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환의 백과사전

 

남북 탁구단일팀 구성을 위한 4차 회담

제4차 남북한 탁구협회 회의가 1979년 3월 12일 오전 10시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렸다. 먼저 제안에 나선 북한 측 김득준 대표는, 지금까지 남북한 탁구협회 회의가 성과 없이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대한탁구협회의 책임이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북한 측은 대한탁구협회가 국제탁구연맹의 회원국으로서 제35회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할 기득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겠으나, 이 기득권을 단일팀 구성과 배치되는 목적에 이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자는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김득준은 또 이러한 기득권 인정을 쌍방이 단일팀 구성 합의서에 서명하고 난 후 교환할 때부터 효력을 가지는 것으로 하자고 아울러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국 측의 채영철 대표는 북한 측의 제안은 종전의 주장인 무조건적인 단일팀 구성합의와 하등 다른 점이 없으며 따라서 결과적으로 한국 선수단의 대회 참가를 막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북한 측은 대한탁구협회의 기본입장인 선 보장을 즉각 공동성명으로 발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채영철 대표는 남북한 탁구협회가 어디까지나 민족적 숙원인 전반적인 남북한 체육교류의 일환으로 다루어져야 하며 북한 측이 이 회의를 평양세계대회 출전 문제에만 한정시키는 일방적인 자세는 그릇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채영철 대표는 회의가 공전을 거듭하는 것이 한국 측에서 기득권 보장을 요구하는 등 인위적인 난관을 조장하기 때문이라는 북한 측의 터무니없는 비방에 대해 기득권 보장과 단일팀 구성문제는 별개의 것이 아닌 현실적으로 필연적인 연관성을 갖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선수단이 제35회 세계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기득권을 보장한다는 공동성명에 먼저 합의하자고 북한 측에 종용한 채회장은, 한국 측의 대회참가 선 보장에 대한 북한 측의 이와 같은 새로운 제안은 한국선수단의 대회 참가를 저지하기 위한 북한 측의 종전 태도와 변함이 없는 것으로 풀이했다.

채영철 대표는 단일팀 구성은 체육교류의 일환이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 ① 남북한 탁구협회는 제35회 세계대회를 마치고 6월과 7월중에 서울과 평양에서 한 차례씩 남북한 친선 탁구경기를 개최하며, ② 남북한 탁구협회가 대회 개최추진을 위해 5월중에 판문점에서 쌍방 대표회의를 갖자고 제안했다.

이로써 남북한 탁구단일팀 구성을 논의하기 위한 제4차 남북한 탁구협회 회의가 아무런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재회의 약속도 없이 3시간 29분 만에 회의를 마쳐 사실상 회담이 좌절되었다.

한국 측의 기득권 보장에 대해 단일팀 구성과 배치되는 목적에는 이용할 수 없다는 묘한 조건을 붙인 북한 측은 제35회 세계대회 대진추첨이 끝나는 3월 17일 5차 회의를 열자고 제의했으나, 대한탁구협회 측은 조건 없이 한국선수단의 입북을 보장하는 성명을 3월 17일 전에 발표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김득준은 신경질적으로 더 이상은 양보할 수 없다며 자리를 떠 회의는 아무런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3시간 29분 만에 아쉽게 끝났다.

결국 양쪽 대표들은 유감의 뜻을 표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남에 따라 단일팀 구성을 위한 네 차례의 대좌는 실질적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남북한 탁구단일팀이 구성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제4차 회의. 사진은 정주년 대변인과 이종하 대한체육회 부회장이 북한측에게 악수를 건네는 모습.

4차 회담 시작 전 대화 스케치

이날 4차 회담은 오전 10시부터 시작됐다. 한국 측에서는 채영철 회장을 필두로 10시 정각에 회의장에 들어섰으며 북한 측은 김득준을 선두로 1분 뒤에 입장했다.

먼저 채영철 회장이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를 건네자 김득준은 “잘 오셨습니까?”라고 말을 받았으나, 지난번 회의 때까지의 분위기보다는 다소 경직된 느낌이었다.

이어 쌍방 대표들은 날씨 얘기로 화제를 돌렸는데 북한의 김득준은 한국 측 대표들에게 “가방들을 다른 것으로 갖고 온 것 같습니다.”고 의미 있는 말을 던졌다. 또한 김득준은 한국 측 대표들에게 담배를 전하더니 취재 중인 한국일보 성인숙 기자에게 “면목(면식)이 있습니다. 잘 있었습니까?”라고 이례적으로 관심을 보였고, 이에 정주년 대변인이 취재기자 중 홍일점인 것 같다고 소개했다.

