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선수권 10회 연속 출전, ‘선수 감정’을 읽는 해설 호평

제가 원래 보던 장우진 선수보다 조금 스윙이 느리다는 것은 지금 긴장을 많이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네트 앞에서 짧게 손목을 써서 백핸드 드라이브처럼 회전을 줘서 공격하는 기술인데, ITTF 국제탁구연맹 공식용어로 바나나플릭으로 나와 있습니다.”
 

▲ (월간탁구/더핑퐁=안성호 기자) 해설자로 돌아온 탁구스타 정영식.
▲ (월간탁구/더핑퐁=안성호 기자) 해설자로 돌아온 탁구스타 정영식.

꽃미남 탁구선수 정영식이 돌아왔다. 2019년 부다페스트 대회 이후 5년 만의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참가다. 탁구라켓를 내려놓은 대신 두툼한 헤드셋을 착용하고, 태극기가 선명한 국가대표 유니폼 대신 방송사 로고가 박힌 말끔한 양복을 입었다. 상대를 압도하는 강력한 파이팅대신 선수의 플레이와 심리상태를 분석하고, 어려운 탁구 기술을 설명한다. 202312월 공식은퇴한 정영식은 KBS 공식 해설위원으로 BNK부산은행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현역시절 정영식은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다. 12년간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세계탁구선수권대회만 10회 연속(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출전했고, 남자단체전에서 동메달 4(10, 12, 16, 18), 남자복식에서 동메달 2(11, 17)를 목에 걸었다. 이제는 화려했던 선수생활을 뒤로하고, 방송사 전문 해설위원으로 홈그라운드에서 개최되는 탁구 최고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감정을 읽는 해설자
은퇴하고 해설자로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소감은?
이렇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해설할 줄 몰랐는데 갑자기 하게 되어 조금 놀랐어요. 긴장도 되고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는데, 재밌게 하고 있습니다.

해설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특별한 계기는 없었고요, 감독님 편으로 해설 요청이 들어와서 하게 되었습니다.

정영식 선수는 현역 시절 세계선수권 출전 경험이 많습니다. 2010년 모스크바 대회부터 10회 연속 출전했는데, 해설자로 경기를 보니까 선수시절과 비교해 느낌이 어떤가요?
선수로 출전하는 건 아니니까 긴장감은 확실히 덜합니다. 경기를 보고 있으면 이렇게 큰 대회에서 팬들과 함께하는 것에 대한 부러움도 있고, 선수들의 부담감을 아니까 안타까움이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 대표팀 맏형으로 출전하고 있는 이상수 선수는 정영식 선수와 경쟁자이자 친한 형 동생 사이였습니다. 동생은 먼저 은퇴했지만, 형인 이상수 선수는 국가대표로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하고 있습니다. 이상수 선수가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저랑 같이 뛰던 이상수 선수가 뛰는 걸 보면 나도 아직 뛸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고, 상수 형이 그냥 멋있게 보여요. 상수 형이 후배들한테 밀릴 수 있는 나이잖아요. 근데 노력으로 자기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다는 게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 해설자로 경기를 보면 선수들의 어떤 점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까?
플레이하는 선수들의 감정이 눈에 먼저 들어와요. 저도 큰 대회 출전한 선수들의 상황을 많이 겪어봤으니까 저 선수가 지금 얼마나 긴장했는지, 마음이 편한 상태인지 바로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선수들의 감정 상태가 읽히면 해설로 시청자들에게 전달하시나요?
네 그런 부분들까지 다 해설을 하려고해요. 제가 불과 얼마 전까지 국가대표로 경기에 출전했잖아요. 선수들의 감정까지 전달해야 경기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 해설자로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됩니까?
해설이 없을 때는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고요, 해설 일정이 잡히면 경기 시작 전까지 한국과 상대 팀의 역대전적을 확인하고, 출전선수들의 경기 스타일을 분석합니다. 그리고 탁구용어 공부를 합니다. 탁구기술 해설은 제가 선수 출신이기 때문에 조금만 준비해도 괜찮은데, 오히려 탁구용어는 선수 시절 사용한 용어가 정확하지 않은 게 많더군요. 해설 들어가기 전에 국제탁구연맹 홈페이지에 들어가 정확한 용어를 몇 번씩 확인하고 갑니다. 해설 할 때 드라이브는 톱스핀, 커트는 푸시로 정확히 표현하려 애씁니다.

▷ 한국 선수들 경기 할 때 홈팬들의 열광적 응원이 들리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한 번씩 다시 선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선수 그만두고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해설, 코치, 방송일 등 새로운 일을 경험하는 것도 좋아요.

▷ 해설하면서 한국 선수들 중 가장 인상적인 선수가 있었나요?
전지희 선수요.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시키면서 아주 영리하게 플레이를 잘했어요. 전지희 선수는 포어핸드가 아주 강하고, 백핸드가 조금 약한 편인데, 포어핸드 위주 플레이로 상대를 잘 압박했어요.

▷ 해설자로서 냉정하게 예상하는 한국대표팀 성적은요?
냉정하게 남녀 모두 3위 실력인 것 같아요. 여자는 아쉽게도 8강에서 중국을 만나지만 실망하지 말고 열심히 뛰어주면 좋겠어요. 언제고 결승 진출도 가능한 날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언제나 목표는 우승입니다.
 

