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환의 백과사전

 

미국 탁구선수단 평양 도착

1979년 4월 23일, 6명의 한국계 선수 및 임원이 포함된 42명의 미국탁구 대표선수단이 이틀 후에 개막되는 제35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48년 북한 정권수립 이래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평양에 도착했다.

미국 선수단은 이날 북경에서 소련제 여객기 편으로 2시간 동안의 비행 끝에 평양 공항에 도착, 북한 체육관계자들의 영접을 받은 후 대회 개최 장소인 평양 시립체육관 바로 옆에 위치한 장광산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당시 미국탁구협회 임원들은 자신들의 평양방문이 어떤 형태로든 미국 북한 간 핑퐁외교의 시작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고 못을 박고 있었다. 미국 정부는 한국이 참가하지 못하는 한 북한과 어떤 접촉도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날 조지 케네디 미국탁구협회 국제담당 부회장은 공항기자회견에서 미국 팀의 대회 참가 여부는 이미 평양에 와 있는 로이 에반스 국제탁구연맹 회장을 만나본 후에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케네디 부회장은 미국 정부가 북한 측에 보내는 메시지를 휴대하지 않은 것으로 발표했다. 그는 또한 미국 선수단은 한국 팀 참가를 저지한 북한측의 처사에 대해 미국과 기타 몇몇 국가들이 국제탁구연맹으로 하여금 평양대회를 세계선수권대회가 아닌 비공식 대회로 선언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탁구선수단과 같이 동행한 에디드 레더 기자의 취재내용을 인용하여 당시 평양대회의 상황을 적어보기로 한다.

1971년에는 일본의 나고야 세계선수권대회를 계기로 중국이 핑퐁외교를 벌였는데, 1979년의 세계대회는 북한의 핑퐁외교로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선수들은 결과에 대해서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한국 전쟁 이래 최초로 북한을 방문한 미국대표단은 4월 23일 오후 비가 내리는 평양에 도착, 어딘가 행동이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북한 관리들로부터 미온적인 환영을 받았다. 42명의 미국대표단 가운데는 미·중국 핑퐁외교를 가져오는데 산파역을 했던 3명의 미국임원도 끼어있었다.

세계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으로 떠나기에 앞서 도쿄서 기자회견을 가진 미국탁구대표단 임원, 선수들. 이 자리에서 솔 쉬프 미국탁구협회장은 "미국탁구협회는 한국과 이스라엘이 초청되지 않은 이번 대회의 선수권명칭 박탈문제를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 대회가 미·중 핑퐁외교와는 성격이 다른 경기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었다. 그 당시 중국은 미국 선수단을 중국의 손님으로 북경에 초대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북한은 미국 선수단을 평양에서 개최되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의 참가객으로 초대한 것이다. 정통한 미국 정부의 소식통들 역시 이번 평양 세계탁구대회 참가가 지난번의 중국행과 같은 성질의 방문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들은 한국이 동시에 참가하는 상황에서 북한과 대화를 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의사임을 거듭 밝히고 있었다.

