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과 여유 사이 줄타기, 개그도 숨 막히는 랠리처럼!!”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개그맨 박성호를 안다. 그리고 탁구인이라면 누구나 다 그가 꽤 열정적인 탁구인이라는 것을 안다. 이미 여러 차례 TV 속에서 훌륭한 탁구 솜씨를 선보여온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연예인 박성호로서 큰 탁구대회의 이벤트성 경기를 펼치기도 하지만, 선수 박성호로서 지역대회에 참가하여 진지하게 경기에 임하는 열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연예인과의 짧은 인터뷰를 위해 많은 시간을 써본 적이 있다. 얼굴을 맞대고 오랜 시간 대화를 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단, 30분의 만남과 몇 컷의 사진, 때로는 서면을 통한 인터뷰를 위해서 수십 통의 전화와 이메일을 보내야만 했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요즘 제일 잘 나가는 개그맨 박성호와의 인터뷰 기획에 덜컥 겁부터 집어먹었다. 이번엔 몇 통의 전화와 몇 번의 사전 이메일이 오갈까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모든 문제는 전화 한 통으로 해결되었다. 월간탁구라는 이름이 모처럼 고속도로 위의 하이패스 같은 힘을 발휘한 것이다. 그리고 그건 개그맨 박성호가 대단한 열정의 탁구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촬영을 위해 조명을 세팅하고 카메라를 정리하는 잠깐의 짬에도 "저, 잠깐 탁구 좀 하고 와도 괜찮죠?"라고 묻곤 했던 그는 갸루상이나 앵그리 버드의 분장을 하고 4차원적 대사를 읊어대곤 하던 TV 속의 인물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탁구 유니폼에 라켓을 들고 탁구대 앞에 서 있던 그가 모처럼 자신의 본래 모습에 가장 가까운 옷을 갖춰 입은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면 과장일까?

88올림픽과 출발 드림팀
  “제 또래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처음 탁구를 접하고 직접 라켓까지 손에 쥐게 된 건 88올림픽 때문이었어요. 그때 정말 대단했잖아요. 올림픽 메달 불모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가 갑자기 금맥이라도 찾은 듯 메달을 거머쥐는데 어린 나이였지만 감동 그 자체였지요. 특히 탁구 경기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의 연속이었기에 더더욱 열광할 수밖에 없었고요. 어릴 때부터 워낙 운동을 좋아해서 안 해본 운동이 없을 정도긴 했지만 88올림픽 열풍과 함께 탁구에 푹 빠져 탁구장을 들락거리기 시작했어요. 당시로는 드물게 개인 라켓까지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니까요. 재밌는 건 아직도 그 라켓의 커버를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손에 들고 다니던 라켓은 어디론가 행방불명되고 말았지만 말입니다.”
  나름 자신의 라켓이 꽤 고급이었다며 자랑하듯 말하는 그의 얼굴에 웃음이 묻어난다. 어린 시절, 그렇게 탁구와 인연을 맺었지만, 다시 탁구를 시작하게 된 것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2010년 여름에 동료 개그맨 정종철이 연예인 탁구단의 창단 소식을 전하며 함께 탁구를 해보자는 제의를 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학창 시절에 즐겼던 탁구에 대한 향수에 흔쾌히 승낙을 했지만 그래도 탁구단의 일원이 되었으니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춰야겠다는 생각에 여의도 KBS 내에 있는 탁구장에서 연습을 시작했다.
  그렇게 방송 관계자들이 오가는 장소에서 탁구를 하던 중 마침 ‘출발 드림팀’이란 프로그램에서 탁구 대결을 기획하고 있던 PD의 눈에 띄게 되었고, 같이 녹화를 해보자는 제의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호기롭게 출연을 약속하고 나니 부족한 자신의 탁구 실력이 마음에 걸렸다. 다행히 김택수 감독으로부터 몇 개월간 지도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그저 함께하는 훈련만으로 만족할 수 없어 혼자 탁구장을 다니며 실력을 쌓았다. 그런 노력 덕분일까? 막상 탁구 대결이 시작되자 ‘출발 드림팀’의 만능 스포츠맨으로 손꼽히는 상추(가수)와 듀스를 거듭한 끝에 우승을 거머쥐게 되었다.
  “지금 보면 참 부끄러운 실력이었는데 우승까지 하게 된 건 운이 좋았어요. 제가 잘했다기보다는 함께 대결을 펼쳤던 친구들의 탁구 실력이 부족했거든요. 하하하. 하지만 ‘출발 드림팀’에서의 우승이 탁구에 재미를 붙이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 후론 본격적으로 탁구를 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사실 어린 시절에 몸이 약한 편이어서 의식적으로 운동을 많이 해왔어요. 운동선수에 대한 약간의 로망이 있기도 했고요. 그래서 축구부터 아이스하키까지 해보지 않은 운동이 없을 정도예요. 하지만 그런 운동들은 여러 명이 모여야만 할 수 있는 운동이기 때문에 자주하기는 힘들더군요. 몸에 둘러야하는 무거운 보호 장구들도 점점 거추장스럽고요. 하지만 탁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즐길 수 있는 운동이잖아요. 저는 시간만 허락한다면 집 근처의 탁구장에서 일주일 내내 탁구를 하기도 해요. 게다가 항상 라켓을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스케줄 중에도 짬이 나면 눈에 보이는 탁구장에 불쑥 들어가서 게임을 청하기도 하죠.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탁구를 할 때도 좋은 게 처음 가보는 탁구장이라도 모두들 반가워해주시며 즐겁게 시합에 응해주세요.”
  넉살 좋게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탁구시합을 청하는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지만 사실 그는 친한 탁구선수들에겐 오히려 탁구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편이란다. 한때 그를 가르쳤던 김택수 감독뿐만 아니라 유남규, 문현정 선수와도 친분이 있지만 탁구의 상대가 되어달라고 청하지는 않는다. 개그맨인 그에게 언제나 웃음을 기대하는 대중들의 시선에 부담감을 느껴본 그로서는 프로 탁구인인 그들에게 탁구를 요구한다는 것이 오히려 조심스럽다는 이유에서다.