또한 이종하 대한체육회 부회장이 “오늘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잘해봅시다.”라고 말한 뒤 채영철 회장이 “화내지 말고 잘 합시다.”고 말을 잇자, 김득준은 “자주 만나서 반갑기는 한데 결과도 반가워야죠.”라고 말을 받아쳤다.

그리고는 한국 선수들이 훈련을 잘 하고 있는지 천영석 대한탁구협회 전무에게 묻자, 천전무는 훈련을 잘 하고 있다고 대답하고 남북한 탁구만이라도 친선경기를 한 번 가지자고 하자 김득준은 통일 팀이 된 다음 한 번 하자고 얼버무렸다.

또한 지난 9일 3차 회의 때 흥분이 지나쳐 언성을 높였던 북한의 박무성과 “히야까시 하지 마시오.”라며 화를 냈던 김득준은, 이날 비교적 점잖은 용어를 쓰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으며 회의 분위기도 3차 때보다는 비교적 가라앉았다.
 

국제탁구연맹은 원칙뿐, 북한 농간엔 무방비

네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던 남북한 탁구협회 회의는 재회의 약속은 물론 아무런 결론 없이 끝나고 말았다. 이 같이 남은 것도 얻은 것도 없는 남북탁구 단일팀 회의에서 과연 앞으로 한국팀이 국제탁구연맹의 해석과 같이 평양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회의에 임한 북한 대표들의 속내와 태도를 보면, 한국 측이 국제탁구연맹에 가입된 정회원국으로서의 기득권을 이야기하자 “채선생, 그 기득권이란 거 얻어 뭣에 쓰겠다는 거요? 집에 가서 액자에 넣어 걸어두려고 하오?”라고 했고, 기득권과 단일팀 구성문제는 필연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하자 “좋소, 관계가 있긴 하오, 그런데 어떤 관계냐 하면 상반되는 관계올시다.”라는 등 시종 키들거리거나 빈정대는 투였다.

그들과의 대화는 참으로 부질없는 일인 것같이 느껴졌다. 이것은 북한 측의 원칙이 한국선수단 입북 봉쇄였다는 것을 입증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4월 15일은 김일성의 생일, 대회를 유치한 의도가 정치적으로 제약된 상황이었으므로 단일팀을 운운하며 회의를 제안한 것은 당시의 남북 변칙대좌에 대한 세계의 주목을 흐리게 할 속셈인 것으로 풀이됐다.

한국 측에서 기득권 선 보장을 요구한 것은 기정사실을 확인하자는 것이었으며 북한 측이 진정으로 남북 혼성의 단일팀을 바라는가를 알고자 하는 현실적인 선결문제였다.

4월 14일~15일 평양에서 거행된 대회 대진추첨에는 한국을 포함해서 조 편성을 끝났다. 그러나 한국을 대진에 넣더라도 평양행 비자를 발급할 것인가는 역시 별개의 문제로 남았다.

또 비자를 발급하더라도 실제 한국 선수단의 입북이 보장될지가 의문이었다. 지난 75년 인도 캘커타에서의 제33회 세계선수권대회 때 인도 정부는 이스라엘 선수단에 대해 비자까지 발급했으나 신변의 안전보장 등의 이유를 들어 거부하는 바람에 결국 이스라엘 선수단은 캘커타 공항까지 갔다가 입국하지 못하고 되돌아간 전례가 있었다.

국제탁구연맹은 한국 선수단의 출전가능을 수차례 확인했으나 이것은 원칙의 천명일 뿐 또 한 번 개최국의 정치적 농간을 속수무책으로 방관하지나 않을지 염려뿐이었다.
 