하지만 겉으로의 표현과는 또 다른 미묘한 기대 심리가 미국 선수단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누군가가 우리에게 접근해 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고 말한 미국 선수단 단장 솔 쉬프(미국탁구협회장) 씨의 발언은 미국 선수단의 심중이 어떤 상태인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미국탁구협회 조직위원회 위원장인 에리히 해이링 씨도 “미국탁구팀의 평양방문은 분명히 양국 간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시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며, 또 그렇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여운을 남겼다. 1971년에 중국에 파견된 선수였고, 전 미국 혼합복식 챔피언을 지낸 뉴 버거 선수는 “어떠한 외교적 돌파구를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지만 “핀으로 꽂을 수 있는 미국 국기를 가방에 가득히 넣어 왔다.”면서 은연중의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어쨌거나 미국 선수단에게 이 방북은 매우 혼란스럽고 무언가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이었다. 미국 선수단의 아무도 북경으로부터 그들을 싣고 간 북한특별기에서 맨 처음 내리기를 원치 않았다. “아무도 도마 위에 맨 처음 오르고 싶지 않은 모양이지?”하고 한 임원은 농담을 던졌다. 그러나 비행기 안이 너무 후덥지근해서 대표단은 할 수 없이 급히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나온 이상 두려워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곳에는 일단의 북한 통역관과 탁구관계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김일성 초상화가 그려진 에나멜 핀을 달고 있었다. 비와 구름 때문에 대부분의 미국 대표단들이 볼 수 있었던 첫 장면은 공항터미널에 걸려있는 웃는 얼굴의 김일성 초상화뿐이었다. 스튜어디스는 비행기의 착륙을 알리는 방송에서도 이 나라의 위대한 영웅인 지도자를 찬양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미국 대표단 가운데서 가장 걱정스러워 했던 단원은 두 명의 우수한 여자선수를 포함한 6명의 한국인이었다. 몇 사람은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었지만 가장 우수한 선수로 꼽히던 나인숙과 박혜자 선수는 한국 여권을 갖고 있었다. “평양에 도착하면 불안을 느끼게 될 거예요. 남한 사람으로 그곳에 간 사람은 한 명도 없었으니까요.”하고 나인숙 선수는 말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20여 분간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미국 선수단은 나지막한 배경으로 한 논에서 농부들이 모내기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도심지에 가까워지자 수십 채의 근대적 아파트 건물이 조용한 경치를 배경으로 산재해 있었으며, 10~12층의 높은 건물도 눈에 들어왔다.

관용버스와 택시가 지나가자 비옷을 입은 어린이들이 우산 아래에서 손을 흔들었다. 많은 건물에 김일성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으며 5개 국어로 된 환영아치가 있었으나 반미구호는 없었다. 유일한 반미언사는 경기 안내 책자에서 ‘1953년에 끝난 한국 전쟁 중 미 제국주의 폭격으로 평양이 파손되었다’고 말한 것뿐이었다. 물론 그 책자는 ‘그러나 평양이 완전 복구되었다’는 자랑도 잊지 않았다.
 

국제탁구연맹 이사회 한국 등 출전 봉쇄 외면

4월 24일, 국제탁구연맹(ITTF)은 다음날의 대회 개막에 앞서 이사회를 열고, 한국과 이스라엘의 참가가 실현되지 않더라도 대회를 정식 선수권대회로 인정하기로 장시간 논의 끝에 결정했다.

대회 개막을 24시간 앞두고 열린 이 이사회를 통해 국제탁구연맹은 ‘북한은 남북한 단일팀을 구성하려는 노력을 아직도 계속하고 있고 이러한 북한 측의 시도는 북한 당국이 해온 약속의 정신에 위배되지 않으며 연맹의 규정에도 어긋남이 없는 것으로 국제탁구연맹은 생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은 또 이스라엘의 불참이유에 대해 ‘이스라엘 팀의 참가는 대회 전체의 안전보호를 위해 하나의 장해가 될 것으로 북한 당국이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제탁구연맹은 ‘이러한 국제탁구연맹의 결정은 한국의 대한탁구협회에도 곧 통보될 것으로 안다’면서 ‘따라서 국제탁구연맹은 한국과 이스라엘을 제외시킨 채 새로운 경기 조 편성 작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탁구연맹의 결정은 일부 참가국들의 불만을 사고 있었는데, 특히 서독과 미국을 위시한 7개 서방국 대표들은 북한 측이 한국과 이스라엘의 참가를 거부한데 대한 항의문을 작성하여 국제탁구연맹에 전달하기도 했다.

당시 대회에 참가한 70여 개국 중 5~6개국은 대회 보이콧을, 10여 개국은 대회명칭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대신 국제탁구대회로 바꿀 것을 주장했었으나 이날 회의에서는 장시간의 격론 끝에 본 대회 강행을 결정지었던 것이다.

