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환의 백과사전

 

남북탁구 단일팀 구성을 위한 3차 회담

남북한 탁구 단일팀 구성을 협의하기 위한 제3차 남북한 탁구협회 회의가 1979년 3월 9일 오전 10시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회의에는 1, 2차 회의 때와 마찬가지로 한국 측에서 채영철 대한탁구협회 회장, 이종하 대한체육회 부회장, 천영석 대한탁구협회 전무이사, 정주년 대한탁구협회 이사가, 북한 측에서는 북한탁구협회장 김득준, 부회장 박무성, 서기장 김덕기, 위원 김선일 등 쌍방 4명씩의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한국 측 채영철 회장은 “남북한 탁구협회 회의는 단절된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전반적인 남북한 체육교류를 실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채회장은 덧붙여 “우리는 이 회의가 단 한 번의 행사를 치르기 위한 일시적 목적에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이 기회에 남북한의 체육인들이 남북을 왕래하면서 모든 경기에 참가할 수 있도록 길을 터놓는데 이바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회장은 이어 “남북 간의 체육교류 문제와 탁구단일팀 구성문제는 결코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인 하나의 문제”라고 지적, “모든 국제경기에 남북한이 단일선수단을 구성하여 출전시키는 문제와 남북 간의 체육교류 문제를 동시에 협의하자.”고 제의했다.

또한 “지금까지 회의를 통해서 우리 측이 뚜렷하게 느끼는 점은 북한 측이 이러한 초보적인 남북 체육교류를 전혀 도외시하고 있고 다만 평양 세계탁구선수권대회라는 한정된 행사에 국한해서 문제를 다루려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우리 측은 그와 같은 거듭된 주장에 대해서는 결코 의견을 같이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채회장은 단일 선수단 구성문제 이전에 한국 선수단이 평양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하는 기득권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대한 우선 보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국제탁구연맹에 두 개의 단체가 남과 북에 존재한다는 국제탁구연맹의 규약에 원칙을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만약 우리 측의 이 같은 요구에 끝내 동의하지 않는다면 북한 측의 단일선수단 구성제의가 한국 선수단의 대회 출전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밖에는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다고 강조했다.

정리하자면 채회장은 북한탁구협회에 대해 한국선수단의 기득권을 인정하고 평양대회 참가를 보장한다는 의사를 이 자리에서 명백히 밝히라고 요구한 것이다.

한편 북한 측의 김득준 회장은 “민족통일 준비 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한 남북대회가 새로이 시작되는 이 시점에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남북한 탁구단일팀을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한국 측의 태도를 맹렬히 비난했다.

김득준은 한국 측이 말로만 단일팀을 만들자고 하면서 실제로는 난관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1차 회담에서는 국제탁구연맹 규약의 유권적 해석을 들고 나와 회담을 어렵게 만들더니 2차 회담 때는 기득권 문제를 들고 나와 회담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으려고 했다.”고 주장, 기득권의 보장을 우회적으로 거부했다.

김득준을 또 “한국 측이 3월 12일까지 단일팀이 구성되지 않으면 개별적으로 참가하겠다는 것은 단일팀을 구성치 않겠다는 저의”라고 비난하고 “단일팀을 구성할 의사가 있는지 없는지를 명백히 하라”고 주장했다.

북한 측의 이 같은 주장은 평양세계대회까지 시일이 얼마 남지 않았고 또 3월 14~15일 중으로 대진추첨을 해야 한다는 사실 등을 외면한 것으로 단일팀 구성이 안 되는 경우에는 참가를 저지하려는 속셈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렇게 제3차 남북탁구협회 회의 역시 1, 2차 회의 때와 마찬가지로 장장 3시간 36분에 걸친 설전을 벌인 끝에 아무런 진전이 없이 끝났다.

양측은 한국 측의 제의에 따랄 3월 12일 오전 10시 같은 장소에서 만나 단일팀 구성에 대한 최종 회의를 갖기로 했다.

