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반갑다! 황민하!!

<피플&핑퐁>

황민하(중원고등학교 3학년)
‘부활’ 반갑다! 황민하!!

황민하가 돌아왔다. 일찍부터 최고 기대주로 남다른 주목을 받아왔던 이 선수는 초등학교 이후 고3이 된 올해가 되기 전까지 뜻밖에도 국내에서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가 돌아왔다. 단순히 우승이라는 성적을 떠나 모두가 기대했던 모습으로! 굳어진 듯했던 판도를 뒤흔든 황민하의 활약은 남자탁구의 미래 들이 더 빨리 발전하게 하는 자극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탁구인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조금 과장을 보태 ‘황민하의 부활’이다.
 

 

  지난달 초 군산 월명체육관에서 치러진 올해 중‧고종별대회에서 왼손 셰이크핸더 황민하가 참 오랜만에 남고부 챔피언이 됐다. 탁구인들은 ‘황민하의 부활’을 반겼다. 이제 고3이 된 선수에게 ‘부활’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느냐 묻는다면 ‘황민하니까’라고 답할 수 있다. 또한 ‘그동안에도 그렇게 못해왔던 것도 아닌데’라고 말한다면 역시 ‘황민하니까’라고 답할 수 있다.
  황민하는 갓 라켓을 잡은 꿈나무시절부터 일찌감치 차세대 간판으로 주목받던 기대주였다. 2013년 파리 세계선수권대회에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로 추천된 주인공이 바로 그다. 하지만 황민하는 기대했던 성장에 늘 2%가 부족했다. 항상 상위권을 지켰지만 안재현, 조승민 등 또래 라이벌 들에 자주 가렸고, 가진 재질에 비해 기술적으로도 답보상태였다.
  그런 그가 주니어 마지막 해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2월 국가상비군선발전에서 많은 실업 선배들을 제치고 1군에 진입했고, 중‧고종합에서는 팀의 단체 우승을 이끌었으며, 최근 중‧고종별에서 첫 개인 우승을 이뤄냈다. 초반에 비해 처지는 선수가 다시 회복하지 못하는 숱한 경우를 상기한다면 주니어 최강자로 다시 모습을 드러낸 황민하는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더욱이 승부세계에서 ‘라이벌’ 만큼 값진 경우도 드물다. 서로를 자극하며 기량을 향상시키고 모두의 수준도 더불어 상승한다. 굳어진 듯했던 판도를 뒤흔든 황민하의 활약이 반가운 이유도 남자탁구의 미래 들이 더 빨리 발전하게 하는 자극이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도쿄올림픽을 향해 첫 걸음을 옮긴 2017년, ‘부활’한 황민하가 반갑다. 그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자.
 

▲ 초등학교 시절 뛰어난 재질과 성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던 황민하다. 자신감을 회복했다.

▷ 탁구는 언제 어떻게 시작했나.
▶ 형이 먼저 했다(황찬하, 현재 강원대학교 2년). 부모님께서 형을 먼저 하게 했고, 같은 학교에 들어가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따라 하게 된 거다. 사실 입학 전에 형이 있던 탁구부(오정초등학교)에 갔었는데, 당시 코치 선생님께서 소질이 없다고 운동을 권하지 않으셨다. 입학한 뒤 이종훈 선생님께서 오셨고, 그때부터 제대로 시작했다.

▷ 선수를 못할 수도 있었단 말인가? 그 선수가 바로 우승하고 주목 받고 그랬는데….
▶ 2학년 때 학년별 대회부터 시작해서 초등학교 때는 우승을 여러 번 하긴 했다. 성적을 많이 내니까 주변에서 칭찬도 들었다. 그래서 나도 내가 잘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마지막 학년인 6학년 때 대우(김, 현 대전동산고)한테 결승에서 졌다. 그때부터 재현(안, 대전동산고)이나 대우 같은 친구들한테 자주 지기 시작했다(한숨, 그리고 웃음!).

▷ 사실 황민하가 처음 등장했을 때 탁구계가 술렁였었다. 선천적으로 파워를 타고 난 물건이 나왔다더라. 잘 다듬으면 세계제패 재목감이라더라. 2013년인가? 협회 추천 최연소(이 기록은 여전히 유효하다) 국가대표로 파리 세계선수권도 뛰었으니까.
▶ 솔직히 그렇게 많은 기대를 받는지 몰랐다. 세계대회도 무슨 시합인지도 몰랐고, 그냥 뛰라니까 뛴 거다. 시합도 주경기장도 아닌 보조경기장에서 두 경기 훅 지나갔다. 훈련 때는 형들 눈치도 보게 되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기억이 더 많다.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는지, 어떤 기회였는지 이제야 느낀다. 그때 알았다면 훨씬 열심히 했을 텐데 아쉽다.

