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어깨 무거워요. 오로지 시합 생각뿐!”

세계선수권 파견 국가대표 선발전이 시작됐다.
이번 선발전은 오는 4월 26일부터 5월 3일까지 중국 쑤저우에서 치러지게 될 제53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개인전에 출전할 선수들을 뽑는 무대다. 국가상비1군 선수들이 풀-리그전(7게임제)을 치러 성적순으로 엔트리를 채운다.
그런데 이번 선발전에는 개최 하루 전까지도 출전을 준비하고 있다가 시합을 하지 않아도 되는 ‘행운’을 거머쥔 선수들이 둘 있다. 남자부 정영식(KDB대우증권)과 여자부 양하은(대한항공)이다. 이들은 3월 5일 발표된 ITTF 세계랭킹에서 각각 20위와 19위에 랭크되면서 세계20위 이내 선수 자동선발 규정에 따라 선발전을 면제 받았다.
정영식과 양하은은 이미 예정돼 있었던 주세혁(삼성생명, 16위), 서효원(렛츠런, 10위)과 함께 세계랭킹에 따른 자동 선발자로 분류됐다. 마치 입소를 위해 머리까지 깎았는데 훈련소 정문 앞에서 면제티켓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격이다. 정영식과 양하은은 시합은 없지만 동료들이 격전을 치르는 현장에 나와 있었다. 두 선수를 따로 만나 소감을 들었다.
 

▲ (태릉=안성호 기자) 3월 랭킹에서 20위에 올라 ‘극적’으로 자동 선발이 확정된 정영식. 홀가분한 표정으로 각오를 다졌다.

▶ 세계선수권 대표팀 선발을 축하한다. 자동 선발 소식은 언제 들었나? 기분이 어떤가?

정 : 국제연맹에서 랭킹을 발표한 어제(5일) 알았다. 세계랭킹은 20위에서 22위 사이쯤 될 걸로 예상이 가능했었다. 하지만 20위가 될 것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선발전 대비 훈련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막상 20위에 오르면서 선발이 확정되고 나니 어딘지 허탈한 느낌까지 들었을 정도다. 물론 기쁘다.

양 : 선발전을 6일부터 하는 건 국제연맹 랭킹이 5일경에 발표되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중동에서 대회 마치고 돌아온 이후 세계랭킹을 계산했을 때 20위 안쪽이라는 짐작은 하고 있었다. 물론 확신은 금물이므로 선발전을 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 무릎이 좋지 않아 제대로 훈련을 하지 못했다. 어제(5일)부터야 겨우 연습을 재개할 수 있었다. 준비가 잘 되지 않은 상태여서 걱정이 많았는데 이렇게 돼서 다행이다.

▶ 세계랭킹 상승은 중동 슈퍼시리즈에서의 활약 덕분이다. 현지에서 시합할 때는 어땠나?

정 : 작년 하반기부터 좀 더 적극적으로 하자고 마음먹고 모든 경기에 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통했다. 국제무대에서도 달라진 내 모습이 통하는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쿠웨이트오픈에서 삼소노프를 이기면서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대회 모두 8강벽을 넘지 못했다. 강한 상대를 넘지 못한 건 아직까지 내 한계일 수밖에 없다. 특히 카타르오픈 옵챠로프와의 8강전 때 초반에는 내 구질과 작전이 통했는데 뒤로 갈수록 밑천이 드러났다. 좀 더 실력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 어쨌든 이전까지 국제대회는 매번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그보다 성취감이 좀 더 많았던 게 사실이다. 강한 상대를 이기고 싶은 의욕이 강해졌다.

: 차이는 있었지만 두 대회 모두 전체적으로 볼이 잘 맞았다. 심리적인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다. 지난 인천아시안게임 이후 왠지 모르게 승패에 대한 집착이 많이 없어지고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시합을 준비할 수 있게 됐다. 개인적으로 아주 좋은 느낌이고 탁구도 더 잘 된다. 중국 선수들이 없었던 카타르오픈에서는 좀 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4강전 상대 사마라가 워낙 철저한 분석을 하고 나왔다. 초반에 당황한 것을 끝까지 극복하지 못했다. 최근 거의 모든 국제대회에서 아시아권 선수들만 상대해왔는데 유럽 선수들의 박자가 낯설다. 세계대회를 앞두고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다.
 

