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아시안게임 기념우표에서 제외... 아쉬움 남아

  우표는 우편발송 대금이라는 기능적 측면 외에도 당대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사료로서의 가치도 있다. 우표 수집이 재테크 기능까지도 고려되는 고급스런 취미가 될 수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더욱이 요즘은 손 편지가 점점 사라져가는 시대여서 우표는 갈수록 ‘기능’보다 ‘기념’이 강화되는 느낌이다.
  실제로 정부는 통상 우체국에서 쓰이는 일반 우표 외에도 그 때 그 때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기념우표를 발행해 왔는데, 뒤집어 말하면 해당 우표에 담긴 모습은 그 시대를 대변하는 가장 중요한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판매대금으로 관련 단체에 도움을 주기 위한 국민 공모 형식의 모금도 우표의 기능 중 하나였지만, 그것도 그만큼 많은 국민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분야여야 가능했던 일일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탁구와 관련된 우표는 얼마나 있을까. 세계로 눈을 돌리면 본 고장인 유럽과 세계 정상의 기억을 간직한 일본, 현존 최강국 중국 등을 중심으로 탁구 관련 우표는 적지 않게 발행됐다. 그 많은 우표들을 일일이 거론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것들만으로 범위를 좁혀 소개해보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탁구는 우리나라 스포츠 구기 종목 최초의 세계제패를 이뤄냈고,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열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등 당대 최고의 화제가 됐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지바에서의 가슴 뜨거웠던 ‘작은 통일’도 물론이다. 하지만 언뜻 상당수의 기념우표가 발행됐을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탁구 우표의 숫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세계제패 기념우표(1973)

▶ 구기종목 최초 세계제패를 기념하다(1973)
  1973년은 한국의 낭자군이 유고 사라예보에서 한국 구기 종목 최초의 세계제패를 이뤄낸 해다. 이에리사, 정현숙, 박미라, 김순옥, 나인숙 등으로 구성된 한국 여자대표팀은 당시 세계 최강이던 중공과 일본을 모두 꺾고 전설을 만들었다. 보릿고개를 지나고 있었던 대한민국은 어린 낭자군의 분전으로 큰 힘을 얻었는데, 이들의 활약상을 담아 기념우표가 발행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탁구체육관 건립기금 첨가우표(1973)

▶ 아쉽게 무산된 탁구전용체육관(1973)
  사라예보의 세계제패가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이었는지는 대회 기념우표 말고도 이어서 발행된 또 다른 우표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바로 ‘탁구체육관 건립기금 첨가’를 목적으로 발행된 우표다. 당시 대한탁구협회는 국민적 탁구 붐에 힘입어 탁구전용체육관을 건립키로 하고 경향신문사 등과 손잡고 대대적인 모금운동을 벌였다. 체육관건립추진위원회는 3부 주요요인이 고문으로 추대되고, 각 부처 장관이 위원으로 영입될 만큼 범 국가차원의 움직임이었다. 모금액만도 당시 금액으로 2억 2천 4백만 원에 이르렀고 건립 부지도 서울 마포 염리동으로 확정됐었다고 한다. 우표 역시 그 운동의 일환으로 발행됐었다.
  아쉬운 것은 그렇게 모금된 금액이 순수한 탁구체육관 건립기금으로는 끝내 쓰이지 못했다는 것. 세계제패 이듬해인 74년 정부는 갑자기 탁구체육관 건립계획을 백지화하고 잠실실내체육관 건립에 모금된 기금을 보태라는 명령을 내렸다. 정부의 얘기는 더 크게 지어 대한탁구협회에 우선 사용권을 주겠다는 거였지만 체육관의 운영권은 탁구협회가 아닌 서울시에 주어졌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강탈수준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결국 서울시는 얼마 후 잠실체육관을 건립했고, 탁구 세계제패의 감격은 잠실체육관 2층 동문 쪽에 ‘세계제패 기념 체육관’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아주 작은 주춧돌만으로 남았다. 잠실체육관에서 탁구경기가 열리는 모습을 거의 보기가 힘든 요즘이고 보면 당시에 벌어졌던 일들은 지금 생각해도 참 아쉽고도 답답한 일이다.
 

제2회 서울오픈 국제탁구선수권대회 기념우표(1982)

▶ 탁구중흥의 본격 시발점(1982)
 
