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환의 백과사전

 

채영철 협회장 평양대회 참가 못한 책임 느껴 사퇴

1979년 5월 24일, 대한탁구협회의 채영철 회장은 평양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한국 팀이 참가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회장직을 사퇴한다고 발표했다. 대한탁구협회가 한국의 참가를 거부한 북한탁구협회의 비스포츠맨적이며 비평화적인 처사를 규탄하는 서한을 국제탁구연맹(ITTF) 회원국에 발송한 직후였다.

이날 오후 대한체육회(무교동)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한 채 회장은 “평양 세계선수권대회 참가를 위해 국제탁구연맹에 8회나 참가 보장을 촉구했으며, 1979년 4월 제네바까지 파견(17일)해서 주 제네바 북한 대표부에 입북 비자 발급을 요구(20일)하는 등 최선을 다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함으로써 온 국민에게 커다란 실망을 안겨주게 된 책임을 느껴 회장직을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대한탁구협회는 평양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끝난 후 20여일이 지난 작금까지 국제탁구연맹으로부터 아무런 서한이나 전문도 받지 못했다.”고 유감의 뜻을 표시했다.

채영철 회장은 평양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한국팀이 참가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회장직을 사퇴했다. 사퇴 기자회견을 하는 채영철 회장.

이날 강경하고 착잡한 어조로 기자회견을 계속한 채 회장은 “국제탁구연맹 로이 에반스 회장이 북한 측의 기만적인 수법에 속아 한국 팀에 대한 참가 거부를 묵인하고, 대회 기간 중에 열린 4월 28일 총회에서는 서방 19개국을 대표하여 서독이 제안한 모든 회원국에 대한 비자 발급 보장안을 표결에 붙이지 않은 채 자신은 회장으로 재 선임된 사실도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북한 측이 한국 팀의 입북을 거부한 것은 비단 한국 팀에 대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스포츠 정신과 윤리를 무시한 처사였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채 회장이 강조한 것은 “전 회원국의 정당한 자격과 권리가 정치적 이유 때문에 또 다시 묵살당하는 일이 없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자회견에 앞서 대한탁구협회가 국제탁구연맹 로이 에반스 회장을 비롯한 전 회원국과 토머스 켈러 국제스포츠연맹(ISF) 회장에게도 우리 측의 입장을 호소하며 발송한 서한에는, IOC 헌장과 국제탁구연맹에 규정된 원칙을 위배한 북한탁구협회에 대한 비난과 더불어 그 같은 주장들이 주 내용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채영철 회장의 사의표명으로 협회는 여러모로 어려움에 처해졌다. 새로운 회장이 영입될 때까지 임철수 당시 부회장(미원주식회사 사장)을 회장 직무대행으로 추대한 협회는 임 부회장이 보조하는 약간의 경비만으로 힘겹게 업무를 지속했다.

 

스칸디나비아오픈 주니어선수권대회 3개 종목 석권

어려운 상황이라고 해서 선수들의 정진을 멈추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힘겨운 와중에도 대한탁구협회는 1979년 5월 18일부터 20일까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최되는 제2회 스칸디나비아오픈 주니어 탁구선수권대회에 한상국 중·고등학교 탁구연맹 회장을 단장으로 한 임원 7명, 남자서수 5명, 여자선수 5명의 선수단을 참가시켰다.

5월 12일 김포공항을 출발해 현지에 도착한 선수단은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스웨덴 주니어 대표 팀과 합동 전지훈련을 가졌고, 5월 16일에는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이동, 본 대회인 스칸디나비아오픈 주니어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 이 대회에는 스웨덴, 소련 등 13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코펜하겐 서쪽 로스켈데에서 벌어졌는데, 우리 주니어 대표 팀은 여자 단체전과 여자복식 및 혼합복식 등 3개 종목을 석권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마지막 날 벌어진 이 3개 종목 결승은 한국 선수들의 독무대였다. 우리 선수들끼리 맞붙은 여자복식 결승에서는 신득화·윤경비 조가 황남숙·이미경 조를 2대 1로, 역시 우리끼리 겨룬 혼합복식에서는 이미경·최세룡 조가 황남숙·김기택 조를 2대 0으로 각각 제압하고 우승했다. 여자 단체전에서도 한국은 A팀이 소련을 3대 0, B팀이 핀란드를 3대 0으로 격파, 우리 팀끼리 결승에 올라 A팀(신득화·윤경미)이 B팀(황남숙·이유성)을 3대 0으로 이기면서 우승, 준우승을 독차지했다.

그러나 여자 선수들의 활약과 달리 우리 남자팀은 덴마크에 0대 3으로 패해 아쉬움을 남겼다. 이 대회 개인전도 스웨덴 남자선수들이 타이틀을 휩쓸었고 한국 선수들은 등위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힘든 상황에서 기쁜 소식을 전해온 우리 선수들은 영국 등지에서 전지훈련을 갖고 5월 28일 개선했다.

