치(대우증권) 은퇴식을 보는데 내가 울컥하더라”고 했다. “운동을 그만두면 정말 서운할 것 같다. 못 그만두겠다. 빌빌대지 않을 자신 있다. 팀 에이스 몫은 충분히 할 수 있다”며 웃었다. “원 없이 해보고, 못하게 될 때 관두고 싶다. 선수로 사는 것이 행복하다. 몸으로 부딪치는 것이 좋다. 나중에도 ‘선수와 함께 뛰는’ 코치가 되고 싶다”고도 했다.
  ‘패밀리맨’ 오상은에겐 가슴속에 간직한 꿈도 있다. 홍파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 준성이가 탁구를 시작했다. 제법 소질을 보인다. 종별대회에 부자가 함께 출전하는 흐뭇한 풍경을 떠올린다.
 

▲ 그냥 ‘최고의 조연’이라 불러주세요!

그냥 ‘최고의 조연’이라 불러달라  
  올림픽 금메달을 꿈꾸지 않는 선수는 없다. 27년간 대한민국 톱랭커로 살면서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한 건 ‘톱랭커’ 오상은에게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다. “누구나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나 역시 27년간 노력했고, 감독님들도 기대하셨다. 스스로 이것밖에 안되나 하는 실망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1993년 현정화 감독님이 예테보리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할 때 연습 파트너였다. 김택수 감독님이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고, (유)승민이가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을 딸 때도 함께 했다. 내 스스로 금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나와 함께한 이들이 금메달을 땄다. 그것을 위안 삼았다. 생각을 바꿨다.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20년간 마음 아플 때도 많았다. 세상은 1등만을 기억한다. 그냥 ‘최고의 조연’이라고 써 달라. 태릉선수촌 벽에 걸린 금메달 사진 뒷면에 내 얼굴이 있다”며 웃었다.
  오상은은 지난 27년간 한국 탁구의 최전선에서 모진 풍파를 온몸으로 견뎌온 ‘언성히어로(Unsung Hero)’다. ‘메이저 1등’은 아니지만, 만리장성과의 치열한 전투에서 늘 ‘바람막이’ 역할을 해왔다. 런던올림픽 은메달, 세계선수권 개인전 4강 등 한국탁구의 위기 때마다 유일한 메달로 ‘탁구강국’의 자존심을 지켜왔다.
 

▲ 오상은은 종합선수권 역대 최다 우승기록 보유자다.

  비시즌 폴란드리그에서 활약하는 오상은의 플레이는 유럽 무대에서도 인기 높다. 인터뷰 중 ‘안현수 귀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오상은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나도 최근에 귀화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 유럽리그에서 한 선수가 밖으로 불러내더니 진지하게 귀화할 생각이 없느냐고 묻더라. 자기나라에 오면 다음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면서.” ‘솔깃하더냐’는 질문에 오상은은 대번 정색했다. “에이~ 절대 아니죠.”
  그리고 작심한 듯 말했다. “우리 대표팀에서 원한다면 나는 언제든 후배들의 훈련 파트너로도 뛸 준비가 돼 있다. 아시안게임, 올림픽 실전에 내보내주지 않아도 괜찮다.” ‘백전노장 레전드’는 대한민국 탁구의 ‘최고 조연’을 자청했다.

글 전영지(스포츠조선 기자) | 사진 안성호

(월간탁구 2014년 3월호)

▲ 여전히 우승한다. 팀 후배 윤재영과 함께 지난해 실업챔피언전 복식을 석권한 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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