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환의 백과사전

 

1965년 임원선출 및 제28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지금은 경기단체의 임원임기가 4년이지만 70년대 무렵까지는 2년이었다. 파벌 싸움이 상당했던 당시였으므로 그 같은 잦은 임기교체는 많은 문제들을 노출시켰다. 특히 협회가 안정되지 않은 단체일수록 그 정도가 심해 총회 때미다 여간 시끄럽지 않았다.

1965년, 그 해에도 대한체육회를 비롯한 전 경기단체의 임원임기가 만료, 1월 25일 이전으로 정기대의원총회를 열어 임원개선을 한 해였는데, 탁구협회도 마찬가리조 여러 잡은 속에서 총회를 열고 새 임원 선출을 하게 되었다. 장소는 명동 메트로 호텔 회의실이었고 이날 7인의 전형위원회를 구성, 회장 및 임원구성을 모두 일임키로 하였다.

이에 7인의 전형위원회는 어려운 시기에 회장을 맡아 제7회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를 잘 치러낸 김세련(당시 한국은행 총재)회장을 용퇴시키고 김종락(당시 한일은행 전무) 씨를 새 회장으로 추대했으며, 유태영(최고회의 교통체신위원). 윤광빈(대한잠사회 이사장) 씨를 부회장에, 그리고 한승호 씨를 전무이사로 선임함과 동시에 최정환(총무이사). 이경호(경기이사). 배양원(재무이사). 김정립(기획이사), 박광덕.김재천(이사) 씨를 선임하면서 일단락 짓게 되었다.

그러나 김종락 씨가 전형위원회에서 선임한 집행부 구성에 있어 유능한 사람들이 제외되었다는, 즉 업무를 잘 처리해 나갈 수 있는 집행부를 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총회가 끝난지 20여일이 경과될 때까지 취임을 허락하지 않았다. 다급해진 전형위원회는 최근항, 김상훈 씨를 추가로 보선함으로써 취임승낙을 얻어내며 임원구성을 확정하고는 첫 이사회를 소집하였다.

이같이 집행부 구성 문제로 많은 시간을 빼앗긴 탁구협회는 한 달 앞으로 닥친 제28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참가를 놓고 골치를 앓지 않을 수가 없었다. 4월 15일부터 25일까지 열리는 세계대회에 참가하자면 우선 선발전부터 치러야 하는데 시간이 여의치 못한데다 재정문제 역시 썩 좋지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전매청을 단일팀으로 하는 전제하에, 재일교포인 박중길 선수를 포함한 4명(유진규, 김충용, 최승의)의 남자선수만을 파견하기로 합의를 모으고, 김종락 회장을 단장으로 감독 및 회으대표에 최근항 씨를, 코치에 오상영 씨를 각각 선임하였다. 그리고 파견비는 전매청에서 전액 부담하기로 해 협회는 큰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출전한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는 전 세계에서 48개국이 참가하였으며 우리나라는 소련. 가나. 콜롬보가 속해있는 12조에 편성되었다. 당시 대진방법은 전 참가국을 12개조로 나누어 예선 조별 리그전을 실시, 각 조 1위 팀을 다시 AB조로 나누어 각 조별로 본선 리그전을 해서 순위를 결정하고 , 각 조 우승팀이 단체전 패권을 걸고 대결하는 방식이었다. 아울러 경기방식은 나인 싱글(스웨들링 방식)로 이루어졌다.

 

재일교포로 전매청 선수들과 제28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했던 박중길 씨의 선수시절 모습.

 

우리나라는 가나를 5대0으로 이기로 콜롬보의 기권승에 이어 소련에게 0대5로 패해 조2위로 밀려나 결승 리그진출이 좌절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13~24위 결정전을 하게 되었는데 포르투갈을 5대2로, 네덜란드와 베트남을 각각 5대0으로, 인도와 스위스를 5대 1로 제치고 남자단체 13위를 하였다(동경에서 열린 제24회 세계대회에서 우리나라는 14위를 기록한 바 있다).