▲ (태릉=안성호 기자) 환한 얼굴의 양하은이었지만 훈련부족으로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 이런 질문은 실례일까? 시합을 하고 있는 동료들을 보는 기분은 어떤가?

정 : 사실 세계랭킹으로 대표에 자동 선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늘 힘들게 선발전을 치러왔는데 앉아서 시합을 보고 있으니, 게다가 어제까지 이 시합을 대비해 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이러고 있으니 좀 얼떨떨하긴 하다. 하지만 자동 선발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는 걸 알고 있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다.

양 : 사실 13일부터 인도에서 아시안컵이 있다. 아시안컵에는 효원(언니) 언니와 세혁(주), 민석(김) 오빠가 함께 출전한다. 그런데 아까도 말했듯이 훈련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 지금은 오직 연습에 대한 생각뿐이다. 아시안컵 후에도 곧바로 독일오픈이 있다.

▶ 선발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쑤저우 세계선수권에 대한 각오를 미리 듣고 싶다.

정 : 언젠가는 중국 선수들을 이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중국 외의 선수들 중에서는 최고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옵챠로프든 티모 볼이든 삼소노프든 중국 외의 선수들에게는 지지 않는 게 일차 목표다. 일본 선수들과는 최근에 시합을 많이 해보지 않았지만 나와는 박자가 잘 맞는 편이라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중국 선수들에게도 이길 수 있다는 마음으로 도전하겠다. 쑤저우에서 꼭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

양 : 세계대회 개인전엔 두 번 나갔는데 두 번 다 32강에서 졌다. 뭔지 모를 하나가 부족했고, 그 하나가 현재까지 내 한계다. 이번 대회 때는 그 한계를 넘어보고 싶다. 그럴 수 있다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거라고 믿는다. 큰 대회 준비 경험은 이제 적다고 말할 수 없다. 차분히 준비하면서 지금까지보다는 꼭 좋은 성적을 내겠다.
 

▲ (태릉=안성호 기자) 10일 아시안컵이 열리는 인도로 떠나는 양하은은 시합이 없는 점심시간을 이용, 따로 연습을 하기도 했다. 워밍업 중.

세계랭킹에 따른 자동선발은 특혜가 아니다. 세계 20위 이내라는 건 그만큼 국제무대에서의 경쟁력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훈련소 정문에서 돌려세운 건 이미 싸울 준비가 되어 있음을 믿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정영식과 양하은은 현재 국내 탁구계에서 가장 탁구를 잘하는 선수들이다. 지난 연말 종합선수권에서 국내 챔피언에 올랐다. 국내에서의 기세는 중동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승리관에서 동료들의 시합을 지켜보는 둘의 표정은 매우 홀가분해 보였지만 강한 책임감도 표정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아시안컵 출전을 앞두고 있는 양하은은 시합이 없는 점심시간에 따로 연습을 하기도 했다. 수비수뿐이던 자동 출전자 명단에 간만에 공격수로 합류한 정영식과 양하은이 쑤저우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기를 바란다.
 

Tip

정영식(KDB대우증권) : 1992년생이다.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 출전은 이번이 세 번째다. 하지만 첫 대회였던 2011년 로테르담 대회에선 개인단식은 뛰지 못했고 김민석(KGC인삼공사)과 함께 한 개인복식에서 3위를 기록했다. 단식 첫 출전은 2013년 파리대회였는데 64강전에서 스웨덴의 복병 룬크비스트에게 패했다. 복식은 이상수(삼성생명)와 함께 16강에 올랐다. 개인단식으로는 이번 쑤저우 세계대회가 두 번째 출전이다.

양하은(대한항공) : 1994년생으로 갓 20대에 올라선 나이지만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만 이번 쑤저우 대회가 벌써 네 번째 출전이 된다. 유스올림픽에 대비한 전략적인 선발로 고등학교 1학년이던 2009년에 ‘첫 경험’을 할 수 있었다. 2011년 로테르담 대회와 2013년 파리 대회 모두 개인단식은 32강에 머물렀다. 로테르담에서는 ‘숙적’ 이시카와 카즈미(일본)에게, 파리에서는 오스트리아의 중국계 리우지아에게 패했다. 이시카와는 인천아시안게임 메달결정전에서 이겼고, 리우지아는 얼마 전 카타르에서 이겼으니 쑤저우대회를 앞두고 예감이 좋다. 복식은 2011년에는 석하정(대한항공)과 32강, 2013년에는 박영숙(렛츠런)과 8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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