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그가 당한 세 번의 패배

<피플&핑퐁>

조승민의 ‘새로운 시작!’
2016년 12월, 그가 당한 세 번의 패배

지난해 12월 종합선수권대회 4강, 세계 주니어탁구선수권대회에서는 출전한 전 종목에서 메달을 따내는 맹활약을 펼쳤던 조승민(대전동산고 졸업)이 새해 삼성생명에 입단하면서 성인무대로 진출했다. 당장 실업선배들을 위협할 수 있는 ‘무서운 신인’ 조승민은 더 큰 무대 진출을 앞두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세계선수권 직후, 또한 종합선수권 직후 그를 만나 각오를 들었다. 승리보다 패배에 관한 얘기가 더 많았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 ‘익숙한’ 기대가 새로웠다.
 

 

금메달로도 만족할 수 없었던
 
조승민(대전동산고 졸업, 삼성생명 입단)은 지난해 12월 국내외 공식대회에서 세 번의 아쉬운 패배를 당했다.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치러진 2016 세계주니어탁구선수권대회 남자단체 결승전 1번 단식에서 키즈쿠리 유토(일본)에게! 같은 대회 남자단식 결승전에서 역시 일본의 에이스 하리모토 토모카즈에게! 그리고 국내로 돌아와 치른 제70회 전국남녀종합탁구선수권 남자단식 준결승전에서 실업선배 박강현(삼성생명)에게!
  많이 이기는 선수일수록 패배는 더 뼈아프다. 높은 단계에서의 승부는 더 큰 성취 앞에서의 좌절과 자주 맞닿아있고, 주위의 기대는 늘 더 많은 승리를 재촉한다. 조승민이 한국의 주니어세계선수권 출전사상 첫 복식 금메달(안재현)과 11년만의 혼합복식 금메달(김지호)을 획득하고도 밝게 웃지 못한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에이스로서 단체우승을 견인 못했다는 책임감, 직전에 접어야 했던 마지막 주니어 세계대회 단식 제패의 ‘꿈’은 금메달의 기쁨보다 더 큰 미련을 남겼다.
  고1 때의 4강을 넘어 내심 우승으로 화려하게 실업무대에 입성하고 싶었을 종합선수권에서는 전년도 대회 때 패배의 상처를 안겼던 같은 상대에게 4강전에서 다시 졌다. 그것도 풀-게임접전, 세 점의 매치포인트에 먼저 도달하고도 연속 5실점하며 통한의 역전패를 당했다. 사실 그 즈음 어떤 선수도 해내지 못했던 크나큰 성취를 이뤄낸 2016년 12월을 조승민은 어딘지 아쉬웠던 기억으로 간직할 가능성이 그래서 더 크다.
  하지만 패배의 아픔이 무엇인지 아는 선수가 스스로 남긴 미련에서 다음 승부의 실마리를 찾는다. 조승민은 다시 맞닥뜨리게 될 수많은 승부에서 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해 뛸 것이다. 중요한 건 조승민이 그렇게 스스로 ‘열심히 해야 할 이유’를 만들고 시니어 무대로 입성한다는 것이다. 고등학생 신분으론 마지막으로 만난 지난 12월, 조승민은 “너무 쉽게는 보지 마시라”며 실업선배들을 향한 도발적인 각오를 전하기도 했다.
 

▲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전 종목에서 금메달 둘, 은메달 둘을 따내는 활약을 펼쳤다. 단식 준우승은 잘했기 때문에 더 아쉬운 결과였다.

