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관심 속 ‘밴드’ 통해 회원 모집, 2002년 ‘그린웨이브’ 떠올려

▲ 2002년 동천체육관을 물들였던 그린웨이브를 기억하는가? 또 한 번의 기적이 시작된다. 월간탁구DB.

그린웨이브! 가슴 벅찬 그 이름
  “한국은 실력이 충분치 않음에도 선수들의 불같은 의지와 관중의 열화 같은 지지로 중국을 꺾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탁구경기가 끝난 후 중국의 CCTV가 내보냈던 분석기사 중 일부분이다. 당시 중국은 남자 공링후이 왕리친 마린, 여자 왕난 장이닝 궈얀 등등 무시무시한 전력을 구축하고도 남자단체전과 남녀단식에서 세 개의 금메달을 따는데 그쳤다. 한국이 남녀복식에서 두 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북한과 홍콩이 각각 여자단체전과 혼합복식 금메달을 가져갔다. 전력 면에서 열세에 있었던 한국이 두 개의 금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던 이유를 중국은 홈그라운드 관중이 보내준 응원의 힘에서 찾은 것이다.
  실제로 당시 한국탁구의 메달 전망은 밝은 편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전략적으로 남녀개인복식과 혼합복식에 공을 들였는데, 남녀복식 금메달과 혼복 은메달을 따내며 결과적으로 목표를 달성했다. 그런데 중국의 분석대로 한국의 성공에는 응원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푸른 상의로 복장을 통일한 응원단이 “대한민국”을 외치며 경기 내내 뜨거운 함성으로 선수들에게 힘을 실었고, 중국을 비롯해서 타국에서 온 선수들은 마음껏 기량을 펼치기가 힘들 정도였다. 푸른 옷의 관중은 북에서 온 일명 ‘미녀응원단’과도 합동응원을 전개했는데, 북한이 결승전에서 중국을 꺾은 여자단체전 역시 이 응원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었다.
  당시 탁구경기가 열렸던 울산 동천체육관을 찾았던 팬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녹색물결’을 아로새기고 직접 응원에 참가했던 팬이라면 더구나 잊지 못할 것이다. 3천석의 관중석을 가득 메우고 심장을 울리는 북소리에 맞춰 목청껏 외쳐댔던 “대~한민국”을! 마침내 금메달을 따내고 눈물을 흘리며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던 우리 선수들의 감격을! 대한민국 탁구 국가대표 공식응원단을 표방했던 ‘그린웨이브’, 가슴 벅찬 그 이름을!
  2002년도의 일이니 벌써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린웨이브’는 한국탁구 역사에서 잊히지 않는, 잊혀서는 안 되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린웨이브’는 한국탁구 발전을 염원하는 팬들이 자발적으로 뭉쳐 이뤄낸 ‘기적’이었다. 당시 아시안게임 직후 각 실업팀 서포터스로 분화, 발전적 해체의 길을 걸은 까닭에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당시 동천체육관을 물들였던 ‘그린웨이브’의 열화와 같은 성원은 아직까지도 커다란 울림으로 남아있다.
 

▲ 작년 아시아주니어선수권대회 때 한국 응원단 현수막의 으랏차차! 새 응원단 이름의 모태가 됐다. 월간탁구DB.