한편, 북한은 정길화(코치겸 선수). 박신일. 정광호. 정양웅. 김영삼. 전덕치 등의 63년 제28회 체코 프라하 세계대회 때 활약했던 멤버들 그대로가 출전, 예선리그 6조에서 캄보디아. 폴란드. 웨일즈를 이기고 조1위로 올라가 스웨덴. 영국. 이란. 헝가리를 제압, 준결승에 진출했으나 일본에게 패해 조2위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유고와 3,4위전을 치러 이김으로써 프라하 세계대회 때 13위 성적에서 3위로 뛰어오르는 쾌거를 기록하게 되었다.

 

60년대 중반 협회 사무실에서 사무를 보고있는 필자.

 

반면 단체전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둔 남북한이었지만 개인전에서는 2회전 및 4회전에서 모두 탈락, 별 성과 없이 끝을 맺었다. 참고로 당시 남녀단체전 순위를 적어본다.
 

남자

여자

1위

중국

8위

소련

1위

중국

8위

유고

2위

일본

9위

헝가리

2위

일본

9위

소련

3위

북한

10위

서독

3위

영국

10위

동독

4위

유고

11위

루마니아

4위

루마니아

 

 

5위

체코

12위

이란

5위

헝가리

 

 

6위

스웨덴

13위

한국

6위

서독

 

 

7위

영국

 

 

7위

체코

 

 


한국 초유의 단일팀 해외원정 한ㆍ일 친선경기

한편 세계대회와 맞물려 여자실업팀을 비롯한 남녀 고등학교 단일팀을 일본에 파견, 친선경기를 갖게 되었다. 이는 일본탁구협회와의 교섭으로 세계대회 이사회 때 함께 논의된 것이었다. 이 때 파견된 팀은 국내 여자실업팀의 최강인 산업은행과 64년 서울시종별선수권대회 및 전국체전 우승팀인 신광여고, 그리고 전국종별 및 전국체전 우승팀인 공주농고였다.

필자가 굳이 이 지면에 단일팀 해외원정을 거론하는 것은 우리나라 체육계 초유라는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해외로 한 번 나가자면 여러 가지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으며, 특히 대한체육회의 해외파견심의위원회에서 통과가 돼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어려움이 많이 따랐던 때라 그 의의가 더더욱 컸다고 할 수 있다.

 

단일팀으로서는 한국초유로 해외원정을 간다하여 당시
각 언론에서는 이를 크게 보도하기도 했었다.

비록 탁구협회 경비로 시행하는 사업은 아니었지만 이처럼 세계선수권과 일본과의 교류전에 동시 파견시켰다는 것은 탁구사에 큰 경사였던 탓에, 65년 4월 7일 산업은행 강당에서 합동 결단식을 성대하게 거행한 그날도 크게 기억된다. 그리고 이후 이를 계기로 타 종목에서도 단일팀 해외원정을 나가게 되었다.

특이할 마나한 점은 반드시 협회임원을 함께 파견한 것이었는데, 그 이유는 대회 기간 중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협회가 책임지고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해외에 한 번 내보내는 것을 얼마나 조심스러워 했는가를 보여준 단면이기도 하다.

당시 경기결과는 산업은행이 9전 전승을, 신광여고는 7전 전승을, 공주농고는 9전 4승 5패를 기록하여 한국탁구의 앞날을 밝게 하였다. 참고로 경기일정 및 각 팀 파견자 및 명단을 적어본다.(계속)

 

 
 

◈ 한국산업은행(4.20 ~ 5.2)

․ 단 장 : 서태균 / ․ 감 독 : 노정호 / ․ 코 치 : 천영석 / ․ 협회임원 : 최정환 당시 총무이사
․ 선 수 : 곽수자(주장), 이신자, 이숙자, 윤기숙, 김수경, 김혜정, 허경림

◈ 공주농고(4.15 ~ 27)

․ 단 장 : 권혁조 / ․ 코치 겸 협회임원 : 박광덕
․ 선 수 : 황상완(주장), 김평준, 윤여탁, 석성헌, 김형기

◈ 신광여고

․ 단 장 : 정제호 / ․ 감독 및 코치 : 이종춘 / ․ 협회임원 : 배양원
․ 선 수 : 노화자(주장), 장활란, 양승희, 이경희, 공성옥, 최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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