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전 승부의 흐름을 책임진다!"

  지난 도쿄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우리나라 여자대표팀은 네덜란드와의 첫 경기부터 무척 힘든 경기를 펼쳐야 했다. 결과적으로는 4, 5단식에서 양하은과 서효원이 차례로 승리를 거두며 극적인 3대2 역전승을 이끌어내긴 했지만, 경기 내용을 들여다보면 극적이라기보다는 아쉬움이 훨씬 큰 경기였다. 서효원의 패배와 양하은의 승리로 1대1 동률을 이룬 상황에서 3단식에 출전한 석하정이 네덜란드의 신예 브릿 에런드에 예상치 못한 패배를 당한 것이 경기를 힘들게 끌고 간 주 요인이었다. 당시 석하정은 세계15위에 올라있던 선수였고 브릿 에런드는 세계100위권의 선수였다.
 

▲ 한국 3단식 주자로 출전이 유력한 전지희. 사진 월간탁구DB(ⓒ안성호).

  세계랭킹이 높은 선수를 한 경기에만 출전하는 3단식에 출전시킬 때는 확실한 1점으로서의 의미가 크다. 2010년 모스크바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남자대표팀이 독일을 상대로 결승 진출을 다툴 때, 팀 내 세계랭킹이 가장 높았던 주세혁이 확실한 1점을 위해 3단식에 출전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3단식에서 이길 확률이 높으면 행여 1, 2단식에서 전패를 당해 위기에 몰리더라도 역전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우리나라 여자대표팀과 일본이 4강 진출을 다툰 도르트문트대회에서 1, 2단식에 출전한 김경아, 석하정이 연패하며 탈락 위기에 몰렸었지만 3단식 주자 당예서가 승리함으로써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 전례도 있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우리나라 여자대표팀은 중국, 싱가포르에 이어 3위를 차지했기 때문에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여자단체전 4강 시드를 받는다. 따라서 그룹별 예선에서 5, 6번 시드를 받은 일본이나 홍콩 둘 중 한 나라를 상대로 조1위를 다툴 가능성이 큰데, 두 팀 모두 승리를 낙관하기 힘든 강적들이다. 치열한 접전이 예상된다. 여기서 지난 도쿄세계대회를 기준으로 여자대표팀의 선수 운용을 예상해보면 서효원-양하은 투톱에 전지희가 3단식에 출전할 가능성이 크다. 단식 네 경기를 책임지는 서효원, 양하은이 2승 2패 정도를 기록한다고 봤을 때 전지희의 경기 결과에 따라 전체 승패가 갈릴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 출전 제한 규정에서 풀리자마자 태극마크를 달았다. 첫 출전의 긴장감을 털어내는 것이 과제. 사진 월간탁구DB(ⓒ안성호).

  여자대표팀은 인천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5명을 세계랭킹 자동선발, 선발전, 협회추천 세 가지 방식으로 선발했다. 세계랭킹 자동선발로는 국내 최고 세계랭커 서효원(KRA한국마사회)이 선발됐고, 선발전에서는 전지희(포스코에너지), 박영숙(KRA한국마사회), 양하은(대한항공)이 차례로 통과했다. 나머지 한 명은 협회추천으로 이은희(단양군청)가 선발됐다. 이번에 선발된 선수들 중에는 양하은만이 4년 전 광저우대회에 이어 올해 인천대회까지 2회 연속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선수다. 2006년 도하대회 멤버였던 이은희는 8년을 건너뛰어 두 번째 아시안게임에 출전한다. 전지희는 국제탁구연맹 중국 귀화선수 출전제한 기간 규정에서 풀려나자마자 자력으로 메이저 종합대회 출전 자격을 따냈다.
 

▲ 이은희와는 지난해 코리아오픈 복식에서 함께 준우승을 일궈냈었다. 사진 월간탁구DB(ⓒ안성호).

  “단체전은 처음 두 단식에서 1대 1이 되는 경우가 많다. 3단식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세 번째 선수만 확실하면 굉장히 유리하다. 상황에 따라 여러 변수가 생기겠지만 일단은 전지희를 3단식 주자로 점찍고 있다. 무엇보다도 전지희가 중국리그를 뛰면서 많이 상대했던 선수들과 만나므로 편하게 경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형석 여자대표팀 감독)
 

▲ 혼복 파트너 김민석과는 국내 종합대회에서 3회 연속 함께 뛰었다. 이번 대회에서 국제무대에서의 경쟁력도 시험하게 됐다. 사진 월간탁구DB(ⓒ안성호).

  이번 대표팀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역시 전지희의 선발이다. 우리나라 여자대표팀은 김경아-박미영-당예서의 은퇴 이후 서효원-양하은-석하정 세 선수가 주전으로 활약해 왔는데 이번 대회에서는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한 전지희가 석하정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전지희에게 거는 기대는 김형석 여자대표팀 감독의 인터뷰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가 1, 2단식을 모두 승리하면 전지희가 3단식에서 마무리하고, 행여 우리나라가 2패를 당하더라도 3단식 승리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1승 1패를 하면 1승을 더해 승부의 흐름을 우리 쪽으로 가져와야 하는 것이 3단식 주자에게 주어진 책임이다. 말 그대로 이번 대회에서 전지희에게는 대표팀의 승패를 마무리 짓거나, 흐름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는 키플레이어의 역할이 주어져있는 셈이다. 전지희의 각오도 들어보자.

  “메달 한 개 이상은 꼭 따내고 싶다. 단식에는 안 나가지만 단체전, 여자복식, 혼합복식 등 기회도 적지 않다. 동료들과 좋은 호흡을 유지한다면 반드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믿는다. 국가대표로는 처음이라 떨리고 긴장도 되지만 동료들이 도와주고 있어서 괜찮다. 우리는 한 팀이다. 서로 의지하면서 경기를 뛸 것이다. 후회하지 않을 수 있도록 경기마다 내 기량을 다 발휘하고 나오겠다.”
 

▲ 후회하지 않는 경기를 펼치겠다는 각오를 밝힌 전지희다. 사진 월간탁구DB(ⓒ안성호).

  전지희는 왼손 전형의 선수기 때문에 대표팀의 좌우구성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올림픽보다 메달 수가 많은 아시안게임에서 전지희는 이은희와 함께 개인복식, 김민석과 함께 혼합복식에도 나간다. 태극마크를 달고는 처음이지만 파트너와의 호흡이 중요한 개인복식에서는 ‘짝꿍’들과 같이 뛰어본 경험이 많다. 이은희와는 지난 2013년 코리아오픈에서 함께 준우승을 일궈냈었고, 김민석과는 국내대회이긴 하지만 가장 큰 종합선수권대회에서 3회 연속 함께 뛰며 준우승(2013), 4강(2012), 우승(2011) 등 뛸 때마다 함께 입상을 일궈낸 사이다. 지금까지 귀화선수로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던 선수는 광저우대회에 출전한 석하정이 유일했고, 최고 성적은 여자단체전 동메달이었다. 귀화선수로는 역대 두 번째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전지희가 석하정을 뛰어넘는 성적을 거둘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마침 전지희의 소속팀 포스코에너지의 연고지도 인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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