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조대성의 탁구 ‘인생’

<피플&핑퐁>

조대성(대광중학교 3학년)
열여섯 조대성의 탁구 ‘인생’

조대성은 많은 탁구인들이 세계제패 재목감으로 꼽는 기대주다. 중학교 3학년으로 아직 카데트 연령이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도 주니어로 한국 청소년탁구를 대표할 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달 ITTF 챌린지 두 대회를 연속 출전하고 돌아온 직후 이 ‘당돌한’ 유망주를 만나봤다. 반드시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겠다는 조대성에게 ‘탁구’를 물었더니 ‘인생’이라고 답했다.
 

 

  오륜기가 펄럭이는 체육관, 그 한가운데서 시합을 벌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조대성은 세 번이나 꿈에서 봤다고 한다. 한 번은 이겼고, 한 번은 졌으며, 한 번은 경기 도중 깼다고 입맛을 다셨다. 내용이 자못 구체적이다. 상대가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관중의 뜨거운 함성과 테이블 배치 등등으로 미루어 결승전이었던 것만은 분명했다. 2020년? 2024년? 끝을 보지 못한 마지막 시합 결과는 금메달이었을까 은메달이었을까.
  2002년생 중학교 3학년이다. 아직 어리다면 어린 이 선수가 얼마나 자주 상상의 나래를 폈으면 꿈에서까지 올림픽을 치렀을까. 허황된 희망에 불과하다면 그저 웃고 넘기면 그만일 일이지만 주인공이 조대성이라서 그러지 못했다. 실제로 조대성은 매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정말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해서 올림픽 금메달 꼭 따고 싶어요!”

#1.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지만 조대성의 삼촌은 바로 조용순 경기대학교 감독이다. 삼촌이 조카의 재질을 눈여겨보고 탁구를 권했다. 조 감독은 대성이가 어릴 때 배드민턴을 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다가 운동에 관한 남다른 천재성을 발견했다고 털어놨다. 손목 사용, 회전 감각… 삼촌은 조카의 특출한 운동신경을 탁구선수로 꽃피워보자고 형, 그러니까 조대성의 부친 조용구 씨에게 제안했다. ‘아빠’는 대학탁구의 한 시절을 완벽하게 풍미했던 동생의 눈을 믿고 ‘아들’을 맡겼으며, 삼촌과 놀이 삼아 해본 탁구 랠리에 푹 빠진 조카는 스스로도 의욕이 넘쳤다. 탁구부가 있는 수원 신곡초등학교에 입학한 것이 ‘탁구선수’ 조대성의 시작이었다.

#2. 3학년 초등연맹 회장기 학년별 단식에서 우승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조대성은 이듬해인 4학년 초 서울의 전통 명문 장충초등학교로 전학했다. 더 큰 물을 만난 조대성은 빠르게 성장했다. 회장기, 교보컵, 전국종별, 우수선수 초청대회 할 것 없이 또래 연령대에서 할 수 있는 우승이란 우승은 다했다. 국내에서만 만족하지 않았다. 5학년 때 첫 출전한 동아시아 호프스대회에서 원했던 결과를 만들지 못했지만 이듬해 다시 출전, 단체전과 개인단식을 모두 우승했다. 당시 단식 결승 상대가 바로 작년 주니어 세계챔피언 하리모토 토모카즈(일본)였다. 조대성은 같은 해 청두오픈, 코리아오픈 등 ITTF 주니어서키트 카데트 부문에도 도전해 안재현(대전동산고)과 함께 복식을 연속 우승하는 등 호프스 연령에 구애받지 않는 활약으로 이미 많은 이들에게 ‘될성부른 떡잎’으로 공인 받았다.

#3. 중학교 진학 첫 해 선배들을 꺾고 전국종별선수권을 획득하면서 ‘기대주’의 위력을 또 한 번 과시한 조대성은 이후 뜻밖의 시련을 겪었다. 호서중에서 대광중으로 초기에는 소속팀이 불안정했는데, 그보다는 부상이 더 큰 문제였다. 그 해 아시아 주니어&카데트 대표선발전 직후 통증을 느껴 병원을 찾은 조대성은 진찰 결과 튀어나온 뼛조각 제거수술을 받지 않으면 안됐다. 수술 이후 몇 개월 동안이나 회복에 주력하면서 운동을 못한 조대성에게 이 기간은 내내 부담으로 남게 된다. 육체적 성장기, 하필이면 이 기간에 키가 급격히 자랐다. 부상 회복 이후 다시 선 탁구대에서 이전 감각을 찾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 조대성은 여전히 “밸런스도 잘 맞지 않고, (감각도)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느낌”이라고 말할 정도다.