탁구미래 담보해온 주니어 최강자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조승민은 지난 몇 년간 주니어 최강자로 한국탁구 미래를 담보해온 선수다. 주니어 세계선수권도 고교 1년부터 최근 대회까지 3년 내내 출전했다. 세계대회에서 따낸 메달만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 동메달 3개 등 모두 여덟 개다. 지난해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중국을 꺾고 10년 만에 달성해낸 단체 우승을 견인했으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비록 마지막에 일본에 졌지만, 4강전에서 또 한 번 중국을 격파하는데 선봉에 서있었다.
  국내 무대에서는 물론 적수를 찾기 어려웠다. 1년 후배 안재현과 ‘쌍두마차’로 소속팀 대전동산고를 최강으로 이끌었고, 종합선수권에서는 실업선배들과 대적하며 고등학교 1학년 때 이미 4강에 올랐었다. 2015년에는 우승자 박강현에게 패해 초반 탈락했지만, 지난해 다시 4강에 올라 존재감을 과시했다. 국가상비1군에 선발됐던 2014년 이후 코리아, 체코, 벨로루시 오픈 등등 각종 국제 성인대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초고교급’ 선수다. 새해 삼성생명에 입단하면서 실업무대로 진출하는 그에게 적지 않은 관심이 모이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여러 전문가들도 조승민을 두고 감각을 타고난 ‘천재형’ 선수라는 평가를 내린다. 호프스 시절부터 이미 향후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재목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이 따라다녔다. 중학교 시절 소속팀 이적 문제로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조승민은 전망대로 차곡차곡 성장해온 셈이다. 체격이 커지고 힘이 붙으면서 기술의 완성도도 높아졌고, 더불어 탁구계의 기대치도 더욱 높아졌다. 역설적으로 세계대회 결승 패배는 높아진 기대만큼 더 큰 아쉬움을 남겼지만 과정 중의 패배에 지나치게 집착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초반에 앞서가면서 방심했던 것 같아요. 3게임부터 상대가 작전을 바꿔서 들어왔는데 미처 대응하지 못했고, 4게임 때 심판에게 조금 이해하기 힘든 폴트를 받고 나서 흔들렸던 것도 있고요. 전체적으로 경기 내용은 나쁘지 않았는데 결국 졌습니다. 아쉽긴 하지만 상대가 더 잘해서 졌으니 화가 난다거나 하진 않았어요. 더 잘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죠.”
 

▲ 종합선수권대회는 고교 유니폼을 입고 뛴 마지막 시합이었다. 단식 4강전에서 다 이긴 시합을 놓쳤다.

‘우승’보다 값진 ‘보약’
  조승민으로서는 어쩌면 주니어 세계대회보다 종합선수권에서의 패배가 더 아쉬울 법했다. 4강전에서 상대했던 박강현은 1년 전 종합선수권 32강전에서도 상처를 안긴 상대였다. 풀-게임접전을 벌였던 이번 대회보다 당시는 더 큰 차이로 졌다. 터울이 크지 않아 학생 때도 자주 만났고, 이긴 적이 더 많았던 ‘선배’는 실업 진출 이후 훨씬 강해져 있었다. 다시 만난다면 승리해서 자신감을 끌어올리고 성인무대로 올라갈 요량이었지만 결국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조승민은 “마지막에 따라잡힌 것보다 초반에 주지 말아야 할 점수를 너무 많이 준 것이 아쉽다”며 조금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실업무대가 역시 강하다는 걸 느꼈다”고도 했다.
  그러니, 또 한 번 역설적으로 조승민이 지난 12월에 당한 몇 번의 패배는 ‘우승’보다 값진 ‘보약’으로 삼아도 좋을 일이었다. 국내외를 넘나들며 주니어무대를 평정했다고는 하지만, 조승민은 실상 이제 갓 실업무대로 진출하는 신인이다. 헤쳐가야 할 벽이 녹록치 않음을 실감했다는 것은 그가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할 이유를 확인했다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조승민 스스로는 주니어 시절을 마무리하는 것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갖고 있을까? 그는 단숨에 “좋다”고 했다.
  “경기 일정을 좀 덜 피곤하게 소화할 수 있다는 거? 학교 때는 아무래도 단체생활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다음 날 시합이 있거나 해도 모든 걸 같이 움직여야 했거든요. 선수들 의견보다는 선생님들 뜻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경우도 없지 않고요. 물론 편하게 쉬어가면서 하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까지보다 훨씬 강한 상대들과 싸워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스스로 책임지면서 열심히 할 각오입니다.”
  그러면서 조승민은 “뭔가 봉인돼 있는 것이 해제될 것만 같은” 흥분을 느낀다고도 말했다. 이미 고교 수준을 넘어서 있었던 그에게 주니어 무대는 어쩌면 너무 좁거나 답답했던 것일까. 좀 더 일찍 더 큰 무대에서 더 강한 상대들과 싸우고 싶었던 조승민에게 다가올 성인무대는, 그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두려움’보다 ‘반가움’이다. 이번 주니어 세계대회에서 그를 이겼던 일본 선수들이 일찍부터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빠르게 성장한 것처럼 그도 더 빠르게 강해지고 싶다. ‘봉인’돼 있던 것이 무엇인지는 좀 더 지나봐야 알 일이지만 “자신 있다”는 그의 당찬 모습에서 익숙했던 그간의 기대가 다시 환기된다.
 

