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탁구 수비수 ‘국대 계보’ 기대주

<피플&핑퐁>

여자탁구 수비수 ‘국대 계보’ 기대주
김유진(수원 청명고등학교 3학년)

올해 청명고 3학년이 되는 김유진은 ‘수비 국대 계보’를 이어줄 것으로 기대되는 선수다. 선수로서의 시작은 빠르지 않았으나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면서 이제는 많은 탁구인들이 주목하는 유망주가 됐다. 2020년 도쿄올림픽을 바라보는 후보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새 출발의 기운이 강한 한국탁구 2017년, 여자탁구 미래의 주역으로 꼽히는 주니어 최고 수비수를 만났다.
 

 

주니어 최고 수비수 김유진
  한국 여자탁구에는 대대로 한 시대를 아우르는 수비전형 ‘명수’가 있었다. ‘사라예보’의 정현숙이 있었고, ‘3H시대’의 홍순화가 있었으며, 올림픽 단식 유일의 수비전형 메달리스트 김경아(대한항공)와 ‘공격하는 수비수’ 서효원(렛츠런파크)은 최근까지 한국대표팀의 핵심이었다. 수비수들은 때로는 주전들 뒤를 받치는 ‘스토퍼’로, 때로는 전력의 반 이상을 책임지는 ‘에이스’로 한국여자탁구가 국제무대에서 높은 위상을 지켜내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올해 수원 청명고 3학년이 되는 김유진은 여자탁구 ‘수비 국대 계보’를 이어줄 것으로 기대되는 선수다. 선수로서의 시작은 빠르지 않았으나 라켓을 잡은 이후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면서 이제는 많은 탁구인들의 주목을 받는 유망주가 됐다. 지난 연말 세계주니어탁구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의 ‘천재’ 이토 미마(세계9위)를 꺾어 큰 화제가 됐고, 이어진 종합선수권대회에서는 실업 강호들을 연파하고 16강까지 진출하면서 또 한 번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김유진의 장점은 어떤 상황에서도 낮고 빠른 커트를 보낼 수 있는 안정적인 기술력이다. 상대적으로 역습과 임기응변 능력이 보완점으로 지적되지만, 수비전형의 기본 베이스인 커트가 정점에 가까운 수준에 도달한 만큼 향후 발전 속도는 더욱 빨라질 거라는 게 김유진을 보는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게다가 최근 한국여자탁구는 서효원 이후 두드러지는 수비자원이 드물다는 것도 김유진의 존재감을 높여주는 이유가 되고 있다. 각 실업팀 중견들이 예상보다 일찍 운동을 그만두거나 주전급으로 올라서지 못하는 경우가 속출하면서 수비수 부재 위기론까지 대두되는 실정이다. 그것은 곧 실업에서도 ‘즉시전력’ 감으로 평가되는 김유진이 성인무대에서는 어느 팀으로 향할지가 벌써부터 궁금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3! 주니어 마지막 1년을 남겨둔 김유진과의 1문1답을 통해 지나온 선수생활과 향후 도전에 대한 생각, 앞으로의 목표를 살펴봤다.
 

▲ 어떤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커트를 해내는 기술력이 최고의 장점으로 꼽힌다.

우연히 시작한 탁구, 원하지 않았던 수비

  ▷ 탁구는 언제 어떻게 시작했나요?
  ▶ 우연이었어요. 조동초등학교 3학년 6월쯤 엄마하고 교회를 갔다가 근처 빵집을 들렀는데, 그곳이 마침 서채원 언니(단원고 출신) 집에서 하던 가게였어요. 그때는 부모님이 제게 많은 경험을 시켜준다고 이런저런 활동(줄넘기, 컴퓨터, 바둑 등등)을 하게 했었는데, 채원 언니 어머님이 탁구도 해보라고 권해주신 거예요. 그 며칠 뒤에 엄마하고 탁구부를 찾아갔고요.

  ▷ 생각보다 늦게 시작했네요?
  ▶ 네. 그때까지도 엄마는 선수가 아니라 취미로 배우게 하려던 것 같아요. 4학년 때는 원래 하던 다른 활동도 같이 했었거든요. 탁구만 하게 된 건 5학년으로 넘어갈 무렵부터였어요.

  ▷ 처음부터 수비를 했나요?
  ▶ 아뇨. 처음엔 뒷면 페인트러버였어요. 그런데 그때 박혜연 선생님이 제가 하도 공격을 안 잡으니까 수비를 시키셨어요. 저는 싫었죠. 다른 애들은 다 공격하는데 왜 저 혼자만 다른 연습을 해요.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다음 시합 때 페인트로 예선을 통과하면 그냥 공격 시키겠다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예선통과를 했는데도 계속 수비를 시키신 거예요. (웃음) 선생님이 약속을 어기셨죠. 그런데 제가 힘이 있나요. 할 수 없이 수비를 하게 됐어요. (계속 웃음)

