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하나 되는 국가대표 탁구커플

조언래-이은희 탁구계 공인 커플이 마침내 결혼한다. 인생 최고 중대사를 앞두고 설레는 날들을 보내고 있는 이 예비부부를 만나 그간의 사랑이야기를 들었다. 남녀 국가대표 선수 사이의 연애로 공공연한 화제를 모았던 두 사람은 생각보다 오래된, 그래서 지고지순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었다. 1986년생인 두 사람은 생년은 같지만 1월생인 이은희가 학교를 먼저 다닌 선배다.
 

▲ 결국 둘이 결혼한다. 이은희와 조언래.

풋사랑의 기억
  “누나, 학교 어디예요?”
  2003년이었다. 당시 아시아 청소년대회 대표로 선발됐던 은희는 출국 비행기 안에서 처음으로 말을 걸어준 언래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때까지 대표 경험이 많지 않았던 은희는 동료들, 특히 남자선수들과의 관계가 서먹할 수밖에 없었는데 먼저 다가와준 언래로 인해 조금은 더 편안해진 느낌으로 생소한 국제대회를 치러낼 수 있었다. 유머러스하면서도 어딘지 배려심이 깊어보였던 남자, 그게 은희가 갖고 있던 언래의 첫 인상이었다.
  언래도 실은 처음부터 은희가 끌렸다. “같이 가는데 알고는 있어야지” 뭐 그런 뜻이었다지만 본능적인 관심 표명이었던 셈이다. 밝고 활달하면서도 함부로 대하지 않던 1년 선배 은희는 귀국한 뒤에도 계속 언래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제야 고백하는 거지만 언래는 그때 몇 번인가 은희의 학교가 있는 대구를 찾아갔었다. 서로 호감을 갖고 있던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교제를 시작했었단다. 한밤의 통화에서 은희가 들려주던 시, 노래…. 생각하면 오글거리는 10년 전 얘기다. 풋사랑의 기억!
  “고 3때였으니까 인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시기였죠. 단양 입단이 결정되면서 각오를 단단히 해야 했어요. 휴대폰도 끊고 주변을 정리한 것도 운동에 집중하겠다는 결심 때문이었죠. 체육관도 외진 곳에 있어서 계속 만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어요. 좋은 감정은 남아있었지만 그냥 지나간 일이 되고 말았죠.”
  지나갔다고 해서 모든 일이 잊히는 건 아니다. 언래도 은희도 ‘지나간’ 풋사랑이 결국 열매 맺게 되리란 걸 그때는 상상 못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모든 것의 시작은 그때 그 시절의 설렘으로부터였다. 그러고 보니 첫 만남의 계기가 됐던 아시아 청소년대회도 이맘때 아니었을까? 정확히 10년 전, 뜻밖으로 오랜 사연을 간직한 이 연인들은 그때 그 풋풋함을 되짚어 올 가을 마침내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 ‘연인’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 사랑이 가득하다.