▲ 보통 집에서 가까운 고양시의 탁구장에서 탁구를 하지만 차가 덜 막히는 월요일에 시간이 나면 잠실운동장까지 오기도 한다.

박성호의 개그, 박성호의 탁구
  인터뷰를 준비하며 박성호에 대해 알게 된 가장 의외의 일은 그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는 사실이다. 개그맨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방송이나 연기와 관련된 전공을 택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그의 과거 행보가 어쩐지 흥미롭다.
  "제 입으로 말하기 쑥스럽지만 저는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들을 웃기는 일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저로 인해 웃는 모습을 보면 기분도 무척이나 좋았고요. 대학 진학은 그런 자질과는 상관없던 미대로 했지만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끼를 주체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대학 시절부터 개그맨 시험을 보기 시작했고 응모했던 세 번째 시험을 통해 겨우 공채 개그맨이 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미술과 개그도 비슷한 점이 참 많아요. 둘 다 무척이나 창조적인 일이고 순발력을 필요로 하거든요. 게다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일이라는 공통점도 있고요. 그런데 탁구를 하면서 느끼는 건 탁구 역시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개그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거예요."
  개그와 탁구? 도저히 매치가 되지 않아 멀뚱멀뚱 눈만 깜빡 거렸더니 뜻밖에 ‘멘탈’이란 단어를 입에 올린다. 탁구란 그에게 멘탈을 컨트롤하는 방법을 배우는 운동이라고 했다. 경기가 잘 풀린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음 게임에서부터 시합은 무너져버린다. 반대로 잘해보겠다는 욕심에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시합을 망쳐버리기도 한다. 무대 위에 서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적당한 긴장과 여유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은 게 바로 개그맨의 무대라는 것이다. 개그콘서트의 최고참으로서 큰 긴장감 없이 연기하는 사람이라고 느껴왔던 그에게도 여전히 무대는 설레는 꿈의 장소인 동시에 스트레스와 긴장의 장소인가보다.