그 같은 결정에 디터 모리츠 서독탁구협회 회장은 “북한 측이 모든 회원국의 참가를 보장할 것이라는 2년 전의 약속을 어겼다”고 강력한 항의로 반격했다 한다. 특히 모리츠 회장은 이사회에서 “체육문제를 정치의 한낱 모략수단으로 삼는다면 남북의 체육교류는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분단국가의 애로를 말했다 한다.

스포츠가 정치적 화해와 친선을 촉진하기 위한 매개체로 추진되는 경우가 있음은 상식이다. 하지만 그런 시도도 정치 책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며, 스포츠에는 스포츠정신과 규범과 독자적 영역이 따로 있다. 북한의 이 반 스포츠적 책략에 항의하여 미국과 유럽 다수 국가들의 탁구계는 “북한이 한국과 이스라엘의 입북을 거부한데 대한 처사는 세계 탁구계에 영원한 오점을 남긴 것”이라고 강력히 비평했다.

 

‘웃기는 폐쇄사회’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그 과정과 절차가 어찌됐든 제35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는 60여 개국 900여명의 선수 임원이 참가한 가운데 4월 25일 오후 5시 평양 시립 체육관에서 결국 개막되었다.

90여 분간 진행된 개막식에는 북한 주석 김일성이 참석하지 않았으며, 부주석 박성철이 개회를 선언했다. 대회사를 통해 로이 에반스 국제탁구연맹 회장은 한국과 이스라엘의 불참에 대해 “우리는 일부 회원국의 불참을 초래한 상황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고 “모든 회원국들이 탁구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75년 캘커타, 77년 버밍엄 세계대회에서 연속우승했던 중공여자팀은 평양대회마저 석권, 3연패를 이뤘다.

이 대회에는 총 1백 22개 회원국 가운데 74개 회원국이 참가한 것으로 발표되었으나 일부 회원국들은 선수단을 갖고 있지 않았고, 실제 참가국 수는 60여 개국 정도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탄자니아, 필리핀 등 4개국 선수단은 이날 입장식 때 그들의 국명 표지판 뒤로 단 한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한다.

일부 선수단은 평양에 도착하여 예상 외로 많은 비용이 들었으며 연습시설이 부족하다고 불평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개막식이 끝난 후 국제탁구연맹 로이 에반스 회장은 67세의 김일성이 북한에서 처음 열리는 중요한 국제대회의 개막식에 참석하지 않아 좀 실망했다고 뜻을 표명하기도 했다.

대회에 참가하고 있었던 60여 개국의 각 팀 임원들은 개막식에 앞서 김일성의 생가가 있는 만경대로 안내되어 나무 한 그루를 기념 식수했는데 여기서 일어난 재미있는 후일담 하나가 전해진다. 이들 임원들이 만경대에서 벚꽃을 구경하고 있을 때 북한의 한 안내원이 “대회 개막 전에 벚꽃이 활짝 핀 것은 김일성 수령의 은덕 때문”이라고 임원들에게 설명했다. 4번이나 평양에 온 일이 있는 에반스 회장은 그 말에 대해 “여기서는 모든 것이 김일성 수령 때문에 일어난다. 해가 뜨는 것도, 꽃이 피는 것도 모두 김일성 덕분”이라고 비아냥댔다는 것이다.

그와 비슷한 김일성 당시 북한 주석에 관련한 얘기들은 그 외에도 많이 전해졌는데 그 중에서도 한 이탈리아 임원이 혀를 차며 전한 이야기. 평양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김일성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한 북한 신문을 보고 난 뒤 의자 밑에 버리자 스튜어디스와 달려와 “우리의 위대하고 자비로우며 존경하는 수령님이십니다. 그분 기사가 실린 신문을 발밑에 놓다니요, 마땅히 머리 위에 올려두셔야 합니다.”라고 일러주더란다.

그처럼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듯 풍습과 분위기가 전혀 다른 북한에 체재하는 동안 그 실체를 완전히 파악한 각국 임원들은 결국 북한을 ‘웃기는 폐쇄사회’로 평가했다고.