 따로 또 같이
  은희는 한국 여자탁구에서 특별한 위상을 갖고 있는 선수다. 청소년기 두드러지는 주목은 받지 못했으나 단양군청 입단 이후 기량을 꽃피웠다. 어린 시절 겉으로 드러내는 성적보다 재질과 가능성을 어떻게 이끌어줄 것인가의 문제를 한동안 탁구계의 화두로 삼게 만들었던 주인공이다. 시․군청팀들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 위에서도 나름의 비중을 확립해갈 수 있었던 데는 입단 첫해부터 돌풍을 일으키며 실업무대를 제패하고 국가대표로도 수많은 국제대회에서 맹활약한 이은희(단양군청)라는 선수의 영향이 작지 않았다.
  언래의 실업 초반은 순탄치 않았다. 항상 ‘차세대 대표주자’로 꼽히던 유망주였지만 실업 진출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고 국가대표로도 변변한 출전기회를 잡지 못했다. 소속팀 이적 문제로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미완의 대기’로 그치고 말 것 같던 언래가 '이를테면' 재기에 성공한 것은 상무에 입대한 뒤부터다. 시련을 통해 마음자세를 가다듬은 언래는 자꾸 불어가던 체중을 줄여가며 새 출발했고, 곧 많은 기대를 받던 ‘그 선수’로 존재감을 되살렸다. 대표팀 맏형으로 한국 선수 중 단식 가장 높은 단계까지 꾸준히 진출하는 선수! 조언래(S-OIL)의 현재다.
  청소년기가 끝나가던 무렵 자신들만의 추억을 간직했던 두 사람은 실업에 오면서 서로 다른 시절을 보냈다. 성취를 해내면 축하의 메시지를, 힘들 때는 위로의 메시지를 주고받았지만 예전 같은 관계는 아니었다. 길의 굴곡이 달랐고, 사람 사이의 연도 달랐다. 하지만 ‘운명의 힘’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어쩌면 두 사람은 둘만의 아련한 추억의 힘으로 같은 곳을 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각자의 생활에 매진하면서도 두 사람은 항상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였다. 둘은 그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둘은 참지 못했다.
  “제가 한참 힘들 때였어요. 가끔 전화를 걸었는데 잘 받아주더라고요. 어디 너 같은 남자 없냐고 농담까지 해가면서요. 단양에 놀러가겠다고 했고 정말 갔어요. 가서는 다시 사귀자고 했고 정말 사귀게 됐죠. 그게 벌써 4년 전이네요. (웃음)”
 

▲ 두 사람은 국가대표선수로서의 책임과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사랑의 위기’도 극복해냈다.

태릉선수촌 트랙을 걸으며
  한참을 돌아왔지만 두 사람은 그렇게 다시 만났다. 여전히 각자 선수생활에 바빴고, 서울과 단양의 숙소도 멀었으므로 만나기가 쉽지 않았지만 언제부턴가 두 사람은 당연한 운명처럼 마주보고 있었다. 그리고 둘이 가장 오래 서로를 바라볼 수 있었던 공간은 다름 아닌 태릉선수촌. 데이트 아닌 훈련이었지만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그게 목표의 전부는 아니었을지라도 두 사람은 태극마크를 달아야 하는 자신들만의 이유를 갖고 있었던 셈이다. 훈련이 끝나는 저녁마다 두 사람은 자주 선수촌의 트랙을 걸었다.
  “다시 만나는 순간부터 결혼을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특별한 약속이 있었던 건 아닌데 늘 같이 있는 미래를 얘기했죠. 태릉의 트랙에서는 서로의 운동에 관한 대화를 많이 나눴지만 언젠가부터 애는 언제 낳을까? 집은 어떻게 꾸밀까? 흐흐 고도의 세뇌작전이었죠.”
  남녀 대표선수 사이의 연애는 사실 탁구계에서는 공공연한 화제였다. 특히 은희의 소속팀 단양군청 박창익 감독은 둘 사이를 적극(?) 반대했었다. 전성기를 열어갈 시기에 운동이 아닌 곳에 쏟는 에너지를 아까워했던 거다. 단양군청에서 차지하는 이은희의 비중을 감안할 때 무리도 아니었지만 둘 사이엔 심각한 위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창 뜨거운 남녀사이가 반대한다고 막아질 리 만무. 게다가 이 오랜 연인들은 뜻하지 않았던 고비를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슬기롭게 극복해냈다. 각자 소속팀에서, 또 대표선수로 역할에 충실하면서 주변에 믿음을 심었다(박창익 감독도 지금은 누구보다 축하를 해준다는 것이 두 사람의 전언이다). 하긴, 오래 전 풋사랑과는 이미 다른 청춘이었다.
 

▲ 아마 이때쯤 이미 두 사람의 결혼을 짐작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정현숙 총감독과 조언래!