▲ 박성호는 탤런트 정은표에 이은 연예인 탁구단장이기도 하다. 연예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각자 다르고 불규칙한 스케줄 때문에 자주 만나 시합을 할 수는 없지만, 연예인으로서 탁구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힘을 나누고 싶다는 그다. 사진은 지난 2010년 연예인탁구단 창단식 장면.

박성호만의 페이스대로 간다
  오랫동안 개그콘서트의 무대에서만 열정을 쏟아오던 그도 최근에는 활동 영역을 넓혀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가 출연 중인 ‘인간의 조건’은 스마트폰, 쓰레기, 자동차 등 현대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들과 결별한 일주일간의 삶에 도전해보는 프로그램이다. 이미 많은 개그콘서트 출신의 개그맨들이 예능으로 진출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매우 늦은 감이 있지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눈치다.
  “운동도 그렇지만 커리어나 인생도 자기 페이스대로 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일단 ‘내가 잘하는 일에 집중하자’는 생각이 커요. 그리고 요즘 사람들이 저를 보고 ‘개콘 서열 1위’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어쩌면 그게 진정 제 몫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사실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에요.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대중 앞에 서는 것이다 보니 인기나 주위 사람들의 목소리에 많이 흔들리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예능을 하지 않겠다는 소리는 아니에요. 그저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성격을 떠나 먼저 그 과정들을 즐기고 싶어요. 누군가가 그랬으니까 나도 그래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제가 먼저 즐길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거든요. 특히 저는 개그맨으로서 가진 저만의 목표를 현실화하고 싶은 꿈도 있어요. 그저 가볍게 웃고 잊어버릴 수 있는 웃음도 좋지만 나름의 철학이 있는 웃음을 통해 긴 여운으로 사람들의 마음까지 움직이고 싶거든요.”
  진지함이 묻어있는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개그맨 박성호가 해온 역할들은 그가 하지 않았다면 성공하기 어려운 캐릭터들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운동권의 인물이나 야권 정치인의 이미지를 가져와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 위에 덧입히고 그를 통해 대중들에게 속 시원한 웃음을 제공하곤 했다. 최근까지 연기했던 갸루상의 캐릭터도 그의 입을 통해 쏟아지는 뼈있는 대사들이 아니었다면 그저 흔한 분장쇼로 끝나버렸을지 모른다.

▲ 지난해 코리아오픈에서 에바다학교 정혜미 선수와 번외경기도 펼쳤다. 왼쪽은 수화통역 중인 권오일 에바다학교 교장.

  문득 그의 다음 계획이 궁금해진다. 혹시 또 다른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사람들을 웃게 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슬쩍 힌트라도 달라고 졸라본다.
  “일단 코앞에 닥친 일들부터 열심히 해야지요. 당장 이번 주 개그콘서트 녹화를 하고, 곧 있을 ‘인간의 조건’ 합숙도 준비해야 하고요. 아, 조만간 새로 시작하는 예능에서 탁구를 주제로 녹화를 할 것 같아 탁구 연습도 좀 해야 해요. 하지만 무엇보다 제발 지역 4부에서 뛰는 빨리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처참했다던 자신의 지역 대회 출전기를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은 밝다. 어리버리하기만 했다던 첫 출전과 예선 통과조차 못했던 두 번째 출전에 대해 푸념하듯 말하지만 일도 탁구도 자기가 만들어가는 속도에 만족하는 눈치다. 소위 말하는 LTE급 속도의 전진은 아니지만 버퍼링 없이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는 그냥 개그맨이라는 직업을 가진, 여러분과 똑같은 생활 탁구인입니다. 그런 동지의식으로 꾸준히 함께 탁구를 즐겼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갑자기 탁구장에서 저를 만나도 놀라지 마시고 한 수 가르쳐 주세요. 여러분도 모두 즐탁하시구요.”

글_서미순 | 사진_안성호

(월간탁구 2013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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