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에서 <코리아>까지!

  ‘탁구영화’ 하면 어떤 작품이 떠오르십니까? 아무래도 지난해 개봉됐던 <코리아>를 먼저 생각하시려나요? 아니면 꽤 많은 마니아층이 형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 영화 <핑퐁>을 떠올리실까요? 날도 우중충하고 마침 현장 취재도 없어서 책상 앞에 죽치고 있다가 문득 탁구를 소재로 한 영화를 소개해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뭐 다들 잘 알고 계시겠지만 한 자리에 모아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했던 거죠. 사설이 길어봐야 지루할 테니 일단 한 번 보시죠. 생각보다는 다양한 영화들이 있습니다. 분량이 좀 많은 듯 해서 두 번으로 나눠 올립니다. 참! 아닌 것도 있지만 줄거리는 대부분 네이버에 올라있는 영화소개를 참고했습니다. 게재순서는 작품 제작년도 기준, 여섯 편입니다...^^
 

핑퐁(2002)

핑퐁(2002)
드라마, 코미디 / 일본 / 114분
감독 | 소리 후미히코 / 주연 | 쿠보즈카 요스케, 아라타

  아마도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탁구영화일 듯. 같은 제목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일본 영화다. 지상에서 탁구만큼은 1인자가 되고 싶다는 엉뚱한 청년 페코와 탁구는 그저 시간 때우기에 불과하다는 스마일. 페코는 타고난 탁구 재능이 뛰어나지만 노력파는 아니다. 그저 즐기는 정도. 무뚝뚝하고 웃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는 스마일은 자신의 명랑 쾌활한 친구 페코를 영웅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페코가 상해 탁구 주니어 팀에서 온 엘리트 유학생에게 완패를 당하고, 연이어 전국 고교체육대회에서 필사적으로 노력해 온 또 다른 소꿉친구에게도 패하면서 두 사람에겐 방황과 시련이 닥친다. 한편, 스마일도 재능을 눈치 챈 코치의 눈에 띄어 급속도로 실력이 성장하면서 마침내 페코의 최고 라이벌로 떠오르게 된다. 여기에 일본 챔피언 드래곤도 등장! 이들 간에 펼쳐지는 대결에서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까?
 

몽골리언 핑퐁(2004)

몽골리언 핑퐁(2004)
드라마 / 중국 / 104분
감독 | 닝하오 / 주연 | 다와

  허허벌판에 띄엄띄엄 놓여 있는 유목 가옥 몇 채. 말과 양을 키우며 살아가는 유목민의 아이들은 뭘 하며 놀까? <몽골리언 핑퐁>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시작한다. 강에서 탁구공 하나를 발견한 유목민 소년 빌기는 우연히 습득한 ‘보물’을 어찌해야 할지 난감하다. 소리만 겨우 들리는 TV를 통해 ‘탁구공은 중국의 국가적인 공’이라는 사실을 알아낸 아이들은 국가에 그 공을 돌려줘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서 급기야 가출까지 감행한다. 부시맨이 코카콜라병을 만났을 때와 비견될 만한 이 사건은 이후 영화의 모든 서사를 결정지으며 소소한 웃음을 만들어낸다.
  이 영화는 일종의 우화다. 유목민 아이들과 탁구공이라는 소재를 벗어나는 법 없이 극소화된 서사 안에서 유목민의 삶이 천박한 문명에 조금씩 침식되는 풍경을 담아낸다. 고정된 카메라의 정적 스타일 속에 흥미롭게 펼쳐지는 아이들의 세계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그것은 변화의 일로에 놓여있는 노마드적 삶의 경계가 얇고 위태로워졌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스러지는 아름다움의 마지막 순간을 담아내는 이 영화는 민족지학적 시선으로 노마드적 삶에 대한 은근한 예찬을 보내는 송가라고도 할 수 있다.
 

