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환의 백과사전

 

10대 선수 주축 세계대회 대비 세대교체 상비군 선발

1979년 10월부터 네 차례의 선발전과 두 차례의 평가전, 그리고 협회 이사회의 심의를 거쳐 1981년 유고 노비사드에서 개최되는 제36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대비 국가대표 상비군의 윤곽이 확정되었다.

1981년 1월 15일, 최종평가전 결과를 놓고 열린 이사회는 상비군 20명(남 10, 여 10)과 새로운 코칭스태프 5명을 최종으로 선발했다. 당초 계획대로 협회는 최종평가전에서 성적순 6명(남 3, 여 3) 외에 이사회 추천으로 6명(남 3, 여 3)을 보강, 국가 대표급 1군을 구성하고 유망주 8명(남 4, 여 4)으로 2군을 만들어 운영하는 한편 최종 대표선수는 1,2군 중에서 훈련 중 수시로 평가전을 열어 선발하기로 했다.

또한 협회는 박성인 경기이사를 총감독으로 선발하고 훈련방안을 마련하는 대로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가기로 했으며, 2월말쯤 열리는 서독 오픈선수권대회에는 남자는 선발팀, 여자는 동아건설 단일팀을 파견시키기로 결정했다.

상비군 남자선수는 평균 연령 19.8세, 여자는 19.1세로 나타나 남녀모두 10대 선수로 세대교체 되었다. 이번 선발에 있어서 또 한 특기할 점은 1977년 버밍엄 세계선수권대회 이후 은퇴했던 이에리사 선수가 다시 현역에 복귀, 상비권에 들어왔다는 점이었다. 특유의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는 그녀는 여자팀의 리더로서 활약이 기대되었다.

유고 노비사드에서 정상 탈환 내지 준우승 고수를 목표로 세우고 있었던 여자부는 10명 중 이에리사 선수만 세계대회 출전경력을 갖고 있을 뿐이었다. 이수자, 김경자, 안해숙 선수는 1979년 평양 세계대회 대표선수로 선발되었으나 북한 측의 거부로 참가하지 못했었다.

상위권 돌파가 목표였던 남자부도 최종 평가전에서 4위를 차지한 윤길중(육군)마저 상비군에서 제외되면서 거의 신인선수들로 교체되었다.

상비군 사령탑을 맡은 박성인 총감독은 “우선 81년 유고 세계대회에서의 좋은 성적과 83년 세계대회에서의 정상탈환을 위한 2가지 목표를 세우고 훈련에 임하겠다.”는 굳은 결의와 함께 “최종 평가전에서 성적이 나쁘더라도 가능성 있는 유망주들을 대거 뽑았다.”는 선발 의도도 곁들여 밝혔다. 

◯ 상비군 코칭스태프 및 선수
총 감 독 : 박성인(제일모직 감독)
남자감독 : 박종호(외환은행 감독)
여자감독 : 유진규(동아건설 감독)
남자코치 : 이상국(대우중공업 코치)
여자코치 : 윤상문(제일모직 코치)
남자선수 : 박이희(국정교과서), 신동현(국정교과서),
            김 완(제일합섬), 손성순(대우중공업),
            한춘택(제일합섬), 오병만(청주고), 지용옥(성무),
            유경석(여수고), 김기택(청주고), 유시흥(제일합섬)
여자선수 : 박홍자(서울신탁은행), 안해숙(동아건설),
            신경숙(동아건설), 황남숙(성수여상),
            양영자(이일여중), 정경자(제일모직),
            신득화(서울여상), 이수자(제일모직),
            김경자(제일모직), 이에리사(동아건설) 
 

▲ 대표선발전의 한 장면. 장신의 셰이크 핸더 박이희(국정교과서)가 김완(제일합섬)의 쇼트볼을 짧게 받아넘기고 있다. 김완이 2-1로 승리.


