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마지막 선택’

망중한? 은퇴 준비하는 김경아.

인생은 아이러니다
  그녀는 늘 ‘마지막’과 싸웠다. 소위 ‘실업 사춘기’에 시달렸던 스물세 살 무렵을 첫 번째 기로였다고 기억한다. 선배들의 그늘에 가려 국가대표의 희망이 보이지 않던 그 시절 그녀는 팀을 무단이탈, 선수생활을 끝내려 했던 적이 있었다. 어머니와, 현재는 국회의원이 된 당시 소속팀(현대) 이에리사 감독의 설득이 없었다면 지금의 김경아는 없었을지 모른다. 재학 중이던 용인대 졸업까지라는 단서를 달고 운동을 재개했는데,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새기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다. 남은 2년만이라도 최선을 다해보자는 다짐이었다. 용인대 졸업을 앞둔 2002년은 한국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린 해였다. 그러니까 그해 3월의 대표선발전이 그녀가 속으로 생각했던 ‘마지막’ 도전이었던 셈이다.
  “그때만큼 열심히 한 적도 없었던 것 같아요. 정말로 최선을 다했죠. 하지만 그 선발전에서도 대표에 뽑히지 못했어요. 두 명을 뽑는데 3위를 했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아무래도 국가대표는 내 운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인생은 아이러니다. 아쉽게 대표 꿈을 접은 뒤 전형 특성상 훈련 파트너로 태릉을 드나들면서도 결국 은퇴를 떠올리던 그녀에게 사건이 벌어진다. 대표팀 주전들이 아시안게임에 집중하는 사이 실업선발로 출전한 프로투어 일본오픈에서 그녀가 우승을 해버린 것이다. 선발전을 준비하면서 올라선 기량은 결승전에서 당시 유럽 최강이던 슈테프(루마니아)를 꺾는데 큰 힘이 되어줬다. 말 그대로 ‘한 단계“ 올라선 그녀는 이어진 오픈대회들에서도 보로스(크로아티아), 우메무라(일본) 등 당시 세계랭킹 10위권 이내의 강자들을 연파했다. 그녀의 마지막 도전은 결과적으로 실패였지만 그렇게 전혀 예상치 않았던 결실로 열매 맺었다.
  30위권이던 김경아의 세계랭킹은 우승에 힘입어 10위권대로 진입하며 국내 선수 중에서는 은퇴를 앞두고 있던 류지혜 다음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탁구인들의 뇌리에는 그녀가 세계적인 강자들을 이길 수 있는 ‘국제용’ 선수라는 인식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해의 랭킹으로 올림픽 출전쿼터가 주어지면서 이전까지 한 번도 대표팀 주전으로 뛰어본 적이 없었던 그녀가 아테네행 티켓을 거머쥐게 되었을 때 탁구인들은 누구 하나 토를 달지 않았다. 예정했던 ‘마지막’을 넘어선 순간, 그녀의 탁구인생은 또 다른 ‘마지막’ 목표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아테네 올림픽에서 수비수 최초의 동메달을 획득했다.

 한국 여자탁구를 지켜온 ‘깎신’
  “아시안게임 선발전을 준비하면서 노력하면 어떻게든 길이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였을 거예요. 다시 이를 악물었죠. 아테네 올림픽을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대표선수로는 처음이나 다름없었으니 언론에서 ‘신예’라고 쓰곤 했지만 이미 스물여섯이었거든요.”
  그녀는 다시 한 번 시작했던 ‘마지막’ 도전의 하나하나를 그로부터 두 번의 올림픽이 더 지나간 지금까지도 또렷이 기억한다. 올림픽을 79일 남겨두고 쓰기 시작한 훈련일지 첫 머리에 ‘세계에서 제일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자’고 적었던 문구, 이에리사·현정화 당시 코칭스태프와 함께 휴식 없이 매진했던 훈련들, 하위랭커와 붙었지만 첫 경기에서의 긴장감으로 고전했던 기억, 후쿠하라(일본)와 티에야나(홍콩)를 꺾고 올라갔던 승리의 쾌감, 장이닝(중국)에 당한 아쉬운 패배, 리지아웨이(싱가포르)를 누르고 마침내 따냈던 수비전형 최초의 올림픽 단식 메달, ‘깎신’의 등장을 반기던 수많은 팬들의 환호!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그녀가 4년 뒤의 베이징에서, 8년 뒤의 런던에서 계속 쉼 없는 커트를 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짐작이나 했었을까. 아테네 올림픽에 함께 출전했던 선배들 이은실, 석은미, 그리고 ‘환상의 복식파트너’였던 동기 김복래 등이 먼저 은퇴하고 그녀는 혼자서 한국 대표팀을 끌고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무엇보다도 이전까지 그녀 스스로 상정했던 ‘마지막’이라는 목표는 이제 그녀 혼자 결정할 수 없는 사명감의 무게를 더했다.
  실제로 아테네 이후 8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녀는 비슷한 전철을 밟아온 후배 박미영과 새로운 짝으로 수비듀오의 역사를 개척해 나갔고, 후배선수들과 더불어 국제무대에서 한국 탁구의 맥을 이어갔다. 협회의 혼란기에 한국여자가 세계 10위권 밖으로 떨어지는 수모를 관중석에서 지켜보기도 했고, 안정화 이후 출전한 베이징올림픽에서는 단체전 동메달을 견인하며 위신을 회복시켰다. 지난해 ITTF 월드투어들과 도르트문트 세계대회(3위)에서의 맹활약은 어느새 3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마저 잊게 만들 정도였다.
  런던에선 아쉽게 메달을 따내지 못했지만 지난 10년간 그녀로 인해 버틸 수 있었던 한국 탁구를 생각한다면 누구도 탓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녀는 출전하는 대회마다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뛰었다. 하지만 대안을 육성해내지 못했던 한국 탁구의 어려운 현실은 계속해서 ‘김경아’를 필요로 했다.

