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띄게 향상된 결정력! 한국탁구 '리우 승부수'

순조로운 출발이다. 한국탁구 리우올림픽 여정의 맨 앞에 있었던 전지희(포스코에너지·24)와 정영식(미래에셋대우·24)이 남녀단식 3라운드(32강전)에서 나란히 승리하고 가벼운 첫 걸음을 옮겼다.

현지 시간으로 7일 저녁 여섯 시 브라질 리우센트로 파빌리온 제3경기장에서 치러진 여자단식 3라운드에서 전지희(세계11위)는 스웨덴의 에크홀름 마틸다(세계52위)를 4대 1(11-2, 11-3, 3-11, 11-4, 11-2)로 완파했다. 에크홀름 마틸다는 세계랭킹은 많은 차이가 있지만 파워를 앞세우는 유럽 정통파로서 경계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상대였다. 하지만 전지희는 초반부터 강렬한 공격으로 상대를 몰아세우며 완승을 거뒀다. 잠시 전열이 흐트러졌던 3게임을 제외하고 나머지 게임은 모두 하프스코어 이상의 격차를 벌렸다.
 

▲ 전지희가 올림픽 첫 경기에서 순조롭게 첫 문을 열었다. 월간탁구DB.

전지희의 기세는 이어진 남자단식 3라운드에 출전한 정영식(세계12위)이 이어받았다. 현지 시간 7일 저녁 여덟시(한국 시간 8일 오전 여덟시)에 시작된 정영식의 32강전 상대는 영국의 리암 피츠포드(세계48위). 이 선수는 올해 초 쿠알라룸푸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잉글랜드의 ‘깜짝4강’을 이끌었던 다크호스로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적수였다. 하지만 정영식은 상대의 주무기인 중진 드라이브를 사전 차단하고 끊임없는 역공을 구사하며 경기를 지배하는데 성공했다. 채 긴장이 풀리지 않았던 첫 게임을 내줬으나 이후부터 차분히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4대 1(6-11, 11-8, 13-11, 11-5, 11-5)의 승리를 거뒀다. 듀스접전이 벌어졌던 3게임을 가져오면서 완승의 발판을 다졌다. 4, 5게임은 똑같이 5점만을 내준 채 매조지했다.

전지희와 정영식의 승리는 특히 이전에 비해 눈에 띄게 향상된 결정력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더욱 고무적인 결과였다. 두 선수가 첫 경기에서 보여준 공격적인 성향은 조직위가 경기내용을 종합해 게재한 통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전지희는 자신이 서비스권을 갖고 있었던 랠리에서 전체 65%의 득점률과 35%의 실점률을 기록했다. 다소 긴장이 풀어졌던 3게임을 제외하면 81%의 득점률이다. 게다가 상대가 서비스권을 갖고 있던 랠리에서도 자신의 득점으로 가져온 확률이 전체 승부에서 무려 70%에 이른다. 지려야 질 수 없는 경기였다. 정영식의 경우도 전체 60%에 육박하는 공격성공률을 기록하며 시종일관 경기를 지배했다. 3게임에서 리드를 잡아나가다 10-11로 역전당하며 위기를 맞았을 때 13-11로 재역전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끝까지 적극적인 공격전술을 고수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전지희와 정영식은 이전까지 자신의 공격으로 인한 득점보다는 안정적인 연결력에 기대는 승부를 주로 펼쳐왔던 선수들이다. 때문에 파워를 앞세우는 상대를 만날 때면 예상 외로 고전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중진에서 강력한 드라이브를 구사하는 유럽의 정통파들을 상대해야 했던 이번 경기를 앞두고 몇몇 전문가들이 적지 않은 랭킹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려의 시선을 감추지 못했던 이유다. 올림픽이라는 큰 대회의 경험이 전무한 두 선수가 지나친 긴장으로 장기인 연결력에서 허점을 보일 경우 자칫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걱정이었다.

사실 결정력 부족은 이번 올림픽 한국대표팀의 대표적인 약점으로 꼽혀온 부분이기도 하다. 전체적인 기량은 비슷하지만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확실한 결정을 내지 못해 끌려 다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두 선수는 전에 없이 빠른 결정으로 계속해서 스스로 득점을 만들어내는 달라진 모습을 선보였다. 생애 첫 올림픽 첫 경기를 오히려 완벽하게 즐기는 모습으로 이후 승부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지난해 10월 이후 태릉선수촌에서 강화훈련을 지속해온 탁구대표팀이 약점 보완을 위해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 남자단식 첫 경기에서 역전승을 거둔 정영식이 맹렬한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 국제탁구연맹.

