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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낵 컬처(Snack Cultur)는 간단한 식사나 간식을 뜻하는 스낵(snack)과 문화, 교양, 예술 등을 뜻하는 컬처(cultur)가 만나 만들어진 용어로 과자를 먹는 것처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나 생활 방식을 일컫는다. 2014년 문화 예술 풍속도를 바꾼 키워드로도 손꼽히고 있는 스낵 컬처는 이제 바쁜 현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문화 향유 방식이 되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짧은 즐거움을 만나다

스낵 컬처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한 IT 전문지 와이어드(Wired)의 표지.

몇 해 전부터 문화 예술계에서는 직장인들을 위해 점심시간을 활용한 공연이나 전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도심의 야외 공연장에서는 클래식, 가요, 국악, 비보잉 등의 공연이 펼쳐지고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지하철이나 병원 같은 곳에서도 작은 음악회가 열리곤 한다. 그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미술관에서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방문한 직장인을 대상으로 간단한 다과를 제공하거나 관람료를 할인해주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이렇듯 간편하게 가까운 장소에서, 짧은 시간을 이용해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를 ‘스낵 컬처’라고 한다. 하지만 스낵 컬처의 영역이 그저 공연, 전시와 같은 문화행사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햄버거, 도넛 등의 패스트푸드, 상품을 직접 제조하고 유통시켜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SPA브랜드 의류 등도 스낵 컬처의 한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스낵 컬처라는 말은 2007년 미국의 IT 전문지 와이어드<Wired>에서 처음 등장했다. 와이어드는 앞으로 음악, 패션, 음식, 방송, IT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한입 크기’로 만들어진 문화 포맷이 각광을 받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실제로 스낵 컬처는 비용이나 시간의 부담이 적기 때문에 늘 새로운 것을 원하는 21세기 대중들의 입맛에 딱 맞아 떨어진다. 


스마트폰이 가져온 스낵 컬처 전성시대

오늘 아침 출근 시간,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당신이 한 행동을 한번 떠올려보자. 아니, 당신이 목격한 다른 사람들의 모습도 좋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장면은 스마트 기기의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일 것이다. 꼼짝달싹할 틈 없이 꽉 찬 지하철 안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스마트 기기를 들고 웹툰과 웹 소설을 읽고, 게임이나 SNS를 하고, 팟캐스트를 듣고, 친구와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고, 유튜브를 통해 재미있는 영상들을 찾아본다. 이렇게 손쉽게 스마트 기기를 통해 즐기는 콘텐츠들은 거의 스낵 컬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낵 컬처가 하나의 현상에서 벗어나 메가트렌드로 자리 잡게 된 것에는 스마트 기기가 큰 몫을 했다. 누구나 손에 들고 다니는 스마트 기기를 통해 잠깐의 시간만 난다면 어디서고 다양한 콘텐츠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스마트 기기를 통한 스낵 컬처는 만화, 소설, 게임, SNS, 영상 등 분야는 다양하지만 하나를 즐기는 데 길어야 15분을 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설은 원고지 10~30매 안팎의 분량이고, 게임은 메신저에 기반을 두고 짧은 시간 안에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인기다. 미국에서는 60개 단어 이내로 만들어진 초미니 뉴스 서비스 앱 ‘써카(Circa)’가 등장해 찬사를 받고 있으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SNS에서도 각각 15초, 6초 분량의 짧은 동영상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또한 편당 10분 안팎의 짧은 웹 전용 드라마가 제작되기도 한다. 최근 인기 있었던 드라마인 ‘미생’의 경우도 웹툰으로 인기를 얻은 후, 총 5회 짜리 웹 드라마를 제작한 다음, 다시 TV용 드라마가 만들어진 경우다. 국내 인기 웹 드라마의 누적 재생수가 400만을 돌파하고 미국 동영상 사이트에까지 공개되는 등 웹 드라마의 가능성이 증명되자 기존 TV 드라마 제작사들은 물론 대기업들까지 웹 드라마 제작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방송국에서 제작되는 TV 프로그램에 PPL을 제공하고 광고 방송을 끼워 넣는 것만큼이나 웹 드라마를 통해 자사의 제품과 기업 이미지를 홍보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스낵 컬쳐, 나도 생산자가 될 수 있다

누구나 가볍게 즐길 수 있다는 스낵 컬처의 장점은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스낵 컬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닌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이다. 스낵 컬처를 주로 공급하는 인터넷 사이트들도 아마추어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그곳에 내가 만든 웹툰이나 웹 소설을 등록할 수 있고, 만약 인기를 얻게 된다면 그 이후부터는 사이트로부터 돈을 받으며 정식 연재까지 가능하다. 국내 한 영화제는 아예 ‘30초 영화제’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만든 30초짜리 영상의 출품을 기다리고 있으며, 들리는 방송 콘텐츠라고 할 수 있는 팟캐스트를 직접 만드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리고 불특정한 다수의 사람이 만들어 낸 무궁무진한 스낵 컬처의 세계에서 무엇을 보고 듣고 즐겨야 할지에 대한 취사선택은 온전히 사람들 개개인의 몫이 되었다. 

 

스낵 컬처라는 말 속에는 스낵처럼 ‘가볍다’, ‘부담 없다’, ‘쉽다’ 등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 그만큼 출퇴근 시간이나 잠깐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즐기는 스낵 컬쳐는 쉽게 소비되는 콘텐츠라는 함정이 존재한다. 이에 문화마저도 인스턴트처럼 소비된 후, 버려지고 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지만 스낵 컬처는 이미 바쁜 현대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발전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에 따른 것이지 그것을 대세로 만들어보겠다는 누군가의 의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낵 컬처 역시 누가 뭐래도 현대인의 생활 방식에 가장 적합한 문화 향유의 방식이다. 시간과 노력과 비용을 들이면서 문화생활을 즐기기에는 현대인들은 너무 바쁘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이 그저 음식을 입에 넣고 씹고 삼키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음식점의 분위기, 서비스, 음악, 음식의 담음새까지 즐기는 일인 것을 생각해본다면 때로는 ‘스낵’ 같은 문화가 아닌 ‘정찬’ 같은 문화를 즐겨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밥만 먹고 살 수 없는 것처럼 과자만 먹고는 건강하게 살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월간탁구 2015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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