 

전미오픈 선수권대회 이기원 선수 여자단식 제패

1979년 6월 27일부터 7월 1일까지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에서 전미오픈 탁구선수권대회가 개최됐다. 한국은 산업은행 여자팀과 새로 창단된 국정교과서 남자팀이 출전했다. 당시 채영철 회장 사임으로 인해 대표 팀 구성이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에 남녀 단일팀 파견이 결정된 것이었다. 제47회 대회였던 당시 전미오픈대회에는 한국을 포함, 강호 체코, 스웨덴, 일본, 서독, 프랑스, 영국, 캐나다 등 14개국이 참가했다.
 

79년 전미오픈 여자단식을 석권한 이기원은 바로 전 해 종합선수권대회에서 이에리사의 8연패를 저지한 주인공이다.

사실 당시 탁구계에서는 평양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지 못했던 한국 선수들의 활약에 대해 매우 걱정스런 눈초리를 보내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 같은 우려를 보란 듯이 뒤집은 선수가 바로 이기원 이었다. 애초부터 가장 큰 기대주로 지목받았던 이기원은 단식 4회전(16강)에서 캐나다의 더몬코스를 3대 0으로 간단히 이긴 뒤, 준준결승(8강)에서 일본의 다카하시를 맞아 역시 3대 0으로 완승을 거뒀다. 준결승전에서도 일본의 우루시오를 3대 1로 물리쳐 결승에 진출한 이기원은 마지막날 벌어진 여자단식 결승에서 1번 시드를 배정받은 일본 랭킹 1위의 강호 가와이가시가요를 3대 0의 하프스코어로 완파하고 영예의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이의자와 짝을 이뤄 출전한 여자 개인복식에서도 이기원은 준결승전에서 일본의 쇼크·하라다 조를 3대 0으로 물리치고 결승에 올랐으나, 역시 일본의 다카하시·가와이가시 조에게 3대 0으로 패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여자단체전에서도 결승에서 일본에게 2대 3으로 분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남자단체전에서는 준결승전에서 체코에게 2대 3으로 패해 3위에 머물렀는데 체코는 결국 영국을 3대 0으로 이겨 패권을 차지했다.

평양 세계선수권대회 한국 대표 팀 주장이었던 이기원 선수는 북한의 방해로 세계대회 출전이 좌절되자 탁구 하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는다며 한때 실의에 빠져 있었다. 이기원 선수는 이 대회 개인단식 결승에서 일본 랭킹 1위의 가와이가시를 하프스코어로 제압 그의 경기력이 세계정상수준에 올라있음을 입증했다.

1977년 영국 버밍엄 세계선수권대회 때까지도 정현숙, 이에리사에 가려 2진에 머물렀던 이기원은 두 선수가 은퇴한 후 한국 여자탁구의 기대주로 각광을 받기 시작, 드디어 이번 전미오픈 선수권대회에서 빛을 보였다. 당시 일본 탁구관계자들은 이기원이 여자단식에서 우승하자 의외라며 커트스트로크의 수비형 선수로는 세계정상급이라고 격찬했다 한다.

이질 러버에 의한 커트플레이를 주무기로 삼았던 이기원은 사실 ‘될 성 부른 나무’였다. 배화여고를 졸업하고 산업은행에서 천영석 감독의 지도를 받았던 그녀는, 1978년 종합선수권대회에서 8연패를 노리던 이에리사를 풀세트 접전 끝에 3대 2로 저지하고 새 챔피언이 되었던 바로 그 선수다.

 

최원석 회장, 2년 만에 협회장으로 복귀

최원석 전 대한탁구협회 회장이 다시 18대 대한탁구협회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1979년 8월 7일. 대한탁구협회는 대한체육회 강당에서 열린 임시 대의원총회를 통해 만장일치로 최원석 전 회장을 공석 중인 회장으로 추대했다. 아울러 부회장, 이사, 감사 선임 권한을 모두 최원석 회장에게 일임했다.

최원석 회장이 컴백, 탁구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재취임과 더불어 향후 계획을 발표하는 기자회견 모습.

전술한 것처럼 대한탁구협회 회장은 그 해 5월 채영철 회장이 평양 세계대회 참가 좌절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사퇴한 뒤 당시까지 공석으로 있었다. 2년 3개월 만에 다시 탁구협회 회장직을 맡은 최원석 회장은 “한국 탁구가 국제적으로 어려운 입장에 놓여있고, 이제까지 대표 팀을 이끌어온 에이스들의 잇단 은퇴로 정체상태에 있지만 새 출발의 자세로 재건하여 사라예보의 영광을 재현토록 노력하겠다.”고 취임 포부를 밝혔다.