국제경험 쌓기 위한 각종 국제오픈대회 참가 및 성적
- 서독 국제오픈탁구선수권대회 참가

세대 교체된 국가대표 상비군 선수들에게 많은 국제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 협회는 가능한 자주 여러 나라에서 개최하는 각종 국제 오픈대회에 참가시킨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조치로 1980년 2월 22일부터 24일까지 서독 루셀사임에서 개최되는 서독 국제오픈 선수권대회에 남녀 선수단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협회는 우선 김경태 전무이사를 단장으로 한 코칭스태프를 확정하고 남자대표는 최종평가전에서 박이희 선수를 비롯한 4위까지의 입상 국가 상비군을 여자대표는 동아건설 단일팀을 선발하여 파견시켰다.

이 대회에서 한국 여자팀은 단체전에서 유럽의 강호 스웨덴과 헝가리를 연파하고 준결승전에 진출했으나 최강 중국에 0대 3으로 패배, 서독과 함께 3위를 차지했다.

신에 신경숙과 안해숙이 주축을 이룬 한국 여자팀은 부전승으로 2회전에 올라 스웨덴 A팀과 4단식 1복식의 대접전 끝에 3대 2로 신승했다. 준준결승전에서는 헝가리 B팀을 3대 0으로 완파했다.

77년 ~ 79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팀 중국의 주전 장덕영과 신예 조연화가 있는 최강 중국 A팀과 만난 준결승전에서는 속공의 신경숙과 수비의 안해숙이 단식에서 완패했지만 복식에서는 그래도 선전했다. 첫 세트에서 21대 18로 1점을 선취한 것이다. 그러나 2,3세트에서는 18대 21, 13대 21로 패했고, 결국 한국은 0대 3으로 3위에 머물러야 했다.

이 대회에서 중국은 여자부가 A, B팀끼리 우승을 다투어 A팀이 우승했으며, 남자단체전에서는 중국 B팀이 체코를 3대 0으로 꺾어 남녀 모두 타이틀을 석권했다. 한편 국가대표 상비군이 출전한 한국 남자팀은 폴란드와의 1회전에서 2대 3으로 분패, 탈락했다. 한국 남자탁구는 77년 버밍엄 세계대회에서 폴란드를 꺾은 바 있다.

남녀 개인 단복식에서는 모두 2,3회전에서 탈락했다. 여자부에서 장찬주 선수만이 여자단식에서 3회전까지 올라갔으나 유고의 티베트 코빅에게 0대 3으로 완패, 8강 진출에 실패했다. 또 남자단식 2회전에서 박이희 선수가 중국의 시주호 선수에 3세트 23대 25까지 몰고 가는 시소를 벌였지만 0대 3으로 패하고, 손성순 선수도 그루바에 0대 3으로 완패했다. 남자복식 2회전에서도 부진이 계속되어 신동현.손성순 조가 일본의 마에하라.아베 조에 1대 3으로 역전패했다.

한국은 기대했던 여자단식에서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안해숙 선수가 서독의 슈미트에 0대 3, 신경숙도 스웨덴의 린드블라드에 0대 3으로 완패했으며, 주성회도 체코의 후라츠바 선수와 풀세트 접전 끝에 아깝게 2대 3으로 분패했다.
 

▲ 서독에서 열린 국제오픈 탁구선수권대회 복식에서 분전하고 있는 한국의 안해숙·신득화 조.

- 스웨덴 및 영구 주니어오픈 선수권대회 참가

1980년 4월 29일부터 5월 3일까지 스웨덴 탈스타하마에서 스웨덴 주니어오픈선수권대회가, 5월 10일부터 13일까지는 영국 웨딩에서 영국주니어오픈선수권대회가 연이어 개최됐다. 대한탁구협회는 이두 대회에 김응화(강원도탁구협회장) 단장, 박도천 총감독 등 임원 4명과 남자선수 3명 여자선수 3명으로 구성된 선수단을 파견했다. 선수단에는 그들 외에 제1회 서울오픈국제선수권대회 참가 교섭을 위한 임무를 띤 한상국 협회 부회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스웨덴 주니어오픈대회에서는 남자단.복식과 여자단식에서 우승을 휩쓸었다. 남자부에서 김기택 선수가 단.복식을 석권 2관왕에 올랐으며, 여자부에서는 신득화 선수가 우승을 차지했다.