▲ 더 높이 오를 준비를 마친 조승민. 2020년 도쿄올림픽을 목표로 뛴다!

도쿄에서 떠올릴 ‘특별했던 기억’
  그리고 2020년 도쿄올림픽! 2년 전에 본지는 같은 지면에서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그해 코리아오픈에서 조승민이 일본의 세계랭커 니와 코키를 이기면서 화제를 모을 때였다. 당시 조승민은 한 경기 한 경기 승패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도쿄를 목표로 길게 보고 뛰겠다고 다짐했었다. 한국탁구가 처음으로 메달을 따지 못한 지난 리우올림픽을 보면서 조승민의 목표는 더욱 또렷해졌다. 이제는 더 자주 만날 경쟁자가 될 선배들의 경기를 지켜보면서 올림픽무대에서 뛰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고 한다.
  “실은 국내대회가 국제대회보다 더 까다로워요. 외국 시합 나가면 제가 왼손 전형이라 그런지 저를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은데, 국내에서는 실업선배들이 모두 저를 잘 아니까요. 실업에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가서 잘해야죠. 단체전 주전도 되고, 팀에 도움도 돼야 기회도 더 많이 생길 테니까요. 쉽진 않겠지만 국제무대에 나설 기회를 만든다면 랭킹경쟁에서는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올림픽은 꼭 나갈 겁니다.”
  기술적으로 조승민이 아직 완벽한 선수라고 말할 수는 없다. 지난 주니어 세계대회를 준비하면서 태릉에서 그의 훈련을 관찰했던 강문수 국가대표팀 총감독은 “상체의 기술력에 비해 움직임이 다소 경직되는 편”이라는 지적을 하기도 했었다. 조승민 스스로도 느끼는 문제다. 남아공에서도, 종합대회가 열렸던 인천에서도 결국 아쉬운 패배를 당한 까닭은 거기서 기인했는지 모른다. 한 번 더 말하지만 주니어 생활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달에 조승민은 값진 패배를 통해 ‘숙제’를 확인한 셈이다. 문제를 느끼고 있다면 훈련을 통해, 실전을 통해 답을 찾아가면 될 일이다. 강한 상대들과 숱하게 부딪치게 될 성인무대에 그 답이 있다.
  주니어탁구 최강자 조승민이 실업무대로 진출한다. 이미 여러 지표가 보여주듯이 실업에 먼저 가서 뛰고 있는 ‘선배’들도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무서운 신인’임엔 틀림없다. 강자들과 싸우면서 더 강해지는 선수가 진정한 강자다. 그가 마침내 답을 찾아낼 때, 스스로의 표현대로 “봉인돼 있던” 무엇이 마침내 해제될 때 그 폭발력이 어느 정도일지를 짐작하기 어렵다. 지금은 다만 폭발하는 무대가 그의 목표대로 2020년 도쿄올림픽이기를 바랄 뿐이다. 주니어 무대에서 미처 완전히 넘지 못했던 일본의 신예들도, 중국의 최강자들도 극복해낼 수 있기를 바란다. 바람대로 된다면 실업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2017년과 더 이전 2016년의 12월은 ‘아주 특별했던 기억’으로 돌이켜질 것이다. 글_한인수 | 사진 안성호 (월간탁구 2017년 1월호)
 

▲ 이제 성인무대에서 뵙겠습니다! 조승민은 2017년부터 삼성생명 소속으로 뛰게 된다.

이 기사는 월간탁구 2017년 1월호에 게재됐던 기사입니다. 오프라인 독자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일정 시간이 지난 후 몇 개의 칼럼을 발췌하여 게재하고 있습니다. 조승민은 최근 끝난 2017년 국가상비군 선발전에서는 남자부 7위의 성적으로 상비1군이 되었습니다.
 

▲ 최근 치러진 국가상비군 선발전에서 조승민은 최종 7위의 성적으로 상비1군에 합류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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