1982년에 발행된 제2회 서울오픈 국제탁구선수권대회 기념우표도 우리 탁구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상징이다.
  첫 대회보다 그 2년 뒤 치러진 2회 대회가 더 크게 취급되는 이유는 아시아무대에서 외교적으로 고립돼 있었던 우리나라가 바로 이 대회를 계기로 활로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중공), 북한, 일본 등의 연합으로 만들어진 아시아탁구연합(ATTU)이 국제탁구연맹 공인 아시아대표 단체가 되면서 아시아탁구연맹(ATTF)을 주도했던 우리나라는 ITTF 회원국이면서도 아시아에서는 ‘미아’ 신세였던 적이 있었다. 1982년은 그 10년 동안의 격동기 끝 무렵이었다. 우리나라와 함께 서구권 국가들이 주로 나왔던 첫 대회에 비해 두 번째 대회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여러 아시아 국가들도 참가하면서 거의 세계대회를 방불케 하는 규모로 치러졌으니 2년 사이의 미묘했던 시대 변화를 서울오픈이라는 국제대회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바로 전 해인 1981년에 결정된 서울올림픽 유치도 얼마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만 해도 국제오픈대회는 지금처럼 많지가 않았다. 스웨덴에서 열리던 스칸디나비아오픈을 비롯, 유럽의 몇 몇 서키트들과 US오픈 정도가 다였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열린 서울오픈은 국제 탁구계에서도 작지 않은 화제가 된 큰 잔치였다. 유럽 15개국, 아시아 17개국, 아프리카 3개국, 북미 2개국, 남미 4개국, 호주 등등 전 세계를 망라한 42개국에서 4백여 명의 선수들이 참가한 당시 대회는 국가적 지원이 필요했던 성대한 행사였다. 30년을 넘게 지난 올해 코리아오픈보다도 두 배 이상 규모로 치러졌으니 제2회 서울오픈 국제탁구선수권대회의 분위기가 어떠했을지는 상상이 잘 가지 않을 정도다. 일개 단일종목 국제대회였는데 기념우표까지 발행된 이유도 그런 측면에서 짐작이 가능하다.
  성공적으로 대회를 치러낸 대한탁구협회는 이듬해인 1983년에 ATTU에 가입하면서 아시아의 미아 신세를 떨쳐낼 수 있었다. 서울오픈은 2회 대회를 끝으로 더 이상 치러지지 않았지만, 지금 한국탁구가 ATTU에서도 작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출발점은 30여 년 전의 서울이었던 셈이다. 색 바랜 우표의 느낌이 남다른 이유다.
 

88 서울올림픽 기념우표

▶ 올림픽 탁구 원년이었던 서울올림픽을 기념하다(1987)
 
1988년 서울에서 치러진 올림픽 기념우표. 올림픽이 열리기 한 해 전인 1987년에 발행된 이 우표는 탁구뿐만 아니라 올림픽에서 치러질 여러 종목들이 함께 나왔었다. 물론 모든 종목이 발행된 것은 아니고, 서울올림픽을 상징할 수 있는 대표적인 종목들을 선정한 건데, 그 중에 탁구가 포함된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우표 발행 1년 전에 치러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탁구가 보여준 위용은 서울올림픽에서의 기대치도 충분히 높였을 거라는 사실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88년 이전의 올림픽에서는 탁구가 치러지지 않았다. 말하자면 서울올림픽은 탁구에 관한 한 ‘올림픽 원년’이었다. 그리고...! 서울 관악산 아래 서울대체육관에서의 신화!! 한국은 바로 그 탁구 원년 올림픽에서 남자단식(유남규)과 여자복식(양영자-현정화) 두 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그 주인공인 유남규 감독은 현재 인천아시안게임 남자국가대표팀 감독으로 후배 선수들을 이끌고 있다.

▶ 탁구가 빠진 인천아시안게임 기념우표
 
서울올림픽 기념우표를 끝으로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탁구우표는 더 이상 찾아지지가 않는다. 91년 지바세계선수권대회 남북단일팀의 세계제패는 충분히 기념할 만한 사건이었음에도 어찌된 일인지 발행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남한만의 일이 아니어서 그랬을까? 2002년 부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기념우표는 각 종목의 모습을 담은 형태가 아니었다.
  현대로 와서 탁구와 관련된 우표가 보이지 않는 것은 그만큼 탁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 같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유승민) 이후 탁구가 세계 정상에서 포효한 적이 있던가? 남북간의 관계를 스포츠로 풀려 할 때마다 항상 맨 앞에 등장하는 탁구지만, 국가까지 나서서 관여하고 우표를 발행할 만큼 국민적인 관심사가 되어본 기억은 갈수록 가물가물하다. 물론 스포츠는 그 자체로 순수한 스포츠여야 마땅하지만 지난 시절에 발행된 우표들을 돌아보니 어딘지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천아시안게임 기념우표

  올해 한국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는 단연 인천아시안게임이다. 개막을 한 달도 채 남기지 않고 있는 인천아시안게임 역시 대회를 기념하는 우표가 발행돼 지난 8월 31일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 기념우표에서도 탁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대회조직위는 볼링, 스쿼시, 리듬체조, 레슬링, 크리켓 등 5개 종목과 함께 대회 마스코트를 담은 우표 6장을 내놓았다.
  비중보다는 비올림픽 종목과 올림픽 종목에 대한 배려, 디자인 등 시각적 요인들을 감안, 제작된 것으로 보이지만 탁구가 없는 것은 아무래도 아쉬운 느낌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상상해본다. 한국탁구의 또 다른 세계제패를! 그리하여 우리 선수들의 다이내믹한 플레이 모습이 총 천연색으로 담긴 눈물 나는 기념우표가 발행되는 현장을! 그게 다가오는 인천아시안게임이라면 더욱 좋겠다. 한국탁구 아자! 아자아자!!
 

보너스! 세계 각국에서 발행된 과거의 탁구우표들 몇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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