◯ 스웨덴 주니어오픈선수권대회 전적
남자단식 우승 : 김기택(청주고)
남자단식 준우승 : 유경석(여수고)
여자단식 우승 : 신득화(서울여상)
여자단식 준우승 : 황남숙(성수여상)
여자단식 3위 : 김정미(시온고)
남자복식 우승 : 김기택(청주고), 유경석(여수고)

한편 영국 주니어오픈대회에서도 여자단체전 결승에서 스웨덴을 3대 0으로 물리치고 우승하는 등 4종목 우승, 3종목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대성과를 이루었다. 여자개인단식 결승에서는 신득화 선수가 황남숙 선수를 결승에서 2대 1로 이겨 우승했고, 황남숙은 준우승으 차지했다. 여자 개인복식에서도 신득화.황남숙 조가, 혼합복식에서도 신득화.김기택 조가 우승했다. 최고의 활약을 펼친 신득화 선수는 출전한 전 종목에서 1위에 올라 대회 4관왕을 차지했다.

이렇게 스웨덴과 영국 주니어오픈 두 대회 참가는 어린 유망 선수들에게 국제 적응에 따른 경험과 자긍심을 불러일으킨 좋은 기회가 되었다. 유명 기성 선수들의 은퇴로 전력이 고갈된 당시의 상황에서 이들 신인 선수들이 보여준 날로 성장해 가던 모습은 온 탁구인들에게 커다란 만족감을 가져다주었다.

- 캐나다 오픈탁구선수권대회 참가

1980년 5월 22일부터 24일까지 토론토에서 개최된 제40회 캐나다 오픈탁구선수권대회에 협회는 신인 육성 차원에서 남자는 동인천고, 여자는 이일여자고등학교 탁구단일팀을 파견시켰다. 이 대회 남녀 단체전에서 한국의 양팀은 결승전에서 영국에 모두 패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남녀팀 모두 0대 3의 완패였다.

하지만 한국팀은 단체전의 부진을 딛고 개인전에서는 나름대로 선전을 펼쳤다. 여자복식, 혼합복식 2개 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토론토의 에티피코크 올림픽 룸에서 폐막된 최종일 각부 개인전 결승전에서 이일여고의 김은희.은종숙 조는 영국의 나이트.위트 조에 3대 1 역전승으로 우승했으며, 혼합복식에서도 정성수.앙영자 조가 캐나다의 캡타노.드몬스키 조를 3대 1로 격파했다.

동인천고와 이일여고가 참가한 한국 선수단 중 국가 상비군 멤버인 양영자 선수는 단체전과 복식에서의 강행군으로 팔에 부상을 입었으나 혼합복식에서도 분점, 결국 우승했다.

- 오스트리아 주니어오픈선수권대회 참가

1980년 6월 20일부터 22일까지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제19회 오스트리아 국제주니어오픈선수권대회가 열렸다. 협회는 이 대회에 당해 전국 종별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 단일팀을 참가시켰다. 서울여상은 이 대회에서 여자단체전과 여자복식 2종목에서 우승하고 여자단식에서 3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올렸다.

한국을 비롯하여 오스트리아, 독일, 영국, 유고 등에서 16개국이 참가한 동 대회에서 윤경미, 강선애, 백양미 선수가 출전한 단체전에서 한국의 서울여상은 예선리그에서 3승, 결승리그에서도 체코에 3대 1, 스웨덴에 3대 2, 서독에 3대 0 등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여자복식에서는 백양미.윤경미 조가 스웨덴의 린드발.존슨 조를 2대 0으로 제압, 단체전 우승에 이어 두 번째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하지만 여자단식에서는 3관왕을 노리던 백양미 선수가 준결승전에서 서독의 벤젤 선수에게 0대 2로 패해 3위에 머물렀다.

- 전미 오픈탁구선수권대회 참가

1980년 6월 26일부터 29일까지 텍사스주 포트위즈에서 개최된 전미 오픈탁구선수권대회에는 삼성그룹 내 제일모직 여자팀과 제일합섬 남자팀을 파견키로 결정되었다. 임원 5명과 선수 12명(남 6, 여 6)으로 구성된 선수단을 6월 17일 상오 동아건설 8층 회의실에서 결단식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최원석 회장은 박성인 총감독에게 단기를 수여하면서 전통적으로 한국이 좋은 성과를 거둬온 이 대회에서의 선전을 당부했다. 반드시 좋은 성과를 거두어 국위선양과 70만 재미동포들에게 자부심을 심어달라는 것이었다. 박성인 총감독은 인화단결로 전력투구해 국가와 탁구인의 명예를 높이고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다.