▷ 그래서였나? 세계대회 다녀온 후로는 오히려 기대치만큼 성과를 내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늘 상위권에는 있었지만 개인 우승은 좀처럼 없었는데 이유가 뭐였나?
▶ 중 3때부터 재현이가 확실하게 치고 올라왔다. 변명이 되겠지만 중3 때 나는 반대로 팔을 다쳐서 수술을 하고 거의 8개월 가까이 연습을 못했다(시합 중 부상? 허탈한 얘기지만 친구들하고 샤워 중에 장난치다가 넘어져서 다쳤다. 황민하는 조금 어이없는 슬럼프를 겪어야 했던 셈이다). 그 사이 간격이 더 벌어졌고, 고등학교 올라와서는 따라잡기가 힘들었다. 지면 당연히 기분 나쁘지만 재현이와의 격차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점수 차가 좀 벌어지면 지레 포기한 적도 많았다. 재현이는 머리가 좋고 게임수도 많다. 움직임을 많이 간파 당했다.

▷ 작년엔 주니어 대표팀에서도 기복이 있었다. 아시아대회는 갔었지만 세계대회 때는 선발되지 못했다. 그 대회에서 한국 동료들이 좋은 성적을 냈다. 국내에 있는 기분 어땠나?
▶ 변명이지만 세계대회 선발전 때는 진로 문제로 훈련을 못하고 시합을 나갔다. 첫 경기를 대성(조, 대광중)이에게 지고 나서 끝까지 풀리지 않았다. 세계대회에서 동료들이 잘하는 거 보면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사실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 중학교 2학년이던 2013년 파리 세계선수권대회 때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로 출전했었다. 유남규 당시 대표팀 감독이 자신의 기록을 깬 제자를 격려했다.

  소속팀 중원고등학교 이세돈 코치는 황민하를 두고 좋은 서비스와 타고난 파워를 바탕으로 한 3구 공격 등에서 높은 결정력을 보이는 장점이 있지만 정신적인 면에서 약점이 있다고 말한다. 중요한 고비가 왔을 때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근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시합 중의 파이팅도 선수 스스로는 한다고 하는데 벤치에서 볼 때는 약하다는 평가를 내린다. 지난 중‧고종별에서 보여준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그런 면에서 유독 눈여겨 볼만했다.

▷ 올해 들어서는 상황이 좀 바뀌고 있다. 일단 주니어 최강자로 복귀했다. 혹시 스스로 뭔가 달라진 걸 느끼는 게 있나?
▶ 고3 때 목표가 우선 재현이를 이겨보자는 거였다(민하는 이 부분에서 오해 말라고 당부했다. 안재현과 황민하는 사실 절친 사이! 단지 승부세계에서의 라이벌일 뿐이다). 주변에서 실력이 줄어든 거 아니냐고 해서 솔직히 오기 같은 거도 생겼다. 이전까지는 초반에 밀리면 자주 포기했었는데, 종합대회 때 개인전에서 진 다음에는 끝까지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이기겠다보다는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 그런데 단체전에서 이겼다. 상비군선발전 때도 같은 마음이었다. 지더라도 할 수 있는 거 다해보자. 재현이 뿐만 아니라 형들하고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1군 진입에 성공하면서 자신감도 많이 생겼다. 그래서 실은 중‧고종별 개인전 결승 때도 재현이가 올라왔으면 했었다. 달라진 거? 마음가짐! 어떤 경우라도 포기하지 말자!

▷ 오랜만에 한 우승이라 부모님께서 좋아하셨을 것 같다.
▶ 물론이다. 엄청 좋아하셨다. 아버지(황인근 씨)는 육상선수 출신이다. 엄마(김정희 씨)도 탁구 기술에 관한 건 아니더라도 정신적으로 많은 조언을 해주신다. 그런데 부모님이 다시 우승하기까지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릴 줄 몰랐다고 솔직히 말씀하시더라. 사실 나도 그랬다. 많이 기다리셨으니 이젠 좀 더 편하게 경기를 볼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다.

▷ 고3 올라와서 흐름이 좋다. 주니어로 마지막인데 목표를 상향조정해도 되지 않을까?
▶ 첫 시합 우승하고, 상비군에도 들고 해서 지금까지 못했던 거 조금이라도 만회한 기분이다. 더 열심히 할 거다. 다른 친구들한테 뒤처지지 않고 더 많이 성장해서 실업무대 가더라도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가 될 거다. 주니어 마지막 해인 올해는 아시아선수권과 세계선수권 다 나가서 꼭 우승을 하고 싶다.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전국체전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못 냈는데 졸업하기 전에 꼭 학교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황민하는 신생팀 지명권에 의해 한국수자원공사 입단이 확정됐다. 아직 학생 신분이기 때문에 완전히 합류할 수는 없지만 지금도 틈만 나면 팀을 찾아서 선배들과 훈련한다. 실업에서의 훈련을 통해 최근 변화의 발판이 만들어졌을 거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수자원공사 강희찬 감독은 민하의 장래성에 대해 “4년 뒤 올림픽에는 나가야 하지 않을까?”라고 돌려 말했다.

