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환의 백과사전

 

남북탁구 단일팀 구성을 위한 2차 회담

남북한 탁구 단일팀 구성을 협의하기 위한 제2차 남북한 탁구협회 회의가 1979년 3월 5일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렸다.

한국 측의 채영철 회장은 이 자리에서 북한 측에 대해 북한탁구협회는 대한탁구협회가 국제탁구연맹 회원국으로 마땅히 누리는 기득권을 보장하여, 한국 탁구선수단의 제35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참가를 보장하는 성명을 차기회의 때까지 먼저 발표해야 한다고 제의하고 이에 북한 측의 긍정적인 호응이 있기를 촉구했다.

채영철 회장은 발언을 통해 첫째 남북한 탁구 단일선수단 구성 문제에 관한 쌍방 간의 협의가 한국선수단이 제35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하는 기득권에 영향을 미칠 수 없으며, 둘째 대회의 대진추첨 일정이 오는 3월 14일부터 15일까지로 이미 결정되어 있음을 감안하고 선수 선발 및 훈련을 비롯하여 필수적으로 수반될 제반문제를 고려할 때 단일선수단 구성 문제가 늦어도 오는 3월 12일까지 합의되어야 한다는 대한탁구협회의 이 같은 기본입장을 설명했다.

북한탁구협회장 김득준은 우리 측의 이러한 제안에 대해 즉각적인 답변을 회피하고 남북한 단일선수단을 구성하자는 원칙만을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또한 김득준은 이날 회의에서 다시 몇 가지 제안을 했으나 그 내용은 지난달 1차 회의 때의 제안과 대동소이 한 것으로 새로이 추가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단일선수단의 공동훈련 장소는 대회 개최장소인 평양체육관으로 한다. 둘째 공동 훈련 기간 중 한국 측의 선수, 임원에 대한 생활조건을(즉 체재비 전액을 북측에서 부담한다) 무료로 제공하며 숙소는 보통강 여관으로 한다. 셋째 국제탁구연맹 총회에 참가하는 대표는 양측에서 각각 1명씩 공동 대표단을 구성한다. 넷째 선수단의 표지는 조선지도에 ‘고려(高麗)’라는 우리글이 들어 있는 것으로 하고 훈련복 역시 ‘고려’라고 새긴다. 다섯째 기념 휘장은 국기를 넣지 않는 순수한 탁구 경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각각 3가지를 만들어 함께 사용한다. 여섯째 단체복, 훈련복, 경기복은 민족적 풍습과 현대적 감각에 맞게 한 벌씩을 만들어 쌍방 합의에 따라 번갈아가며 입는다. 일곱째 출전 선수기용과 활동 중의 기타 문제는 공동단장의 합의에 따라 운영한다는 7가지 제안을 내놓았다.

이날 회의에는 지난 1차 회의 때와 같이 양측에서 각각 4명씩의 대표가 참석했다. 양측은 각각의 제안 후 토의에 들어갔으나 북한 측이 무조건 단일팀 구성을 합의하고 넘어가자고 일방적인 주장만을 되풀이 해, 이날 역시 실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합의도 보지 못한 채 입씨름만 되풀이했다.
 

남북한 탁구 단일팀 구성을 협의하기 위해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에 자리한 남북한 대표들과 이들을 둘러싼 많은 취재진의 열기.

남북한 탁구협회 다시 만나던 날 스케치

1차 회의 때와는 달리 한국 측 대표들이 오전 9시 59분에 먼저 입장해 자리를 잡고 기다리자 북한 측 대표들이 1분 뒤인 10시 정각에 김득준을 선두로 차례로 입장했다. 양측 대표들은 서로 악수를 나누며 잠시 환담을 나누었다.

한국 측 채영철 회장이 “언제 오셨습니까?”하고 먼저 말문을 열자 김득준은 “그동안 건강하게 지내셨습니까? 서울 날씨는 어떤가요?”라고 대답했다. 검은 양복에 색안경을 낀 달변의 김득준은 “남쪽은 아무래도 봄이 좀 빠르지요... 우리 하는 일도 날씨처럼 잘 풀렸으면 좋겠습니다.”라며 “1차 회의를 마치고 돌아가니까 우리 선수들이 달려와 무엇을 합의했느냐고 물어서 아주 혼이 났습니다. 오늘은 무엇이든지 합의해 봅시다.”고 말해 속결을 서두르는 그들 측의 속셈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국 측의 정주년 대표가 “우리 선수들이 평양에 갈 때 멀리 돌아갈 것이 아니라 여기서 바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타진하자, 김득준은 “자주 만나서 얘기하면 그 문제도 풀어지겠지요.”라고 우회적으로 응답했다.

