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도입 확정, 치밀한 전략 수립 필요할 듯

올림픽 탁구경기에 작년 리우대회까지는 치르지 않았던 혼합복식이 추가되는 것으로 확정되면서 메달을 기원하는 탁구인들의 바람이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0일 새벽(한국시각) 스위스 로잔에서 집행위원회를 열고 2020년 도쿄올림픽에 남녀 혼성 종목을 대거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육상, 철인3종, 양궁, 농구 등과 함께 탁구 혼합복식도 추가 혼성 종목에 포함됐다. 이에 따라 남녀 단체전과 남녀 단식에서 네 개를 놓고 다투던 올림픽탁구 금메달은 모두 다섯 개로 늘어났다. 전체 메달 수도 열두 개에서 열다섯 개로 늘어날 예정이다.

혼합복식 추가 확정이 알려지자 많은 탁구인들이 환영의 뜻을 표하고 있다. 대표팀 지도경력이 있는 한 코치는 “풋-워크에 강점이 있는 한국탁구는 복식경기에 유리하다. 지금부터 준비한다면 충분히 메달권에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 다른 지도자는 “혼합복식 추가는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성사된 만큼 치밀한 전략을 수립해 시작부터 좋은 전통을 세워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 탁구 혼합복식이 도쿄올림픽 정식종목으로 확정됐다. 사진은 지난 뒤셀도르프 세계선수권 한국대표팀 혼합복식조였던 장우진-이시온 조(이상 미래에셋대우). 월간탁구DB.

한국탁구는 파트너 간의 유기적인 움직임이 중요한 복식경기에서 전통적인 강세를 유지해왔다. 올림픽에서도 단체전으로 변경되기 전에 치러지던 개인복식에서 양영자-현정화 조가 여자복식 원년 금메달리스트였고, 유승민 현 IOC 위원이 단식 금메달을 땄던 2004년 아테네에서는 이은실-석은미 조가 결승에 진출했었다. 이철승 현 삼성생명 남자팀 감독은 올림픽 복식에서만 두 개의 동메달을 보유하고 있다. 단체전 변경 이후에도 한국탁구는 남녀 할 것 없이 중요한 승부처로 여겨지던 복식매치에서 자주 우위를 지켜왔다.

혼합복식은 남녀 파트너간의 역할 분담과 힘의 균형 등에서 남녀복식과는 상대적인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복식스타일이 낯설지 않은 한국 선수들에게 불리할 게 없는 종목이다. 초창기부터 정식종목으로 혼합복식을 치러온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은 1989년 도르트문트대회 우승(유남규-현정화) 1개뿐이지만(2015년에는 양하은이 중국의 쉬신을 파트너로 정상에 오른 적이 있다. 이를 포함하면 1.5개), 은메달 셋, 동메달 셋을 더해 총 일곱 개의 메달을 따냈다(1991년 남북단일팀으로 출전한 지바대회에서는 북한의 김성희-이분희 조가 동메달을 딴 적이 있다. 이를 포함하면 8개, 혹은 8.5개). 그 중 2013년 파리 대회 때 획득한 이상수-박영숙 조의 은메달이 한국탁구 혼합복식의 가장 최근 전적이다.
 

▲ 이상수(상무)-박영숙(렛츠런파크) 조는 2013년 파리세계선수권 준우승, 부산아시아선수권에서는 우승했다. 사진은 2015년 쑤저우 세계선수권대회에서의 모습. 월간탁구DB.

하지만 문제는 한국탁구가 자신해오던 ‘복식에서의 강세’는 그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한국 탁구의 흐름이 펜 홀더 전형에서 유럽형 셰이크핸드 전형으로 완전히 전환된 이후 원활한 좌우 움직임을 기본으로 하던 한국탁구의 특징은 어느 순간부터 자취를 감췄다는 평이 많다. 중요한 전제가 되던 유기적인 움직임은 더 이상 한국탁구의 강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탁구인들이 “막연하게 남아있는 전통에 기대는 대신 지금부터의 철저한 전략 수립과 준비태세가 필요하다”고 한 목소리를 내는 이유다.

