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환의 백과사전

 

북한에 비자 신청서 발송

대한탁구협회는 1979년 2월 16일 제35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할 한국선수단 20명(임원10, 선수10)과 각 언론사에서 추천한 기자단 9명의 비자 신청서를 국제탁구연맹을 통해 평양대회 조직위원회에 발송했다.

채영철 협회 회장은 비자 신청서와 함께 제35회 평양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사무국장 김달선 앞으로 보내는 서한을 동봉했는데, 채회장은 이 서한에서 ‘우리는 스위스의 제네바 주재 귀 대표부에서 비자를 받아 그곳에서 전세기를 탑승하기를 희망하고, 그러나 만약 판문점을 통해서 가는 것을 양해한다면 우리의 선수단은 제네바까지 가지 않고 그 길을 택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조치는 국제탁구연맹이 최종 엔트리 신청서를 기일 안에 평양조직위에 접수시켰다고 알려오면서, 대한탁구협회가 별도의 서면으로 요청했으며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해왔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로써 협회는 평양 세계대회 참가를 위한 모든 절차를 마쳤다.

채영철 회장은 기자회견을 자청, “최종 엔트리 신청서와 비자 신청서를 기한 내에 발송, 우리의 할 일은 다 끝났다. 이제는 북한의 성의 있는 태도를 기다릴 뿐이다.”라고 말했다. 대표선수단은 판문점 입국이 불가능 할 경우, 4월 10일 경부터 스위스 제네바 대표부에서 비자 발급 수속을 밟을 예정이었다.
 

- 북한 조직위원회에 보낸 서한 전문 내용 -

제 35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사무국장 김달선 귀하

제35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개최준비에 매우 바쁘리라고 봅니다. 국제탁구연맹을 통하여 우리선수단 참가신청서와 언론이 참가신청서를 가히 접수하였으리라고 믿습니다. 그간 국제탁구연맹 로이 에반스 회장과 토니 브록스 사무국장을 통하여 대회 참가에 따른 절차를 논의해 왔습니다. 이에 우리는 스위스 제네바 주재 귀 대표부에서 비자를 받고자 하여 그곳에서 전세기를 탑승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판문점을 통해서 가는 것을 양해한다면 우리의 선수단은 제네바까지 가지 않고 판문점을 통해서 여행하는 것을 택하겠습니다. 귀하로부터 좋은 소식이 있기를 우리는 기다리겠으며, 아무쪼록 제35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과거 어느 지역에서의 대회보다도 알차고 성공리에 이루어질 것을 기원하면서 우리 선수단의 비자 신청서와 언론이 비자 신청서를 동봉하는 바입니다.

1979년 2월 15일
대한탁구협회 회장 채영철

 

북한, 평양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일팀 출전 제의

북한의 체육지도 위원회와 북한탁구협회는 1979년 2월 20일 연명으로 대한체육회 박종규 회장과 대한탁구협회 채영철 회장 앞으로 서한을 발송, 오는 4월 25일부터 평양에서 열리는 제35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한이 단일팀을 구성, 출전할 것을 제의했다고 북한 방송은 그날 오후 보도했다.

북한 체육 지도위원회 위원장 김유순과 북한 탁구협회장 김득준을 발신인으로 하고 있는 이 서한은 북한측이 과거 국제경기에 남북한이 단일팀을 구성, 출전할 것을 제시한 바 있다고 전제하고 있었다. 그리고 북한측은 우리 한국측이 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줄 것을 기대하면서 1979년 2월 27일 상오 10시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문제들을 협의하기 위해 남북한 탁구협회 대표들이 판문점에서 만나 회의를 하자고 제의했다.

또한 이 방송은 남북한이 평양에서 개최되는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 단일팀을 구성, 출전한다면 더 훌륭한 전적을 올리게 되는 한편, 남북간의 민족적 화합을 도모하는데 바람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이에 즈음하여 민관식 남북 조절위원회 서울측 위원장 대리는 2월 21일 남북한이 탁구 단일팀을 구성, 오는 4월 평양에서 개최하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하자는 북한측 제의에 관해 단일탁구팀을 구성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또한 채영철 대한탁구협회장은 관계자들과의 충분한 협의를 해보아야 할 일이지만, 그간 한국이 남북한 스포츠 교류를 계속 촉구해 왔음을 강조하고, 단일팀 구성 제의는 쉽지만 국호문제 등 구체적인 사항에 관해서는 난제들이 많을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이 문제는 신중히 대처해야 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남북한 단일팀 구성 제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스포츠에 있어서 남북한 단일팀 구성 문제는 지난 1957년부터 1973년까지 거론되었고 북한이 직접 제의한 것은 1972년부터 1973까지 6차례나 된다. 그러나 협의 때마다 호칭, 예선 개최장소, 선수훈련 등 여러 가지 절차 문제를 둘러싸고 의견이 엇갈려 합의를 보지 못했으며, 북한측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계속 비방을 일삼았다. 또한 지난 1962년 6월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IOC총회에서는 1964년 도쿄 올림픽 대회에 남북한 단일팀 출전 조건을 결정함으로써 이를 표면화한 바 있으며 당시 한국 올림픽 위원회(KOC)는 동 총회 결정에 의거하여 62년 8월 14일 단일팀 구성 문제 협의를 위한 회담을 개최할 것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체육대표자들은 63년 1월 24일 스위스 로잔에서의 1차 회의를 비롯하여 같은 해 5월 17일 홍콩에서의 2차 회의, 그리고 5월 28일 역시 홍콩에서의 3차 회의 등에 걸쳐 여러 차례 회담을 가진 바 있다.