8월 9일 상오 대한통운 상황실에서 취임 첫 기자회견을 가진 최 회장은 “한국이 제외된 아시아 지역연맹인 아시아탁구연합(ATTU) 가입을 적극 추진하고 국제탁구연맹(ITTF)에서 한국의 지위를 높이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당시 최 회장은 “탁구는 한국 스포츠 중 구기 종목으로 처음 세계정상을 정복한 전통을 갖고 있으며, 다른 구기 종목보다 세계 제패의 가능성이 많은 종목이다. 세계정상을 되찾기 위해 탁구인 모두가 다시 뭉쳐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역설했다.

최원석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① 탁구외교의 강화 ② 선수훈련을 위한 대표선수 훈련장 및 합숙소 건립 ③ 탁구인구 저변확대 ④ 저변을 위한 2진 양성 ⑤ 국제정보, 기술, 용구 도입 등 5개 항에 걸친 탁구 중흥 계획을 발표했다. 이어 그는 “선수들과 고락을 함께 하며 땀을 흘리는 회장이 되겠다. 선수 양성 이외의 문제는 새로 선임될 부회장단 및 상임 이사진에 맡길 생각”이라고 탁구협회 운영의 구상을 밝혔다.

또한 빠른 시일 안에 국가대표 1,2진 선수를 선발하여 80년 1월부터 500일 동안 81년 유고 노비사드에서 개최되는 제36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대비한 강화훈련을 실시하는 한편, 상비 2군을 별도로 양성하는 장기 계획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경기도 용인에 세워질 대표선순 훈련장 및 합숙소는 건평 840평 규모로 연내에 완공할 예정이며 세계 탁구선수권대회 유치를 위한 준비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계속)
 

다음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나왔던 개별 질문답변의 내용이다.

▷ 어떻게 다시 탁구협회 회장을 맞게 되었는가?

▶ 회사 일이 바빠서 처음에는 몹시 망설였다. 그러나 처음 대한체육회 박종규 회장의 제의에 극구 사양을 했으나 세계제패가 가능한 탁구를 위해 혼신을 다할 사람은 최 회장 뿐이라고 강력히 권고하셨고, 또한 많은 탁구인 선·후배들의 간곡한 부탁이 있어 수락했다.

▷ 앞에서 발표하신 계획 외에 새로운 포부는?

▶ 처음 1년간 회장을 맡았을 때는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데만 주력했다. 그러나 우리 탁구계도 이제는 체질을 바꾸어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탁구를 통한 비동맹국과의 교류, 세계대회 유치도 생각해 볼 문제라고 본다. 그동안 외교를 너무 등한시하여 아시아에서 고립을 초래했는데 앞으로 여기에 역점을 두어 아시아 탁구연합 가입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 남녀 할 것 없이 세계대회 출전 경험 선수가 하나도 없는데 앞으로의 대책은?

▶ 사실은 그 문제가 제일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때 세계 정상에 올랐던 한국 여자탁구가 지금은 심각한 공백상태에 빠져 있다. 그간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치 못한 공백이나 국내 행정의 공백보다도 대표급 선수의 단절 현상으로 고민에 싸여 있다. 한 마디로 앞이 캄캄하다는 게 탁구인들의 공통된 견해다. 절망적이라고 판단할 정도다. 정현숙·이에리사 선수의 퇴진에 이어 다시 한국 여자탁구의 간판선수인 이기원 선수마저 결혼 관계로 은퇴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쓸 만한 선수가 없다고 주저앉아 있기만 해서 되겠는가. 나는 ‘불가능은 없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다. 정성을 쏟으면 그만큼 수확을 거둬들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인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앞에서 말했듯이 선수 강화훈련을 위해 우선 신갈에 대표선수 훈련장을 세울 계획이다. 또한 선수들의 해외 전지훈련을 계속 실시하여 많은 국제 경험을 쌓도록 하겠다.

▷ 탁구협회 새 집행부 구성에 대해서 관심들이 많은데?

▶ 그동안 탁구협회에 불화가 끊이지 않았는데 내가 회장을 맡고 있는 동안에는 잡음이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많은 일을 분담, 탁구인 모두가 참여하는 건설적인 탁구협회를 만들겠다. 지켜봐 주시고 많은 협조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 새로 구성된 대한탁구협회 집행부 명단

회 장 : 최원석(동아그룹 회장)
부회장 겸 전무이사 : 김경태(대한통운 전무)
국제 겸 재무이사 : 김광희(동아건설 회장 보좌역)
총무이사 : 이종춘(국제스포츠사 경영)
경기이사 : 박성인(한일은행)
기획이사 : 김영식(대한통운)
섭외이사 : 박노수(대한통운)
이 사 : 김성열(경남), 김세호(충남), 정연훈(부산), 박종호(실업연맹), 박철규(중고연맹), 박노현(초등연맹)
감 사 : 박수복(전북), 노순우(경기)

저작권자 © 더 핑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