여자대표팀의 김형석 감독은 “전지희가 올해 초반부터 계속해서 상승세를 유지해왔다. 훈련 파트너들과 함께 공격력을 가다듬는데 주력해왔다. 현재 컨디션도 매우 좋은 상태다. 첫 경기에 대한 부담을 털어낸 만큼 이후에는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해볼만 하다. 다른 멤버들의 자신감도 함께 올라왔다.”고 현재 여자대표팀 분위기를 전했다.

남자대표팀 안재형 감독 역시 “남자단식은 초반부터 중국의 강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만큼 주변의 기대치가 많이 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선수들은 다르다. 어차피 넘지 않으면 안 되는 상대들인 만큼 자신 있게 부딪쳐보자고 각오를 다지고 있다. 올림픽 분위기에 위축되지 않고 있어 더 기대가 된다. 질 때 지더라도 쉽게 물러서진 않을 것이다.”라고 선수들의 각오를 전해왔다.

전지희는 다음 시합인 16강전에서 싱가포르의 위멍위(세계13위)를 상대한다. 랭킹은 전지희가 앞서 있지만 위멍위는 단체 4강 시드 중 한 국가인 싱가포르의 에이스 중 한 명으로 쉽지 않은 상대다. 국제무대 상대 전적에서는 2013년 쿠웨이트오픈에서 한 번의 맞대결이 있었는데 전지희가 3대 4로 아쉽게 패했었다. 상승세를 타고 있는 전지희가 당시와 달라진 공격력으로 맞선다면 승리를 노려볼 만하다. 위멍위는 32강전에서 호주의 중국계 라이지안팡을 4대 0으로 이겼지만 매 게임 접전을 벌이며 썩 좋지는 않은 컨디션을 드러냈다.

전지희는 이번 대회 8강 시드로 한국 선수들 중 가장 메달권에 근접한 대진을 받았다. 게다가 같은 라인 톱시드 일본의 이시카와 카스미(세계6위)가 첫 경기에서 북한의 김송이(세계50위)에게 풀-게임접전 끝에 역전패 당하면서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8강전에서 만날 수 있었던 강력한 적수가 제 풀에 쓰러졌다. 위멍위와의 16강전 고비를 넘는다면 한층 메달에 가까워진다. 전지희는 2011년 한국으로 귀화한 중국계 선수다. 태극마크를 달고 첫 출전한 올림픽에서 차곡차곡 ‘큰일’을 낼 채비를 마쳐가고 있다.

정영식의 다음 상대는 세계 최강자로 이번 올림픽에서도 강력한 금메달후보인 마롱(중국, 세계1위)이다. 객관적인 전력 평가에서 정영식의 절대 열세가 예상된다. 이전까지 국제무대 상대전적도 4전 전패다. 올해만 세 번 연속 맞붙어 연패했다. 하지만 정영식은 또 한 번의 맞대결에서는 이전처럼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역시 강해진 공격력이 자신감의 원천이다. 정영식은 마롱과 만날 것을 예상하고 태릉에서의 강화훈련 기간 동안 내내 마롱만을 연구했다고 밝혔다.

“마롱에게 내가 이길 거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롱도 나를 경계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게다가 마롱은 자신의 컨디션을 결승전에 맞춰 100%로 끌어올리려 하고 있을 것이다. 초반부터 랠리를 주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승부에 임할 것이다. 이번만은 반드시 다른 승부를 보여줄 것이다.”
 

▲ 2016 리우올림픽에서 한국탁구의 출발이 순조롭다. 다음 경기가 기대된다. 사진 국제탁구연맹.

리우올림픽 초반, 한국탁구는 힘겹게 랠리를 끌고 가던 이전과 다른 강인한 모습으로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16강전 이후로는 더욱 강한 상대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이전과는 또 다른 기대감을 품게 되는 이유다. 전지희와 정영식의 16강전은 한국 시간으로 9일 새벽 네 시와 다섯 시에 차례로 열린다.

한편 남녀개인단식에 출전하는 또 다른 한국 대표들 여자 서효원(렛츠런파크·29)과 남자 이상수(삼성생명·26)는 각각 한국 시간으로 8일 저녁 10시, 9일 새벽 한 시에 32강전을 치른다. 서효원(세계18위)은 미국의 중국계 릴리장(세계101위), 이상수(세계16위)는 루마니아의 복병 아드리안 크리산(세계90위)을 상대한다. 무난한 승리가 예상되는 가운데, 역시 올림픽 첫 경기의 긴장을 빠르게 해소하는 게 관건인 승부다. 앞선 경기에서 보여준 전지희와 정영식의 기세가 그대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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