그러나 북한측은 1차 회담 종료 후 북한 당 기관지 노동 신문을 비롯한 북한의 선전기관을 통해 허위사실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는가 하면, 북한측 대표 도착 성명과 기자회견 내용 가운데 정치적 발언으로 한국측을 대대적으로 모략, 비방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따라서 한국측이 북한측에 대해 공개사과를 요구하고 북한측이 이를 거부함으로써 이 문제는 결실을 보지 못한 채 무산되는 이변을 보였다.

이러한 과거의 전적을 안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이번 남북한 탁구단일팀 구성 문제는 북한이 종전과 같은 태도를 보일 경우 숱한 난관이 있을 것이라고 체육인들은 입을 모았다.

이와 비등한 예로 동서독의 단일팀 구성 문제를 알아보기로 하자.

동서독은 1951년 5월 22일 양측의 잠정합의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으며 6년간의 오랜 시간과 200회의 회담, 500백만 달러의 경비를 쓴 끝에 동서독단일팀이 구성되어 제16회 멜버른 올림픽 대회에 하나의 팀으로 출전할 수 있었다.

선수단 인원 비율, 국기, 국가 결정문제 등에 관하여 이들 또한 난관에 부딪쳤으나 국기는 제1차 대전 때의 독일국기로, 국가는 베토벤 <9번 교향곡>으로, 인원은 동서독 구별 없이 우수선수로 하는데 합의, 인원수는 서독이 3분의 2를, 동독이 3분의 1로 결정되었다. 그러다가 1960년 로마올림픽대회 때는 처음 동서독이 별도로 신청을 했다가, 그 이후 다시 단일팀을 구성, 출전했다.

동서독은 1974년 도쿄 올림픽 때도 단일팀으로 참가했으며,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때 갈려 참가해오다 동서독 통일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북한 단일팀 제의 뒤 분주해진 협회

1979년 2월 20일 평양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한 단일팀 구성 제의가 북한측으로부터 나온 후, 무교동 대한체육회관 7층에 위치한 대한탁구협회 사무실은 방문자들과 문의전화가 줄을 잇고 있었다.

단일팀 구성 문제를 묻는 국내외 보도진들이 하루에도 수십명씩 찾아오고 수많은 탁구 동호인들도 직접 협회를 방문, 우리 탁구가 조국통일의 길잡이가 되는 것 아니냐며 너도나도 흥분에 쌓인 인사를 해왔다. 그 바람에 필자인 본인과 여직원 1명의 인원으로는 이들을 응대하기가 너무나 벅찼던 에피소드도 있었던 셈이다.
 

남북한 단일팀은 이루어질 것인가. 사진은 당시 남북한 단일팀 구성문제로 판문점에서 북한대표와 만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있는 채영철 대한탁구협회장의 기자회견장 모습. 좌로는 천영석 대한탁구협회 전무이사, 우로는 이종하 대한체육회 부회장과 정주년 탁구협회이사.

특히 교토 통신을 비롯한 아사히 도쿄 신문 등 일본측 특파원들은 유별나게 관심을 보였다. 협회 임원들도 북한측의 제의를 놓고 구구한 해석들을 하고 있었는데, 한 임원은 “북한측의 제의는 한국선수단의 참가를 봉쇄하려는 책략”이라고 못박고 그들이 진정 단일팀 구성을 원한다면 우선 한국 선수단에 대한 비자 발급 약속부터 먼저 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관계자는 “스포츠와 정치를 엄격히 분리하는 오늘날의 세계조류에 따라 그들도 한국팀의 출전을 막지는 못할 것”이라고 낙관하면서 우리 대표팀의 전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당시 국제탁구연맹(ITTF) 규약에는 「 국제대회 출전은 독립된 한 회원국가에서 한 팀만이 참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만약 남북간에 단일팀 구성이 합의된다 해도 국제탁구연맹 총회에서 인준을 받아야만 했으므로 2개월 밖에 남지 않은 평양 세계대회의 남북한 단일팀 출전은 북한측의 정치쇼로 끝나지 않겠느냐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세계선수권대회의 준비와 조직면에서는 개최지 조직위원회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는 게 상례이긴 하다. 그러나 회원국가 자격이나 혼성팀 구성과 같은 중요한 사항은 조직위의 희망, 또는 당사자 간의 합의만으로 결정될 수는 없다. 북한측이 제의한 남북단일팀 구성안은 당시자간의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국제연맹의 이러한 태도에 비추어 하나의 제안으로 끝나게 될 것이라고 각 언론에서는 평가하고 있었다.

