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들 연이어 탈락, 끝까지 즐기자!

역시 올림픽은 ‘마법의 무대’일까. 브라질 리우센트로 파빌리온 제3경기장에서 열리고 있는 제31회 하계올림픽 탁구경기에서 초반부터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남녀 개인단식 1, 2라운드와 3라운드 일부가 진행된 현재까지 객관적 기량보다는 심리적 변수로의 설명이 더 타당할 듯한 결과들이 연이어 벌어졌다. 대표적으로 여자단식 4강 시드 중 한 명이었던 일본의 이시카와 카스미(세계6위)가 북한의 김송이(세계50위)에게 3라운드 첫 경기에서 3대 4로 패해 메달의 꿈을 접었고, 남자단식에서 마지막까지 4강 시드 다툼을 벌였던 타이완의 츄앙츠위엔(세계7위)도 첫 경기부터 무너지며 체면을 구겼다. 츄앙츠위엔은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콰드리 아루나(나이지리아, 세계40위)에게 제대로 힘 한 번 못 써보고 0대 4 완패를 당했다.
 

▲ 일본의 이시카와 카스미가 북한의 김송이에게 첫 경기에서 패해 탈락하며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사진 국제탁구연맹.

그밖에도 남자단식 16강 시드의 강자 홍콩의 탕펭(세계15위)은 홈그라운드 관중의 응원을 등에 업은 칼데라노 휴고(브라질, 세계54위)에게 덜미를 잡혔다. 첫 게임을 잡았으나 뜨거운 응원 열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2대 4 역전패를 당했다.

32강전에 올라오기까지는 그래도 대체적인 예상대로 흘렀던 남자단식에 비해 여자단식은 1, 2라운드 시작부터 애초 전망과는 다른 승부들이 많이 나왔다. 특히 세계 각국 대표로 올림픽 무대에 등장, 각별한 경계가 요망되던 중국계 여자선수들이 부진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태국의 콤웡 난타나(세계72위)에게 패한 위푸(포르투갈, 세계28위), 루마니아의 도데안 다니엘라(세계58위)에게 패한 리치안(폴란드, 세계30위) 등이 대표적인 경우.
 

▲ 타이완의 츄앙츠위엔을 무너뜨린 콰드리 아루나. 또 한 번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 국제탁구연맹.

16강 시드를 받았던 휴멜렉(터키, 세계23위)과 리지에(네덜란드, 세계17위)도 각각 타이완의 첸츠위(세계41위), 같은 중국계지만 하위랭커였던 리슈에(프랑스, 세계53위)에게 32강 첫 경기에서 패하며 일찌감치 짐을 쌌다. 같은 중국계지만 무려 53세의 노장 니샤리엔(룩셈부르크, 세계66위)에게 2라운드에서 패한 센얀페이(스페인, 세계51위)도 예상에서 벗어난 결과를 낳은 이변의 ‘희생양’이다.

이와 같은 이변들 중에는 한국 선수들과도 직접 영향을 끼치게 될 승부들이 또한 적지 않다. 16강전에서 위멍위(싱가포르)를 넘은 뒤 8강전에서 이시카와 카스미와 메달권 진입을 두고 한 판 승부를 벌일 구상을 하고 있었던 전지희(포스코에너지, 세계11위)는 또 다른 부담이 따르는 ‘남북대결’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 첫 경기에서 포르투갈의 중국계 샤오지에니(세계54위)와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던 서효원(렛츠런파크, 세계18위)은 32강전 상대가 미국의 릴리 장(세계101위)으로 바뀌었다. 릴리 장이 2라운드에서 샤오지에니를 꺾었기 때문이다.
 

▲ 서효원의 예상되던 32강전 상대가 미국의 릴리 장(사진)으로 바뀌었다. 2라운드에서 50위에 가까운 랭킹 차이를 극복했다. 사진 국제탁구연맹.

이처럼 예상 밖의 승부들이 많이 일어나는 까닭은 역시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의 분위기에 따른 심리적 긴장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지구촌 최대의 축제이자 종합 국가대항전인 올림픽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가장 많은 관심이 집중되는 무대다. 특히 ‘제2의 조국’을 대표해 나온 중국계 선수들이 뜻밖의 부진을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도 그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정영식(미래에셋대우, 세계12위)과 전지희가 첫 경기를 치른 현재 올림픽 무대에서의 긴장감을 최소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안도감을 주고 있는 한국 대표팀의 경우는 그런 면에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연습벌레’로 유명한 정영식이나, 중국계로서 다른 멤버들에 비해 그 긴장의 정도가 더 클 수 있는 전지희는 첫 경기에서 유럽의 복병들을 어렵지 않게 요리하며 희망의 크기를 키웠다. 이들의 활약이 역시 첫 경기에 나서게 될 이상수와 서효원에게도 큰 힘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 올림픽 분위기에 압도되지 말고 최대한 즐길 것을 다짐했던 한국대표선수단이다. 다짐대로 초반 분위기가 좋다. 출국 때의 모습. 월간탁구DB(ⓒ안성호).

남자대표팀의 안재형 감독은 “올림픽이라고 해서 다른 대회와 다르게 긴장하지 말 것을 오래 전부터 강조해왔다. 어차피 현장에 오면 저절로 느끼게 되어 있는 것을 미리부터 부담을 줄 필요도 없었다. 다른 오픈대회처럼 연습하고 시합하자고 다짐해왔는데, 선수들이 생각보다 여유 있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 계속해서 자기 기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올림픽은 이제 시작이다. 한국 선수들은 개인단식 단 두 경기만을 뛰었을 뿐이다. 이상수(삼성생명, 세계16위)와 서효원은 이제 첫 경기에 나서야 한다. 섣부른 기대와 전망은 아직 금물이다. 하지만 팀 분위기는 선수들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한국 경기일정 선두주자의 부담을 떨쳐내고 여유 있는 승리를 거둔 전지희와 정영식의 활약 덕분에 한국 대표팀의 사기는 덩달아 높아졌다. 꼭 메달이 아니어도 좋다. ‘올림픽’에 주눅 드는 대신 자신만의 ‘탁구’를 즐기기 시작한 우리 선수들의 활약에 각별한 기대가 모아진다. 즐기다 보면 이변의 ‘희생양’이 아니라 이변의 ‘주인공’이 될지도 모를 일이니까.

저작권자 © 더 핑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