게다가 혼합복식은 평소 선수들이 훈련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 종목이다. 국내에서는 매년을 결산하는 전국종합선수권대회와 입상실적이 필요한 실업 시·군청대회 정도에서만 치러진다. 중·고등부나 대학부, 초등부 등 학생대회에서는 아예 혼합복식이 개최종목에 없다. 그렇다보니 선수들은 종합대회를 앞두고 급조된 파트너들이 잠깐씩 훈련하는 게 전부다.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 등 혼합복식이 열리는 국제대회도 대표팀에 선발된 엔트리 내에서 파트너를 급조해 단기간 훈련하는 게 전부였다. ITTF의 월드투어도 혼합복식은 열지 않는다. 꾸준히 호흡을 맞춰 훈련하는 ‘전문선수’의 개념은 애초부터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 국내 대회에서도 혼합복식은 전국종합선수권대회에서나 치러진다. 지난해 종합선수권 혼합복식 우승 이상수-최효주 조(이상 삼성생명). 월간탁구DB.

하지만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국인 일본은 혼합복식 추가 채택을 위한 노력과 동시에 ‘혼복 금메달 조합’을 꾸준히 연구하고 육성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치러진 뒤셀도르프 세계선수권대회 혼합복식 우승조인 요시무라 마하루-이시카와 카스미 조는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부터 계속해서 호흡을 맞춰온 선수들이다. 뒤셀도르프에서 같이 뛴 타조에 켄타-마에다 미유 조의 경우는 다른 개인종목을 제쳐두고 혼합복식 한 종목만 전략적으로 훈련하고 출전했다.

반면 2013년 파리 세계선수권에서 은메달을 따냈던 한국의 이상수-박영숙 조는 2015년 대회에서 기대 이하인 16강에서 탈락한 후 다시 호흡 맞출 기회를 얻지 못했다. 2014년 아시안게임 동메달과 2016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금메달리스트인 김민석-전지희 조도 국내에서는 종합대회 때나 ‘해후’했다.
 

▲ 일본은 혼합복식 추가를 위해 노력해오는 한편 실전에 대한 대비도 꾸준히 해왔다. 사진은 뒤셀도르프 세계선수권대회를 석권한 요시무라 마하루-이시카와 카스미. 월간탁구DB.

혼합복식이 추가된다 해서 올림픽 엔트리가 늘어날 가능성도 많지 않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개인복식이 단체전으로 변경될 때 엔트리는 4명에서 3명으로 오히려 1명이 줄었던 전례가 있다. 혼합복식 역시 단체전 엔트리 내에서 조를 구성해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세계랭킹을 기준으로 남녀 대표를 선발하는 방식에서는 파트너 구성을 유연하게 가져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최근 세계선수권 등에서 혼합복식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했던 중국이 올림픽에서 같은 기조를 유지할 지도 미지수다. 지금부터의 세밀한 전략 수립은 그래서 더 필요하다.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유승민 IOC선수위원은 ITTF 선수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도쿄올림픽 종목 선정에도 관여했다. 유 위원은 “우리나라도 이제부터 '대회 하나 끝내고 노력하겠다' 식이 아닌 전략을 잘 세워야 한다. 전략 없이 똑같은 선수, 똑같은 방식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조언했다. 유 위원은 또한 “혼합복식이 추가된 이상 이제는 진정으로 과감한 결단을 내리고 전략 수립을 다시 하여 우리 탁구가 도쿄에서는 애국가를 울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어쨌든 혼합복식 추가는 한국탁구에도 좋은 기회다. 사진은 2015년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혼합복식에서 금메달을 따냈던 김민석(KGC인삼공사)-전지희(포스코에너지) 조. 월간탁구DB.

학생탁구를 관할하는 한 단체의 임원은 “한국탁구는 열악한 예산이나 여건 속에서 임원, 지도자, 선수들의 열정과 헌신으로 성적을 내왔다. 하지만 지금은 선수 외에는 그런 열정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한국탁구의 국제경쟁력 회복을 위해서는 탁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아닌 탁구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아픈 현실을 질타하는 주장을 내기도 했다. "학생부에서도 혼합복식을 도입하는 등 좀 더 멀리 내다보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의견들도 적지 않았다.

어쨌든 올림픽 혼합복식은 이제 기정사실이 됐다. 리우올림픽에서 노메달에 그쳤던 한국탁구에도 좋은 기회가 주어지게 된 셈이다. 일반 국민들의 올림픽 메달에 대한 관심도는 종목을 가리지 않는다. 혼합복식 금메달로 엄청난 열광을 이끌어냈던 배드민턴의 경우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새로운 기회를 맞은 탁구계가 어떤 선택과 집중의 전략을 행하게 될지 남다른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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