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환의 백과사전

 

남북탁구 단일팀 구성을 위한 1차 회담

1979년 4월 25일부터 평양에서 개최되는 제35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남북한 단일 선수단을 구성하기 위한 제1차 남북한 탁구협회 회의가 2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15년 7개월 만에 열렸다.

남북한 체육인들이 단일팀 구성 문제를 놓고 회동한 이날 회의에서는 한국 측에서 채영철 대한탁구협회 회장, 이종하 대한체육회 부회장, 천영석 대한탁구협회 전무이사, 정주년 대한탁구협회 이사(대변인)가, 북한 측에서는 김득준 북한탁구협회 회장, 박무성 북한탁구협회 부회장, 김덕기 북한탁구협회 서기장, 김선일 북한탁구협회 위원 등 양측에서 모두 4명씩 참석했다.

이날 회의는 오전 10시 6분부터 11시 47분까지 1시간 41분 동안 화기애애한 가운데 진행되었으나, 남북한 단일팀 구성 문제를 놓고 양측의 기본 입장이 엇갈려 구체적인 합의점은 찾지 못했다.

한국 측을 대표한 채영철 회자의 기조연설은 남북한 단일팀 구서에 관한 기본 입장으로 ① 남북 선수단 구성 문제는 국제탁구연맹(ITTF)의 규약을 준수하고 동 규약의 조항에 합의되어야 하며,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제반 문제들이 먼저 원만하게 해결되어야 한다. ② 남북한 탁구 단일 선수단 구성 문제는 늦어도 3월 12일까지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며 3월 12일까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 북한탁구협회는 한국 탁구 선수단의 평양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보장하기로 한다. ③ 남북한 탁구협회는 단일 선수단 구성이 국제탁구연맹 규약의 정신과 조항에 일치하는지의 여부를 파악, 국제탁구연맹에 조회하기로 한다. 등 3가지 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채영철 회장은 이 제안에 앞서 남북한 단일팀 구성은 우리 체육인들뿐만 아니라 5천만 온 겨레의 소망이며, 이를 계기로 남북한 간의 모든 종목에 걸쳐 체육 교류가 실천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하고 북한 측도 우리 측의 성의에 적극적인 자세로 호응해 줄 것을 촉구했다.

한편 북한을 대표한 김득준의 기조연설에서는 남북한 탁구 단일팀 구성을 위해 ① 양측의 가장 우수한 18명의 선수로 단일팀을 구성한다는 원칙 아래, 선수 선발은 국제탁구연맹에서 근래에 발표한 세계랭킹에 오른 선수를 우선적으로 선발하고 나머지 선수는 양측에서 절반씩 같은 수로 뽑는다. ② 대회 현지 기후와 환경에 적응하도록 평양에서 남북 선수들의 공동 훈련을 실시한다. ③ 한국 선수들의 편의와 신변을 보장하며 선수단 단장은 양측에서 1명씩 선출해 공동 단장으로 한다. ④ 선수단 의무요원 등의 구성 문제는 쌍방 합의 아래 필요한 인원을 뽑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단일 선수단의 명칭은 쌍방이 함께 수락할 수 있는 ‘고려(高麗)’로 하자고 제의했다.

회의가 끝나기 전에 앞서 채영철 회장은 앞으로의 회의는 ① 쌍방 대표단 4명과 수행원 3명 이내로 하며, ② 공개회의를 원칙적으로 하며, ③ 기록과 보도는 각기 하기로 하자, 고 제안했다. 그리고 2차 회의에 관해서는 3월 5일 오전 10시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오늘의 양측 제의를 토대로 서로 검토하여 구체안을 가지고 열자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북한 측은 3월 1일 오전 10시에 2차 회의를 열자고 요구했고, 우리 측이 반대하자 이에 대한 절충안으로 3월 3일에 열 것을 주장, 약 40여 분간의 옥신각신 끝에 한국 측의 당초 주장대로 3월 5일에 2차 회담을 갖기로 했다.
 

판문점 회담이 있던 날 아침 분위기

1979년 2월 27일 먼동이 트기 전 새벽 6시, 무교동에 위치한 대한체육회 10층 강당에서는 이날 10시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릴 회의에 참가할 한국 측 4명의 대표를 환영하기 위한 자리가 마련되었다. 대한체육회와 탁구협회는 전 경기단체회장을 비롯한 임원들 그리고 보도진 등 200여 명을 초청해 차를 나누며, 한국 측 대표들에게 남북한 단일팀 구성이 기필코 성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는 격려와 지지를 당부했다.

그 당시로서는 총을 들고 전쟁터에라도 나가는 분위기로, 대표단을 체육회관 앞에 배치한 벤츠 승용차 4대에 각각 분승하고, 경찰차와 싸이카의 호위로 우렁찬 박수를 받으며 아침 7시 체육회관을 출발했다. 그리고 대표단이 판문점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회의 대표 4명과 수행원 3명은 1시간 동안 휴게실에서 휴식하며 회의 진행에 대한 방법을 숙지한 다음, 9시 57분에 회의장에 도착했다.

