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유망주! 주니어로 마지막 1년!!

<피플&핑퐁>

김지호(이일여자고등학교 3학년)
최고 유망주! 주니어로 마지막 1년!!

김지호는 자타공인 최고 유망주다. 2020년 도쿄올림픽 국가대표 유력 후보기도 하다. 지난 2월 선수들 대상 자체 앙케트에서도 김지호는 독보적 ‘최고’로 꼽혔다.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제대로 인정받은 셈이다. 하지만 늘 우승만 하는 선수라고 맘 편하기만 한 건 아니다. 태릉에서 만난 이 여린 ‘1등’은 짧은 대답 와중에도 힘겨운 속내를 드러내곤 했다. 주니어로 남은 1년! 더 큰 무대를 앞둔 김지호의 마지막 담금질을 들여다봤다.
 

 

  본지는 얼마 전 중·고등학교 선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었다. 보은에서 치른 제54회 중·고 종합대회에서였다. 탁구미래 주역들의 속내를 살피고자 했던 앙케트 중엔 ‘현재 중·고생들 중 가장 장래가 유망하다고 생각되는 선수’를 꼽아보게 한 문항도 있었다. 이미 결과가 게재됐으니 다 아는 얘기지만, 해당 설문에서 동료들에게 가장 많은 지목을 받은 주인공은 남자 안재현(대전동산고), 여자 김지호(이일여고)였다. 시선이 약간은 분산된 남자부와 달리 여자부 김지호에게는 특히 거의 대부분이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물론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결과이긴 했다. 군산대야초 3년 때 입문한 김지호는 본격 경쟁을 시작한 이듬해부터 고3이 된 현재까지 늘 ‘1등’이었다. 이일여중·고를 거치는 동안에도 어떤 대회든 마지막까지 남는 선수는 항상 그였다. 작년에는 주니어를 넘어 국가대표로도 선발됐는데, 여고 선수가 자력으로 ‘국대’가 된 경우는 현정화(현 렛츠런파크 감독) 이후 처음인 ‘사건’이었다. 심지어 조사를 진행했던 종합대회에선 전 종목 석권으로 4관왕! 사실상 ‘김지호’ 외에 다른 답이 있기 어려웠다. 그래서일까? 소감을 묻자 김지호는 담담한 미소를 섞었다.
  인터뷰는 태릉선수촌에서 진행했다. 하지만 김지호는 작년처럼 국가대표가 아니라 상비1군 신분으로 한 걸음 물러서있는 상태였다. 올해 선발전에서 김지호는 상비군 진입에는 성공했지만, 세계선수권 파견 국가대표 자력 선발기준이었던 5위 안에는 들지 못했다(10위). 여자대표팀 새 사령탑 안재형 감독이 ‘가능성 확인’을 위해 소집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면 올해는 대표단 밖에서 시즌을 시작해야 했을 수도 있었다.
  말하자면, 꿈 많은 여고생 선수와의 밝은 대화를 구상했던 취재진의 ‘희망’에 비추인다면 김지호는 그리 ‘한가하지 못한’ 상황이었던 셈이다. 태릉선수촌 승리관의 무게는 ‘국대’였던 작년에 비해 더 무거워진 것 같았다. 여자상비1군 유일한 주니어로서 김지호는 속내를 털어놓을 친구 하나 없이 ‘외로움’과도 싸우고 있었다. 거기다 대고 최고로 뽑힌 기분이 어떠냐고 속없는 질문부터 던졌으니 대화는 더디 열렸고, 김지호는 자주 난감하고 어색한 미소를 섞었다.
 

▲ ‘김지호’외에 다른 답이 있기 어려웠다. 최근 중·고종합 4관왕을 달성하던 모습의 김지호.

#1. 더 잘하겠습니다

  ▷ 동료들이 뽑은 거라 좀 각별할 텐데 사실 짐작은 했죠?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 1학년 때부터 우승도 좀 하고, 작년엔 국가대표도 되고 해서 뽑아줬나 봐요. (웃음) 더 잘하겠습니다.