#4.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음에도 조대성은 재활 이후 곧 ‘강자 본색’을 회복했다. 특히 국제무대에서 존재감이 빛났다. 2학년이던 작년 아시아 주니어선수권에서 한국의 단체2위를 견인한 뒤 단식도 4강에 오른 조대성은 이 자격으로 초청받은 2016 ITTF 월드카데트 챌린지에서 무려 3관왕에 올랐다. 아시아 대표들과 함께 한 단체전과 혼합복식을 우승했고, 일본의 기대주 중 한 명인 우다를 꺾고 개인단식 챔피언이 됐다. 남자복식도 준우승하며 출전한 전 종목에서 빼어난 성적을 거뒀다. 뿐만 아니라 고교 선배들과 함께 겨룬 주니어대표 선발전에서 자력으로 선발권에 들어 연말 세계 주니어선수권대회에도 출전했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선 단식 16강으로 만족했지만 카데트 수준을 넘어선 기량을 입증했다. 태릉에서 훈련 모습을 지켜본 강문수 당시 국가대표팀 총감독이 “지금까지 본 자원들 중 가장 장래가 촉망되는 선수”라고 치켜세웠을 만큼 어려움 속에서도 조대성은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5. 대한탁구협회는 2016년 유공자표창에서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올림픽 스타 정영식(미래엣세대우)의 최우수선수상과 함께 신인상 주인공으로 중학교 3학년이 되는 조대성을 선정한 것이다. 탁구협회는 월드카데트 챌린지에서의 활약을 높이 샀다고 이유를 설명했는데, 실업부를 모두 포함 생애 단 한 번만 받을 수 있는 신인상을 중학생이 수상한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조대성에게 걸고 있는 탁구계의 기대치가 얼마나 높은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조대성은 올해 초 있었던 시상식에서 “나이도 어린 제게 이런 상을 주셔서 영광이다. 앞으로도 열심히 해서 기대에 보답하고 싶다.”고 어른스럽게 말했었다.

#6. 2017년, 카데트 마지막 해를 맞은 조대성은 ‘월반’을 감행했다. 연 초 아시아 주니어&카데트 대표선발전에 카데트 대신 주니어부로 출전했다. 삼촌과 소속팀 김태준 코치 등 관계자들의 계획과 권유에 따랐는데, 작년 세계대회 때 이미 주니어로 활약했던 조대성으로선 꺼릴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조대성은 스스로의 힘으로 주니어대표에 선발됐다. 최종전에서 물고 물리며 4위가 됐지만 고등부 강자들을 상대로 열네 번을 이겼고, 단 두 번밖에 지지 않았다. 함께 주니어대표팀을 구성한 멤버들은 황민하(중원고), 안재현(대전동산고), 백호균(화홍고) 세 명이 다다. 모두 한국탁구 차세대 주전들로 꼽히는 유망주들이다. 중학생 조대성이 ‘더 빠르고, 더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이는 드물 것이다. 올해 아시아선수권에서 주니어 강자들과 대결을 앞둔 조대성은 일단 “4강을 목표로 하겠다.”고 말했다.
 

▲ 2016년 유공자 표창식에서 신인상을 수상했다. 최우수선수상을 받은 선배 정영식과 함께.