나이를 잊은 그녀의 맹활약은 언제나 팬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99%에 만족하는 선수가 되지 말라
  “차라리 일찍 그만두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해요. 후배들이 성장할 시간이 저 때문에 늦어진 것 아닌가 싶기도 하거든요. 개인적으로도 현역 생활이 길었던 만큼 선수 이후 출발이 늦어진 것이기도 하고요. 지도자로 자리를 잡은 동료들을 보면 더 그렇죠. 물론 후회하는 건 아니에요. 언제나 기로에 있었지만 그때마다 저는 최선의 선택을 해왔어요. 아쉬운 것은 정말 마지막이 된 시합을 잘하고 그만두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거죠.”
  그녀가 현역을 마감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니까 선수생활만 무려 28년을 지탱해온 그녀는 세계 탁구계에 수비전형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은 독보적인 선수다. 속공과 드라이브를 앞세운 공격선수들이 지배하던 탁구계는 ‘김경아’의 등장 이후 전형의 질서를 새로 짰다. 세계랭킹이 4위까지 올랐었던 역대 유일의 수비수! 나이에 따른 물리적 한계 때문이든, 세대교체가 대두되는 현실 때문이든 그녀 앞에 놓인 또 한 번의 선택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을 수밖에 없다. ‘김경아’ 없는 한국 여자탁구는 여전히 상상하기도 쉽지 않다.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그녀에게 ‘은퇴’는 오래 전부터 익숙해진 단어지만 눈을 돌려볼수록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어쨌든 그녀는 떠날 것이고, 그녀의 은퇴는 곧 한국 여자탁구가 이제야말로 새로운 출발선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가 염두에 두고 몰입해왔던 ‘마지막’의 각오는 이제 뒤를 이어갈 후배 선수들에게 주어진 과제가 될 것이다. 선수생활을 돌아보며 그녀가 남기는 조언은 그래서 더 무겁게 다가온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스스로 짐을 짊어지겠다는 마음가짐이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주전이 아니라고 해서 마음을 풀어버리고 불만을 갖거나 게을리 하기 시작하면 스스로 선수로서의 자격을 포기하게 되는 거죠. 저도 늦게 깨달은 사실이지만 치열하게 준비하면서 기다리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또한 인생은 순간의 각오로 바뀔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현재 99%의 물이 차있고 나머지 1%를 넣어서 쏟아지느냐 안 쏟아지느냐의 차이가 선수로서의 운명을 가른다’는 예를 들었다. 자신이 대표선수가 되기 위해 뛰었던 10년 전의 모습을 오버랩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은 철학적으로 들리지만 99%를 채우고 있는 선수라면 1%를 더하기 위해 노력해볼 일이다. 아이러니한 순간에 갑자기 찾아온다 할지라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잡을 수 없는 것이 ‘기회’다.

탁구계는 그녀의 또 다른 선택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자신과 같은 전형인 소속팀 후배 김단비에게 조언을 해주고 있다.

또 다른 선택을 기다린다
  새해 들어 우리 나이로 서른일곱, 언제나 ‘마지막’처럼, 그러면서도 자신의 전형처럼 끈질기게 선수생활을 이어왔던 김경아가 마침내 은퇴를 앞두고 있다. 선수로서는 정말로 마지막 선택이 되겠지만 그녀가 탁구계에서 해야 할 일들은 아직도 많다. 독보적인 수비수로서의 비책을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일이 어쩌면 그 첫 번째가 되지 않을까. 그녀는 우선 가정으로 돌아가 남편 박명규 씨와 더불어 아이도 낳고 선수생활 동안 취하지 못했던 휴식을 갖게 될 거라고 말했지만, 탁구계는 아마도 이 ‘귀한’ 선수의 빠른 선택을 조급하게 기다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오래 수고했던 김경아 선수의 앞날에 무궁한 행운을 기원한다.
  “올림픽을 세 번이나 나가는 동안 과정 중에 도움 주시고 지도를 아끼지 않았던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에리사 의원님, 이유성 전무님, 박일순 선생님, 현정화, 강희찬, 문규민, 추교성 선생님, 그동안 속도 많이 썩혔는데 죄송하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어요. 선수생활을 그만두더라도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탁구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글_한인수 | 사진_안성호

(월간탁구 201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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