한국 측은 전반적인 체육교류와 더불어 한국탁구팀이 평양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을 보장하라고 강력히 제의했으나, 북한 측은 단일팀 구성 회의에서 다른 제의는 있을 수 없다고 고집해 끝내 회의는 진전을 보지 못했다.

한국 측 정주년 대변인은 회의가 끝난 뒤 성명을 발표, “대한탁구협회는 지금까지의 세 차례 회의를 통해 북측의 태도로 보아 북한탁구협회가 한국선수단의 제35회 평양세계탁구선수권대회 참가의 기득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는 것은, 그들의 회담 제의가 단일선수단 구성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선수단의 대회 참가를 막으려는데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 대변인은 “대한탁구협회는 남북한의 단일팀 구성문제는 남북한 체육교류의 테두리 속에서 실현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대한탁구협회는 북한탁구협회가 한국선수단의 대회 참가의 기득권을 우선적으로 보장한다면 남북한 단일선수단 구성을 위한 실질적 토의에 곧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1979년 3월 9일 제3차 회의가 열린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 풍경.

남북탁구협회 3차 회담 이모저모

제3차 남북탁구협회 회담은 오전 10시부터 시작되었는데 한국 측에서는 채영철 회장을 선두로, 북한은 그 30초 후 김득준 회장을 선두로 회의장에 들어섰다. 다음은 그 날의 대화를 스케치한 것이다.

채회장이 “경첩도 지났는데 대동강 물이 풀렸느냐”고 묻자, 김득준은 “네, 풀렸습니다. 잘 지내셨는지요”라고 인사를 나누었다.

이종하 우리측 부회장이 “남쪽엔 안개가 많이 끼었는데 북쪽은 어떻습니까?”라며 묻자 김득준은 “개성 쪽에는 많이 끼었습니다.”고 답변했다. 김득준은 이어 “두 차례 회담이 모두 성과가 없자 선수들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따지더라”고 말하자, 채회장은 “우리 쪽에서는 선수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우리를 따지는 입장”이라고 응수했다.

채회장이 “이렇게 자주 만나니 분위기가 부드럽게 되고 마음이 통하는 것 같지 않느냐”고 , 이에 김득준은 “오늘 우리들이 이런 분위기로 회의를 끌고 가면 앞에 가로놓인 커다란 돌멩이가 없어질 것 같다”며 “당사자들이 단일팀을 만들겠다는 진의가 중요할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에 대해 천영석 우리 측 탁구협회 전무가 “런던에서 들어온 외신에 따르면 평양 측에서 한국 팀의 비자 신청서를 접수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이냐”고 묻자 김득준은 “접수했는지 안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얼버무리며 “단일팀 구성문제가 중요한 이 마당에 단독 팀의 출전을 의미하는 비자가 무슨 문제냐”며 “단일팀이 구성되면 남쪽 선수들이 판문점을 통해 평양으로 들어올 수 있다”고 받아넘기기까지 했다.

이날 회담장에는 북한 측에서 TV 카메라까지 동원하여 현장을 담는 모습도 보였다. 11분간에 걸친 인사가 끝난 뒤 기자들이 퇴장하자 회의가 시작되었다. 남북한 탁구단일팀 구성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남북한 탁구협회 대표회의는 그 3차 회담부터 회담을 제의한 북한 측의 저의를 뚜렷이 실감케 했는데, 북한 측 김득준 회장은 발언 벽두부터 “한국 측이 임의적 난관을 만들어 회담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고 우리 측을 비난했다.

김회장은 또 채영철 회장의 발언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 기득권 문제냐”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채회장이 이에 “당연히 선결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냐.”고 응수하자 김회장은 “돌멩이 하나가 없어진 줄 알았더니 아직도 안 없어졌구만.”이라며 되받기도 했다.