개막식에 이은 실제경기는 4월 26일부터 진행되었다. 코르비용컵이 걸려있는 여자단체전 경기는 26일 오전 9시부터, 스웨들링컵을 겨루는 남자단체전 경기는 오전 10시 30분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경기결과는 5월 6일 평양체육관에서 남녀 단식 챔피언 여자 갈신애(중국)와 남자 오노세이지(일본)를 탄생시키고 막을 내렸다.

마지막 날인 6인 벌어진 남녀 단·복식과 혼합복식 등 5개 종목의 개인전 결승에서 중국은 여자 단·복식과 혼합복식에서 우승, 전체 7개 종목 중 여자단체전 우승을 포함해 4개 종목을 휩쓸었다.

유럽에서는 헝가리가 중국을 꺾고 남자단체전에서 우승한데 이어 유고의 슈벡과 스티판칙이 남자복식에서 우승, 2개의 타이틀을 획득했다. 홈테이블의 북한은 이성숙이 여자단식 결승에서 패함으로써 노골드를 기록했다. 단식 결승에서 중국의 갈신애는 이성숙을 3대 0으로 깨뜨렸으며, 남자단식에서는 일본 랭킹 3위로 평가되던 신인 오노가 중국 곽요화의 다리 부상으로 기권승, 행운의 챔피언이 되었다.

이날 여자복식과 혼합복식에서는 중국 선수끼리 패권을 겨루었으며 갈신애는 여자복식과 혼합복식에서도 결승에 올라 양과량과 함께 혼합복식을 석권, 여자단체전과 개인단식에 이어 3관왕을 차지했다. 중국 4, 헝가리 1, 유고 1, 일본 1개의 금메달 획득으로 대회는 막을 내렸다.

 

평양탁구대회 참가했던 재미동포 3명 귀국

미국대표단의 일행으로 평양에 갔었던 재미동포들. 고영일 씨, 이달준 씨, 박혜자 씨.

평양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미국 팀의 통역으로 참가했던 재미동포 고영일 씨와 이달준·박혜자 선수는 귀로에 도쿄를 거쳐 고국에 귀국했다. 한국동란 중 부모와 헤어져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 미국 탁구팀의 통역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할 수 있었던 고영일 씨는 현지에서 10세 때 헤어졌던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동생, 조카 등과 29년 만에 만나 극적인 상봉을 나눴다. 그러나 그는 반가움보다 절망감만을 느끼고 돌아왔다고 당시의 소감을 전해 듣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사람들이 어찌 그렇게 변할 수가 있습니까? 어머니와 위로 세 누이는 그래도 반가워하는데, 동생들은 어버이 수령 동지 밑에서 함께 살면 행복할 텐데 왜 미 제국주의와 남조선의 앞잡이 노릇을 하느냐며 민족 반역자라고 오히려 욕을 퍼붓더군요. 아주 새빨갛게 변했더군요.” 고영일 씨는 차라리 가족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하고 후회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곳 사람들은 완전히 로봇 인간이더군요. 오직 김일성 어버이 수령 동지와 사상만을 찾을 뿐 부모도 형제도 없더군요. 한국 사람들은 정말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겠습니다.”

고영일 씨는 처음 평양에 들어섰을 때는 깨끗한 거리와 고층건물에 마음이 끌렸으나, 속마음을 들여다보니 인간의 냄새는 맡을 수 없고 위선으로 가득 차 있더라고 격분했다.

한편 미국 팀으로 대회에 참가했던 재미동포 박혜자 선수는 다음과 같이 분단조국의 아픈 현실을 다시 한 번 절감케 하는 안타까운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미국과 북한이 대전할 때는 관중들이 자기 선수들을 어찌나 광적으로 응원하는지 위축돼서 경기를 제대로 벌일 수가 없었어요. 자기네 팀의 경기라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미국이 영국이나 프랑스와 경기할 때도 그쪽 편만 응원하더군요. 나인숙과 나는 그래도 같은 피를 나눈 동포인데요.”(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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