탁구는 나의 힘(2007)

탁구는 나의 힘(2007)
드라마 / 스웨덴 / 107분
감독 | 얀스 욘손 / 주연 | 제리 요한슨, 햄푸스 요한슨

  쉽게 접하기 힘든 스웨덴 영화. 하지만 탁구팬들에게 발트너의 나라 스웨덴은 영화팬들보다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국가다. 바로 그 나라에서 탁구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반갑다. 대략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뚱뚱하고 어리숙하지만 따뜻한 형 라일리는 엄마를 닮았다. 아빠를 닮은 동생 에릭은 반항적이고 직설적이며 여자들한테 인기도 많다. 그리고 아빠와 헤어져 살고 있는 엄마에게는 남자친구 ‘로드 거너’가 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자신들의 카리스마 넘치는 아빠가 최고. 유일하게 라일리가 왕이 될 수 있는 곳은 문화센터에 있는 탁구클럽이다. 세계 유일의 평등주의 스포츠라고 말하며 탁구의 우수성을 말하는 라일리. 그러던 어느 날, 라일리는 엄마와 남자친구의 비밀 이야기를 듣게 된다. 라일리와 에릭 둘 중 하나가 로드 거너의 아들이라는 사실이다. 라일리는 그 아들이 자신이라고 믿으며 괴로워하기 시작하는데….
  이 영화의 원제는 <King of Ping Pong / 탁구왕>, 그러나 줄거리에서도 느껴지듯 이 영화는 탁구영화라기 보다는 따뜻한 가족영화에 가깝다. 하지만 갈등을 풀어가는 핵심에서 탁구가 적절하게 활용되고 있으니 탁구팬이라면, 게다가 드라마를 좋아한다면 흥미롭게 볼 수 있을만한 작품. 풀 오케스트레이션이 주는 웅장한 음악과 거기 어우러지는 스웨덴의 멋진 풍광도 볼만하다.
 

분노의 핑퐁(2007)

분노의 핑퐁(2007)
코미디 / 미국 / 90분
감독 | 벤 가랜트 / 주연 | 댄 포글러, 크리스토퍼 월켄, 매기 큐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소개하고 싶지 않은 B급영화지만 일본 영화 <핑퐁>과 더불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작품이어서 빼놓으면 아무래도 허전할 듯. 이 영화는 좋게 말해서 <쿵푸 허슬>, <피구의 제왕>류의 익스트림 스포츠(?)영화다. 대강의 줄거리!
  88년 서울올림픽 핑퐁 꿈나무 랜디! 무패행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전 세계의 관심 속에 일생일대의 결승경기를 펼치지만 절정의 순간 눈앞에서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그 충격으로 생애 첫 패배이자 파란만장한 인생의 굴욕을 맛보게 된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허접한 뒷골목의 술집에서 탁구묘기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던 랜디에게 FBI의 비밀요원이 찾아온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게 해준다며 요원이 제안한 특별임무는 바로 아버지를 죽인 럭셔리 핑퐁귀재 펭을 함께 소탕하자는 것. 그러나 토너먼트로 진행되는 게임의 패자는 죽음! 과연 랜디는 복수의 라켓을 들게 될 것인가?
 

핑퐁(2012)

핑퐁(2012)
다큐멘터리 / 영국 / 80분 / 감독 | 휴 하트포드

  매년 한국의 파주에서 열리는 DMZ영화제는 국내외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다큐축제다. 비무장지대 DMZ에 새겨진 시공간적 기록을 통해 평화, 소통, 생명의 새로운 의미를 재창조하는 국제 다큐멘터리영화제로 분단과 분쟁의 현장이 소통과 만남, 화해의 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된다는 의의를 갖는다. 그런데 작년에 열린 네 번째 행사 개막작이 <핑퐁>이란 제목을 갖고 있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그렇듯이 실제 탁구동호인들의 일상을 따라가며 기록한다. 뜻밖에도 노인들이다. 대강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핑퐁’은 어르신들의 탁구를 다룬다. (물론 라지볼은 아니다) 82세의 테리(영국)와 90세의 잉게 헤르만과 우르슬라(독일), 86세의 루네 포르스베리(스웨덴), 85세의 리사(미국)와 최연장자 101세 도로시 들로우(오스트레일리아) 등등 모두의 나이를 합치면 무려 703세에 이르는 8명의 노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들이 기량을 보여주는 무대는 중국 내몽골에서 열린 80세 이상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세계 탁구 챔피언 대회. 살 날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던 테리는 대회를 준비하면서 건강을 되찾은 것은 물론 금메달을 목전에 두고 있다. 잉게 또한 탁구 훈련으로 치매를 이겨내고 있다. 영화는 희망과 후회가 가득한 삶, 속절없이 늙어가는 인생에 대한 내밀하고도 솔직한 자화상이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에 대한 반추이자, 인간이 가진 불굴의 끈기, 진실한 감동을 탁구를 통해 느낄 수 있다. 실버세대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탁구종목만의 장점이 있기에 가능한 이야기.
 

