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전적으로 짚어보는 주세혁의 금메달 가능성

  중국이 출전하는 탁구 경기에서 ‘시드(seed)’는 그 본연의 의미보다 과연 중국과 몇 라운드에서 만나게 될 것인가, 또는 최종 성적에 대한 예상 근거로서의 의미가 더 큰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아시안게임처럼 중국 선수들이 두 명 출전하는 단식에서 4강 시드를 받으면 준결승 이전엔 중국 선수를 만나지 않게 되므로 최대 동메달 정도는 노려볼 수 있다는 뜻이다. 단체전으로 범위를 넓혀보면 2번 시드를 받을 경우(조 1위로 본선에 오른다는 가정 하에), 결승 이전에는 중국을 만나지 않기 때문에 최대 은메달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어떤 대회든 최고 목표는 금메달이다. 단지 지금까지 치러진 여러 국제대회 결과를 보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대부분 본선시드에 따라 메달 색깔이 갈렸다.

  국가 별로 단 두 명씩만 출전하는 인천아시안게임 탁구 개인단식 시드의 기준은 얼마 전 발표된 9월 ITTF 세계랭킹이다. 남자단식 1, 2번 시드는 세계 1, 2위인 쉬신과 판젠동 두 중국 선수가 주인이고, 4강 시드인 3, 4번은 일본의 미즈타니 준과 타이완의 츄앙츠위엔이 받는다. 우리나라에서는 17위에 오른 주세혁이 8강 시드에 턱걸이했고, 랭킹 순서상 아홉 번째에 해당되는 19위의 김민석은 아쉽게도 코앞에서 8강을 놓치고 16강 시드로 밀렸다. 이 말은 곧 주세혁은 8강, 김민석은 16강에서 중국 선수와 경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같다.
 

▲주세혁은 상대 선수들에게 중국 못지않은 부담을 주는 선수다. 사진 월간탁구DB(ⓒ안성호).

  아시아 탁구 강국들인 중국, 일본, 타이완, 홍콩, 싱가포르, 한국, 북한은 출전 선수 두 명 모두 16강 시드 안에 들었지만, 8강 시드로 좁혀보면 중국과 일본만이 출전 선수 두 명 다 이름을 올렸다. 우리나라의 김민석은 바로 위의 주세혁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7번 시드인 홍콩의 탕펭과도 포인트 차이가 크지 않다. 올해 초 국제대회에서 조금만 분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선수는 역시 중국의 쉬신과 판젠동이다. 세계랭킹은 말할 것도 없고, 최근 국제대회 성적은 두 선수를 제외하고 우승을 논하기가 힘들 정도다. 그런데 이 둘을 제외한 다른 나라 선수들 중 우승 가능성이 가장 큰 선수를 꼽는다면 단연 우리나라의 주세혁이다. 2012년 올림픽 이후 국제대회에 자주 출전치 않아 세계랭킹은 전성기에 비해 많이 떨어져있지만 선수들 간 역대전적을 보면 주세혁의 금메달 가능성은 결코 낮지 않다. 다른 나라 선수들에게 주세혁은 중국 선수들 못지않게 매우 부담이 큰 상대다.

  주세혁보다 높은 시드를 받는 탕펭(홍콩)은 지금까지 국제대회에서 주세혁과 다섯 번의 맞대결을 펼쳐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선수다. 홍콩의 2인자 장티안위 역시 지금까지 주세혁을 상대로 4전 전패를 기록했다. 타이완 선수들도 사정이 그리 여유롭지 않다. 4강 시드권자인 에이스 츄앙츠위엔은 지금까지 주세혁을 상대로 11전 3승 8패를 기록했다. 2인자 천치엔안 역시 주세혁을 상대로는 이긴 경우보다 패한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츄앙츠위엔 입장에서 보자면 지난 도쿄 세계선수권대회 남자단체 8강전에서 주세혁을 이기고 팀을 4강에 진출시킨 것이 대단한 이변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타이완은 그 이변으로 사상 첫 세계선수권 남자단체 4강 진출에 성공했었다.

 

▲ 어메이징! 판타스틱! 언빌리버블! 숱한 찬사들이 수원체육관에서도 울려퍼지길. 사진 월간탁구DB(ⓒ안성호).

  주세혁으로서는 오히려 16강에서 만나게 될 하위권 선수들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 16강 시드권자들 중 인도의 아찬타 샤라드 카말, 북한의 김남철 등은 지금까지 국제대회에서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선수들이다. 당일 컨디션에 따라서는 의외의 결과도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북한의 김혁봉 역시 경계 대상이다. 자국에서 수비전형 선수들을 자주 접하는 북한 선수들은 전형에 대한 적응도가 높다.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 개인단식에서 주세혁을 조기에 탈락하게 만든 선수도 바로 김혁봉이었다.

  아시안게임 개인단식 대진표는 전례대로 1, 2번 시드권자들을 양 쪽으로 배치한 다음 나머지 3, 4번 시드권자들부터 두 명씩 추첨을 통해 양쪽으로 나뉘는데 8번 시드에 위치하는 주세혁은 8강에서 최강자 쉬신과 만날 가능성이 매우 높은 편이다. 쉬신은 수비전형에 매우 큰 강점이 있는 펜 홀더일 뿐만 아니라 역대전적에서도 주세혁에게는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선수다. 물론 행운이 따른다면 조금은 더 편하게 경기할 수 있는 3번이나 4번 시드권자를 만날 수도 있고, 반대쪽 대진에서 판젠동의 경로를 예의주시하게 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어떤 상대를 만나더라도 최소 8강부터 ‘첩첩산중’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또 하나 분명한 것은 주세혁이 지금까지 크고 작은 여러 대회에서 중국의 주전급 선수를 이기고 입상해 본 경험이 있는 '몇 안 되는' 선수라는 것이다. 이번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 중에서 그만큼 큰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도 없다. 2003년 파리 세계선수권대회 개인단식에서 준우승을 차지할 당시 8강에서 마린을 이기고 4강에 올랐고, 이후에도 월드투어를 포함한 각종 국제대회에서 중국 선수를 이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의 화려한 플레이가 위력을 발휘할 경우 판제동 아니라 쉬신에게도 일방적으로 몰리지 않을 것이다.

 

▲ 주세혁은 세대교체의 확실한 징검다리를 놓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사진 월간탁구DB(ⓒ안성호).

  게다가 주세혁은 가장 최근까지도 중국슈퍼리그(CTTSL) 닝보에서 활약하며 중국 선수들의 플레이에 가장 익숙한 선수다. 아시안게임과 같은 국가대항전에서 주세혁이 가진 이런 경험과 능력들은 분명히 큰 힘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각오도 단단하다. 주세혁은 최근 인터뷰에서 “한국탁구가 위기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세대교체가 원활하지 못했다. 선배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고, 후배들이 더 빠르게 치고 올라올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줘야 한다. 최소 4강 이상에 진입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반드시 메달을 따내고 싶다”고 말했다.

  어메이징, 언빌리버블, 판타스틱… 이 말들은 주세혁이 시합을 할 때마다 경기 해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주세혁 감탄사’들이다. 이번 대회에서도 그와 같은 놀라움 가득한 표현들이 체육관을 가득 채우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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