협회가 분주한 가운데 국제연맹에 확인한 결과 토니 브록스 사무총장과 로이 에반스 회장은 규악에 의거해 남북한 단일팀이 불가하다는 의사를 표시해왔다. 이에 국제탁구연맹이사인 일본의 오기무라 씨는 ITTF가 북한측이 제의한 평양대회 출전 남북한 단일팀 구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피력한데 대해, 재고를 촉구하는 전보를 로이 에반스 ITTF 회장 앞으로 보냈다.

오기무라씨는 ITTF는 최고 의결기관인 총회와 이사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ITTF 사무국장이 남북한 단일팀 구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일방적인 전문을 북한에 보낸 것은 권한 밖의 일로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이 문제에 관해 남북한 단일팀이 성사될 수 있도록 ITTF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된다는 세심한 관심을 보이며 재고해 줄 것을 서한으로 요청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탁구협회장 또는 일본국을 대표한 외상까지 남북단일팀이 기필코 이루어져야 한다는 내용을 영국주재 일본 대사관을 통해 국제연맹에 요청했고, 중국탁구협회 서인생 회장, 그리고 아시아탁구연합 고토준 회장도 이에 동의, 국제연맹에 요청했다.

이에 따라 국제연맹은 남북한이 단일팀 구성에 관한 합의에 도달할 경우 이 문제를 즉각 총회에 상정, 승인토록 하겠다는 통보를 전했다. 탁구인들은 단일팀 성사가 원만히 이루어지기를 손꼽아 기원했다.
 

체육회, 탁구협회 성명 발표

대한체육회와 탁구협회는 2월 24일 평양 세계탁구대회 남북단일팀 구성을 위해 오는 2월 27일 상오 10시 판문점에서 남북탁구협의 실무자 회담을 갖자는 북한측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채영철 대한탁구협회 회장을 비롯 4명의 회의 대표를 판문점에 파견하기로 하고, 조선 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김유순, 조선탁구협회장 김득준 앞으로 보내는 대북 방송 통고문을 발표했다.

대한탁구협회 대표단은 채영철 회장을 단장으로 하고 천영석 대한탁구협회 전무이사, 김종하 대한체육회 부회장, 정주년 대한탁구협회 이사로 구성되었다.

한편 조선탁구협회장 김득준을 단장으로 한 북한측 대표단도 27일 상오 10시 판문점 중립국 감독 회의실에 파견할 것이라고 북한 방송이 이날 보도했으며, 대표단은 김득준 외에 조선탁구협회 부회장 조무성, 동 서기장 김덕기, 동 위원 김성일 등이라고 발표했다.(계속)
 

- 성 명 내 용 -

평양조선체육 지도위원회 위원장 김유순
조선탁구협의회장 김득준 앞

우리는 오는 4월 25일부터 5월 6일까지 평양에서 열리는 제35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한 단일팀 선수단을 만들어 출전할 것을 제의하는 편지를 보냈다는 요지의 1979년 2월 20일 5시 평양 방송을 들었습니다.
남북한의 모든 체육인들이 분단의 장벽을 넘어 서로 교류하는 것은 남북의 5천만 겨레가 하루속히 실현되기를 바라고 있는 문제일 뿐 아니라 평화적 남북관계를 적립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체육교류를 포함한 남북간의 제방교류를 하루 빨리 실현시킬 것을 북한측에 제의하고, 그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온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이번에 늦게나마 북한축이 우리측의 제의에 호응해 온 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선수단은 평양에서 열리는 제35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이제 모든 준비를 끝내고 국제탁구연맹을 통하여 비자신청을 해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남북조절위원회 서울측의 위임에 따라 오는 2월 27일 오전 10시 아래와 같은 우리측 대표들이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로 나갈 것을 통고하는 바입니다.

대한탁구협회 대표단

채영철(대한탁구협회장), 이종하(대한체육회 부회장)
천영석(대한탁구협회 전무이사), 정주년(대한탁구협회 이사)

1979년 2월 24일

대한체육회 회장 박종규
대한탁구협회 회장 채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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