대한민국 탁구 응원단 으랏차차! 다시 한 번 기적을
  그런데 최근 탁구계에 당시를 떠올리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일명 ‘대한민국 탁구응원단 으랏차차!’가 출범을 준비하며 탁구인들을 설레게 하고 있는 것이다. ‘으랏차차’는 본래 소규모 응원단으로 급조된 모임이었다. 청소년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박지현 감독이 이 달 말 아산에서 열리는 아시아 주니어&카데트 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평소 알고 지내던 동호인들에게 제안해 결성했다. 그런데 ‘으랏차차’의 소박한 움직임을 전해들은 한국중‧고등학교탁구연맹(회장 손범규)이 동참하면서 말 그대로 ‘판’이 커졌다.
  손범규 중‧고연맹 회장은 “아시아주니어대회 성원을 목표로 하는 것도 좋지만 주니어를 넘어 한국탁구 전체를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성원할 수 있는 응원단이 존재한다면 더욱 값진 의미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면서 응원단 추진에 앞장서고 있는 이유를 밝혔다.
  지난 주말 끝난 일본오픈 직후부터 본격적인 움직임을 시작한 ‘으랏차차’는 양웅열 동성고 총동문회 국장과 한창원 기호일보 대표이사를 공동대표로 추대하고, 신민성 중고연맹 사무국장과 석은미 독산고 코치를 공동 사무장으로 선임하여 온‧오프라인 전방위적으로 회원을 모집하고 있다. 아시아 주니어&카데트 탁구선수권대회가 한창일 7월 1일 공식 출범 및 승인 모임을 목표로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중이다. 모집대상은 탁구를 사랑하고 선수들을 응원하는 모든 이로 연회비 납부를 한 사람! 연회비는 1년 6만원(월 5천원)에 불과한 상징적인 액수이며, 이 또한 최소한의 응원단 지출예산과 꿈나무 육성기금으로 사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많지 않은 회비에 비해 으랏차차는 오히려 혜택이 더 많을 모양이다. 가입 회원을 대상으로 용품사 닛탓쿠에서 유니폼을 제공하며, 3개월에 한 번씩은 정기모임, 6개월에 한 번씩은 엘리트선수들과의 교류를 추진한다. 중고연맹 주최 대회에서는 지정 응원석을 제공하며, 탁구전문지 월간탁구도 으랏차차 회원에게 한해 구독료 20% 할인을 약속했다. 소식을 전해들은 탁구팬들이 가입을 신청하고 있어 응원단은 현재 빠르게 늘고 있다. 대한민국 탁구 응원단 으랏차차는 모바일 앱 밴드에서 ‘으랏차차’를 검색해 가입할 수 있다.
 

▲ 한국탁구는 현재 위기다. 응원의 힘은 지금이 더 필요한 시기다. 작년 아시아주니어대회 우승 장면. 힘이 모인다면 기적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 월간탁구DB.

변했으되 변하지 않은
  그린웨이브가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해체된 이후 어느새 15년이 지났다. 그동안 한국탁구는 많이 변했다. 당시 감격적인 메달을 따냈던 선수들은 대부분 현역을 떠나 지도자로 변신했다. 남자복식 금메달의 주인공 이철승은 삼성생명 남자팀 감독으로, 2년 뒤 아테네에서 ‘영웅’으로 등극한 유승민은 IOC선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자복식 금메달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석은미 독산고 코치는 바로 ‘으랏차차’의 사무장이다. 노장으로 후배들을 이끌었던 김택수는 현재 남자국가대표팀 감독이다.
  생활탁구 현장도 많이 변했다. ‘참살이’ 열풍을 타고 눈에 띄게 동호인이 증가했으며, 매달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대회가 열린다. 대한체육회 통계 기준 탁구는 동호인 인구가 많은 종목으로 최상위권에 속한다. 그린웨이브의 대다수를 이뤘던 동호인들이 그 첨병으로 활약했고, 여전히 각지에서 ‘유쾌한 스윙’을 즐기고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탁구는 변했으되 변하지 않았다. 지금도 각종 국제대회에서 중국에 밀려 메달 전망이 밝지 않다. 오히려 일본, 독일, 홍콩, 싱가포르 등에게도 추월을 허용해 2002년 당시보다 전력은 더 약해졌다. 생활탁구 현장에는 동호인들이 넘쳐나지만 엘리트 선수들의 경기장은 여전히 썰렁하기만 하다. ‘하는 스포츠’로 발전을 거듭하는 동안 ‘보는 스포츠’로의 인기는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했다.
  아시안게임 응원이라는 한시적 목표의 한계를 인정하고, 해체의 길을 택한 그린웨이브의 존재는 그래서 또한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그때보다 지금이 어쩌면 더 강력한 응원의 힘이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다시 등장한 대한민국 탁구 응원단에 간절한 바람이 실린 눈길이 쏠리는 것도 그래서다. 아산에서의 주니어대회를 목표로 하지만 그 이후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린웨이브’가 남긴 시행착오의 교훈 때문일까. 으랏차차! 위기의 한국탁구계에 ‘아래로부터의 즐거운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했다.
 

▲ 2002년 아시안게임에서 까까머리로 금메달을 따냈던 유승민은 현재 IOC위원이다. 팬들의 응원은 역사를 만들 수도 있다. 새삼스러운 감동의 물결이! 월간탁구DB.
저작권자 © 더 핑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