▷ 이미 정해졌으니 말해도 될 것 같다. 한국수자원공사 입단이 확정돼있는데, 애초 품었던 희망과는 다른 결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팀에 대해서는 만족하나?
▶ 솔직히 다른 팀으로 가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처음 지명 소식을 들었을 때는 당황도 했었다. 하지만 아버지 뜻도 그렇고, 보다 일찍 주전으로 뛸 수 있는 환경이 나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빠르게 받아들였다. 실제로 팀에 와서 훈련하면서 빨리 결정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이 편하고 훈련 효과도 확실히 좋은 것 같다.

▷ 틈나는 대로 팀에 와서 훈련한다고 들었다. 실업에서의 훈련은 어떤가?
▶ 학교에서의 훈련은 볼-박스(다구연습)가 거의 없다. 가장 큰 차이는 일단 움직임과 풋-워크가 좋아졌다는 것이다. 탁구가 잘 되다보니 정신적으로도 자신감이 생겼고, 실제 시합에서도 원하는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됐다. 수자원공사는 주말에도 훈련을 쉬지 않는다. 감독님, 코치님이 쉬지 않고 나와서 볼-박스를 해주신다. 학교 수업도 해야 해서 처음엔 힘들었는데, 확실히 탁구가 좋아지는 걸 느낀 뒤로는 최선을 다해 따라가려고 하고 있다.

▷ 기술적으로 본인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요즘 보완에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은?
▶ 아무래도 서브하고 양 핸드 드라이브. 예전에는 백 드라이브를 주로 했는데 요즘은 포어 드라이브를 주전으로 하려고 신경 쓰고 있다. 심리적으로 더 안전한 백 쪽을 선호했지만 이기기 위해서는 포어 쪽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걸 실업팀 훈련 과정에서 배우고 있다. 좀 더 보완해야 하는 부분도 포어핸드다. 자세가 들린다는 지적을 자주 받는다.

▷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보기 좋다. 탁구인들도 애초에 기대했던 ‘황민하’의 모습을 확인하고 있기 때문에 반가워한다. ‘황민하’의 꿈을 듣고 싶다.
▶ 얼마 전까지도 꿈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저 실업팀에 가고 싶다는 정도가 다였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빨리 올라가서 형들 다 이기고 실업랭킹 1위에 오르는 상상도 한다. (영식이 형 각오하세요! 웃음 웃음) 국가대표가 되고 도쿄 올림픽에 나가서 메달에 도전하고 싶다. 그리고 상은(오)이 형처럼 오래 운동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계속 응원해주시면 좋겠다.
 

▲ 뛰어난 파워가 장점으로 꼽히는 황민하. 움직임도 좋아졌다. 첫 우승을 달성한 중‧고종별에서의 모습이다. 이제부터 시작!

  인터뷰는 지난달 코리아오픈이 열리기 전에 진행했다. 취재진은 사실 자신감 넘치던 황민하가 상비1군 신분으로 출전하는 코리아오픈에서도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황민하는 그 같은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다. 21세 이하 단식에서 타이완의 양헹웨이에게는 이겼지만 일본의 오이카와 미즈키에게 16강전 완패를 당했다. 오픈단식에서도 역시 일본의 요시무라 카즈히로에게 1대 4로 지면서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탁구가 잘 되고 있었기에 패배의 상처는 더 컸다. 관중석에 앉아서 멍하니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황민하를 다시 찾았을 때, 민하는 쓴 웃음과 함께 “허무해요”라고 말했다. “요시무라하고 할 때는 나쁘지 않았는데 결국 이기지 못했어요.” 취재진의 기대를 알고 있었을 민하는 자책어린 표정을 지어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늘 이길 수만은 없는 것이 승부다. 오히려 한창 자신감이 올라가고 있을 때 경험한 패배는 지나친 흥분, 또는 자만을 경계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약으로 삼을 수 있다.
  다행인 건 국내 주니어 최강자로서의 복귀를 준비하고 있는 황민하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로서는 사실 마음껏 뜻을 펼치지 못했던 얼마 전까지의 중‧고등부 무대를 거쳐 오면서 이미 숱하게 경험한 교훈이기도 할 것이다. 예상보다 빨리 벽에 부딪쳤지만 이젠 “지레 포기하지 않겠다”는 황민하. 아쉽지만 “빨리 잊고 다음 시합을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돌아온 기대주’를 반긴 탁구인들도 이제는 기다릴 준비가 돼있다. 글_한인수 | 사진 안성호 (월간탁구 2017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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