이어 천영석 대표가 “지난달 2월 16일자로 국제탁구연맹을 통해 비자 신청서를 보냈는데 받아 보았느냐”고 묻자 김득준은 “단일팀 구성을 협의하는 마당에 비자 신청 얘기가 무엇이냐”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아직 못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채영철 회장이 “국제탁구연맹에서 비자 신청서를 북한에 보냈다는 전문까지 받았는데 무슨 소리냐”고 다그치자, “과거 얘기는 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며 역시 김득준은 언급을 회피했다.

이런 식으로 십여 분쯤 대화를 나누다가 “이제 시작할까요.”라는 우리 측의 제의에, 김득준은 “담배나 한 대 피우고 난 뒤 시작합시다.”면서 채영철 회장과 천영석 대표에게 영광 담배를 권하기도 했다.

이날 양측 대표들은 서로 웃으면서 얘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지난 1차 회의 때 보다는 좀 무거운 분위기였다. 이날 회의는 오전 10시 15분부터 시작해 1시 48분까지 3시간 30여 분간 계속됐으나, 양측모두 한 가지 안건에도 합의하지 못하고 입씨름만 되풀이하다 결국 오는 3월 9일 오전 10시에 다시 만날 것만을 합의한 채 끝났다.
 

남북 탁구협회 2차 회담 분석

남북한 탁구협회 단일팀 구성 협상을 제의한 북한 측의 저의가, 한국 탁구팀이 오는 4월 25일 평양에서 열리는 제35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의 참가를 저지하려는데 있음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지난달 2월 27일 제1차 회의에서와 마찬가지로 양측의 엇갈린 주장은 평행선을 그은 채 조금도 각각의 의견이 접근하지 못했다.

우리 측은 단일팀의 구성에 만약 합의를 보지 못할 경우에는 한국 선수단이 개별적으로 출전할 수도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한데 대해서, 북한 측은 단일팀의 구성에 우선 합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함으로써 한국의 대회 참가 우선 보장을 거부한 것이다.

국제 체육경기에 남북이 따로 참가하는 것 보다는 하나의 팀으로 출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에는 누구에게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협회는 이에 앞서 북한 측이 남북한 탁구 단일팀을 무슨 생각으로 제의했느냐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이때까지 중요한 국제 대회에서의 남북한 단일팀은 고사하고 체육 교류마저 일체 거부해 오다가, 대회를 불과 2개월 남겨 놓고 갑자기 단일팀을 제의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북한 측은 남북 단일팀을 진실로 원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렇지 않고 다른 속셈을 품고 있는 것인지가 중요한 의문이었다.
 

회의실 창문을 통해 남북한 탁구협회 회의 취재에 열을 올리는 내외 보도진들.

대한탁구협회는 국제탁구연맹으로부터 제35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한국 선수단이 참가할 수 있는 권리를 이미 보장받고 입북 비자를 기다리고 있는 터였다. 따라서 북한 측은 단일팀의 제의가 한국 선수단의 입국을 거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 제의에 대한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단일팀의 토의에 앞서 한국 선수단의 개별출전 기득권을 보장하라는 우리 측의 요구를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 측은 우리 측의 이 같은 정당한 요구를 거부하고 단일팀 구성의 우선 합의만을 고집하고 있었다. 이로써 이제 북한이 무엇 때문에 남북 탁구 단일팀을 제의했는가의 속셈은 분명히 밝혀졌다고, 전탁구인은 물론 언론에서도 같은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한국 선수단이 평양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입북 비자를 발급해야만 한다는 국제탁구연맹과 세계 각 협회 여론의 압력을 단일팀 협의를 구실로 회피해 보겠다는 것으로 협회는 분석했다.

그들의 제의가 단일팀에는 뜻이 없고 오직 한국의 평양대회의 출전을 막는 방패로 삼고자 했다는 것은, 단일팀 구성의 절차 문제에 관한 제안에서도 드러났다. 우리 측이 이미 지적했지만 단일팀의 명칭을 적화통일 전략으로 제안한 바 있는 고려연방공화국과 관련하여 ‘고려(高麗)’라고 해야 한다든가, 또는 선수의 선발을 국제연맹이 발표한 세계랭킹에 의거해 선발하자는 등이 그것이다.