채영철 회장 성명서 발표

채영철 대한탁구협회 회장은 3월 12일 오후 회의를 마친 후 성명을 발표했다. 남북한 탁구협회가 남북한 단일 선수단 구성문제에 관하여 네 차례에 걸쳐 토의했으나 북한탁구협회 측이 우리의 정당한 제안과 요구를 거부함으로써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남북한 탁구협회는 제35회 세계대회를 마치고 6월과 7월중 서울과 평양에서 한차례씩 남북한 친선 탁구경기대회를 개최할 것과 남북한 탁구협회는 동 대회를 개최하는데 필요한 문제를 서로 협의하기 위해 5월중에 판문점에서 쌍방 대표회의를 개최할 것 등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 성명은 지금까지 네 차례의 회의에서 보여준 북한탁구협회의 태도가 북한 측이 당초부터 한국 선수단의 평양세계대회 참가를 못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었음을 명백히 입증했다고 지적했다. 대한탁구협회는 북한탁구협회 특이 이와 같은 부당한 단일 탁구선수단 구성에 관한 실질적 토의가 불가능하다고 인정하고 남북한 체육교류를 위한 현실적 제안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채영철 회장은 제35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개최 2개월을 앞두고 북한 측이 갑자기 내놓은 석연치 않은 제의에도 불구하고 온 국민이 염원하는 이 단일팀 구성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말했다.

따라서 국제탁구연맹 정회원국으로서 가지는 기득권을 선 보장하여 대진 추첨일에 앞서 3월 12일까지 모든 문제에 합의할 것을 촉구했으나 북한탁구협회는 말장난으로 이를 호도, 우리의 정당한 제안과 요구를 거부했다고 말하고, 북한의 이 같은 태도로 보아 한국선수단의 세계대회 참가를 저지하려는데 목적이 있었음이 사실상 명백해졌다고 통박했다.
 

단일팀 구성 좌절에 북한 책임전가 급급

서울발 외신에 의거 북한탁구협회는 남북한 탁구단일팀 구성을 위한 회의가 있은 직후인 3월 12일 북한탁구협회 대표단을 통해 한국 측이 기득권 문제 등을 내세워 회의를 일방적으로 좌절시켰다고 말하고 이 결과에 대해 한국 측은 전적인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 단일팀 구성 좌절의 책임을 한국 측에 전가하기에 급급했다.

북한탁구협회의 동 성명은 한국 측이 합당치 못한 이유와 구실로 불성실한 자세로 임함으로써 단일팀 구성의 의도가 처음부터 전혀 없었음을 드러냈다고 억지 주장을 함으로써, 이 문제를 당초 예상된 한국팀의 입북거부 구실과 정치 선전에 이용하려는 속셈을 구체적으로 노골화했다.
 

대표선수단 유럽 전지훈련 실시

대한탁구협회는 평양세계대회 참가에 대비하여 이미 선발해 놓은 한국대표선수단을 서독과 영국에서 전지훈련을 갖게 하기 위해 3월 15일 3시 문화체육관에서 결단식으로 가졌다.

채영철 대한탁구협회 회장이 천영석 대표단장에게 단기를 수여하고 악수를 청하고 있다.

제17회 학생종별탁구대회 대회중에 열린 결단식에서 남북탁구 회담 한국 측 대표였던 채영철 협회 회장은 “지난 20일 동안 네 차례에 걸쳐 북한 측과 대화를 시도해 봤으나, 결국 우리의 기량과 정신력을 최고로 살려 승리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또한 채회장은 “우리의 발전된 오늘의 모습을 탁구를 통해서 그들에게 알려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어떠한 노력을 해서도 반드시 평양세계대회에 참가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천영석 협회 전무이사가 이끄는 대표선수단은 서독에서 서독 대표선수들과 1주일간 합동훈련으로 전지훈련을 쌓고, 이어 3월 24일~25일까지 영국 에딘버러에서 개최될 스코틀랜드 오픈대회에 참가해 전력을 테스트 한 후 일본을 거쳐 4월 5일 귀국할 예정으로 3월 16일 출발했다.

선수단은 영국 에딘버러에서 열린 스코틀랜드 오픈 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해서 12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여자단식(이기원), 남자복식(박이희.조동원), 여자복식(이기원.정경자), 혼합복식(김완.정경자), 여자주니어 단식(안해숙), 남자주니어 단식(유시흥) 등 6개 종목에 걸쳐 우승했다.

대표선수단은 보름동안 국내에서 훈련한 후, 4월 17일 제네바로 출발해 제네바에서 평양에 입국할 비자 발급을 기다릴 계획이었다. 다음은 당시 선수단 명단이다.(계속)
 

단 장 : 천영석(협회 전무이사)
감 독 : 백송빈(협회 경기이사)
코 치 : 이소광(동아건설), 박종대(서울신탁은행)
총 무 : 정주년(협회 이사)
섭 외 : 박철규(협회 이사)
남자선수 : 박이희, 조동원, 손성순, 김 완, 유시흥
여자선수 : 정경자, 이수자, 김경자, 안해숙, 이기원

저작권자 © 더 핑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