  눈썰미 좋은 독자라면 지난 세계탁구선수권 때 대탁 부회장 겸 전무를 맡고 있기도 한 정현숙 단양군청 총감독이 파리 현지에서 조언래를 격려하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마치 사위처럼 겸연쩍은 모습으로 허리 숙이는 언래를 마치 장모님처럼 환한 웃음으로 토닥여주던 정 감독의 모습에서 많은 탁구인들은 ‘언래와 은희’의 결혼이 임박했음을 짐작했다. 파리에서 언래는 대표팀 주장으로 멋진 플레이를 펼쳤고, 미처 같이 출전 못한 은희는 한국에서 연인의 활약을 응원했다. 이쯤에서 정현숙 감독의 당부를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결혼 후에도 두 사람은 운동을 계속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왕이면 부부선수로서 서로 격려해가면서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예전과 달리 능력과 의지만 있으면 결혼이 문제가 되지 않는 시대다. 두 사람이 탁구에서 그런 전례를 만들어주길 기대한다. 오랜 사랑의 결실이니만큼 탁구인들도 늘 따뜻한 응원을 보내주면 좋겠다.”
 

▲ 태릉선수촌 트랙을 걸으며!

두 사람 결혼을 축하합니다
  올해 대통령기대회가 열렸던 지난 달 여수 진남체육관에서 언래와 은희는 두 손을 꼭 잡고 지인들을 초대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두 사람이 전한 것은 하얀 리본으로 곱게 단장된 결혼 청첩장. 짐작하고 있던 탁구인들은 흐뭇한 미소와 함께 축하의 악수를 건넸고, 조금은 쑥스럽지만 그 앞에서 진심어린 다짐을 하는 것으로 두 사람은 결혼인사를 미리 전했다. 탁구커플답게 체육관 플로어에서 들려오는 끊임없는 랠리소리가 두 사람의 배경이 되어주고 있었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되는 만큼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좋은 후배들이 많은데 선의의 경쟁으로 아시안게임에도 올림픽에도 도전할 각오입니다. 몸 관리 잘해서 오래 운동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계속 지켜봐주십시오.”
  “결혼해도 팀에서의 제 역할이 끝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후배들이 궤도에 올라설 때까지 저도 최선을 다해 뛸 생각이에요. 선수로서의 목표도 잊지 않겠습니다. 실망시키지 않도록 서로 보듬으면서 잘 살겠습니다.”
  서방! 그리고 부인! 은희와 언래는 서로를 그렇게 부른단다. 생각보다 오래 된, 그래서 지고지순한 두 사람의 사랑은 장난기는 섞였지만 참 고전틱(?)한 호칭에서도 묻어나는 느낌이다. 게다가 이 국가대표 커플은 영악하기까지 하다. 둘만의 신방을 단양도 인천도 아닌 처가가 있는 대구에 차렸단다. 아이를 낳으면 친정에 부탁하기 위해서라고. 아무려나 결혼 이후에도 각자 숙소에 머물며 주말부부로 지내게 될 이들의 사랑은 더 애틋해질 모양이다.
 

▲ 탁구커플답게 ‘핑퐁핑퐁’ 잘 살겠습니다!

  2013년 9월 29일. 한국 여자탁구에 의미 있는 획을 그은 이은희가 ‘가을의 신부’가 되는 날이다. 한국 남자탁구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은 조언래가 말쑥한 턱시도 차림을 하고 옆에 서있을 것이다. 이 날, 탁구인들의 축복 속에 오르게 될 신혼여행 비행기 안에서 언래가 한 마디 툭 던져보는 건 어떨까? 누나, 학교 어디예요! 시간은 지나가지만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추억은 가끔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어준다. 그리고 두 사람의 앞날에 늘 행복만 가득하길 월간탁구도 함께 기원한다. 축하한다. 언래야! 은희야!!

글_한인수 | 사진_안성호

(월간탁구 2013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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