  ▷ 실제로 우승을 워낙 많이 했죠? 1등만 하는 선수 기분은 어떤 거예요?
  ▶ 우승하면 좋긴 하지만 기쁘다기보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주변에서는 당연히 우승할 거라고 믿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개인전보다는 동료들과 같이 단체전에서 우승할 때가 더 좋고요. 좀 더 편하게 좋아할 수 있거든요. 중3 때 결승에서 역전승으로 우승한 대통령기 단체전 우승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 개인전도 좋은 게 먼저일 것 같은데 좀 뜻밖인데요?
  ▶ 제가 생각하시는 만큼 잘하는 선수가 아니거든요. (웃음)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은 자주 합니다. 그래도… (또) 너무 높게만 봐주진 않았으면 해요.

  ▷ 올해 선발전에서는 아쉽게 대표팀에 진입하지 못했는데 이유가 뭘까요?
  ▶ 작년 선발전 때보다 언니들 준비가 잘 돼있었던 것 같아요. 제 스타일에 적응한 것도 있을 거고요. 저도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 초반에 잘 풀리지 않은 것이 끝까지 부담이 됐어요.

  ▷ 그럼 국가대표였던 작년과 올해 태릉에서 느껴지는 차이 같은 게 있나요?
  ▶ 큰 차이는 없어요. 어차피 작년도 세계대회 시합을 뛴 건 아니고 지금처럼 주로 연습이었어요. 다 저보다는 잘하는 언니들이니까 하나라도 더 배워가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어요.
 

▲ 그래도 제일 잘할 수 있는 건 탁구죠!

#2. 그래도 제일 잘하는 건 탁구

  ▷ 작년 얘기했으니 미리 물어볼까요. 리우올림픽 보는 느낌 어땠어요?
  ▶ 제일 큰 무대잖아요. 언니들 얘기론 올림픽에서는 잘하고 싶어도 긴장돼서 실력 발휘가 잘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실력 차이가 나는 상대하고도 어렵게 하게 되고요. 실제 저런 무대에 제가 서있다면 어땠을까 생각도 했는데, 그래선지 보는 것만으로도 좀 떨렸어요.

  ▷ 그래도 앞으로 올림픽엔 나가야죠?
  ▶ 그럼요. 국가대표 되고 꾸준히 잘해서 올림픽 메달 따는 것이 오래된 꿈이에요. 도쿄올림픽까지는 생각보다 많이 남지 않았는데 지금부터 열심히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 그런데 표정이 그리 밝아보이지가 않네요?
  ▶ 워낙 그런 소리는 자주 들어요. 지금은 어쩌면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또래 친구가 태릉에 없어서 더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어요. 가끔 혼자라는 느낌이 좀 들기도 해요.

  ▷ 설문지에도 있었던 질문인데 그럼 혹시 탁구선수 된 거 후회될 때도 있나요?
  ▶ 후회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고요. 그냥 하루 종일 탁구만 하니까 일반 학생들 놀러 다니고 그러는 거 보면 부러울 때는 좀 있죠. 그럴 때는 문득문득 탁구가 즐겁지 않다는 느낌도 들고요. 자주 그런 건 아니에요. 아주 어쩌다 한 번!

  ▷ 운동하면서 제일 힘든 건 뭐예요?
  ▶ 연습 잘 안 될 때요. 지적받는 게 개선되지 않으면 더 그렇고요. 풋-워크도 더 연습해야 하고, 스윙 스피드도 더 키워야 하고 고쳐야 할 게 많은데 제자리걸음만 해요. 경기에서 파이팅을 더 하라는 지적도 많이 받는데, 그런 거 신경 쓰면 시합이 잘 안돼서 고민이고요.