  ▷ 하마터면 유망 자원을 잃을 뻔했군요. 선생님이 선견지명이 있으셨네요. 성적은 어땠나요?
  ▶ 그게 얘기가 그렇게 되나요? (또 웃음) 6학년 이후로 8강 이상은 계속 유지했는데 뚜렷한 성적은 못 냈어요. 중학교 때도 4강에는 자주 갔는데 우승은 못했고요. 고등학교 때도 아직 우승은 없어요. 작년 8월 회장기 대회 때 준우승이 제일 잘한 건가? 국제대회에는 중3 때 아시아카데트 대표로 선발되면서 나가기 시작했어요. 국제대회에서도 2014년 타이완오픈, 작년 태국오픈에서 단식 준우승한 게 제일 좋은 성적이네요. 우승하고 싶어요. (자꾸 웃음)

  ▷ 수비전형으로 1등하긴 어렵다는 게 탁구의 속설이죠. 지금은 전형에 대한 불만은 없나요?
  ▶ 생각해보면 제가 공격을 너무 늦게 배우기도 했고,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라 공격을 잘 안 한 게 수비를 하게 된 이유였어요. 지금은 물론 수비가 훨씬 편하죠. 아직도 전진속공이나 수비 잘 다루는 선수 만나면 불안하고 그렇지만 수비라서 1등 못한다는 생각은 이제 안 해요. 김경아 쌤도 있고, 효원 언니도 있고, 세계적으로 잘하는 수비수들 많잖아요. 전형이 아니라 기술력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해야죠.
 

▲ 주니어대표로서 이미 많은 활약을 해왔다. 국가대표 계보를 이어갈 것이다.

기대주 ‘김유진’ 각인시킨 주니어 세계대회

  ▷ 지난 세계대회 얘기를 좀 해볼까요? 이토 미마 이기고 기분이 어땠어요?
  ▶ 미마랑은 2014년 타이완오픈 때 두 번 시합한 적이 있었어요. 단식 결승도 미마랑 했는데 15분도 안 돼서 지고 나왔었죠. 그래서 이번에도 미마 시합이 끝인가보다 하고 들어갔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시합이 되더라고요. 끝까지 한 번 해보자 했는데 끝나고 나니까 제가 이겼더라고요. 질 줄 알았는데 이기니까 처음엔 신기했죠. 큰일을 저질렀구나… (다시 웃음)

  ▷ 이길 수 있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 글쎄요. 마음을 비우고 들어가서 그런지 시합 전부터 긴장도 안 되고 되게 편했어요. 기술적으로는 미마가 워낙 서브 넣고 박자 빠르게 돌아서고 그런 걸 잘하니까 페이스에 말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미마가 잘하는 플레이 주지 않고 계속 지구전 유도했는데 그게 통했던 것 같아요. 쉽게 이길 줄 알았던 상대한테 끌려가니까 미마도 갈수록 더 긴장했고요.

  ▷ 제일 어려울 것 같던 상대를 이기고 8강에서 졌네요?
  ▶ 16강전에서 프랑스 선수 이기고 8강전 때 디아코누 애디나한테 졌어요. 루마니아 선순데 유럽 주니어 챔피언이래요. 유럽 선수들하고는 이번에 처음 해봤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회전이 무척 많고 변화도 잘 안타더라고요. 하지만 솔직히 그렇게 쉽게 질 줄은 몰랐죠. 끝나고 나서 좀 허무했어요. 경험을 해봤으니 다음엔 더 잘할 수 있게 준비할 거예요.

  ▷ 어쨌든 세계대회는 기대주 ‘김유진’을 각인시킨 대회였죠. 주변 시선 달라진 거 느껴요?
  ▶ 네. 세계대회는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주변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좀 부담되는 것도 있지만 그러면서 탁구가 더 재미있어진 것도 사실이에요. 그 전에는 선생님이 시키는 것만 했었는데, 어려운 상대 이겨보고 하면서 자신감은 확실히 올라온 것 같아요. 세계대회 이후에 종합대회에서 선배 언니들하고도 나름 잘했고요. 좋은 계기로 삼을 생각입니다.
 

▲ 중학교 때부터 함께 해오고 있는 안소영 선생님과 함께. 안 코치는 유진이를 “수비탁구 명맥 이을 기대주”라고 힘주어 말했다.

열심히 해서 한 단계씩 올라가자는 생각만 한다

  ▷ 연습은 얼마나 하나요?
  ▶ 방학 때는 아침 여덟 시 반부터 서브연습으로 시작해서 밤 아홉시 반쯤 끝나요. 개인연습 하면 열 시 넘어서 끝날 때도 있고요. 방학 아닐 때는 오전에 수업하고 오후 두 시 반 정도 시작해서 비슷하게 끝나고요.

