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로 ‘암’ 극복한 엄마 따라 탁구로 전향한 아들

  아들이 끝까지 따라가서 넘긴 볼이 다시 넘어오자 엄마가 날카로운 스매싱으로 결정짓는다. 엄마가 서브를 넣고 아들이 3구 공격을 시도한다. 모자의 ‘찰떡호흡’은 연전연승으로 이어졌다. 11월 15일, 충남 청양군 청양군민체육관에서 열리고 있는 ‘2014 국민생활체육 어르신과 함께 하는 가족탁구대회’에 출전한 이경자-백승민 모자 복식조 얘기다.

  국민생활체육회가 올해 신설하여 주최한 이 대회는 60대 이상 실버세대들을 주요 참가대상으로 하면서도 젊은 가족들도 짝을 맞춰 함께 출전할 수 있도록 한 새로운 형태의 탁구축제다. 부부복식, 부자복식, 실버스포츠복식 등 라지볼로 진행하는 세 종목이 공식경기. 전국에 산재한 노인복지관을 중심으로 500명 가까운 실버동호인들이 가족과 더불어 참가했다. 주관을 맡은 국민생활체육전국탁구연합회는 공식경기 외에도 대학생들을 동원한 스포츠마사지, 마술쇼와 국악공연 등등 참가동호인들이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경자-백승민 모자는 이 날 부자복식 경기에 참가해 준우승을 거뒀다.
 

▲ (청양=안성호 기자) ‘찰떡 호흡’을 과시한 이경자-백승민 모자. 부자복식 준우승을 거뒀다.

  그런데 이들 모자가 대회에 참가하게 된 사연이 남다르다. 어머니 이경자 씨(70)는 8년 전 위암선고를 받았다. 서울 생활을 접고 요양을 겸해 충남 태안으로 이사했다. 실의에 빠져 지내던 중 탁구를 만났다. 실버스포츠에 적합한 생활체육 종목답게 탁구를 하면서 건강이 눈에 띄게 회복됐다. 지난 6년 동안 각종 라지볼대회에도 꾸준히 출전했다. 아들 백승민 씨(30)는 본래 배드민턴 동호인이었다. 전국대회에서도 입상권을 들 정도로 수준급 실력자였다. 그런데 탁구를 시작하고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한 ‘엄마’를 보면서 ‘전향’을 했다. 엄마와 함께 탁구를!

  하지만 정작 같은 운동을 시작한 이후에도 모자가 함께 운동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어머니는 태안, 아들은 서울에 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머니는 라지볼을, 아들은 일반 경식탁구를 했으므로 같은 구장에 있을 때도 랠리를 함께 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모자는 그저 서로의 운동을 격려하고 조언하는 정도로 만족했다. 가족이 팀을 꾸려 출전할 수 있는 대회가 생겼다는 소식은 그래서 이들 모자에게 ‘특별한’ 계기가 됐다.
 

▲ (청양=안성호 기자) 엄마는 탁구로 ‘암’을 극복해가고 있다. 아들은 그런 엄마를 위해 탁구로 ‘전향’했다.

  “탁구를 시작한 이후로 많이 좋아지긴 하셨지만 여전히 완전히 건강하신 건 아닙니다. 얼마 전에는 갑상선에도 암이 와서 수술하셨어요. 그래도 늘 탁구를 할 때만은 밝게 웃으시는 모습이 좋습니다. 엄마에게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드리고 싶었죠. 대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먼저 함께 나가자고 했어요.”

  “평소에도 워낙 착한 아들이에요. 정말이지 ‘비단’ 같은 아들이죠. 나 때문에 탁구도 시작했고, 이렇게 대회에도 같이 나왔으니 더 말해 뭐하겠어요. 이왕이면 우승까지 했으면 좋았을 텐데 마지막 시합을 져서 아깝네요.”

  이경자-백승민 모자는 이날 두 번의 시합에서 완승을 거뒀지만 마지막 경기에서는 아깝게 졌다. 많은 역할을 해줘야 하는 아들이 아무래도 낯선 라지볼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네트도 높고 공도 둔탁했다. 사는 곳이 멀어 함께 연습할 시간도 적었다. 게다가 결승전은 같은 입장의 모자나 부자팀이 아닌 부부조가 나왔다. 대회 운영상의 오류 때문이었는데, 즐거운 마음으로 출전한 대회에서 언짢은 맘을 내비치기 싫어 그냥 경기에 임했다. 라지볼에 익숙한 상대 팀에게 결국 패했고, 목표했던 ‘우승’은 결국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 일등을 못 한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좋은 ‘추억’이 생긴 것으로 만족한다는 모자다.

  “대회 진행상황이 변경됐으면 사전에 충분한 설명이라도 해주면 좋을 텐데 그냥 일방통보 식인 건 좀 아쉽네요. 어르신들을 배려하는 대회니만큼 차차 나아지리라 믿습니다. 그래도 예전에는 없던 이런 대회가 생겼으니 좋네요. 내년에도 기회가 된다면 또 나오고 싶습니다.”

  같은 운동을 하면서 모자지간의 뜨거운 정을 확인한 ‘엄마와 아들’은 시상식을 하고 난 뒤 함께 성취한 상배를 맞들고 또 한 번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다. 아들은 엄마가 더 건강해져서 오래오래 함께 탁구를 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엄마는 아직 미혼인 아들이 얼른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 며느리후보가 또 특별하다. 탁구 잘 치는 아가씨 데려와라!
 

▲ (청양=안성호 기자) 시상식에서 다시 한 번 ‘추억’을 만들었다. 아들아! 탁구 잘 치는 아가씨 데려와라!

  탁구는 ‘이런 식’이다. 부부가, 부자가, 모자가, 형제가, 또 친구들이 네트를 사이에 두고 끈끈하게 공을 주고받는다. 함께 팀을 꾸려 또 다른 가족팀들과 열심히 싸운다. 승부 뒤에는 물론 유쾌한 인사가 빠지지 않는다. 청양에서 치러진 가족탁구대회는 생활스포츠로 우리 주변 깊숙이 자리 잡은 탁구의 진면목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잔치마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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