우리는 북한 측의 단일팀 제의에 숨은 이 같은 계략을 간파한 이상 남북한 탁구협회 회의를 앞으로 되풀이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필요성을 검토해보게 되었다.

오는 3월 9일로 예정된 제3차 회의에서 우리 측은 북한 측이 단일팀 우선 합의를 고집하고 있는 저의를 거리낌 없이 폭로하고, 그들이 한국 선수단의 대회참가 기득권을 보장하도록 보다 강력히 요구하고 관철해야 할 것임을 다짐했다.

3월 14 ~ 15일 대회 대진표 추첨에서 한국 선수단이 빠지면 우리의 개별 출전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는 만큼 그 이후의 남북한 탁구협회 회의는 무의미한 것으로 보는 것이었다.

중요한 국제대회에 남북한이 단일팀으로 참가하는 것은 남북 체육교류의 비탕에서만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며 또한 단일팀은 남북관계 개선의 뜻을 지닌 체육교류의 일환으로 실현될 때 그 의의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북한 측이 남북체육 교류에 뜻이 있다면 한국 선수단의 평양대회에의 개별 출전을 보장하는 것으로 그들의 성의를 증명해야 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두 차례의 회의를 통해 단일팀 구성 제의만을 되풀이하는 북한의 저의가 거의 드러나고 있었으며, 남북 단일팀의 명분론에 얽매여 마냥 회의를 질질 끌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 측은 평양대회에서 개별 출전을 가능하게 하는데 마지막으로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 팀 비자 신청 접수 확인

국제탁구연맹(ITTF) 토니 브록스 사무총장은 제35회 평양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참가를 위한 한국 탁구선수단과 취재 기자 9명의 입북 비자 신청서가 모두 북한 측에 접수되었다고 3월 7일에 밝혔다. 브록스 사무총장이 3월 6일 런던을 방문했던 북한탁구협회 대표들로부터 국제탁구연맹을 통해 제출한 한국 측의 신청서를 평양 북한탁구협회에 접수되었다는 확언을 받았다고 대한탁구협회에 알려 왔던 것이다.

그러나 통신에 의하면 델라 페르골라 국제 체육 기자협회(AIPS) 사무국장은 기자들의 취재 허가 신청서류에서 한국 기자 9명 중 7명이 누락되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된 데 이어, 9명의 한국 기자는 평양에서의 취재가 허가되지 않았다고까지 주장함으로써 한국 기자들의 취재 허가 신청서가 과연 북한 측에 접수되었는지의 의문을 갖게 했다.

또한 토니 브록스 사무총장은 남북한이 단일팀으로 평양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지 ITTF가 유권 해석을 내려달라는 대한탁구협회의 요청에 대해 국제탁구연맹이 서면으로 회신을 보냈다고 밝혔다.

그는 남북한 양측이 단일팀 참가에 진지한 열의가 있고, 국제탁구연맹 내에 남북한 단일팀 참가를 지지하는 충분한 동조 세력이 있다든가, 남북한이 단일팀 구성에 관한 합의에 도달할 경우 즉각 임시총회를 열어 현 규정을 개정해서라도 상정하여 승인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일본탁구협회와 일본 정부가 당시 남북한 단일팀 구성과 관련해 국제탁구연맹에 남북한 간의 대화 결과를 존중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한 데 대한 결과로 분석했다.
 

한국 팀 참가 기득권 보장 성명서 발표

대한탁구협회 정주년 대변인은 3월 5일 남북한 단일팀 구성에 따른 판문점 2차 회의가 끝나고 돌아와 성명서를 발표했다.

즉 대한탁구협회는 북한탁구협회 측이 한국 선수단의 참가 기득권을 보장하면 즉시 남북한 단일팀 구성에 필요한 우리의 구체적 제안을 제시하고 실질적 토의를 할 모든 준비가 다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2차에 걸친 남북한 탁구협회 회의에서의 북한탁구협회 측의 태도로 보아 한국 선수단의 참가를 보장하지 않으려 하는 그들의 진의가 무언가 분명하지 않으며, 따라서 대한탁구협회는 북한탁구협회가 우리의 기득권을 하루 속히 먼저 보장하여 남북한 탁구 단일 선수단 구성문제가 구체적으로 합의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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