▲ (월간탁구/더핑퐁=안성호 기자) 중계 콤비 이동근 캐스터와 함께.
▲ (월간탁구/더핑퐁=안성호 기자) 중계 콤비 이동근 캐스터와 함께.

갑작스런 은퇴와 코치생활

나이를 감안해도 한창 선수생활 할 시기에 갑자기 은퇴를 선택한 이유는 뭡니까?
저는 운동하면서 팬들 사랑도 많이 받고 행복한 선수였어요. 왜 연예인들 보면 방송생활 하다 심리적으로 힘들어서 그만두시는 분들 계시잖아요. 저 역시 성적 때문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크게 힘든 순간이 있었습니다. 불안감이 컸어요.

아버님도 생활체육 탁구를 오래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가족들 반응은 어땠습니까?
처음에는 되게 아쉬워하셨죠. 아버지랑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나중에는 아버지도 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셨어요.

 은퇴하시고, 소속팀 코치가 되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정영식 선수는 항상 경기에 출전하는 주전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지도하는 선수는 주전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선수들에게는 주로 어떤 말을 해줍니까?
사실 저도 어렸을 때부터 바로 에이스가 된 건 아니고, 많은 경쟁을 통해 에이스가 되었습니다. 노력하면 된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에 그 점을 강조합니다. 기술적으로는 어떤 수준에 빨리 도달할 수 있는 지름길 같은 걸 알려주고요,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면 제가 힘들었던 경험을 들려주며 용기를 줍니다.

 코치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뭡니까?
제가 사람과 만나 잘 어울리는 성격이 아니에요. 현역 때는 운동하고 쉬는 날에 집에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치는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잖아요. 인원은 적지만 선수들과 계속 대화하고 설득해야 합니다. 가르치는 선수들과 제가 생각이 다르면 내 말이 맞나 고민을 해야 합니다. 이런 점들이 한 번씩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정영식 선수는 어떤 코치가 되고 싶습니까?
저는 선수들에게 내가 코치니까, 현역 시절 내가 탁구를 잘했으니까 내 말이 무조건 맞다 이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선수들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하고, 납득하지 못하더라도 제가 설득시킬 수 있는 코치가 되고 싶습니다.

 코치가 마냥 좋을 수는 없잖아요. 야단쳐야 할 경우도 있을 텐데 그 때는 어떻게 합니까?
사실 그게 좀 어려워요. 제가 남한테 뭐라고 못하는 성격이라, 야단치면 혼자 있을 때 계속 생각나고 미안해지거든요. 그래도 잘못된 점이 있으면 화는 내지 않지만 반드시 얘기는 합니다. 저는 선수들에게 잔소리가 많은 편이에요. 짜증이나 화를 내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이야기를 많이 해요.
 

▲ (월간탁구/더핑퐁=안성호 기자) 경기장을 보면 아직 피가 끓는다.
▲ (월간탁구/더핑퐁=안성호 기자) 경기장을 보면 아직 피가 끓는다.

정영식과 세계대회

 정영식 선수는 데뷔했을 때 가장 주목받는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선수 생활을 하며 한국 최고 선수에 올랐습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탁구선수로서 최고의 강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저는 성격이 매우 섬세한 편입니다. 경기 중 플레이는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고 분석해 일지에 기록했습니다. 이런 섬세한 분석 능력이 저의 최고 강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선수 생활 때 적어둔 일지가 선수들 가르칠 때, 해설할 때 큰 도움이 됩니다.

 2010년 모스크바 대회 이후로 세계대회만 10회 연속 출전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요?
2018년 할름스타드 대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때 한국이 8강에서 일본을 31로 이기고 4강 갈 때 제가 두 경기를 이겼어요. 경기 끝나고, 지인들에게 축하 전화오고, 인터넷 기사에는 칭찬 댓글만 달리고, 마치 제가 영웅이 된 듯한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다음날 독일하고 4강전 하는데 제가 2패를 했어요. 한국은 23으로 지고요. 결승 갈 찬스였는데 너무 속상했어요. 동료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탁구 팬들에게도 너무 미안했어요. 하루 만에 인터넷 기사에도 욕이 엄청 적혀있었어요. 기분이 좋다가도 당시 경기만 생각하면 기분이 안 좋아져요.

 탁구팬들은 정영식 선수하면 리우의 눈물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당시 상황 좀 설명해 주세요.
리우올림픽에서 제가 마롱을 이기다 역전 당했어요. 경기 끝나고, 이런 기회는 반드시 잡아야 하는 데 왜 나는 이런 기회를 잡지 못하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났어요.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올림픽 같은 큰 대회는 노력, 재능, 운 삼박자가 맞아야 성적을 내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정영식 선수가 출전했던 세계대회들과 2024 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비교하면 경기장 시설이나 대회진행이 어떻습니까?
제가 출전했던 다른 대회와 비교했을 때 경기장 시설, 경기 운영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습니다. 최고예요. 제가 한국 사람이라 이렇게 말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 마지막으로 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보러 경기장을 찾는 탁구팬들에게 한마디.
일단 대회 개최를 위해서 지금까지 많은 노력을 하신 탁구 관계자분들께 감사 말씀드립니다. 대표 선수들도 대회 전에 엄청난 노력을 하거든요. 근데 성적은 노력과 다르게 나올 수도 있어요. 탁구팬 분들은 열심히 응원하면서 그냥 탁구 자체를 즐겨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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