  ▷ 힘들겠네요. 탁구하는 거 후회해본 적은 없어요? 훈련 안 할 땐 주로 뭘 해요?
  ▶ 그냥 쉬는 거 좋아해서 찜질방 많이 가요. (큰 웃음) 애들이랑 수다 떨고, SNS 같은 것도 하고… 운동이 힘드니까 그냥 쉬는 게 제일 좋아요. 후회요? 고등학교 1학년 때(명지고로 진학했다가 현재 팀으로 전학.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팀 내 사정이 좋지 않아서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적은 있는데, 탁구 자체 때문에 후회했던 것 같진 않고요. 요즘은 공부로는 대학 가기도 힘들고, 취업도 어렵다고 하잖아요. 그런 얘기 들으면 나만의 특기가 될 수 있는 탁구를 했다는 게 잘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육체적으로 엄청 힘들 때 빼고는요. (더 큰)

  ▷ 존경하는 선수?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선배는 누가 있나요?
  ▶ 김경아 쌤이죠. 수비선수 입장에서 정말 존경하는 선배님입니다. 이유는 말 안 해도 아시죠? 그리고 외국 선수 중에서는 그렇게 유명하진 않지만 일본 수비선수 사토 히토미를 좋아합니다. 변칙적인 커트와 백드라이브! 공격하는 능력을 닮고 싶어요.

  ▷ 기술적으로 자주 지적받는 보완점은 뭐가 있을까요?
  ▶ 아무래도 공격 쪽이요. 너무 안 한다고요. 공격빈도가 너무 적기 때문에 공격적이지 않은 공격수랑 시합할 때 오히려 더 힘들어요. 아직 저 스스로 제 공격기술에 확신이 없다 보니 찬스가 생겨도 주저하게 되고, 타점이 늦다 보니 반격을 당할 때도 많고요. 커트도 가끔 변화를 줘야 하는데 너무 정직하게만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더 연습해야죠.

  ▷ 혹시 선생님한테 하고 싶은 얘기 있어요?
  ▶ 감사하다는 말밖에 못하겠어요. 안소영 선생님과는 성리중학교 때부터 같이 했는데 그때부터 정말 많이 늘었던 것 같아요. 연습량도 많아졌고, 집중력도 높아졌고요. 잘하는 거 없는 애를 정말 열정적으로 지도해주셨어요. 우리들은 아프면 쉬는데, 선생님은 선수들이 많으니 아파도 쉬지도 못하면서 다 참고 해주신 거 알아요. 열심히 해서 보답하고 싶습니다.

  ▷ 탁구선수로서 이루고 싶은 꿈을 말해주세요.
  ▶ 구체적인 꿈을 세워두고 운동해오지는 않았어요. 그저 열심히 해서 한 단계씩 올라가자는 생각만 하고 있고요. 굳이 말하라면 지금 대표팀에 있는 선배님들처럼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정도로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 고3이니 주니어도 이제 1년밖에 안 남았네요. 올해 목표는 그럼 무엇인가요?
  ▶ 저 아직 개인 우승을 못해봤어요. 우선 올해는 꼭 국내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아시아나 세계대회 주니어국제대회에서 성적을 내고 싶습니다. 그러고 나서 당당히 실업팀에 가는 게 목표입니다. 계속 지켜봐주세요.
 

▲ 이 발랄한 선수가 한국탁구 미래의 주역 중 한 명이다.

자극 없는 성장은 없다
  이 인터뷰는 지난달 끝난 제54회 중·고종합 탁구대회가 열리기 전에 진행했다. 직후 치러진 대회에서 김유진은 종합단식 준우승, 여고단식은 8강에 그쳤는데 마지막 상대가 두 번 다 국내 최강자 김지호(이일여고)였다. 또 한 번 목표를 달성 못했지만 김유진의 표정이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다. 능수능란하게 수비를 다루는 김지호는 현재 김유진이 보완해야 할 과제를 분명하게 확인시켜줬고, 앞서가는 김지호는 역설적으로 고마운 상대라 할 수 있었다.
  조동초등학교 이후 성리중학교 진학을 준비할 때부터 김유진을 지도해온 안소영 코치는 “커트가 너무 안정적이어도 오히려 상대가 실수를 하지 않아요. 랠리 중에 조금씩 변화를 줘서 흔들어주는 센스도 필요한데, 아직 그런 게 좀 부족한 편이죠. 하지만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꾸준히 노력하면 반드시 극복할 거라고 믿어요. 늦게 시작해서 이만큼 올라온 것도 노력 때문이었으니까요. 제 선수라서가 아니라 유진이는 우리 수비탁구의 명맥을 이어줄 재목이라고 확신합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자극 없는 성장은 없다. 하물며 상대의 연속되는 공격을 끊임없이 받아내며 버티고 이겨내야 하는 수비전형에게 실패, 혹은 좌절은 숙명과도 같다. 쉼 없이 받아 올리는 커트처럼 하나씩 하나씩 끈기 있게 극복하고 털어내며 전진할 때 언젠가는 원하는 위치에서 웃게 될 것이다. 마지막 게임의 기적 같은 역전승처럼 말이다. 다시 학교로 돌아간 김유진은 지금도 쉼 없이 라켓을 돌리고 있다. 글_한인수 | 사진 안성호 (월간탁구 2017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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