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표현하는 또 하나의 방법

낯선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보통 상대방의 이름을 묻고, 나이를 묻고, 고향을 묻곤 한다. 그리고 일명 ‘호구조사’라고 부르기도 하는 일련의 과정 끝에는 상대방의 취미나 특기에 대한 질문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것은 상대방을 알고 싶어서 묻는 말이라기보다는 낯선 사람과 있는 불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당한 화젯거리를 찾는 시도인 경우가 많다. 어떤 식으로든 말꼬를 트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공통의 관심사를 만나고 어색한 시간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뜻밖에도 상대방이 가진 취미가 나의 관심사와 맞아떨어진다면 쉽게 유대관계를 맺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평범해 보였던 사람이 의외의 취미를 가진 것을 알게 될 때 상대방에 대한 호감이 생겨나기도 한다. 취미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던 성격이나 취향을 대변하는 때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사 면접 시 빠지지 않는 것도 취미에 대한 질문이다. 잠깐의 면접과 몇 장의 서류를 통해서는 알 수 없는 구직자의 장점이나 능력을 취미를 통해 알아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취미가 무엇입니까?’ 하는 질문에 돌아오는 가장 흔한 대답은 독서, 영화, 음악 감상 정도다. 막상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조차도 ‘취미’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의 관심이 있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삶의 질이 높아지고 개인적인 시간도 많아지면서 자신이 좋아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 시간과 돈을 쓰는 일이 많아졌다. 사람들은 이제 취미로 피겨를 수집하고, 요리를 만들고, 해금을 연주하고, 스쿠버다이빙을 하고, 탁구를 하고, 암벽등반을 한다. 취미란 나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며, 온전히 자기의 즐거움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도 커다란 활력소가 되어준다는 사회적 인식이 공유되고 있는 것이다.

collection - 수집, 가장 쉽게 시작하는 취미

수집은 우리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이다. 특히 수집의 대명사로 불리는 우표 수집은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본 일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은 이메일이나 스마트폰을 통해서 바로바로 편지를 보내고, 문자를 주고받지만, 손 편지를 쓰던 시절엔 우표와 크리스마스 씰을 사기 위해 우체국을 찾는 사람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수신한 편지봉투에 붙어있는 우표를 깔끔하게 분리하는 방법에 대한 정보를 나누거나 수집한 우표를 카테고리별, 연도별로 정리해 놓고 서로 자랑하는 일도 많았다. 우표뿐만 아니라 영화 티켓, 공연 팸플릿, 기념주화 등을 수집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최근에 수집품으로 인기 있는 것은 영화나 만화, 게임 등에 나오는 캐릭터를 축소해 재현한 인형인 피겨나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빈티지 소품 등이다. 그러나 취미와 수집이라는 것이 자신만의 만족과 즐거움을 위한 것인 만큼 특정한 물건을 수집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자격증이나 정보와 같은 무형의 것을 수집하거나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물건이라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모으는 수집가들도 많아졌다. 남에겐 하찮아 보이는 물건이라도 수집가에겐 함부로 객관적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소중한 물건이 되기 때문이다. 장식장의 양주 미니어처, 몇 개인지 알 수 없는 가지각색의 스카프, 찬장을 꽉 채운 다양한 그릇들을 떠올려보자. 어쩌면 당신도 뛰어난 수집가의 기질을 타고난 사람일지도 모른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피겨 중의 하나인 브릭 베어.
영화, 애니매이션 캐릭터 피겨도 인기 수집품.

creation - 만들기, 누구에게나 창작의 본능은 있다

‘기적을 그리다’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면 50살이 넘은 이란의 한 여성이 손자의 숙제를 돕다가 자신에게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나이 9살에 28살의 남자와 결혼해 평생을 문맹으로 살아야 했던 그녀는 가부장적인 남편 몰래 아마추어 화가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자신을 찾아가고 좀 더 큰 세상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영화는 그렇게 억눌림 받던 여성으로서의 삶에서 벗어나 자아를 찾아간다는 이야기였지만, 한 번도 그림을 배워본 적이 없던 할머니가 뛰어난 창작력을 발휘하는 모습이 더 눈길을 끌었다.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직접 만들고 싶어하는 욕구와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욕구를 발산하는 것이 좋은 취미가 되기도 한다. 보통 ‘창작’이라고 하면 거창한 예술가적 감성을 떠올리기 쉽지만 어린 어린아이들이 장난감 블록을 크기별로, 색깔별로 맞추는 것조차 창작이라고 생각하면 좀 더 접근하기 쉬워진다. 그리고 특별한 것이 아니더라도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물건의 완성과 함께 느끼던 희열을 기억할 것이다. 그림도 좋고, 글쓰기도 좋고, 악기 연주도 좋다. 아니 좀 더 영역을 확장시켜 종이접기를 하고, 뜨개질을 하고, 새로운 요리법을 만들어보자. 당신이 만드는 모든 것은 창조이며 그 창조적인 활동이 당신을 표현하는 훌륭한 취미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영화 '기적을 그리다'의 한 장면.
당신이 하는 모든 행위에는 당신만의 창의력이 깃들어있다.

 

action - 운동,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는 도시 생활자가 많아지면서 운동은 이제 건강을 위한 필수 항목이 되었다. 그 때문에 몸을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람도 높아진 혈압과 혈당, 늘어난 뱃살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의무적으로 스포츠 클럽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하지만 이들과는 반대로 운동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말 그대로 운동을 취미 삼아 즐기는 사람들이다. 그 때문에 최근엔 취미로 즐기는 운동의 종류가 과거보다는 다양해지고 있다. 한때 귀족 스포츠라 불리던 운동도 대중화 바람을 타고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게 되면서 승마, 패러글라이딩, 스쿠버다이빙, 스포츠 댄스 등을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생활스포츠 문화의 확산으로 탁구, 배드민턴, 검도 등을 즐기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 운동을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의 특징은 운동을 그저 건강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몸을 움직이고 자연을 느끼며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다스리고 스스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는 사람들인 것이다.

자전거 타기는 남녀 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운동이다.


취미로 시작한 일에 재능은 없어도 상관없다. 다행스럽게도 취미란 잘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취미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평소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한번 자문해보자.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나의 취미일지도 모른다.

글_서미순(월간 탁구 2013년 1월호 게재)

 

저작권자 © 더 핑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