회의장은 장방형 테이블에 4개의 마이크 선을 사이에 두고 대좌할 남북대표 각 4명과 수행원 각 3명의 자리와, 그 앞에는 메모지와 거북선 담배 그리고 롯데호텔 선전용 성냥이 놓여 있었으며, 북한 측도 여과(필터) 담배인 영광과 금강 성냥을 준비해 놓았다.

 

판문점 남북 탁구회담 스케치

“안녕하십니까, 날씨가 많이 풀렸습니다.” (채영철 회장)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욕보시지요.” (김득준 회장)

우리 측 대표단이 채영철 회장을 선두로 회의장에 들어선 것은 오전 9시 57분. 이윽고 김득준 북한탁구협회장 등 4명의 북한 측 대표가 들어와서 테이블을 마주하고 환담을 나누었다.

다음은 계속해서 이어진 환담의 내용을 기술해 본 것이다.

김종하 대한체육회 부회장은 지난해 방콕 아시안게임 북한 선수단 회의 대표였던 김득준 회장에게 “오랜만입니다.”하며 악수를 청했다. 이어 채영철 회장이 “세계대회 안내 책자를 받아 보았는데 경기장 규모가 대단하더군요. 거기다 김선생이 조직위원회 위원장이시더군요.”하고 말을 꺼내자, 김득준은 방긋이 웃으며 “중책을 맡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천영석 대한탁구협회 전무이사가 박영순의 안부를 묻자 김득준은 또 “잘 지내고 있다.”고 간단히 대답했고, 북한의 김선일은 이에리사와 정현숙의 안부를 물어왔다.

천영석 전무가 “이번에 같이 평양에 가면 좋았을 텐데 세대교체를 위해 은퇴했다.”고 대답하자 김득준은 “그 처녀들 시집갈 때가 안 되었느냐?”고 되물었다.

27일 오전 10시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남북한 탁구협회 회의. 사진은 취재진의 열기 아래 채영철 대한탁구협회 회장이 김득준 북한탁구협회 회장과 악수하고 있는 모습.

이런 분위기로 비교적 화기애애하게 시작된 환담에 이어, 김득준이 먼저 북한 대표를 소개했다. 김득준은 세계대회 예비 엔트리 신청국이 무려 80여 개국이며 최종 엔트리도 현재까지 70여 개국으로 사상 최대라며 자랑했다.

채영철 회장과 이종하 체육회 부회장이 방콕 아시안게임 남북한 축구 결승전에 관한 얘기를 꺼내자, 김득준은 “우리 마주앉아 풀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 같은 민족끼리 모여 민족의 슬기를 세상에 알렸으면 좋겠습니다.”라며 긴장되는 분위기를 넘겼다. 북한 대표들은 대한체육회장직을 사임한 김택수 회장과 박종규 신임 회장의 근황을 물어오기도 했다.

회의장에는 우리 측 내외신 기장 70여 명과 북한 측 20여 명의 기자들로 취재열기가 한창이었으며,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 5,6명의 장교들이 나와 회의장 분위기를 끝까지 지켜봐 눈길을 끌었다.

10시 2분 경 장내가 소란하자, 김득준은 장내가 시끄러우니 기자들을 내보내고 회의를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우리 측의 정주년 대변인도 장내 정리 후 만나자고 제안을 받아들임으로써 10시 6분경에 이르러 회의가 이어졌다.

이날 1차 회의를 통해 단일 선수단 구성 문제의 어려움은 그대로 드러났다. 양측은 2차 회의 개최 날짜를 확정하는 문제를 놓고 40여분동안 실랑이를 벌인 끝에 우리 측의 강력한 주장대로 3월 5일 2차 회담을 갖기로 합의했다.

우리 측은 남북 단일 선수단 구성을 위해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2차 회의까지 1주일가량의 시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반면 북한 측에서는 지체 않고 3월 1일 회의를 열 것을 요구, 한때 격렬한 입씨름까지 오고갔다.

그러나 2차 회의 전까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우리 측의 태도가 강경하자, 북한 측은 “그렇다면 피차 조금씩 양보하여 3월 3일에 여는게 어떻겠느냐?”고 제의하기도 했다. 이에 우리 측은 “그럴 바에는 서로가 여유 있는 시간을 두고 충분히 검토한 후 다시 만나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는 입장을 드러냈다.

