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부족, 결국 치명적 약점이었다
  이번 아시아게임은 여자대표팀만을 놓고 봤을 때 ‘절반의 성공’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나름의 과제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절망할 필요는 없다는 게 우선의 결론이다.
  단체전은 개막 전부터 우려되는 부분이 그대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특히 아쉬웠다. 아시안게임이라는 비중 있는 대회에서 경험 많은 에이스가 부재하다는 것은 우리 팀의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남자는 확실한 2점을 책임져준 주세혁의 존재로 인해 이정우 같은 선수를 3번에 기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자는 서효원도 첫 출전이었고, 양하은도 중책을 맡기기에는 아직 무게감이 떨어졌다. 전지희와 이은희가 일본전과 북한전 3단식에서 맡은 바 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음에도 승부를 우리 쪽으로 끌고 오지 못한 것은 우려했던 약점이 도드라진 결과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메달결정전이었던 북한전은 벤치의 수싸움에서도 밀렸다. 대표단 코칭스태프가 다각도로 분석하고 최상의 전략을 수립했겠지만 결과적으로 수비수 리명순에게 2점을 모두 내줬다. 리명순은 최근 중국 슈퍼리그까지 출전하면서 경기력을 끌어올린 북한의 실질적인 에이스다. 1, 2단식 주자로 출전하는 게 당연했다. 냉정하게 판단할 때 우리는 북한에 실력에서도 밀리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남북대결은 여전히 실력 이전에 심리적인 부담이 승패를 크게 좌우하는 변수로 작용한다. 1대 1과 0대 2 상황은 다르다. 수비수에 대비해 선발했던 이은희 카드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미련이 남는다.
 

  그런 면에서 매치스코어 0대 2로 몰린 어려운 상황에서 수비수가 아닌 공격수 리미경을 만난 이은희가 초반의 당황스러움을 딛고 승리하며 불씨를 살려낸 부분은 칭찬해줄 만했다. 이어 나온 양하은이 이겨줬다면 추격에 성공한 분위기를 타고 5단식에서 서효원이 승부를 걸어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얼마 전 동아시아대회에서 이긴 적이 있었던 리명순에게 양하은이 너무 쉽게 무너진 것은 역시 에이스로서의 중압감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승부에선 비록 패했지만 오랜 선수생활이 남아있는 양하은에게는 어떤 시합보다도 좋은 경험이 됐을 것이다.
 

개인전에서 찾아낸 망외의 소득
  선수들이 단체전에서 마신 ‘쓴 약’은 개인전에서 바로 효과를 보여줬다. 단체전 이후 첫 남북대결이었던 개인복식 16강전에서 이은희-전지희 조가 리명순-김송이 조를 이겼다. 수비듀오인 리명순-김송이 조는 과거 우리의 김경아-박미영 조를 연상시켰다. 북한이 전략적으로 키우고 있는 선수들이다. 그런 선수들을 상대로 승리하면서 자신감을 키울 수 있었다. 다만 어려운 시합을 이기면서 긴장이 풀어진 때문인지 이후 상대한 홍콩의 리호칭-음윙남 조에게 너무 쉽게 패한 것은 역시 아쉬웠던 부분이다.
 