조대성에게 탁구란?
  왼손 전형인 조대성은 부드러운 포어백 전환 능력을 바탕으로 한 매우 높은 기술적 완성도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까지 경과가 말해주듯 이미 카데트 수준을 넘어섰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천적’이 있다. 1학년 중반 부상 이후 회복 시점부터 우형규(내동중)에게만은 자주 패하고 있다. 조대성은 “형규는 처음부터 끝까지 기복 없는 플레이를 한다. 반면 나는 잘하다가도 한두 번 막히면 그때부터 원하는 플레이가 잘 나오지 않는다. 이기고 있어도 쫓기는 기분이 든다. 정신력 문제일까? 형규가 유독 내 게임을 잘 풀어간다는 생각도 가끔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물었다. 조대성에게 우형규란? 조대성의 대답은 “좋은 친구이자 라이벌!” 덧붙여 “더 이상 져서는 안 되는, 다음에 만나면 무조건 이길 거다!”
  대성이의 표지 촬영은 지난달 중순 본지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조용순 감독이 동행했는데, 조카를 탁구세계로 이끈 삼촌은 여전히 ‘선수 조대성’의 가장 큰 버팀목이다. 성장과정이 어때야 하는지를 잘 아는 삼촌은 조카를 최고의 선수로 키우기 위해 세밀한 뒷바라지를 계속하고 있다. 조 감독은 “가능한 빨리 실업팀으로 갈 수 있길 바라지만 제도상 문제가 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더라도 국제오픈대회나 중국리그, 유럽 캠프 등등 다양한 경험을 지속시켜 국제적인 선수로 키울 생각.”이라고 계획의 일단을 밝히기도 했다. 그래서 다시 대성이에게 물었다. 조대성에게 조용순이란? 대답은 “가족이자 스승!” 조대성에게 학교 근처 숙소에서 생활하다 집으로 가는 주말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삼촌과 훈련하는 시간이다. 학교에서의 훈련이 혼란스럽지 않도록 배려하며 랠리 외에는 그저 “열심히 하라는 얘기만” 해준다는 삼촌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그렇다면 조대성에게 탁구란? 아직 열여섯 살 어린 선수에게 어울리지 않는 질문이란 자책을 하고 있는데 “인생!”이란 뜻밖의 답변이 빠르게 돌아왔다. 하긴, 내내 훈련만 하고, 자주 라이벌을 떠올리며, 꿈에서까지 격전을 치르는 이 선수에게 더 이상 적확한 정의가 있을까. 나아가 조대성은 조금은 당돌하기까지 한 표정으로 구체적인 목표도 밝혔다. “내년엔 국가대표, 2020년엔 올림픽 출전, 2024년엔 올림픽 금메달!” 제 모든 걸 걸고 (죽기 살기로) 전진하겠다는 조대성에게 탁구는 분명 ‘인생’이다. 문득 조카의 천재성을 발견하고 흥분하던 삼촌의 기분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늘 많은 신경을 써주시는 김태준 선생님, 생활체육에서의 인연을 바탕으로 후원자를 자처해주시는 ㈜고구려의 권혁찬 사장님 등등 감사드려야 할 분들이 많습니다.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항상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 최근의 ITTF 챌린지에서 좋은 경험을 하고 돌아왔다. 사진은 지난 코리아오픈에서 활약하던 모습이다.

ITTF 챌린지 시리즈의 경험
  한편, 조대성은 지난달 ITTF 챌린지 시리즈에서 좋은 경험을 했다. 4월부터 이어진 슬로베니아오픈과 5월 초 열린 크로아티아오픈에서 국제무대에 도전하는 성인선수들과 기량을 겨뤘다. 슬로베니아오픈은 U-21단식에서 3승 1패 32강, 오픈단식 2승 2패 64강, 소속팀 후배 박경태와 함께 뛴 복식도 2승 1패로 16강에 올랐다. 크로아티아에서는 본선 시드를 받았던 U-21단식에서는 첫 경기에서 패하고 64강에 그쳤지만, 오픈단식에서 예선2승, 본선 1승1패로 32강까지 올랐다. 복식도 세 번이나 성인선수들을 꺾고 16강까지 진출했다.
  아직 어린 중학생 선수들이 소화하기에 쉽지 않았던 동구 유럽에서의 장기시리즈였지만 조대성은 두 번의 챌린지에서도 ‘매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두 대회 동안 단·복식 통틀어 열세 번을 이기고 일곱 번을 패했다. 승패보다도 스스로 터득한 교훈은 더 크게 남았다.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내 박자가 늦어서 맞드라이브를 하기 힘들었다. 힘도 더 키워야하고 잔플레이에서의 범실도 확실히 줄여야 할 것 같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앞으로도 오픈대회를 더 많이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가대표 선배 정영식의 성실함, 동영상으로 보고 감탄한 유남규(감독님!)의 화려한 왼손 플레이, 중국 톱랭커 판젠동의 완벽한 양 핸드… 닮고 싶은 롤-모델이 너무 많아 한 명만 꼽기 어렵다는 조대성은 끊임없이 스윙하며, 탁구를 생각하며 ‘인생’을 살고 있다. 이 달 말 한국 아산에서 열릴 올해 아시아 주니어&카데트 탁구선수권대회는 다음 도전무대다. 중국과 일본의 주니어들 사이에서 또 어떤 존재감을 세울지 기대된다. 인터뷰 후 시간이 흘렀으니 어쩌면 그 사이에 또 올림픽을 꿈꾸진 않았을까. 앞으로는 꿈에서도 모든 경기를 이기기 바란다. 글_한인수 | 사진 안성호 (월간탁구 2017년 6월호)
 

▲ 열심히 해서 꼭 올림픽 금메달 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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