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눈 앞에 닥친 사물인터넷의 시대

몇 달 전 개봉됐던 영화 ‘그녀(her)’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남자가 자신의 컴퓨터 OS(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인간이 아닌 OS와 사랑을 나누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그것이 꼭 불가능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영화 속의 OS는 단순히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그녀(Her)'의 한 장면.

 

인간의 개입이 필요 없는 사물인터넷 시대

영화에서 형태는 없지만 하나의 인격체로 다가오는 ‘사만사’라는 이름의 OS는 그 누구보다 주인공 시어도어와 가까이 있는 존재이며 그를 잘 알고 있는 대화 상대다. 또한, 시어도어의 컴퓨터뿐만 아니라 이동용 스마트 기기와도 동기화 되어있어 항상 그와 함께 다닌다. ‘이메일을 읽겠습니다’라고 말하던 기존의 OS와는 달리 ‘자, 이메일부터 체크해볼게요. 정리를 통 안했군요. 훑어보니 86개만 빼고 다 지워도 될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 한다든가, 주인공이 쓴 편지의 교정을 하면서 ‘와! 이 편지글 너무 좋아요’하고 감탄까지 한다. 그저 시어도어의 지시어에 따라 작동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공되는 정보를 접한 뒤 인간처럼 스스로 판단하고 반응하는 것이다. 

전기밥솥이 하는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정도의 멘트에나 익숙한 우리에게 영화 속 이야기는 여전히 먼 일들 같지만 최근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의 존재를 보면 영화처럼 컴퓨터와 소통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가능할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사물인터넷이란 사물에 센서를 부착해 실시간으로 사물들이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 기술을 말한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사람의 조작이 개입되지 않고 스스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그 정보들을 통해 상황을 판단하고 분석한 정보대로 작동하는 것이다. 

상상해보자. 밤새 눈이 내려 교통상황이 좋지 않은 아침에는 평소보다 알람이 일찍 울린다. 눈을 뜨고 침대에서 일어나면 저절로 커튼이 열리고 주방에서는 커피 머신이 작동을 시작한다. 커피 머신은 내 손목의 팔찌를 통해 지난밤에 술을 마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평소보다 당분이 많은 커피를 만들어낸다. 집을 나설 때는 현관문이 닫힘과 동시에 집 안의 기기들은 모두 저절로 꺼지지만, 주차장의 자동차는 시동을 걸고 차 안을 따뜻하게 만들며 나를 기다린다. 또한, 몇 시에 귀가하든 현관을 들어설 때는 세탁기가 빨래를 완료했다는 안내음이 들려오고 냉장고는 음식재료로 무엇이 남아있는지를 알려주면서 그 재료들로 만들 수 있는 메뉴를 추천해주고 요리법까지 알려준다. 약간의 감기 기운이 있다면 그것을 감지한 팔찌를 통해 실내 온도와 습도도 알아서 조절해준다. 내가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조작할 필요 없이 수시로 바뀌는 주위 상황에 따라 물건들이 스스로 움직이는 시대, 그것이 우리 코앞에 닥친 사물인터넷 시대인 것이다.  


2015년 핵심 키워드가 된 사물인터넷

얼마 전 우리나라 최고의 전자제품 회사인 삼성은 5년 뒤 모든 자사제품에 사물인터넷 기능을 적용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LG에서도 생활환경 전반으로 사물인터넷 적용분야를 점차 확대해나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실제로 사물인터넷은 금융, 건강, 의료, 교육, 교통 등 활용 폭이 넓어 앞으로 그 발전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그동안 전자기기의 발전이 모바일 분야에 달려있었다면 앞으로는 사물인터넷 분야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비단 삼성과 LG 두 공룡 기업뿐만 아니라 IT업계 전체가 사물인터넷에 기울이고 있는 관심과 기대는 매우 크다. 특허청 발표에 따르면 2009년 33건에 이르던 사물인터넷 관련 기술 출원이 2013년에는 229건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대기업의 출원 비중이 59.6%로 가장 높지만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국내 대학 및 중소연구기관의 기술 출원도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던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인 ‘2015 라스베이거스 소비재 전자박람회(2015 CES)’의 주인공 역시 사물인터넷이었다. 전시회에 참가한 업체들은 ‘스마트홈(사물인터넷을 이용한 가정 가전)’과 ‘웨어러블(시계, 안경, 의류 등 신체장착형 사물인터넷 기기)’ 그리고 ‘스마트카(무인자동차 시스템)’ 등을 경쟁적으로 선보이며 이제는 사물인터넷 기기들이 콘셉트 수준이 아닌 실용화 수준에 들어선 것을 확인하게 했다. 특히 유럽연합에서는 모바일 시대에 미국과 한국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한 것을 교훈 삼아 다가올 사물인터넷 시대를 국가 정책적으로도 뒷받침하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에는 구글, MIT공대, 디즈니랜드, 의료업체 등 민간 기업의 선도로 사물인터넷 시대를 앞당기고 있다.  

 

사물인터넷과 함께하는 우리의 미래

지난해 말 미국에서 실시한 한 설문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 1,017명 중 69%가 최대 걱정거리로 자신의 신용카드 정보유출을 꼽았다. 도난이나 테러, 노후 등에 대한 걱정보다 자신의 개인정보 보안에 대한 위험을 더 가까이 느끼고 있는 것이다. 가까워진 사물인터넷 시대를 앞두고 가장 많은 우려를 낳고 있는 것도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문제다. 개인정보는 공공재라는 우스갯소리를 할 만큼 사람들의 개인정보 유출 문제는 심각하지만, 그에 대한 믿을만한 대책은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사물인터넷의 목표는 인간생활 곳곳의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삶을 보다 윤택하고 편리하게 만드는 데 있지만, 그를 위해 수집된 정보들이 누군가에 의해 악용된다면 그 피해는 어마어마할 것으로 보인다. 

사물인터넷 시대, 그것은 여전히 공상과학영화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먼 미래의 이야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2G폰 시대에서 스마트폰 시대로 넘어온 것이 석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넘어간 것만큼이나 충격적인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1, 2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는 것을 회상해보면 섣부른 확신은 금물이다. 어쩌면 우리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물인터넷 시대의 한복판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 

<월간탁구 2015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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