코리아(2012)

코리아(2012)
드라마 / 한국 / 127분
감독 | 문현성 / 주연 | 하지원, 배두나

  그리고 우리 영화 코리아! 91년 지바에서의 ‘작은 통일’을 소재로 했던 이 작품은 애초의 화제성에 비해 흥행에서는 아쉽게도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한반도의 탁구인들에게는 소중한 추억이자 감동이었다. 더 이상의 긴 소개는 사족일 것, 네이버 영화소개에 올라있는 줄거리로 대신한다. 하나가 되는 것부터 우리에겐 도전이었다!
  1991년 대한민국에 탁구 열풍을 몰고 온 최고의 탁구스타 ‘현정화’(하지원). 번번히 중국에 밀려 아쉬운 은메달에 머물고 말았던 그녀에게 41회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남북 단일팀 결성 소식이 들려온다. 금메달에 목마른 정화에겐 청천벽력 같은 결정! 선수와 코치진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된 초유의 남북 단일팀이 결성된다. 순식간에 ‘코리아’라는 이름의 한 팀이 된 남북 선수들. 연습 방식, 생활 방식, 말투까지 달라도 너무 다른 남북 선수단은 사사건건 부딪히기 시작하고, 양 팀을 대표하는 라이벌 정화와 북한 ‘리분희’(배두나)의 신경전도 날이 갈수록 심각해진다. 대회는 점점 다가오지만 한 팀으로서의 호흡은커녕 오히려 갈등만 깊어지고, 출전선수 선발은 예상치 못한 정국으로 흘러가는데…. 46일간의 뜨거운 도전이 시작된다!

에필로그
  아마도 위에 소개한 작품들 말고도 탁구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더 있을 겁니다. 혹시 더 좋은 작품이 있는데 제가 빼놓은 것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좋겠네요. 1999년인가에 제작된 일본 영화 <탁구온천>도 기억나는데 어찌된 일인지 자료를 찾을 수가 없군요. 유명한 <포레스트 검프>에도 탁구 장면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탁구가 영화 전반에 깔리는 것이 아니라 제외했고요. 한국 영화 <오! 수정>이나 <6년째 연애 중>같은 작품들에는 소소하게 탁구 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거나 탁구장이 배경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었죠. 그렇게 단순한 장치로 차용된 것들은 물론 빼고 말입니다...^^
  사람들의 일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스포츠는 누가 뭐래도 탁구입니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그렇죠. 고전 명작으로 꼽히는 영화 <로리타>에서도 도입부에 탁구대가 나와요. 스포츠가 가진 드라마적 재미를 생각하면 가까이 있는 그만큼 영화의 소재로 쓰일만한 많은 요소들을 탁구는 가지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워낙 빠른 스피드와 섬세함을 요구하는 기술적 특성상 전면적으로 영화화하기에는 난점도 많았기 때문에 그동안 그리 많은 작품이 만들어지지 못한 거 아닌가 싶은... 바꿔 말하면 영화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현대에 와서는 더욱 재미있고 멋진 탁구영화가 만들어질 가능성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생각... 희망사항일까요? 그저 ‘스포츠’를 넘어 우리 곁에 ‘문화’로 젖어드는 탁구! 이런 저런 동영상을 살펴보다가 지금 혼자서 영화 찍고 있습니다...^^ 간만에 시간나는데 오늘 저녁엔 영화나 한 편 때릴까봐요! 막 비가 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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