선수단은 6월 20일 서울을 출발하여 현지에 도착한 뒤 적응 훈련을 실시하면서 21개국이 참가한 각국의 전력을 감지했다. 비록 동 대회에 세계정상인 중국을 비롯 체코, 헝가리 등 동구의 강호들이 모스크바 올림픽 문제로 인한 소련과의 관계에 따라 불참했으나 일본을 비롯 유럽의 강호들은 모두 참가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여자단체전, 여자복식, 혼합복식에서 우승의 영광을 차지하는 성과를 올렸으며, 남자단체전과 혼합복식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수자.김경자 주축으로 참가한 여자단체전에서 한국은 일본을 결승에서 3대 1로 꺾고 우승했으며, 남자단체전에서는 미국에 1대 3으로 석패, 준우승에 머물렀다. 특히 여자단체전에서 이수자 선수는 세계랭킹 8위이며 전 일본 챔피언인 가와이 가시를 2대 0으로 완파했고, 복식에서도 김경자 선수와 짝을 이뤄 지난해 동 대회 우승조인 가와이 가시.다카하시 조를 역시 2대 0으로 이겼다. 이들의 활약은 한국 여자탁구의 세계정상 재탈환 희망을 살려준 쾌거였다.

▲ 한국 여자탁구의 세계정상 재탈환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맹훈련에 몰두하고 있는 김경자 선수.

더욱이 이수자.김경자 선수는 그 전해 11월, 스칸디나비아오픈대회와 프랑스오픈대회 등 단지 2개의 국제대회 출전이 전부였던 국제대회 경력으로 이 대회 우승을 이끌어 노비사드 세계대회의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러나 이수자와 김경자 두 선수는 개인단식 준결승전에서는 서독 대표선수였던 가미주라와 일본의 가와이 가시에 각각 1대 3, 0대 3으로 패했다. 단체전에 정력을 쏟은 탓으로 분석된 단식에서의 부진은 우리 선수들의 약한 체력에 대한 문제점을 환기시킨 것이기도 했다.

여자복식 결승에서는 이수자.김경자 조가 일본의 다카하시.가와이 가시를 3대 0으로 완승하여 우승했으며, 혼합복식 결승에서도 이수자.유시홍 조가 김경자.김완 조를 3대 0으로 이겨 우리 팀끼리 우승, 준우승을 차지했다.

박성인 총감독과 윤상문 코치는 “국제경험 부족과 체력의 열세를 면치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기술적으로는 세계 수준급에 도달한 것이 사실”이라고 분석하면서 “어린 나이를 감안, 경험을 쌓는다면 이에리사, 정현숙, 김경자, 이기원 선수에 이어 세계정상 재탈환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았다.

전미오픈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 한국 선수단은 귀로에 일본과 친선경기를 갖기도 했다. 이 친선경기는 그간 한.일 양국의 탁구가 단절된지 7년만에 이뤄진 뜻 깊은 만남이었다. 일본과의 교류단절은 1973년 일본이 기존 아시아탁구연맹(ATTF)에서 탈퇴하여 중국, 북한과 새로운 아시아탁구연합(ATTU)을 창설한데서 비롯된 일이었다. 그 일로 아시아에서 고립되었던 한국에게 이 친선경기는 아시아 탁구무대의 한가운데로 복귀하려는 신호탄이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뜻이 깊었다. 또한 이 친선전을 계기로 그 해 8월 26일부터 30일까지 서울에서 처음 개최하는 제1회 서울국제오픈대회에 일본팀이 참가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 같은 한.일 탁구협회의 협조무드는 선수단 귀국 이후 더욱 본격화되었다. 국제탁구연맹 회장 대리이며 일본탁구협회 전무이사인 오기무라 씨를 서울에 초청, 한.일 탁구 정기교류 문제와 ATTU 한국 가입 문제를 논의한 뜻있는 성과로 이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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