이날 북한 측의 기자들은 전례 없이 취재에 열을 올리며 회담이 어떻게 진행되어 가는지 우리 측 기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등 표면적으로 많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북한 측 기자들은 그들의 대표들이 회의 때마다 주장했듯 단일팀 구성이야말로 이번이 절호의 찬스라는 등 은근히 선전에 열을 올렸다. 이들은 또 오는 4월 25일부터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리는 평양 체육관은 관중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자랑하며 지난번 2차 회의 때 그들의 대표들이 제의한 이른바 합의문을 우리 측 기자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회의장 주변에서 남북기자들이 개회를 기다리고 있다. 오른쪽 끝은 북한경비병.

또 하나의 남북대화

남북 탁구단일팀 구성을 협의하기 위해 남북탁구협회 임원들이 세 번째로 만났던 판문점에서 우리 측 기자와 북한 측 장병과의 나눈 대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간간이 눈밭이 휘날리는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본 회담장 창문 옆에서 이쪽 기자와 저쪽 장교간에 기묘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누런색 군복에 검은 가죽 장화를 신은 40세 남짓한 장교는 꽤 높은 직위인 듯 비교적 자유로운 몸가짐이었고 그래서 대화를 꺼리는 기색도 전혀 없었다.

그곳에서의 대화란 으레 반말이 나오게 마련이므로 반말로 그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기자 : 당신 계급이 뭐요? 별이 세 개나 달린 것을 보니 대위쯤 되는 모양이군.

상좌 : 사람 그렇게 보지 말라우. 이래 뵈도 상좌야. 기자 선생들은 모두가 만물 박사인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군.

기자 : 당신 야구할 줄 알아?

상좌 : 우리는 그런 거 안 해.

기자 : 왜 안 해?

상좌 : 야구는 부르주아 운동이니까.

기자 : 야구가 어째서 부르주아 운동이야. 중국에서도 야구를 하고 쿠바는 세계 최강의 야구나라인데. 11월에 쿠바에서 세계야구선수권대회가 열리는 데 우리는 거기에 출전한다고.

상좌 : ......(우물쭈물)

기자 : 테니스도 안 하겠지?

상좌 : 정구 말이구먼. 정구야 많이들 하고 있지.

기자 : 당신 논리대로 하자면 테니스도 부르주아 운동인 것 같은데, 안 그래? 그런데 테니스는 왜 하는가?

상좌 : ......(우물쭈물)

그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더니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상좌 : 권투 있잖아. 그것이 원래 1회에 3분씩 3회만 하게 되어 있는데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돈벌이 욕심으로 프로란 걸 만들어 가지고는 10회, 12회, 15회까지 마구잡이로 늘여서 하더군. 얼마나 비인도적이야. 도대체가 돼 먹질 않았어.

기자가 어처구니가 없어 얼굴만 쳐다보고 있자니까 신이 나는지 그는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상좌 : 체육인이란 원래 노동하는 틈틈이 체력을 단련해서 사회주의 건설에 앞장설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지, 즐기라고 존재하는 것은 아니야, 안 그래?

그래놓고는 돌아서더니 판문각 쪽으로 휘적휘적 가버렸다. 5분도 채 못 되는 짧은 대화였지만 남과 북의 차이를 시사하는 듯한 재미있는 대화였다.
 

단일팀 구성 실패 시 한국 팀 참가 가능

국제탁구연맹은 “1979년 4월 25일부터 평양에서 개최되는 제35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한이 단일팀을 출전시킬 수 있도록 허용하는데 필요한 모든 준비를 완료했으며, 만일 남북한이 단일팀 구성에 실패한다 해도 한국이 자국 선수단을 평양에 파견하는 데는 문제점이 없을 것”이라고 토니 브록스 국제탁구연맹 사무총장이 외신을 통해 발표했다.

브록스 사무총장은 또한 북한이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유치하면서 한국을 포함한 1백 20여개 ITTF 회원국 모두의 참가를 허용할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지적하고, 당시까지 알려진 바로는 평양대회 참가국 수가 35명의 대규모 선수 및 임원단을 파견하는 미국을 포함하여 50여 개국에 이른다고 밝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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