  서효원이 단식 16강전에서 단체전 때 패했던 리명순을 다시 만나 이긴 것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승부였다. 조금 밀리는 양상을 보이던 서효원은 촉진룰이 적용된 이후 공격력이 살아나면서 승리를 가져왔다. 자주 만날 수 있는 같은 전형의 선수에게 일단 균형을 이뤘다는 것은 차후의 승부에서도 자신감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서효원은 구력과 공격력에서 가진 약간의 우위로 이길 수 있었지만 촉진 이전 경기내용이 좋지 못했다는 사실을 두고두고 곱씹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서효원의 승부도 승부였지만 개인전에선 양하은의 동메달이 어떤 승부보다도 가치 있었다. 메달 때문이 아니라 상대가 이시카와 카즈미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카즈미와의 8강전 이전에 양하은은 타이완의 강호 쳉아이칭과 싸웠던 16강전에서 이미 단체전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3대 1로 앞서가다가 3대 3까지 추격을 허용했는데 단체전과 같은 양상이었다면 7게임에서 제 풀에 무너졌을 것이다. 더구나 7게임에서 1대 5까지 밀리던 승부를 끈질기게 따라붙으면서 결국 승리로 엮어냈다. 마지막 순간에는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던 포어핸드 결정력도 살아났다. 양하은 스스로는 어떻게 느꼈을지 모르지만 이시카와 카즈미와의 승부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쳉아이칭과 벌인 접전에서 자신의 리듬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이시카와 카즈미와 양하은은 같은 또래다. 한일전은 계속해서 열릴 것이고 두 선수는 끊임없이 에이스 대결을 펼쳐야 한다. 내내 밀리던 선수에게 메달이 걸린 중요한 승부처에서 이겼다는 것은 향후의 대결에서도 양하은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번 대회에서 부진한 결과를 낸 여자대표팀이지만 그래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던 대목이다. 처음에 ‘절반의 성공’이라고 했는데, 그래도 에이스 노릇을 해줘야 하는 서효원과 양하은이 개인전에서 나름의 소득을 찾아냈기 때문에 가능했던 표현이다. 아픈 경험을 했으니 다시 치르게 될 여러 대회에서는 더 나은 성적을 기대해 봐도 좋을 듯하다.
 

  필자는 대표팀이 단양에 캠프를 차려놓고 있었던 개막 이전 막바지 20여 일간의 훈련을 가까운 거리에서 살필 수 있었다. 당시 우리 선수들은 상당히 밝고 강한 의욕을 가지고 있었다. 예상보다 좋은 성적을 낼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역시 경험부족에 따른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했다. 이번 대회의 경험과 애초부터 갖고 있던 의지와 의욕이 더해진다면 다가오는 세계대회, 올림픽, 또 아시안게임 등등 또 다른 승부들에서는 분명히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출발은 ‘한 걸음’부터다
  물론 모든 승부라는 것이 선수들의 의욕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협회를 비롯한 주변의 탁구인들이 최선의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번 아시안게임처럼 빠듯하게 일정을 잡지 말고 연말이나 연초에 일찌감치 선발을 마치고 차분히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방편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선발전은 지금처럼 몇 몇 한정된 인원을 대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전체를 오픈시키는 것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고등부 16강, 중학부 8강, 실업팀 전원을 포함시켜 무한경쟁 체제를 도입하는 건 어떨까. 환경은 많이 달라졌지만 나라를 대표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국가대표의 자리라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선수들이 그것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가대표가 되는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실감하도록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이번 대회도 역시 ‘임팩트’가 관건이었다. 중국 탁구가 갈수록 무섭다. 테이블 앞에 붙어 서서 전진드라이브를 걸면서도 어떤 볼 하나하나도 다 임팩트를 구사했다. 우리 선수들은 밀려서 못하고, 선제를 잡아도 손목이 흔들려서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7구 이상만 넘어가면 자세가 흐트러지는 경향을 보였다. 흐트러진 자세에서도 자기만의 임팩트를 구사하는 중국 선수들을 이겨내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차후의 훈련에서 집중적으로 검토하고 보완할 일이다.
 

  그런 면에서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아쉬움을 덧붙이자면 박영숙-양하은 조가 중국의 류스원-우양 조와 치렀던 개인복식 경기다. 중국은 딩닝이라는 최강의 왼손 공격수가 있음에도 수비수인 우양을 어울리지 않는 복식 경기에 내보냈다. 0대 3 완패 스코어는 나오지 않을 수 있는 조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라는 이름 앞에서 너무 무기력했다. 중국 탁구는 분명 강하다. 하지만 상대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을 최선을 다해 발휘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상대의 처분을 기다리는 형태의 시합이 되어서는 어떤 식으로도 이길 수 없다. 냉정히 말해 우리가 이겨내기에는 너무 많은 격차가 벌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어떤 일이든 출발은 ‘한 걸음’부터다. 힘든 대회 치러낸 선수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