  ▷ 제일 잘하는 선수는 그런 고민 없을 줄 알았는데 괜히 미안해지네요. 혹시 탁구선수 아닌 자신의 모습을 그려본 적도 있나요?
  ▶ 아니에요. 힘든 거 이겨내야 정말 잘하는 선수죠. 탁구 안했다면? 음~ 그래도 예체능 계열을 택하지 않았을까! 제가 어릴 때 피아노를 아주 좋아했거든요. (웃음) 그래도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탁구라고 생각해요.
 

▲ 한국탁구 ‘레전드’ 들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지호. 더 잘하는 선수가 되겠다!

#3. 새로운 기대와 두려움

  ▷ 맞아요. 탁구선수 김지호가 최고죠! 주니어 마지막 해인데 올해 목표를 말해줄래요?
  ▶ 일단 국내 대회 전관왕을 하고 싶고요. 주니어 끝나기 전에 아시아나 세계주니어선수권 개인단식에서 꼭 성적을 내고 싶어요. 주니어로 마지막 1년이니까 잘 마무리해야죠. 실은 마지막 해라고 생각하니까 벌써부터 기대도 되고 두렵기도 하고 그래요.

  ▷ 어떤 두려움, 어떤 기대?
  ▶ 졸업하면 지금까지보다 훨씬 잘하는 선배들하고 경쟁해야 되잖아요. 학교 때보다 단체전 분위기도 더 치열할 것 같고 잘 이겨낼 수 있을까 걱정되는 거죠. 고등학교 때까지 잘했지만 실업가서 존재감 없어지는 경우도 많잖아요. 물론 지금까지보다 재미있는 시합을 하게 될 거란 기대도 있어요. 지는 건 괜찮은데 잘 극복해내는 선수가 되면 좋겠어요.

  ▷ ‘김지호’는 잘 이겨낼 거라고 믿어요. 그럼 끝으로 앞으로의 각오 한 마디!
  ▶ 제가 지금처럼 탁구를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해주신 부모님, 삼촌 진심으로 감사드리고요.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실은 거창한 각오가 아니라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선수층이 두텁지 못한 한국 탁구계에서 ‘유망주로 탁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일거수일투족마다 탁구인들의 기대와 관심이 쏠리게 마련이니까. ‘세대교체’가 어느새 익숙한 화두가 되어버린 여자탁구라면 그 사정이 더하다. 오버페이스를 할 수도 있고, 지레 좌절할 수도 있다. 더구나 탁구를 시작한 이래 1등 아닌 적이 없었던 김지호라면 자신의 성과들을 어느새 당연하게 여기는 시선들을 외롭게 감내해왔을 터다. 안 그래도 말이 많지 않은 ‘얼음공주’ 김지호는 단답형으로 일관한 짧은 대답 와중에도 여린 속내를 드러내곤 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김지호는 누가 뭐래도 여자탁구 최고 기대주라는 사실이다. 국가대표에서 잠시 물러났으나, 주니어 연령으로 상비1군에 연속 진입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여자대표팀 안재형 감독은 “또래들 중 김지호의 독주를 견제할 선수가 있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발전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 말은 역설적으로 김지호가 두드러지는 라이벌이 없는 판도에서도 자만하지 않고 스스로 꾸준히 성장해왔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다시, 자신의 말대로 이제 내년이면 새로운 ‘기대와 두려움’ 속에 놓이게 되는 김지호에게 또 남다른 기대를 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지호는 잘해왔고, 잘해나갈 것이다.
  다만, 각고의 노력으로 일궈낸 성과를 ‘당연하게’ 여기는 주변 시선에 너무 휩쓸릴 필요 없이 좀 더 밝은 얼굴로 경기장을 누빌 수 있기를 바란다. 우승하면 마음껏 좋아해도 좋다! 2020년 혹은 2024년! 친구들 대다수가 지목했던 ‘유망한 장래’를 실제로 실현해낸 뒤 조금은 외롭고 힘들었으나 유쾌했던 추억으로 고3시절을 돌아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성인무대 진출을 앞두고 마지막 담금질을 하고 있는 김지호. 그의 탁구는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글_한인수 | 사진 안성호 (월간탁구 2017년 4월호)
 

▲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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