북한 측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관계로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언론을 포함한 다수의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게 될 것이다.”라고 우리 측은 “남북단일팀을 만들자는 것을 우리 제안에 포함된 이야기다. 국제탁구연맹 견해를 타진하고 공식태도를 확인한 후 3월 5일에 다시 만나는데 동의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에 북한 측은 “우리가 주인인데 국제연맹에 물어볼 필요가 있느냐, 그러나 3월 1일에 다시 만나자.”, 우리 측은 “3월 1일은 민족적으로 좋은 날이지만, 양측에서 제시한 기본 입장을 다각적으로 검토하려면 3월 5일이 가장 적당하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남북한 단일 선수단 구성을 위한 회의에서 채영철 대한탁구협회 회장(오른쪽 두 번째)이 단일팀 구성에 관한 한국측의 기본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왼쪽 끝은 김득준 북한탁구협회 회장).

북한 측은 “잘 나가다가 날짜가지고 뭘 그러느냐, 서로 양보정신을 발휘하여 3월 3일이 어떻겠느냐?”라고 불쾌한 심정을 나타냈기 시작했고, 이에 맞서는 우리 측 또한 객관성을 잃지 않고 “신중하게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만한 날짜가 필요하다.”며, “귀측에서 우리의 제안도 연구하고 우리에게도 연구할 시간적 여유를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김득준 회장이 3월 5일 같은 시간이 좋겠다고 말하면 한국 측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 때가 11시 45분, 입씨름이 시작되고 40여분이나 지난 후였다. 이렇게 정리하고 양측은 11시 48분 경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각자 자리를 떴다.

이렇듯 회의장은 따뜻한 대화가 탁구공처럼 오가기도 했으나, 회의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양측의 대립적인 견해로 회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무거워지기도 했다.
 

남북탁구협회 1차 회담 분석

일본의 유력한 경제지인 산케이 신문은, 2월 27일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남북탁구협회간 1차 회담에서 북한이 내놓은 남북한 단일팀 구성 제안들을 교묘한 정치 선전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그러한 제안들은 한국으로서는 간단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라고, 회의가 끝난 다음날인 2월 28일 크게 보도했다.

산케이 신문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들어 설명했다.

첫째, 선수 구성에서 세계 랭킹 기준으로 선발하자고 제안한 것은 이에리사, 정현숙, 김순옥 등이 은퇴한 지금, 랭킹에 들어 있는 선수가 없는 한국으로서는 불리하다.

둘째, 단일팀의 명칭을 ‘고려(高麗)’라고 호칭할 것을 주장한 것은 1973년 북한이 고려연방공화국을 제창한 것과 관련해, 북한의 정치적 선전의도가 숨겨져 있다.

셋째, 단일팀 구성 단장을 쌍방 1인씩 공동 단장으로 하자고 한 것은 마부가 둘이면 달릴 마차도 달리지 못한다는 속담을 들어, 그것은 북한의 교묘한 술책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한국은 단일팀이라는 비약적인 남북 접근보다는 남북간의 스포츠 교류를 주장했다고 산케이 신문은 보도했다.

또한 산케이 신문은 그 전해 서울에서 열린 세계사격선수권대회 및 국제여자배구대회와 그해 4월 서울에서 개최될 국제여자농구대회에 초청장을 보냈으나 모두 동의를 얻지 못한 사실을 열거하면서, 이러한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북한의 단일팀 제안은 교묘한 정치 선전으로 받아들여진다고 비판했다.

탁구협회는 1차 회담에서 일본의 산케이 신문이 평가했듯이, 북한 측에 의해 제의된 국제탁구연맹(ITTF) 랭킹에 따른 선수단 구성은 그들이 유리한 입장에 있는 현실을 이용하려는 획책으로 평가했다.

국제탁구연맹이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발표한 당시의 랭킹에 따르면 여자의 경우 한국의 정현숙 선수가 6위, 이에리사 선수가 11위, 김순옥 선수가 2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상황으로는 세 선수 모두 은퇴하여 현역 선수는 한 명도 끼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 측은 랭킹 1위인 방영순 선수를 비롯해 이성숙 16위, 박영옥 22위, 김창애 32위 등 4명 모두 현역 선수로 활약 중에 있어 북한 측 선수를 전원 선발하여 출전시키려는 속셈이 여실이 드러났다.

남자선수에 있어서는 한국의 최승국 선수가 37위, 이상국 선수가 38위에 랭크되어 있었으나, 역시 모두 은퇴하여 한 명도 없는 북한과 마찬가지의 입장이었다.

이렇듯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결국 북한은 여자 선수의 주측을 북한 측 선수 일색으로 하고, 남자의 경우 또한 안배하려 하는 잔꾀를 부리고 있음에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협회는 3월 5일에 열릴 2차 회담에 대비하여 남북회담 조절위원회의 조언을 받아 그 제반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특히 구체안을 마련하는데 힘쓰고자 하는 등 순수한 스포츠 정신으로 모처럼 마련된 단일팀 구성의 호기를 저버리지 않도록 하자는데 근본을 두었다. 협회는 미·중국의 해빙이 핑퐁외교에서부터 시작된 사실을 상기하면서 당시의 탁구 단일팀 구성으로 남북관계의 건설적인 일보 전진이 이루어지기를 누구보다 고대했던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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